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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한 마도사는 반역자가 되어 있었다-101화 (101/200)

101화

말을 타고 달려나가는 마르코스의 부대가 어둠 속으로 사라져 이제는 보이지 않을 때쯤, 레온이 입을 뗐다.

“정말로 전부 데려갔어?”

“예, 지금 이 마을에 남은 전투원들은 저희뿐입니다.”

침울한 텐의 대답에 레온은 한숨을 내쉬었다.

졸지에 마을을 떠맡게 되었다는 기분이 들면서도 마르코스의 판단이 맞는 건지에 대한 의문이 계속해서 맴도는 듯했다.

“저놈은 참 한결같네.”

허탈하게 말하자 레온은 고개를 돌려 나를 잠시 보더니 눈살을 찌푸리며 동의했다.

“그러게 말이야.”

“에레오나가 따라가지 않은 건 좀 의외긴 했지만.”

“그 녀석도 바뀐 거겠지.”

혁명군 중에서도 가장 호전적이고 적극적인 자벨린 부대가 남을 줄은 몰랐는데, 그건 레온 역시 나와 같은 생각이었던 듯했다.

거기에 에레오나는 미련도 없이 마르코스의 출정을 보지도 않고 훈련장으로 가 버렸다.

“성공 가능성이 있을까?”

“적어도 예전만큼 위험하지도, 활동이 힘들지도 않을 거야. 지금 제도는 그만큼 망가졌으니까.”

체체로가 날뛰면서 도시의 4분의 1이 날아갔다.

마르코스의 병력이 마음을 먹고 제도로 잠입하려고만 한다면 충분히 가능할 정도로 혼란스러운 상태.

“중요한 건, 가서 뭘 할지 모른다는 거지.”

거기까지 마르코스는 얘기해 주지 않았다. 의도적으로 그쪽 화제를 피한 느낌이 들기도 했지만.

“제발 쓸데없는 짓은 하지 말아야 할 텐데.”

저번부터 사자 혁명군과 마르코스의 자유 혁명군은 다른 길을 걷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마르코스는 자유라기보다는 다른 것에 얽매인 분위기.

내가 그런 생각을 하는 걸 눈치챘는지 레온은 한숨을 내쉬며 자신의 생각을 덧붙였다.

“아무래도 마르코스는 퍼지들의 자유를 목적이라고 하면서 실은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아.”

“다른 생각?”

“늘 따르던 형의 복수…… 이지 않을까 하고 나랑 에레오나는 생각하고 있어.”

그래서 의도가 다르더라도 레온이나 에레오나가 강하게 나가지 못했던 건가. 두 사람도 옛 리더인 찬탈자 로마르코에 대한 그리움은 여전했으니까.

‘꽤나 뛰어난 리더였나 보네.’

이쯤 되면 한번 보고 싶을 정도.

하지만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다.

“그래도 똑바로 다잡아. 너도 알잖아, 마르코스가 무슨 활동을 할지는 모르겠지만 자칫 잘못하면 시민들의 원망을 사게 될 거야.”

집을 잃고 가족을 잃은 제도로 가서 퍼지들의 독립을 위한 활동을 시작하면 혼란을 야기할 건 뻔하고, 그렇다면 구조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피해가 직결된다.

그걸 알면서도 마르코스는 출발했고 레온은 말리지 못했다.

“가뜩이나 황실이 자신들한테 쏟아지는 손가락질을 어디로든 돌리려고 애를 쓰고 있을 텐데, 좋은 화살받이가 될 수도 있다는 거야.”

“마르코스가 그렇게 어리석지는 않을 거야.”

썩 마음에 드는 대답은 아니었지만.

“네가 그렇게 말한다면.”

어차피 여기서 대화를 더 해 봤자 잡아 올 수도 없기에 쓸모없는 토론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두통도 점점 심해져서 표정도 굳어졌고.

“테리스 선생님은 어디 계시지?”

“부상자들 치료가 일단락되어서 지금은 방에서 쉬고 계실 거야.”

“잘됐군.”

“어디 아파?”

“응, 많이.”

대충 말해 준 후, 다시 숙소로 돌아가서 1층에 있는 테리스 선생의 방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로버트 부자가 꽤나 심도 있는 토론을 나누고 있었다.

“그러니까 그립 부분을 이런 식으로 만들어야…….”

“하지만 아버지, 그건 숙련된 검사들에게만 유용한 부분이지 않을까?”

“안녕하세요.”

“오! 돌아오셨다고는 들었는데 인사를 못 드렸군요.”

로버트가 환하게 웃으며 인사를 건네 왔고 로벤 역시 일어나서 고개를 꾸벅 숙인다.

“아뇨, 제가 뭐라고. 테리스 선생님은 어디 있을까요?”

“네 뒤에 있다.”

인기척에 몸을 틀어보니 테리스 선생이 입에 파이프 담배를 문 채로 부스스한 뒷머리를 긁적이고 있었다.

의사로서 이런 위생 상태가 괜찮은 건가 싶었지만, 테리스 선생이라면 꼬우면 치료받지 말라고 일축하겠지.

“가뜩이나 남정네 셋이서 방 써서 짜증 나는데 너도 우리 방 쓰는 거냐?”

“아뇨, 진단 좀 받고 싶어서요.”

그러자 테리스 선생의 눈가가 좁아지며 뒤로 물러났다.

“흐음, 네 방으로 가자. 로벤, 거기 내 도구들 좀 챙겨 와라.”

“예, 옙!”

양손을 잃은 아버지에게 트라우마가 생겨 대장장이의 길을 포기했던 로벤. 폐인과도 같은 생활을 하던 그는 이제는 온몸에 활기가 넘치게 움직이면서도 눈에는 총기가 담겨 있었다.

“다행이군요.”

“음, 확실히 요즘은 눈이 높은 전투요원들도 놀랄 정도의 무기를 만들어 낸다만, 생각해 보면 당연한 거겠지. 아비의 재능이 어디 가겠어.”

당연하다고 말하는 테리스의 입가에는 말투와는 반대로 지울 수 없는 은은한 미소가 지어져 있었다.

3층의 내 방으로 올라가서 로브와 윗옷을 벗자 치렁치렁 감겨 있는 붕대에 테리스 선생이 인상을 찌푸린다.

카밀라가 감아 주었던 붕대를 풀고 목욕하며 새 걸로 직접 감았는데, 의사가 보기엔 썩 마음에 안 들겠지.

“개판이군.”

“최선이었습니다.”

몸을 비틀거리며 천천히 침대에 눕자 테리스 선생이 의자를 가져와 앞에 앉으며 묻는다.

“힐이 있으면서 외상을 왜 가만히 뒀냐?”

“하아, 지금 마법을 쓸 수가 없습니다.”

“마법을 쓸 수가 없다고?”

“제 상태가 썩 좋지 않아서 간단히 설명만 하겠습니다.”

“그래.”

체체로와의 결전에서 한계를 넘어선 마법 계산에 대한 후유증으로 두통이 동반되는 걸 설명하자 테리스는 인상을 팍 찌푸렸다.

“잠깐 확인 좀 하마.”

그리 말하고 몸 이곳저곳에 손을 대 보는 테리스 선생은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마나는 지극히 정상적이다. 오히려 신의 기적 덕분인지 훨씬 팔팔하게도 날뛰고 있군.”

“그렇죠?”

“그럼 두통이 문제라는 건데…… 솔직히 말하자면, 이런 상황에서는 두통약 말고는 나도 해 줄 수 있는 게 없다.”

“역시 그런가요.”

“원래 두통이란 건 그런 거야. 하지만 네 상태를 보아 그런다고 나을 수준은 아닌 것 같으니까…….

그때 덜컹하고 문이 열리며 로버트 부자가 들어온다.

“선생님, 여기 있습니다.”

“호오.”

로벤은 한 무더기 있는 테리스 선생의 도구를 양손에 들고 왔지만 대장장이로서의 근력 덕인지 아무렇지 않아 보였고, 로버트는 자연스럽게 방 한쪽에 걸려 있는 내 지팡이로 눈이 갔다.

“썩 훌륭한 재료로군. 이런 건 본 적이 없지만…… 흠, 장인의 솜씨는 그리 훌륭하지 않군.”

눈대중만으로도 정령들의 손재주를 정확히 판단한 로버트. 나는 애써 웃으며 입을 뗐다.

“지팡이 제련에 도움이 된다면 빌려드릴 수 있습니다.”

“정말입니까? 로벤, 얼른 챙겨라.”

“옙, 아버지!”

“대신 조심해서 다뤄 주십쇼, 선물 받은 겁니다.”

“물론이죠.”

로버트는 드물게도 신난 감정을 내보이며 아들을 부추겼다. 이때만큼은 진심으로 자신의 양손이 없는 게 안타까운 듯했다.

아차.

“그러고 보니 로버트 님.”

“예?”

“데오르그 기사단장, 죽었습니다.”

순간, 정적과 함께 세 남자의 시선이 내게로 꽂힌다. 테리스 선생은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봤고 로벤은 끓어오르는 눈물을 참았으며 로버트는 침묵했다.

그리고 잠시 후.

“신경 쓰지 않습니다.”

로버트에게 데오르그 기사단장은 단순 원수 그 이상이었다. 그가 양손을 가져가면서 자신이 일생을 바친 대장장이의 길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으며 그건 아들의 일탈로 이어졌다.

그럼에도 로버트는 단호했다.

“그런 것보다는 이 지팡이를 보고 싶군요.”

허허 하고 웃는 그에게 나 역시 웃어 주며 고개를 끄덕였고 로버트 부자는 방 밖으로 나갔다.

“후, 짜식.”

파이프 담배라도 피는 듯 숨을 내뱉은 테리스 선생은 자신의 도구를 뒤적였다.

“두통에 가장 좋은 게 뭔지 아냐?”

“약이라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약 먹고 푹 쉬는 거. 그게 직빵이야.”

테리스 선생이 꺼내 놓은 건 다름 아닌 양초 더미.

그것도 알록달록한 색이 인상적이면서도 테리스 선생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물건이었다.

성냥으로 불을 붙이자 묘하게 편해지는 향이 솔솔 풍겨 왔다.

“마음이 편해지는 향도 있고, 고통이 조금은 완화되는 향도 있어. 1시간마다 환기도 시켜 줄게.”

“향초를 보통 겸용해서 씁니까?”

“뭔 상관이야.”

그런 건가?

“두통 때문에 깊게 잠도 못 잔다고 했지? 조금이지만 고통이 억제되는 침도 놔 줄게.”

“차라리 수면제를 복용하는 건 어떻습니까?”

“정말 심각하면 그래야겠지만 가능하면 최후까지 미루는 게 좋아.”

“그렇습니까.”

“마음의 안정, 평화. 뭐 계속 그런 상태이려고 노력해 봐. 아니다, 아예 생각이란 걸 하지 마. 그냥 뒤진 듯이 잠만 자라.”

“그게 되겠습니까.”

“그렇게 해 줄게. 너 솔직히 지금도 피곤하지?”

“…….”

“눈가 보면 딱 답이 나온다. 얼마나 굴렀으면 피로가 이렇게 쌓이는 거야? 한동안은 요양한다고 생각해라.”

“그럴 시간이 없습니다.”

테리스의 말대로 계속해서 이어진 피로가 깊게 쌓였지만 그렇다고 여유로운 상황은 아니었다.

벤트 몰란을 잃은 마교단장들이 어떻게 나올지 모르는 상황인데.

하지만 테리스 선생은 단호했다.

“닥쳐. 환자면 환자답게 뒤진 듯이 잠이나 자.”

퍽 하고 머리를 잡고 강제로 베개에 나를 파묻은 테리스 선생.

처음엔 두통이 강렬히 당겨 왔지만, 향초 덕분인지 아니면 몸에 들어온 침 덕인지 고통은 서서히 줄어들었고 눈은 감겨 왔다.

* * *

갑작스러운 테리스 선생의 호출은 모두에게 뜻밖이었다.

헤니를 필두로 아이들이 방방곡곡을 뛰어다니며 간부진을 모았고, 늦은 밤 다들 파자마 차림으로 식당으로 향했다.

처음엔 리더도 아닌 사람이 무슨 호출이냐 투덜거리기도 했지만, 이들 중 테리스 선생에게 치료를 받아 본 적 없는 이가 없었기에 입을 다물고 따를 수밖에 없었다.

긴 테이블 앞에는 테리스 선생이 앉아 있었고 그 옆으로 레온과 텐, 에레오나와 자벨린 부대 등.

심지어는 로버트 부자와 포르쉔 국장 그리고 미오와 에딘 같은 아이들도 있었다.

“라엘은?”

에레오나의 물음에 레온도 한 번 둘러보더니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게, 벌써 자고 있나?”

“깨우고 올까요?”

“짜식이 빠져가지곤.”

루이나와 톰이 덧붙이자 테리스 선생이 고개를 저었다.

“그놈에 관한 이야기야.”

그 한마디에 왁자지껄하던 분위기가 싸악 진정된다.

어서 이야기하라는 묘한 압박감에 테리스 선생은 담배가 땡겼으나 참으며 입을 열었다.

“방금 전까지 라엘을 진찰했다.”

무언가 묻고 싶은 사람이 벌써 몇몇 보였지만 테리스는 무시하며 말을 이어 갔다.

“요번에 제도의 전투로 과하게 힘을 사용해서인지 심각한 두통을 앓고 있더군. 마법도 제대로 쓰지 못해.”

하트의 보고를 통해서 다들 알고 있던 사안이지만 씁쓸함이 다시금 퍼져 갔다.

“약을 써도 진정이 안 된다. 우선은 침을 놓고 향초를 피우면서 재워 두긴 했지만, 그거 가지곤 택도 없다. 솔직히 뭘 해 줄 수 있는지도 모르겠어.”

혁명군에서 가장 유능한 의사이자 거의 유일하게 제대로 된 의사인 그가 하는 말이었기에 그 무게감은 남달랐다.

하지만 테리스 선생은 여기서 뜻밖의 말을 내뱉는다.

“그러니까 할 수 있는 건 전부 해 본다.”

“음?”

이상함을 느꼈는지 루이나가 뜬금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따로 대단한 치료를 할 수는 없으니까. 아예 녀석이 푹 쉴 수 있는 환경을 만든다. 그러면 조금은 두통이 가실 수 있겠지.”

“음음.”

옆에 있는 헤니가 격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했고, 테리스 선생은 탕 하고 책상을 치며 외쳤다.

“지금부터 라엘 텔리즈먼 휴양 계획을 제안한다.”

모두의 밤이 깊어져 갔으나 식당의 불은 새벽까지 꺼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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