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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한 마도사는 반역자가 되어 있었다-93화 (93/200)

93화

“어서요! 건물 안으로 도망치세요!”

제도로 들어온 하트는 날아드는 마수들을 베어 내며 시민들을 인솔하고 있었다.

처음엔 인파에 섞여서 자연스럽게 파고들려고 했지만, 귀족의 사병들은 귀족들만 챙기고 경비대는 부족한 기사단 탓에 성벽 수비 중인지라 내부 방비가 없다 싶었다.

결국엔 혼비백산한 사람들을 무시할 수는 없었기에 하트가 품에 숨겨 뒀던 단검을 뽑아 들며 앞장섰다.

하늘을 통해 날아든 마수의 머리를 단검으로 찍어 누르며 근처 3층짜리 폐건물로 사람들을 피신시킨다.

“한곳으로 뭉치세요! 그래야 지켜드릴 수 있습니다!”

하트의 목소리가 들렸던 건지 아니면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로 본능적으로 발걸음이 움직였는지, 도망치던 사람들이 하나둘 건물로 들어갔다.

무리를 향해 날아드는 한 마리를 향해 몸을 날려 단검을 다시 박아 넣는다. 근력이 부족해서 몸이 붕 떠 버렸지만, 마수는 땅에 얼굴을 처박으며 그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헉, 헉…….”

숫자가 부족하다.

150년 전, 태양왕국 라스와의 전쟁 이후 평화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던 제국에게 이런 사태는 너무나 갑작스러웠고 대응이 힘들었다.

대부분의 기사단이 바깥에 나가 있는 상황이기에 최악의 상태에서 적을 맞이한 것.

게다가 더욱 중요한 건.

“지켜라! 나를 지키란 말이다!”

“네놈! 누가 봉급을 먹여 준다고 생각하냐!”

유일하게 제대로 된 무기를 가지고 싸울 수 있는 귀족들의 사병이 시민들에겐 일절 관심을 주지 않는 것.

제도에 머무는 귀족들에겐 사병의 숫자에 제한이 있기는 하지만, 다들 눈속임으로 그 이상을 데리고 있었고 황실도 굳이 제지하지 않았다.

제국의 위기 상황에서 그들의 사병은 전부 황실로 귀속된다는, 귀족들 입장에서는 어처구니없는 법안 때문.

하지만 방금 말했듯 150년간 평화로웠기에 귀족들의 사병이 착출되어 가는 일은 없었고, 그들 역시 단순 구색 맞추기로만 생각하고 있었다.

막상 일이 이렇게 터지니 귀족들은 자신의 사병을 황실에 귀속시키지 않고 자신들을 지키는 데 쓰고 있었지만.

“크읍! 아가씨! 마수들이 너무 많아!”

그나마 건장한 남성들이 하트를 도와 사람들이 모이는 건물 앞에서 볼품없는 연장을 들고 있었지만, 살육에 특화된 마수들을 상대하기엔 더없이 부족했다.

“잠시만요.”

하트는 마수에게 박힌 자신의 단검을 뽑아 들고는 마침 근처를 지나가던 한 귀족에게 다가갔다.

“귀족 나으리! 여기 사람들이 많습니다! 사병분들의 지원이 필요합니다. 부디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참 사례가 되어 주십쇼!”

“개소리! 어딜 감히 평민 나부랭이가 그딴 소리를 하느냐!”

당연하게도 귀족으로 보이는 남자는 얼굴을 시뻘겋게 붉히며 외쳤고 그의 사병들 역시 우르르 몰려와 하트의 앞을 가로막았다.

그리고.

퍽 하고 날아든 단검이 귀족의 이마에 정확히 박아 들어갔다.

“무, 무슨 짓이냐!”

사병들을 통솔하던 남자가 당황하며 눈을 뒤집고 쓰러진 귀족을 부여잡고 하트에게 외쳤다.

다른 사병들도 하트에게 달려들려 했으나 그녀가 당당하게 입을 뗐다.

“지금은 제국의 위기 상황입니다! 귀족들은 자신의 사병들을 황실에 귀속시켜 그 본분을 다해야 하건만, 저 귀족은 자신의 안위만을 챙기며 그동안 받은 혜택에 따른 윤리적 의무를 다하지 않았습니다!”

척하고 손가락으로 사병들을 가리킨다.

“당신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당신들이 지금 지켜야 하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황실의 법도를 어기며 자신만을 배 불린 저 파렴치한 남자입니까? 아니! 아닙니다! 고개만 조금 돌리면 보이는 두려움에 떨고 있는 신민들이지 않습니까!”

“…….”

“처음 그 검을 쥘 때, 당신들이 자신에게 바랐던 모습은 무엇입니까? 눈치나 보면서 황실을 모욕하는 반역자의 곁을 지키는 것이었습니까? 아니지 않습니까. 약자를 보호하고, 소중한 것을 지키며, 우리의 평화를 수호하는! 그런 방패가 되고 싶지 않았습니까!”

귀족들의 사병 대부분은 기사를 지망하던 사람들이다.

하지만 능력이 되지 않아서, 신체의 결함이 있어서 혹은 가문의 오명 탓에.

그들은 그렇게 포기하고 자신이 잘할 수 있는 검을 쥐는 일을 찾아 방황하며 귀족들의 밑으로 들어간다.

“지금입니다. 당신들은 지금, 사람으로서, 기사로서의 갈림길에 놓인 것입니다.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보십쇼. 지금 누가 당신들을 필요로 하는지!”

휙 하고 몸을 돌려 다시 건물로 돌아간 하트의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다. 건물 앞을 지키던 남성들이 환호하며 그녀를 맞이해 주었기에 애써 불안한 표정을 숨겼다.

하지만 다행히도 귀족의 사병들은 결연한 눈동자를 지닌 채로 하트에게 다가왔다.

간부로 보이던 남자는 귀족이 차고 있던 검과 마도권총을 하트에게 건네며.

“당신의 말이 맞습니다.”

“……감사합니다.”

무기를 받으며 하트는 고개를 끄덕였다.

한 번도 안 뽑아 본 듯 매끄럽게도 뽑혀 나오는 검을 위로 치켜들고 하트는 외쳤다.

“지금부터 구조를 시작합니다! 사병분들은 반으로 나뉘어 한 팀은 이 건물을 보호하고 다른 한 팀은 저와 함께 사람들을 구합니다.”

“옙!”

“도중에 방금 전과 같은 귀족이 있다면 같은 결말을 맞이하게 될 겁니다!”

재빠르게 찢어진 사병들을 이끌고 하트는 빠르게 주변 사람들을 구조하기 시작했다.

그러는 와중에도 방금과 똑같은 귀족들이 있으면 그들을 협박하거나 참살하며 그 본문을 다하게 만들었다.

‘생각보다 인원이 많이 불었다.’

덕분인지 하트의 뒤를 따르는 사병들이 상당히 많아졌고, 구조와 보호에도 어느 정도 체계가 잡혔다.

또한 성벽 위로 보이는 엄청난 화마와 열기 덕분에 내부로 침입하던 마수들이 사라졌다.

‘라엘 님이다!’

쾌재를 부르며 하트는 그동안 고생했던 사람들을 잠시 쉬게 했고, 이제 괜찮다고 다독여 주었다.

돌이켜보니 꽤나 웃긴 상황이었다.

사실 누구보다 제국에 대항하고 있는 자벨린 부대의 참모인 자신이 제국 귀족들의 사병을 데리고 사람들을 구하고 있다니.

‘하지만…….’

하트의 마음속에선 무언가 채워지는 기분이 들었다. 어린 시절, 마수에게 살던 마을과 부모를 잃었던 기억.

지금의 자신은 그때와는 다르다는 걸 세상에 마음껏 보여 주는 느낌.

“끄아앗!”

“지, 지진이다!”

“다들 머리 보호하고 숙여요!”

갑작스레 시작된 땅의 진동.

처음엔 지진인가 싶었지만 한쪽 성벽이 무너지며 땅 밑에서 튀어 올라온 구멍이 숭숭 뚫린 피투성이의 거대한 문어.

“크라켄!”

아직 침공은 끝나지 않았다고 외치듯 녀석은 마구잡이로 날뛰기 시작했다.

또한 바깥의 열기가 사라지며 다시금 하늘을 날아다니는 마수들이 시내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다들 자리 잡으세요! 다시 옵니다!”

“젠자아아앙!”

“개 같은 마수 놈들 오늘 다 죽여 주마!”

“제국을 얕보지 마라!”

한 번 해냈으니 또 해낼 수 있다.

그런 희망과 함께 다들 무기를 치켜들었으나.

쿠궁 하는 작은 떨림과 함께 하수구 구멍을 부숴 버리며 등장한 마수들.

성인보다 2배는 거대한 덩치를 가지고 온몸에 돌덩이 같은 근육이 박혀 있는 놈들은 손짓 한 번에 두 사람을 날려 버릴 정도로 강력했다.

‘지하수로를 통해서 타고 들어왔다!’

크라켄의 등장으로 어딘가 틈이 생겨 지하수로를 달려 이곳까지 도달한 것.

“…….”

저도 모르게 깨문 입술에선 먼지 섞인 피맛이 짙게 올라왔다.

자벨린 부대는 최전선에서 싸우는 부대였지만 하트는 전략가. 최소한의 무력은 갖추고 있었지만, 무더기로 튀어나오는 저런 괴물들을 상대할 재간은 없었다.

지금 있는 병력으로는 저 괴물들을 상대할 수 없다는 건 알고 있었기에 자신이 시간을 버는 동안 도망치라고 말하려던 순간.

콰앙 하고 마수의 머리가 땅에 처박힌다.

그 위에 올라타 있는 건 몸집이 작은 소년.

최근 잘랐는지 짧고 단정한 머리. 조금 큰 후드티를 입고 있었지만 손목이나 목덜미를 봤을 때는 마른 체형.

특이한 점은 목부터 뺨까지 올라와 있는 특이한 문양의 문신.

문신? 문양? 각인?

뭐라 말해야할지는 모르겠지만 분명한 건, 저 소년이 엄청난 속도와 힘으로 마수들을 맨손으로 제압하기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노아!”

그리고 뒤에서 소년을 쫓아온 듯한 여인.

긴 검은 머리였지만 머리핀으로 앞머리를 위로 올려 이마가 훤히 보이는 미모의 여인.

“카밀라 누나! 숨어 있으라니까!”

“너 걱정돼서 가만히 있지를 못하겠더라.”

예전보다 훨씬 친해진 듯 서로를 부르는 두 사람.

“저기, 당신들은?”

하트는 당황하여 키밀라라는 여인에게 다가갔다. 아무래도 저 노아라는 소년과는 다르게 전투 능력은 없어 보였다.

“안녕하세요, 음……. 그냥 지나가던 기인이라고 생각해 주세요.”

“…….”

뭔가, 비슷한 말을 하는 남자를 본 적 있는 것 같은데.

어쨌든 지금 두 사람이 누구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노아라는 소년이 위협적이던 마수들을 빠르게 소탕하며 한시름 덜어 주었다.

“카밀라아아!”

특이하게도 흩날리는 분홍 머리와 함께 울먹이며 달려온 또 하나의 여성.

이번엔 하트도 아는 사람이었다.

“제니아?”

최근 제도에서 가장 뜨거운 인기를 얻고 있는 미모의 실력파 여가수.

하지만 그 내면은 사자 혁명군에 속해 혁명을 위해 눈속임을 하는 혁명단원이지만.

“팬이신가 봐요? 하하, 지금은 사인해 드릴 상황이 아니라…….”

“아뇨, 괜찮습니다.”

안타깝게도 제니아는 자벨린 부대원을 만난 적이 없었고, 제니아의 정체는 사자 혁명군 중에서도 극비인지라 두 사람은 서로를 알 턱이 없었다.

“제니아! 사람들은 다 어디 갔어?”

“몰라! 마수들이 땅에서 막 솟아올라 오니까 다들 혼비백산하면서 도망쳤어!”

“이런…….”

아무래도 저 아이까지 해서 세 사람도 사람들을 모아서 지키고 있었던 것 같아 하트가 합류를 권했고, 둘은 감사히 받아들였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흩어진 사람들을 걱정하는 카밀라에게 제니아는 웃으며 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그건 마이크였다.

분홍색으로 치장되어 있었지만 분명한 마이크였다. 그것도 상당히 비싸 보이는 마석이 박혀 있는.

“어디에서라도 무대를 펼칠 수 있는 게 바로 프로지.”

틱 하고 마이크를 켠 제니아가 숨을 한 번 훅 들이마시더니 크게 외쳤다.

“여러분! 가수 제니아입니다! 지금 제국 옛 포르멘 신문을 발행하던 신문사에서 사람들을 보호하고 있습니다!”

마이크를 통해 쩌렁하게 제도에 울리기 시작한 그녀의 목소리.

물론, 소음이 워낙 많았기에 넓게 퍼지진 못하겠지만 주변 사람들에겐 분명하게 들릴 것이다.

“저희는 이 건물을 중심으로 사람들의 구조를 하고 있습니다! 혹여나 숨어 계신 분들은 저희를 믿고 부르면 나와 주세요!”

그녀의 목소리는 이상하게도 다른 사람들의 삶에 대한 의욕을 북돋아 주는 힘이 실려 있음을 하트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좌절하지 마세요! 힘을 내요! 오늘이라는 하루는 부정할 수 없이 절망적이지만……. 저희는 이겨 낼 수 있습니다! 다시금 내일의 태양을 맞이하며 살아갈 겁니다!”

그리곤 이 장소의 자세한 위치와 오는 경로를 설명하는 제니아.

하트는 멍하니 그녀를 바라보다가 자신도 모르게 웃음을 지었고, 옆에 있던 카밀라와 눈이 마주쳤다.

“대단한 친구분이시네요.”

“자랑스러운 친구죠.”

동시에 말한 두 사람은 제니아에게 질 수 없다는 듯 움직이려던 순간.

시선은 동시에 한곳에 고정되었다.

아주 멀지만 그 특색 있는 복장 때문일까, 신영만으로도 확신할 수 있었다.

지팡이를 들고 성벽 위에서 다른 남자의 어깨에 손을 댄 채로 마법을 준비하는 남자.

“라엘 님?”

둘은 동시에 그 남자의 이름을 불렀고 깜짝 놀라며 서로를 바라봤다.

“아니, 어떻게…….”

“그, 그쪽이야말로…….”

당황하는 두 사람이었지만 갑작스레 날아든 검은 갑주를 입은 남자가 라엘 텔리즈먼의 복부를 가격하였고.

“라엘 님!”

다시금 깜짝 놀라며 둘은 소리를 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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