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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한 마도사는 반역자가 되어 있었다-79화 (79/200)

79화

무인들은 가끔 정신을 통일하기 위해서 폭포를 맞는 훈련을 한다고 들은 적이 있었다.

차가운 물에 자신의 심신을 맑게 하는 것이 검을 쥐는 손에 망설임을 없애 준다며.

아마, 톰이 차가운 개울에 몸을 담그고 있었던 것도 그런 방식의 일종이었을 거라 생각은 한다.

어쨌든 어느 날 그 이야기를 듣고 스승님이 고안해 낸 훈련법이 있다며 폭포에 갔던 기억이 있다.

폭포 밑에서 물을 소용돌이치게 만들어 몸이 안 젖게 하는 무식하면서도 도통 어디에 쓰는지 모르겠는 훈련.

‘그게 지금 쓸모가 있을 줄이야.’

목책을 넘어 계속해서 들어오는 마수들을 회전시키며 그대로 허공에 계속 돌게 한다.

마치 하늘의 폭풍 속에 갇힌 모습.

뒤에선 아이들의 탄성과 응원 소리가 들려와 더 힘이 되어 준다.

이제는 뭉쳐있는 마수들이 조금 징그럽게까지 보일 정도로 모였을 때 슬슬 내부 정리가 끝나가는 듯했다.

“우앗! 징그러.”

“이게 뭐야.”

루이나와 레온이 다가와 계속 허공을 돌고 있는 마수들을 보며 한 마디씩 건넨다.

“내부 정리는 끝났어?”

“어, 데스웜이 빠르게 정리되고 굴도 테토가 막아 줘서 큰 피해는 없었어.”

“저것들은 어떻게 할 거야?”

“아이들 눈 좀 가려 줘.”

신기하다며 달려오는 아이들을 막아서는 루이나와 레온. 아이들의 고개를 돌리자 그대로 회전시키던 마수들을 산산이 짓이긴다.

“핏빛 태풍이라, 나름 멋지지 않아?”

-왝, 센스 하고는. 나는 바람에 이물질이 묻어 있는 건 싫어. 특히나, 더러운 마수들은 말이야.

옆에 나타난 라푼젤이 헛구역질하는 제스처를 취하며 어깨에 앉았고 나를 도와 시체들을 바깥으로 옮겨 주었다.

“난리가 났네.”

한바탕 마수들과의 전투로 마을은 여기저기 파괴된 상태였지만, 그나마 대응이 빨랐던 탓에 이 정도로 그칠 수 있었다.

“마수들이 더 오기 전에 목책부터 다시 방비하고, 앞으로 어떻게 할지 방향성에 대해서 마르코스와 다시 얘기해 봐야겠어.”

한숨을 내쉬며 참상을 눈에 담는 레온. 인명 피해가 없을 순 없었지만 그래도 크지 않다는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그렇게 뒷수습을 맡기고 우리는 광장에 있는 마르코스에게로 향했다.

“그런데 이 정도로 제국의 공격을 막을 수 있는 건가?”

루이나의 의문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절대로 안 되지.”

마수들이 내부에서 침입해왔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이 정도 수준이라면 제국에서 큰 피해 없이 자유 혁명군을 토벌할 수 있을 것.

“흐음? 자기들이랑 싸우면 제국에도 피해가 심해서 어쩔 수 없이 방치한다고 저번에 그러지 않았나?”

“그랬지…….”

마찬가지로 찝찝하던 부분을 루이나가 정확히 집어 주었다.

광장으로 오니 마르코스는 사람들을 정렬시키며 지시를 내리다가 우리를 맞이했다.

“너희도 목책 수비에 힘을 보태라. 언제 다시 마수들이 몰려올지 알 수 없다.”

또 명령투에 나와 루이나가 슬슬 못 참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앞으로 나서려 했지만, 레온이 우리 둘을 막아 세웠다.

“당장은 그렇게 하겠지만 마르코스, 여기서 시간을 지체하면 안 돼.”

무슨 말을 하는지 들어 보겠다는 표정으로 레온을 바라보는 마르코스.

“우리니까 이 정도 피해로 끝난 거야. 변경백의 수호기사들도 마수들의 숫자를 감당하지 못하고 있어. 이렇게 있다간 더 안쪽으로 들어간 마수들이 다른 마을을 덮칠 거야.”

“…….”

“우리가 움직여야 해.”

“지금 주변 마을을 돕자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건가?”

“당연하잖아.”

자신이 무슨 이상한 말이라도 했냐는 듯 되묻는 레온에게 마르코스는 조소에 가까운 미소를 지었다.

“어째서?”

“뭐?”

주변을 정리한 톨레스와 미오 그리고 자벨린 부대원들도 하나둘 모이며 레온과 마르코스의 대화를 듣는다.

“다른 마을을 지원하러 갔다가 마수들이 역으로 다시 이곳을 습격하면? 우리는 제국에서 가장 변경에 있는 마을이다. 제일 큰 위험에 빠진 건 우리야.”

“그래도 우린 훈련된 병사들이 있지만 다른 마을은 순찰 정도만 도는 자경단이 끝이야. 속수무책으로 당할 거라고.”

“불허한다, 남을 돕자고 우리가 위험에 빠질 순 없다.”

“마르코스!”

버럭 화를 내는 레온에게 마르코스가 눈을 부릅뜨며 한 걸음 앞으로 다가왔다.

“다시는 내게 소리 지르지 마라.”

칼부림이 날 수도 있는 상황 속.

한 발 물러난 건 레온이었다.

“알았어, 그러면 너희는 지켜. 사자 혁명군과 자벨린 부대만 움직일게.”

레온의 뒤에 있던 모두가 준비를 하려던 순간, 다시금 마르코스의 목소리가 울려왔다.

“불허한다.”

반쯤 몸을 틀었던 레온이 뚝 하고 움직임을 멈춘다. 자신이 무엇을 들은 건지 이해가 되지 않는 표정.

“무슨 소리야.”

“레온, 이토록 어리석은 남자인 줄은 몰랐군.”

하지만 그건 마르코스도 마찬가지였다.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눈으로 레온을 내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이건 기회다.”

두꺼운 목소리는 그의 말에 묘한 무게감을 실어 주었다.

“마수들은 멈추지 않고 움직여서 근방 마을을 쑥대밭으로 만들 것이다. 더 나아가선 제도 근처까지 습격할 가능성이 충분하지.”

충분한 게 아니라 분명 그럴 것이다.

하트와 함께 하늘에서 봤던 마수의 군세는 정말 엄청났으니까.

거기에 제국의 마수들이 거의 소탕된 탓에 사실상 방비도 녹이 슬었을 것이다.

“마을이 파괴되고, 사람이 죽으며, 비극을 낳는다. 그 책임이 누구에게로 돌아갈 거라 생각하나.”

당연하게도 제국이다.

비극이 커지면 커질수록 사람들은 자신들을 지켜 내지 못한 무능한 제국을 탓할 것이다.

“민심이 흔들리겠지. 우리는 편승하여 제국을 지속적으로 비난한다.”

거기서 끝이 아니라며 말을 이어 가는 마르코스.

“거기에 이 정도 규모면 대규모 토벌전이 치러져야 하는데 그러면 제국에 피해를 줄 수도 있지. 천재일우의 기회를 얻은 셈이다.”

반박은 허용하지 않겠다며 몸을 돌리는 마르코스의 뒤통수에 꽂히는 비웃음.

“하, 웃기는군.”

“에레오나.”

자벨린 부대의 수장인 에레오나가 뒤늦게 합류하여 마르코스를 노려본다. 그 눈동자는 방금 전 마수를 보던 것과 크게 다를 바 없었다.

“어울리지 않게 머리 굴리는 건 인정해 주는데 말이야, 썩 마음에 들지는 않아.”

“적이 누구인지 착각하지 마라, 에레오나.”

자신에게 다가오는 에레오나에게 질책이 담긴 시선으로 응수하는 마르코스.

“우리는 제국과 싸우는 것이지 마수와 싸우는 게 아니다.”

“말은 똑바로 해, 우리는 제국으로부터 독립을 얻기 위해 싸우는 거야.”

“같은 말이다.”

“전혀 달라!”

꽈악 주먹을 쥔 에레오나는 분명한 적의로 마르코스를 노려보고 마르코스 역시 슬금슬금 손을 움직인다.

“우리가 제국에서 독립하려는 건 그들이 우리에게 하는 차별과 비극에서 벗어나기 위함이야. 그런 마음으로 모인 우리가, 바로 옆에서 펼쳐지는 비극을 무시하고 오히려 그걸 이용한다고?”

하! 하고 비웃음을 내뱉으며 역겹다는 표정으로 마르코스에게 말한다.

“그러면 너는 제국과 다를 게 뭐지?”

“언제부터 제국민 모두를 품에 안은 건지 모르겠군, 에레오나.”

“나는 네 형인 로마르코 대장의 의지를 이어 가는 것뿐이야, 모지리 마르코스.”

후우 하고 짙은 한숨을 내뱉은 마르코스는 움찔거리던 손으로 등에 메고 있던 대검을 뽑아 들어 그대로 에레오나를 내리쳤으나,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 은발의 검사는 검을 뽑아 들어 막아 냈다.

“내 앞에서 소리 지르지 말라고 했을 텐데.”

“미친놈, 동포에게 검을 뽑아 들어?”

“권위를 거스르는 행동을 하는 반동자를 처단하려는 것뿐이다. 너 같은 녀석 하나가 물을 흐리지.”

“그런데 나를 벨 자신은 있어서 뽑아 든 거겠지?”

“그만, 두 사람 다 그만해.”

지금껏 침묵을 지키던 레온이 끼어들었으나 둘은 여전히 검을 거두지 않았다.

“이렇게 다들 보는 앞에서 수뇌부에 분란이 있다는 걸 보여 주는 것도 썩 좋지 않을 텐데, 마르코스.”

“흠…….”

주변을 슬쩍 본 마르코스는 떨고 있는 마을 사람들을 보더니 천천히 검을 거두었고, 에레오나는 잠시 그를 노려보다 레온의 부름에 고개를 저으며 검집에 검을 꽂았다.

“어쨌든 마르코스, 우리는 네가 허락하지 않아도 움직일 거야.”

“어리석군.”

“네가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우리도 이곳을 거점으로 삼지는 않겠어.”

가는 길이 다르다면 굳이 같이 있을 필요가 없다. 자유 혁명군의 배려로 이곳에 정착하게 된 것이지만, 이렇게까지 마음이 맞지 않는다면 출혈을 감수하더라도 다른 보금자리를 잡는 게 났다고 레온은 판단한 것.

“…….”

마르코스는 레온의 뒤로 시선을 두었다. 레온을 따르는 사자 혁명군과 에레오나를 따르는 자벨린 부대.

잠시 고민하던 그는 몸을 틀며 답했다.

“그래, 마음대로 해 봐라.”

일종의 허락.

다들 표정이 밝아졌지만, 레온만큼은 마르코스의 등을 향해 애처롭게 한마디를 남겼다.

“어째서 그렇게 변한 거야, 마르코스.”

* * *

“와! 그 자식 뭐야!”

“옛날에는 안 그러지 않았나?”

“몰라, 그때도 말은 별로 안 했어.”

바득바득 짜증을 내며 허공에 주먹질을 하는 루이나와 분을 풀겠다는 듯 빵을 우걱우걱 먹어 대는 톰.

그래, 그 기분은 알겠지만.

“왜 내 방에 와서 그러냐.”

“라엘! 밤에 가서 그 자식 거시기 한 번 지져 봐.”

“없을 거야, 남자도 아닌 자식!”

“하아.”

무시무시한 발언을 계속하는 두 사람에게 이상한 두통을 느끼며 결국 포기하고 내가 방 밖으로 나섰다.

“조금 있다가 대장이랑 와서 회의한다니까 금방 돌아와.”

“내 방에서?”

“어, 대장이 그러던데.”

허허 웃는 톰의 얼굴에 확 하고 짜증이 치솟는다.

“너는 밤에 조심해라.”

“힉!”

화들짝 놀라며 자신의 주요부위를 양손으로 가리는 톰.

-좀 심하긴 하네, 죽빵 정도로 타협하지.

-어머, 팔 한 짝은 사라져야 비극이 뭔지 이해하지 않을까?

-나는 나름 나쁘지 않은 의견이라고 생각한다.

수군거리는 정령들이 테토의 말에 순간적으로 시선이 쏠린다.

-가만히 있는 것만으로 이득을 취할 수 있으며 상대에겐 피해를 준다. 전략으로는 나쁘지 않은 방법이지 않은가.

테토의 말을 들으며 가위바위보를 시작한 운디네와 라푼젤.

라푼젤이 졌는지 시무룩한 표정을 하며 테토의 뒤를 잡아 양손을 속박했고, 운디네가 신난다는 얼굴로 오른팔을 크게 돌리며 다가간다.

-죽빵 정도로 끝내줄게.

-아쉽구나, 팔 한 짝이 아닌게.

-잠깐, 너희와 의견이 다르다고 해서 이런 방식은…….

-사실 언제 한 번 때려 보고 싶기는 했어. 간다아아! 운명과 시간을 가르는 소나기 펀치이이이!

아주 이곳저곳 난리도 아니구나.

정령들도 내버려 두고 숙소 밖으로 내려오니 기다렸다는 듯 들려오는 또 다른 목소리.

[야.]

그러고 보니 우레아가 있었지.

[계약 내용 이렇게 어길 거야?]

“무슨 소리야.”

시치미 떼며 답하자 꽃이 찌르르 울려오며 잔뜩 흥분한 우레아의 목소리.

[적합자를 찾았는데 왜 나를 안 주냐고! 걔한테 꽃만 주면 끝난다니까!]

“하아.”

한숨을 내쉬는 내 눈에 타이밍도 안 좋게 금발의 소녀가 총총걸음으로 뛰어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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