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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한 마도사는 반역자가 되어 있었다-78화 (78/200)

78화

“후우!”

땀을 닦는 에레오나는 검을 한 번 휘둘러 묻은 피를 털어 냈다. 자벨린 부대원들과 사자 혁명군의 단원들은 각자 몸을 추슬렀다.

“변경이라서 그런가, 마물이 생각보다 많네.”

“뭐, 심심하지 않고 좋지.”

루이나와 톰의 대화 소리에 반응이라도 한 걸까, 수풀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나더니 또 다른 마수들이 튀어나왔다.

“아직 안 끝났어?”

“또 나왔다!”

물론 각 리더들이 에이스 역할을 하고 있는 두 사람이었기에 어렵지 않게 처리할 수는 있었지만, 생각보다 숫자가 많았다.

다시 한번 몰아치기 시작하는 마수 때와 루이나와 톰을 주축으로 토벌을 시작한다.

하지만 가장 눈에 띄는 건 선혈과 함께 은발을 흩날리는 에레오나.

로벤이 만든 도검을 테스트하는 만큼 원 없이 날뛰고 있었다.

“펠른에 있을 때보다 훈련에서는 훨씬 좋긴 하네.”

“그렇긴 한데요…….”

나와 함께 비전투요원으로 뒤에 있는 하트가 찝찝한 표정을 지으며 말끝을 흐렸다.

“왜? 거슬리는 거라도 있어?”

“으음, 사실 저도 변방 출신이거든요.”

“음지가 아니라?”

살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하트.

“당시 마수들한테 마을이 습격당한 걸 혁명군에서 구해줬죠.”

하트 입장에선 썩 하고 싶은 이야기는 아니었을 텐데 그녀는 이제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옅은 미소만 머금고 말을 이었다.

“그런데 이렇게까지 마수가 많지는 않았거든요.”

제국 내의 마수의 씨가 마르긴 했지만 그건 제도의 상황. 제국 바깥에는 여전히 마수들이 우글거리고 있었고 언제 들어올지 몰랐다.

“변방이라서 마수 둥지가 근처에 있는 건가?”

“흐음, 이 정도면 변경백들이 이미 알고 토벌을 했어야 할 텐데요.”

확실히 이 숫자의 마물들이 몰아붙이면 평범한 마을은 금방 쑥대밭이 되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

“변경백이 일을 안 하나?”

“……그럴 것 같지도 않은 게 마이노 변경백은 석양의 방패라고 불릴 정도로 철두철미한 성격이거든요.”

“거창하네.”

“하하, 근처 시민들이 지어 준 이름이에요. 아침부터 시작해서 석양이 질 때까지 자신들을 지키는 방패를 내리지 않았다고 그렇게 불린다고 하더라고요.”

생각보다 꽤 대단한 사람인가 보네.

“하트가 그렇게 말할 정도면 확실히 뛰어난 사람인 것 같은데 그러면 이상해지긴 하네.”

“그렇죠? 으음, 한 번 확인을 해 보고 싶은데요.”

아무래도 마수에 관해서는 민감할 수밖에 없다는 걸 그녀의 과거를 생각하면 알고 있기에 나는 조심스럽게 손을 내밀었다.

“음? 무슨 의미시죠?”

“한 번 확인해 보러 가자.”

“지금요?”

“어차피 우리가 여기 있어 봤자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잖아.”

당분간 전투가 끝날 것 같지도 않지만, 진형이나 움직임에는 안정성이 있었기에 자리를 비운다고 큰 문제가 될 것 같진 않았다.

“흐음, 좋아요.”

내 손을 잡은 하트.

“잠시 실례할게.”

반대 손으로 그녀의 허리를 끌어안은 후, 하늘로 올라갔다.

“꺄앗!”

“걱정 말고 꽉 잡아.”

“잠깐만요! 잠깐만요!”

차가운 바람이 세게 쳐 대는 하늘.

쭈욱 늘어진 숲과 그 끝에 있는 제국을 지키는 방벽.

너무 가까이 가면 위험할 수도 있으니 근처를 한 번 쭈욱 둘러보는데, 하트가 먼저 손가락으로 아래를 가리켰다.

“저길 보세요!”

방벽 근처에서 달리는 마수들과 그 뒤를 쫓는 기사들. 말을 타고 있어 속도에서 밀리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따라잡지는 못하고 있었다.

“이건…….”

중요한 건, 변경백의 수호기사들의 숫자보다 훨씬 더 많은 마수들이 방벽을 넘어 제국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끔찍해요.”

덜덜 떨리는 하트의 목소리에 그녀를 잡은 손에 힘을 조금 더 주면서도 냉정하게 상황을 분석했다.

“마수들이 기사들을 지나치고 있어.”

랜스에 찔리고 다른 마수들이 죽어 나가도 마수들은 계속해서 안으로 내달렸고, 그 탓에 기사들이 대거 놓치고 있는 상황.

당연하게도 놓친 마수들은 앞으로 제국 내에서 자기들 멋대로 활동을 시작하겠지.

“이상하네요.”

“이상하네.”

동시에 말한 우리는 서로에게 잠깐 눈을 맞춘 후, 다시 마수들을 바라봤다.

보통 마수들은 자신을 공격한 상대를 놓치지 않으며 굶주림과 같은 본능에 의해서 행동한다.

물론, 개중에는 흑주신처럼 지능이 있는 녀석들도 있지만 그건 정말 극소수.

하지만 녀석들은 지시를 받은 병사들처럼 일사불란하게 제국 내부로 파고들어 오고 있었다.

“마수의 종류도 다양해. 원래는 저렇게 공생하는 관계가 아닌 녀석들인데 말이야.”

마수를 가장 많이 죽이는 건 당연히 같은 마수.

그들 안에서도 먹이사슬이나 천적 관계 등은 분명하게 잡혀 있었다.

“불안하네요. 또 한 번 큰일이 터질 것 같아요.”

“좋지 못한 징조이긴 하네. 일단은 내려가자.”

떠올랐던 곳으로 그대로 내려오자 주변 상황은 이미 정리되고 다들 우리를 올려다보며 기다리고 있었다.

“재밌었겠다.”

“라엘, 나도 나중에 태워 줘!”

“어디 다녀왔어?”

이상하게 날이 서 있는 에레오나의 물음에 하트가 화들짝 놀라며 대신 답한다.

“위에서 주변 상황을 살폈어요! 다른 의도는 없고…….”

“제국으로 마수가 들어오고 있어.”

이상하게 말끝을 흐리는 하트가 조금 답답해서 말을 끊으며 끼어들었다.

“마수가 들어오고 있다고?”

이 대화에 끼어들고 싶지 않다는 듯 뒤에 서 있던 레온이 앞으로 걸어 나오며 심각한 표정을 짓는다.

“일단은 돌아가자. 가서 설명해 줄게.”

“여기도 위험할 수 있어요.”

나와 하트의 말에 우리는 다시 자유 혁명군으로 돌아가 바로 마르코스의 저택으로 향했다.

이번에도 그때의 경비가 눈살을 찌푸리며 거절했으나 다 같이 몰아붙이며 안으로 치고 들어가 버렸다.

“무례하군.”

소란을 들었는지 복도로 걸어 내려오는 마르코스.

연회에서 보긴 했지만 다부진 몸에 거친 근육과 더불어 자상들이 인상적인 남자였다.

“마르코스, 급한 일이야.”

레온이 앞으로 나서며 말하자 마르코스는 잠시 입을 다물더니, 쯧 하고 혀를 차곤 따라오라 몸을 틀었다.

벽난로가 인상적인 거실로 향해 마르코스는 자신의 푹신한 소파에 앉으며 다리를 꼬았다.

우리는 앉을 자리도 없는 게 마치 마르코스의 부하가 되어 보고를 하러 온 기분이 되었는데, 나 말고 다른 사람들도 느꼈는지 눈을 찌푸렸다.

“무슨 대우야?”

“장난하나 지금.”

특히나 호전적인 루이나와 톰이 대놓고 짜증을 내며 불편하다 티를 냈지만, 마르코스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하지만 정말 미안하게도.

두 사람 말고도 이런 취급을 못 참는 사람이 하나 있단 말이지.

“야, 뭐 하냐.”

상황을 설명하기 위해 앞에 있는 하트를 살며시 뒤로 밀며 튀어나왔다.

“넌 뭐지?”

이게 나이도 나랑 비슷해 보이는 게 목소리 깔고 아주 난리 났구만.

“내가 니 꼬봉이야? 제대로 일어나서 듣든가 아니면 의자를 가져와.”

“무례하게 남의 집에 들어와서 할 말은 아닌 것 같은데.”

“너는 실례를 알아서 입구에서 총구를 들이밀라고 했냐?”

“후…….”

나와 마르코스의 신경전이 이어지자 레온과 에레오나가 결국 참지 못하고 중재에 나섰다.

“그만해, 지금 이럴 시간 없는 거 너도 알잖아.”

“일단은 그냥 넘어가겠지만 마르코스, 우리는 네 부하가 아니야. 그 관계에 대해서는 확실히 할 필요가 있을 듯싶네.”

두 사람이 말려 분위기가 일단락되자 하트가 조심스레 앞으로 나와서 설명을 시작했다.

마수들이 방벽을 넘어서 제국으로 넘어오고 있다는 것과 그 수가 셀 수 없이 많으며 종류 또한 다양하다는 것.

변경백의 기사들이 막아 보고는 있지만, 손바닥으로 시냇물을 담을 수 없는 것처럼 마수가 쏟아지는 상황.

“이대로면 저희뿐만 아니라 수많은 제국민들이 죽게 될 거예요.”

생각해 보면 신년 행사에서 펠른 근처에 있던 마수를 잡아서 구워 먹었는데 그게 일종의 징조였던지도 모른다.

“당장 움직일 필요가 있어.”

“흠.”

레온의 말에 시큰둥한 표정을 지으며 팔짱을 끼는 마르코스. 기분 나쁜 침묵이 거실을 맴돈다.

톰은 답답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금방이라도 폭발할 것 같은 표정을 지었고, 다른 사람들도 썩 보기 좋은 표정은 아니었다.

예상을 깨고 침묵을 깨트린 건 바깥을 지키고 있던 경비였다.

호들갑스럽게 문을 열고 들어온 그는 마르코스를 향해 외쳤다.

“마르코스 님! 지금 마을에 마수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무슨 소리냐?”

이제야 표정에 균열이 간 마르코스가 벌떡 일어나며 경비를 노려본다.

“땅에서 마수들이 튀어나오고 있습니다. 데스웜부터 시작해서……!”

“당장 나간다! 레온, 에레오나. 너희도 도와라.”

“말 안 해도 그럴 거야.”

“명령하지 마.”

썩 좋지 못한 분위기였음에도 이 장소의 모두가 한마음이 되었다는 건 변함없었다.

자신의 무기를 챙기러 가던 마르코스가 내 옆에서 멈추곤 나를 바라본다.

“입을 놀리는 정도의 실력이 있길 바라지.”

“허.”

옆에 있던 루이나도 들었는지 쓴웃음을 지으며 내게 참으라 고개를 저었지만, 원래 도발을 참는 성격이 아닌지라.

“입이 실력을 못 따라가지.”

밖으로 나가니 정말로 땅이 갈라지며 마수들이 튀어나오고 있었다.

데스웜이라는 땅을 파고 살아가는 마수부터 시작해서 그 굴을 통해 튀어나오는 로즈 플랜트, 식인 해바라기 등.

하나같이 위험한 마수들이 지하에서 온천수처럼 뿜어져 나오는 게 꼴이 말이 아니었다.

레온과 에레오나가 각자 부대원들에게 지시를 내리는 동안 나는 천천히 몸을 띄워 마을 전체를 한 번 훑어봤다.

“생각보다 규모가 크다, 테토.”

-음, 불렀나.

“데스웜들이 파는 굴들을 다 틀어막아 줘. 그냥 지반만 무너트리면 쉬울 거야.”

-그래 봤자 놈들은 다시 굴을 판다.

“데스웜이 들어오는 건 괜찮아. 다른 마수들이 그 굴을 타고 들어오는 걸 막아야 해.”

-알았다.

테토가 사라지고 바로 운디네와 라푼젤을 부른다.

-으악! 마수들이잖아!

-추한 것들, 아주 싹을 뽑을 시간이 왔구나.

“가능하면 사람들을 지키는 쪽으로 움직여.”

고개를 끄덕이고 사라진 정령들. 운디네와 라푼젤이 사람들이 모이는 광장 쪽으로 향했으니 힘없는 사람들이 죽는 건 크게 줄어들 것이다.

“그럼……!”

마나를 마을 전체에 퍼트린다.

잠시 숨을 참고 손을 들어 올리니 거대한 덩치를 가진 데스웜들이 둥실 하고 하늘로 올라온다.

“꽤나 곤란하게 해 주는구나.”

콰직콰직 하고 압력에 찌부러지며 형태를 알아볼 수 없는 덩어리가 되어서 숲에 던져지는 데스웜들.

테토가 굴을 막고 있으니 추가로 진입하는 마수들은 차단했다고 생각했으나.

“목책이 뚫렸다!”

세워둔 목책이 뚫리며 그 틈새로 마수들이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한다.

“젠장.”

내부 정리는 레온과 에레오나가 해 줄 거라 믿고 있기에 후속 부대를 끊는 게 나만이 해 줄 수 있는 일.

그렇기에 바로 목책 쪽으로 날아가고 있자니, 지붕 위에서 두려움에 떨고 있는 다른 아이들을 꼭 끌어안아 주고 있는 엘리나가 보였다.

“으아앙! 죽기 싫어어!”

“엄마아아아!”

“괜찮아! 걱정하지 마 얘들아! 아저씨들이 금방 물리쳐 주실 거야!”

패닉에 빠진 아이들을 계속 다독이고 있지만, 그녀 역시 힘없는 연약한 소녀. 덜덜 떨리는 손을 숨길 순 없었다.

“꺄아악!”

식인 해바라기가 지붕 위로 뛰어올라 자신의 거대한 이빨을 들이밀었다. 한입에 아이들 전부를 삼킬 수 있을 정도로 거대한 크기였지만.

“더럽긴.”

앞을 가로막으며 불꽃의 창으로 흔적도 남김없이 태워 버린다.

“라엘 오빠?”

“…….”

뭔가, 스승님을 닮은 아이한테 오빠라는 소리를 들으니 기분이 좋기도 하고 어색하기도 해서 살짝 고개만 틀어 답해 준다.

“보호 마법을 쳐 둘게. 여기서 움직이지만 않으면 위험할 일은 없을 거야.”

“가, 감사합니다!”

다른 아이들은 방벽을 통해 쏟아져 들어오는 마수들을 보며 공포에 질려 있었다.

나는 답을 한 엘리나에게 안심을 주기 위해 씩 웃어 주며 손가락으로 방벽이 뚫린 부분을 가리켰다.

“저쪽 잘 보고 있어. 어제보다 더 신기한 거 보여 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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