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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한 마도사는 반역자가 되어 있었다-69화 (69/200)

69화

작전 당일, 펠른.

작전일이어도 연극이나 소설처럼 극적인 하늘의 변화는 없다는 걸 그동안의 경험으로 에레오나는 알고 있었다.

‘하긴, 뭔가 다르면 상대가 이상하게 여기겠지.’

오히려 오늘처럼 평범한 하얀 하늘에 평소보다 조금 쌀쌀한 정도가 딱 알맞았다.

“뭔가 기분이 이상하네요, 대장.”

옆에서 함께해 주고 있던 톰이 어색하게 뒷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늘 최전선에서 작전의 주요 인력이었던 우리가, 지금은 뒤에서 동료들의 안녕을 바랄 뿐이라니.”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하는 톰의 표정은 착잡함이 감겨 있었고, 그건 펠른에 남아 있는 자벨린 부대원들 모두가 마찬가지였다.

이제는 그들 모두가 자신들이 어떤 의미로 남겨진 것인지 이제는 분명하게 이해하고 있었다.

사자 혁명군의 정예들이 실패했다면, 자신들의 뒤를 이어 주길 바랐던 것.

그들의 기분과 의지를 누구보다 많이 느껴 왔던 자벨린 부대였기에 입을 다물고 주먹을 쥔 채로 이 자리를 지키고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뭐, 라엘이 있으니까.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겠죠.”

“그렇겠지.”

라엘의 실력은 자신들의 상상을 초월한다. 그 한계가 어디인지 느껴지지 않는 마법은 검의 길을 걸어온 에레오나조차도 조금 회의감을 느끼게 만들었다.

압도적인 빛은 언제나 그 시선을 강탈하며 자신의 손에 들린 무언가를 초라하게 만들었으니까.

“이런 우울한 이야기는 하지 말죠, 대장. 괜히 기분만 꿀꿀해집니다. 녀석들은 분명 성공하고 거만한 표정으로 돌아와서는 허세를 부려 댈 겁니다.”

“그래, 그러면 좋겠어.”

“하핫, 저희는 저희 얘기나 하죠!”

그리 말하는 톰의 얼굴빛이 조금 붉었다. 이전이었다면 혹시 추워서 그런 거냐 걱정했겠지만, 지금은 조금 달랐다.

‘하아, 이걸 어찌한담.’

풋풋한 첫사랑을 하는 소녀와 같은 표정을 하고 있는 톰이 괜히 어색하게 느껴졌다. 자신에게 이런 정보를 알려 준 라엘이 싫어졌다.

물론, 그가 직접 에레오나에게 와서 말한 건 아니다.

하지만 연말 파티에서.

‘너는 에레오나 좋아하면서 뭔 다 치근덕거리고 다니냐.’

정말 우연히 들렸었다.

사실 들렸다기보다는 우연찮게 라엘에게 눈이 갔고, 우연찮게도 입 모양을 읽어 버렸다.

‘설마 그런 마음을 품고 있었을 줄이야.’

평생을 검과 함께 치열한 삶을 살아온 에레오나였기에 이런 감정에 대면하는 건 쉽지 않았다.

솔직히 썩 좋은 감정을 가질 수가 없었다.

저번 땅끝마을에서 스톤 형제가 보내는 끈적거리는 시선부터 시작해서 톰이 난봉꾼처럼 이리저리 찔러 대고 다니는 모습까지. (성공한 적은 없다)

자신에게 호의를 보인 남성들 대부분이 에레오나가 극도로 혐오하는 부류이거나 썩 좋은 감정이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물론, 톰은 좋은 동료다.’

그 가벼운 행실은 불만족스러웠지만 어떻게 남에게 모든 걸 만족하겠는가.

애초에 최전선에서 싸우는 이들에겐 모두 각자의 스트레스 해소 방법이 있었고, 여성에게 어필하는 게 톰에겐 그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생각이 많아졌다.

사실은 하나의 결과를 도출하기 위해서 변명하듯 말을 풀어 댄 거나 다름없었지만.

톰은 아니다.

미안하지만, 정말 아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옆에서 이런저런 농담 따먹기를 해 대는 톰.

‘그러고 보니.’

땅끝마을에 갔을 때, 라엘과 연인 행세를 했던 기억이 불현듯 떠올랐다.

‘자기, 이제 그만 구경하고 우리 의뢰를 부탁드려야지.’

스톤 형제의 특수 성벽을 꿰뚫어 본 라엘이 그들을 꿰어내기 위해서 했던 거짓말이었지만, 솔직히 처음엔 소름이 돋았다.

게다가 ‘자기’라니.

“훗.”

어이없음에 헛웃음이 나왔다.

에레오나의 헛웃음에 자신의 유머가 먹혔다고 생각했는지 톰은 조금 흥분해서는 가열차게 떠들어 대기 시작했다.

하지만 에레오나의 눈이 크게 뜨이며 손을 검 자루 위에 얹었다.

“대장?”

갑작스러운 그녀의 반응에 톰은 당황하면서도 바로 등에 있는 토마호크 두 자루를 양손에 쥐어 들었다.

“벙커로 가서 부대원들 모으고, 비전투원은 전부 훈련장으로 모아.”

“예!”

방금까지의 어리숙한 호색한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군기가 바짝 든 톰이 순식간에 건물을 나와 지하 벙커 쪽으로 향했다.

펠른이 지하에 있다 보니 보초들은 대부분 건물 옥상에 위치한다. 이곳은 폐허가 된 도시였기에 몸을 숨길 곳도 많았다.

아주 묘하지만 그만큼 위협적이고 강대한 적의 기운.

기운이 너무 방대해서 제대로 된 방향을 특정하기 힘들었기에 에레오나는 눈을 돌리며 적을 색적했으나.

놀랍게도, 주인공은 당당하게 길을 따라 걸어오고 있었다.

그것도 단 한 사람.

제국에는 흔하지 않은 어두운 피부, 두꺼운 모피 코트를 걸치고 있으며 2m는 되는 거대한 덩치.

무기 하나 장비하고 있지 않았지만, 자신의 신체가 그 무엇보다 강력한 무기라고 주장하는 듯한 근육들.

제국의 주요 인물은 대부분 알고 있는 에레오나조차 처음 보는 얼굴이었지만, 흉흉한 기세는 펠른 전체에 불안하게 요동치고 있었다.

우선 접근해서 대화? 아니면 기습?

고민하고 있는 에레오나에게 정확히 꽂힌 그의 시선.

최대한 몸을 숨기고 은밀하게 있던 에레오나는 자신과 눈을 맞춘 남자의 입 모양을 똑똑히 읽을 수 있었다.

‘심판자가 찾아왔다.’

순식간에 에레오나는 기세를 뿜어 대며 건물 옥상에서 뛰어내려 검을 휘둘렀다.

떨어지는 별똥별과도 같은 막힘없는 기세였음에도 남자는 묵묵히 자신의 두꺼운 팔을 들어 에레오나의 검을 막았다.

“네놈은 누구냐.”

하지만 당황하지 않고 그대로 몸을 뒤로 뺀 에레오나의 물음에 남자는 천천히 무거운 입을 열었다.

“마교단장 듄.”

“마교단장?”

처음 들어 보는 이름.

신교의 대칭점에 서 있는 특수한 종교인 건가 했으나, 남자의 주먹이 이미 에레오나의 코앞까지 찾아와 있었다.

처음 들린 건, 애써 틀어 주먹과 자신 사이에 두었던 검이 부러지는 소리.

덕분에 정타로 꽂혀 들어오는 주먹을 피하긴 했으나 주먹이 휘둘러진 여파로 불어온 바람에 몸이 붕 떠서 옆에 있던 건물에 박혀 들어갔다.

“크헉!”

제대로 맞지 않았음에도 뇌가 울려오며 핏줄이 터져 눈가가 시뻘겋게 변한다.

에레오나가 제대로 호흡을 다시 가누기도 전에 남자는 다시 주먹을 내질렀고, ‘죽음’이라는 단어가 그녀의 뇌리를 스쳤으나.

다행히도 주먹은 중간에 멈췄다.

모여든 자벨린 부대원이 바로 듄에게 달려든 덕분.

“이 새끼가!”

“멈추지 마! 계속 공격한다!”

“몸이 무슨 돌덩이야!”

톰을 필두로 자벨른 부대원들이 노도의 연격을 펼치고, 듄은 몸을 웅크린 채로 그들의 공격을 음미하듯 허용했다.

“대장! 괜찮으세요?”

하트가 다가와 걱정스레 에레오나를 일으켜 주었다. 호흡을 고른 에레오나는 듄에게 시선을 두며 물었다.

“지금 당장 로버트 부자한테 가서 남는 검 좀 얻어 와 줘. 한 방에 부서졌어.”

이제는 자루밖에 남지 않은 검을 버리며 말하자 하트는 꽁꽁 감싸고 있던 보따리를 에레오나에게 건넸다.

얇은 도신.

찌르는 것보다는 베는 것에 초점이 맞춰진 도검.

“이건…….”

동방의 검술을 익힌 에레오나에게 제국의 검은 늘 발목을 잡아 왔다. 그녀가 다루는 검술과 제국의 검은 맞지 않았으니까.

“아직 완벽하진 않다고 해요. 그래도 다른 검을 드리는 것보다는 훨씬 나을 것 같아서요.”

하트의 말에 에레오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무게중심이나 내구성 면에서 부족함이 보이긴 했으나 그래도 방금까지 쓰던 검보다 훨씬 마음에 들었다.

처음으로 전력을 낼 수 있다.

에레오나는 그리 생각하며 천천히 허리춤에 검을 차고 자루에 손을 얹었다.

뭉뚝한 검으로는 할 수 없었던 자신이 가장 자신 있는 기술.

“다 비켜!”

에레오나의 외침과 동시에 기다렸다는 듯 뒤로 물러나는 자벨린 부대원들.

그리고 그들을 스쳐 앞으로 치고 나간 에레오나의 검이 듄의 코앞에서야 광채를 내며 뽑혀 나왔고.

서걱 하고 듄의 오른팔을 감싸던 코트 부분이 잘려나가며 선홍빛의 피가 흩날리며 바닥을 적신다.

성채와도 같은 몸을 가진 남자에게 처음으로 상처를 낸 것.

그것만으로도 자벨린 부대원들은 가능성을 봤으나 에레오나만큼은 달랐다.

“발도로도, 이것밖에 안 된다고?”

모든 걸 벨 수 있는 일격필살.

오러도, 심검도 아닌 오직 검과 자신을 향한 믿음으로 완성된 극의.

기술의 완성도를 검이 따라가지 못할 정도로 검신이 흔들렸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아마 완성된 검이었어도 이 이상의 피해를 주지는 못했을 거라는 확신이 에레오나에게서 퍼져 나갔다.

몸을 웅크리고 있던 듄은 천천히 허리를 폈다.

그의 무표정의 어딘가에선 지루함이라는 감정이 느껴졌다.

“그래, 끝인가 보군.”

“괴물…….”

자벨린 부대원 중 누군가의 말이 공허하게 펠른에 울려왔다. 듄은 에레오나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그대들이 아무리 노력해도, 아무리 애를 써도, 전심전력으로 모든 걸 다 부딪쳐도.”

절망하라는 속삭임.

“신의 심판을 피할 수 없다.”

듄의 코트가 거센 바람에 날아간다.

괴팍하리만치 거대한 근육들과 몸 전체를 둘러싸고 있는 기이하면서도 불길한 문신들.

“파괴의 심판자, 듄. 신의 의도에 따라 오만한 혁명군에게 심판을 시작하마.”

듄의 주먹이 땅을 내리쳤고.

땅이 흔들렸다.

지하에 몸을 숨기고 있는 혁명군 일원들이 눈에 보였다. 이쪽에겐 땅이 무너지는 것이지만, 저들에겐 천장이 무너지는 상황.

지반이 무너지는 혼란스러운 와중에도 에레오나는 입술을 깨물며 다음 타격을 준비하는 듄에게 달려들었다.

“그만둬!”

아직은 괜찮다.

대지가 무너졌지만, 훈련장으로 모든 인원을 모았고 운이 좋았는지 그쪽은 아직 피해가 크지 않았다.

하지만 다시 한번 내리친다면.

그 후는 장담할 수 없었다.

단번에 목을 친다.

그런 각오를 가지고 에레오나는 다시 한번 전심전력을 다해 검을 휘둘렀으나.

사람을 향해 휘두른 검에서는 나올 수 없는 소리가 들려왔다.

분명 자신이 휘두른 것임에도 에레오나의 검이 산산이 부서졌다. 그 일격에 실린 그녀의 마음도, 영혼도 잔혹하게 깨부숴져 간다.

하지만 에레오나의 기세를 읽었는지 듄은 내리치던 주먹을 거둬들이곤 자신의 목을 노린 검사를 바라봤고.

“일검은 훌륭했다만, 어린 검사여.”

듄의 거대한 주먹이 보이지 않는 속도를 내며 에레오나의 가슴팍에 직격으로 꽂혀 들어간다.

“상대를 잘못 찾아왔구나.”

에레오나의 신형이 허공을 날았다.

누군가의 비명 소리가 들려오지만, 미안하게도 명확히 들리지 않았다.

찬란하게 아름답던 그녀의 은발이 흩날리며 손에 쥐고 있던 부서진 검이 땅에 닿았고, 이제는 한 사람의 여인이 된 그녀가 무너진 잔해들 사이에서 애써 눈을 떴다.

하늘은 여전히 그대로였다.

연극이나, 소설에서처럼 마음을 대변하여 함께 슬퍼해 주는 하늘이 아닌 너무도 무심하게 그녀를 바라보는 구름과 세찬 바람.

늘 신은, 그녀에게 무관심했다.

몸에 힘이 빠진다.

고통은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분명하게 알고 있었다.

이게, 자신의 마지막이라는 것을.

결국, 아이들의 복수는 하지 못했다.

에레오나라는 여인은, 혁명이라는 이름의 복수를 행하던 그녀의 이야기는 여기서 종막을 맞이한다.

‘그 무엇도 끝내지 못했는데…….’

오롯이 한을 남겨 둔 채로, 은발의 여인은 천천히 눈을 감았으며.

혁명군 최강의 검은 오늘, 부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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