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화
음지에서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모이는 장소라면 단연 인력시장이었다.
말람의 골짜기를 얼릴 때, 라푼젤의 도움으로 전격을 내리쳐서 부숴 버리긴 했지만 당연하게도 금방 재건되어 다시 원래의 모습을 찾았다.
하지만 요 일주일.
인력시장은 그 어느 때보다 한가했다.
대부분의 퍼지들이 처형장 건설을 위한 인력으로 투입되었기 때문.
그리고 오늘, 처형 당일.
음지에는 정말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경각심을 심어 놓는단 명목으로 강제로 관람을 하게 된 퍼지들은 물론이거니와 유희를 즐기러 온 성지의 귀족들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처형장으로 향하고 있었고 우리는 사람들 사이에 섞여 있었다.
‘플로이드의 안뜰’이라고 떡하니 적혀 있는 처형장에 헛웃음이 새어 나왔다.
플로이드란 신들의 천사.
신의 결정에 따라 인간에게 상을 주는 천사 엔젤라와는 상극에 있는 천사로, 죄를 지은 인간에게 벌을 주는 천사로 유명했다.
정말로 신들이 그런 천사를 다루는지는 솔직히 잘 모르지만, 어쨌든 플로이드의 안뜰은 죄인들이 그의 손아귀에 들어왔다는 걸 의미한다.
이 처형장에 서는 자들은 무조건 악인이라고 대못을 박아 넣는 악의적인 센스에 쓴 웃음만 지어졌다.
인파에 휩쓸려 처형장 안으로 향하던 나는 주변을 슬쩍 둘러봤다.
“신기하지?”
“음?”
내 중얼거림에 레온이 슬쩍 고개를 돌린다.
“이렇게 보면 누가 성지 사람이고 누가 퍼지인지 아무도 몰라.”
내 말에 레온은 천천히 주변을 둘러본다. 옷차림새, 행동거지, 말투 등에서는 분명히 차이가 있었다.
하지만 그건 전부 태어난 이후에 정해지는 것들이지 않은가.
“음지에서 태어난 것만으로도 퍼지라고 핍박을 받는데, 실상 이렇게 보면 둘이 썩 다른 것도 없어.”
“…….”
무언가 느낀 걸까.
레온은 입을 다물고는 한참을 주변을 둘러봤다. 다른 점을 찾으려 애쓰는 것처럼.
입구까지 도착한 우리는 천천히 몸을 틀었다. 나는 들어가지 않고 외부에서 대기한다.
레온과 잠시 시선을 맞췄지만, 따로 무언가 대화를 주고받지는 않았다. 굳이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 * *
정복을 입은 레온은 다른 멤버들과 다르게 귀족으로 잠입을 했다. 귀족 전용 티켓을 얻는 건, 생각보다 간단했다.
음지에 찾아온 먹잇감들이 수없이 널려있지 않은가.
그중 아버지의 인맥으로 유희나 즐기러 온 한량 같은 남자 하나 붙잡아 뺏는 건 이쪽의 뛰어난 마법사 덕분에 닭 모가지 비트는 것보다 쉬운 일이었다.
라엘이 마법으로 재워 뒀기에 지금쯤 골목을 뒹굴며 자고 있지 않을까?
보초에게 입장권을 건네며 레온은 가볍게 물었다.
“설마 퍼지들이랑 가까운 자리는 아니겠지?”
이런 물음을 수없이 들었는지 경비는 익숙하게 웃으며 답했다.
“설마요. 귀족분들의 좌석은 퍼지들과는 아예 반대편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그 답에 레온은 자연스럽게 인상을 찌푸린다.
“뭐? 그럼 녀석들이 보인다는 거잖아.”
“예, 맞습니다. 짐승을 구경하는 기분으로 즐겨 주시면 됩니다.”
킬킬하고 웃어 재끼는 경비에게 레온은 진심으로 짜증을 내었다.
“젠장, 오면서도 퍼지들이 보여서 기분이 더러웠는데 처형장에서도 그렇겠군.”
“이런, 나으리께선 퍼지 혐오주의셨군요. 그런 분들을 위한 좌석도 마련은 되어 있습니다만…….”
돈이 추가로 든다는 이야기에 레온은 고개를 저었다.
“되었다. 고작 짐승 놈들 뒤지는 거 보겠다고 왔는데 이 이상 돈을 쓰면 아버지께서 노하신다.”
“그럼 어쩔 수 없겠군요.”
레온은 고개를 끄덕이며 안으로 들어가려다 다시 걸음을 멈추고 깜빡했다는 듯 물었다.
“그러고 보니 죄인인 퍼지들은 어디서 나오지? 피떡인 짐승 근처에 있는 것만으로도 역해서 말이야.”
“걱정하실 것 없습니다. 퍼지들 좌석 밑에 입구가 있고 그곳에서 나올 겁니다. 생각보다 그런 쪽으로 민감한 분들이 많군요.”
“그건 다행이군.”
만족스러운 미소로 걸어 좌석에 앉은 레온은 스위치를 누른 것처럼 무표정하게 변했다.
“기분 더럽군.”
침이라도 뱉고 싶은 심정이었으나 애써 억누르고 잠시 기다리며 주변을 둘러본다.
바로 어제 완공이 된 새 건물이었지만 귀족들의 좌석을 제외하곤 조악하기 그지없었다. 시간이 시간이니 당연한 거겠지만.
마감을 어떻게 했나 궁금했는데 해바라기 주인장의 말로는 왕궁의 마법사가 대거 투입되어 해결했다고.
반대편 퍼지의 좌석으로 눈을 돌리니 당연하게도 눈살이 찌푸려졌다.
화려하고 푹신한 귀족들의 좌석과는 다르게 무분별하고 볼품없는 좌석들. 긴 장의자에는 수많은 퍼지들이 부대끼며 앉아 있었지만, 그마저도 부족하여 대부분이 서 있었다.
오고 싶지 않은 이들도 있어 보였지만 퍼지들은 강제 참석이었기에 어쩔 수 없었다.
물론, 다 들어오지는 못해서 대부분이 바깥에 서 있었고 라엘도 그중 하나로 위장 중이었다.
그때, 살랑 바람이 레온의 귓가를 간질였다.
-자아, 말해 보렴.
바람을 타고 들려오는 라푼젤의 목소리에 레온은 방금 전 알아낸 처형 예정인 퍼지들의 등장 위치를 알렸다.
현재 플로이드의 안뜰에도 마나 경보장치가 설치되어 있다 보니, 라엘의 전음이 아니라 불편하더라도 정령들을 이용해서 소통을 할 수밖에 없었다.
-좋아, 가서 말해 줄게. 그것보다, 오늘 복장이 마음에 들어.
“……감사합니다.”
바람이 멎었다.
라푼젤이 사라졌다는 이야기.
전체적인 상황을 지휘하고 파악하기 위해 레온은 여기 계속 앉아 있어야 한다. 그렇기에 그저 눈을 감고 조용히 동지들의 무사를 기도했다.
* * *
“고마워요, 정령님.”
레온의 정보를 라푼젤을 통해서 받은 루이나가 고개를 끄덕이곤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고 그러자 근처의 부대원들도 뒤를 따라 일어났다.
자연스럽게 나온 복도에서 슬며시 동선을 확인한다. 붙잡힌 동지들을 구할 수 있는 단 하나의 순간은 바로 처형장으로 끌려가는 도중.
그 전에는 철창에 갇혀 있었고, 그 후에는 수많은 관중들의 시선과 오늘 처형을 주관하는 새벽별 기사단에게 포위된다.
수감실을 나와 처형장으로 향하는 그 잠깐의 틈이 오늘 그들에게 허락된 유일한 승리의 가능성이 있는 시간.
밖에서 들려오는 나팔 소리.
처형을 곧 시작한다는 뜻이었고 루이나와 다른 동료들이 슬슬 움직이려던 순간.
때마침 화장실에서 나온 한 여성을 지나치는 루이나.
“……?”
뭔가 이상했다.
루이나 자신도 그게 뭔지는 당장에 깨달을 수는 없었지만, 의아함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고 루이나의 눈동자는 빠르게 움직였다.
“잠깐.”
아이들의 손을 잡고 어쩔 수 없이 처형을 관람하러 온 어머니도.
지팡이를 짚으며 길을 잃은 듯 헤매는 노인도.
불량배처럼 보이는 비쩍 마른 청년들도.
전부 왼쪽 손목에 검은색의 작은 팔찌를 차고 있었다. 단순히 노동을 부리기 위한 표식이라고만 생각했던, 목줄이라 분노했던 그것.
“다들……!”
온몸에 쫙 소름이 끼친 루이나가 외치기도 전에, 근처에 있던 경비대가 나팔 소리가 끝남과 동시에 혁명군만 골라내어 체포를 시작했다.
중간 중간에는 노동을 하지 않아 팔찌를 차지 않고 있는 퍼지들도 있었으나, 그들 역시 무차별적으로 제압되었다.
1월 1일에 성명을 발표하고 일주일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일을 처리했던 이유는 외부에 자리 잡고 있는 혁명군이 자연스럽게 스며들 시간을 주지 않기 위해서.
팔찌를 나눠준 이유는 노동을 위한 것도 있었지만, 표식의 역할을 하기 위한 것이기도 했다.
팔찌가 있는 퍼지는 젤롬 데 아르니티의 성명이 있은 직후 바로 차출된 진짜로 음지에서 살아가는 자들.
없는 퍼지들은 노동을 하지 않았거나, 일주일 전에 음지에 없었던 자들.
한마디로 혁명군.
조금만 더 시간이 있었다면.
충분히 준비할 시간이 있었다면 이런 함정엔 걸리지 않았을 텐데. 그런 후회를 하면서도 루이나는 자신에게 달려드는 경비대의 진압봉을 피해 허리 뒤에 숨겨두었던 단창 빼 들었다.
한 번 허공에 휘두르자 촤르륵 소리를 내며 순식간에 2m 길이가 되었고, 갑작스레 늘어난 창에 경비는 그대로 제압되었다.
기습적인 공격에 진압봉을 맞고 기절한 동료들과 그 위에 올라탄 경비대를 보며 루이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당장이라도 그들을 도륙 내 버리고 싶었지만, 상황이 좋지 않았다.
그렇기에 루이나가 선택한 건, 퍼지들의 관중석으로 내달리기.
아직 관중석에 있는 동료들에게 도망치라 말해 주는 것과 더불어 반대편 귀족들의 좌석에 앉아 있는 리더에게 작전의 실패를 알리기 위함.
사방에서 달려드는 경비대를 찔러 넘기고, 뿌리치며 관중석에 도착한 루이나는 비명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관중석에 숨어 있던 동료들 역시 기습적인 공격으로 그대로 제압당한 것.
분노로 머리가 어떻게 되어 버릴 것 같았지만 루이나는 관중석을 내달리며 경비대를 하나하나 쓰러뜨렸다.
과하게 밀집된 사람들 탓에 움직이기 힘들었지만, 오히려 소란은 가중되었고 그러면 반대편에 있는 레온이 상황을 이해할 거라 믿은 것.
하지만 그 순간.
“벌레 같은 년!”
전격탄이 루이나의 복부에 그대로 강타했으나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몇 방 더 날아든 전격탄에 결국 루이나는 붕 하고 떴고 관객석에서 그대로 처형장 쪽으로 추락하고 말았다.
몸을 움직여 보려 애써 보지만 전격에 몸이 굳어 점점 눈이 감겨 왔다.
그녀가 마지막으로 본 건 자신에게 전격탄을 날린 거대한 덩치에 모히칸 머리를 한 마법사의 실루엣이었다.
* * *
“자아, 여러분!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어리석은 이념을 내걸고 황실의 명예를 더럽히려 했으며, 제국을 하나로 만드는 라디오 타워를 테러했던 반역자들이 모였습니다!”
처형장에 울려오는 사회자의 목소리에 레온은 까득 하는 소리가 날 정도로 이빨을 강하게 물었다.
지금 처형장에 잡혀 있는 건 자신과 함께 제도로 찾아왔던 동료들.
미오와 톨레스 그리고 라엘을 제외한 전부였다.
개중에는 아예 상관없는 퍼지들도 많이 있었는데, 그들 중 성깔 있어 보이는 남자가 거칠게 항의했다.
“나는 반란군 따위가 아닙니다! 젠장! 어째서 제가 이런 꼴을 당해야 하는 겁니까!”
“맞습니다! 저도 아닙니다! 저희 와이프에게 확인해 보시면 되지 않습니까!”
“할머니, 괜찮아. 분명 뭔가 오해하신 걸 거야.”
하나가 따지고 들자 다른 사람들도 외쳤지만, 사회자는 가볍게 무시했다.
그들에겐 아무 상관 없었다.
10명의 무고한 퍼지가 죽더라도 하나의 혁명군을 죽이면 그들에겐 이득이었기에.
팔찌가 없는 퍼지들을 아예 싹 다 잡아 들이면 분명 그중에는 혁명군이 있다.
그 안에서 누구인지는 또 골라낼 필요는 없었다.
팔찌가 없다는 건 노동을 하지 않았다는 증거.
어차피 다 죽이면 끝이니까.
“자아! 그럼 오늘의 처형자를 소개합니다! 원래는 새벽별 기사단의 데오르그 단장님께서 자리를 빛내 주시려 했습니다만……. 관객분들의 흥을 위하여 대체되었습니다.”
철컹하고 처형장 끝에 있던 철창이 올라간다.
기회라고 생각했는지 몇몇 사람들이 도망치겠다고 그쪽으로 달려갔지만.
“끄아아아!”
“꺄악!”
콰직 하는 잔혹한 소리와 함께 고깃덩어리가 되어 ‘그것’에게 씹어 먹힐 뿐이었다.
처형장으로 나온 처형인은 총 11명.
이족 보행을 하고 있었지만, 얼굴은 부푼 것처럼 괴이했으며 손은 날카로운 손톱이 쭈욱 나와 있었다.
“특별히 저희가 공수한 마수입니다! 과연, 혁명군은 이 마수들을 쓰러뜨릴 수 있을 것인가!”
이래서 체포와 동시에 처단한 게 아니고 진압봉으로 제압한 것이었나 하고 레온은 머리가 뜨거워졌다.
처형장 중앙에 있는 혁명군들은 서로를 바라보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자세를 잡았다.
전격탄을 맞아 잠시 정신을 잃었던 루이나도 휘청거리면서도 주먹을 쥐었고.
마수들과의 맨몸 전투가 이루어지려던 순간, 누군가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이반?”
“뭐?”
“아니, 저 두건……. 이반이 부모님한테 물려받은 거랑 똑같은데?”
그 말에 다른 혁명군들도 이반이라 불린 마수를 확인하곤 다른 마수들에게도 급하게 눈을 돌린다.
목에 걸고 있는 로자리오.
아낀다던 찢어진 바지.
특유의 회색 머리칼.
정을 나누었던 반지.
“빌어, 먹을 놈들.”
오늘 그들이 구하기로 했던 동지들의 특징들을 가진 마수들.
마침 숫자도 11명.
잡혀 들어간 동지들과 똑같은 숫자였다.
“인간이 어찌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거지?”
“죽이겠다! 내 죽어서도 너희를 죽일 것이야!”
황실 지하에서 인체실험을 한다는 뜬소문은 몇 번 들은 적 있었다. 다만, 혁명군이 황실 지하까지 침투할 수는 없기에 사실 확인은 되지 않았으나.
소문의 결과물이 이렇게 눈 앞에 펼쳐지니 이들은 분노와 치욕 속에서 지성을 잃고 그저 사람을 뜯어먹는 괴물이 된 동료들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다, 당신들 혁명군이지! 당신들 때문에 죽게 생겼어! 책임져!”
“여러분이 죽으면 저희는 살려 주실 수도 있어요. 혁명군이라면서요! 저희 좀 살려 주세요!”
“그래! 너희가 죽어! 나는 집에 가족이 있다고!”
함께 처형장에 떨어진 퍼지들의 야유.
정신적으로 과하게 몰린 탓일까, 혁명군의 정예로 뽑힌 이들도 당황하며 제대로 된 판단이 힘들었다.
하지만 그 순간.
귀족들의 관중석에서 백색 빛의 권능이 뿜어져 나와 하늘로 길게 쭉 뻗어 올라갔고.
신호를 받아든 마법사가 마치 유성처럼 처형장 중앙으로 내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