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화
몰려 있는 사람들과 여기저기 붙어 있는 신년 축하 플래카드. 아이들이 만든 허술한 장식들이 훈련장을 특별하게 꾸미고 있었다.
파티를 하기엔 식당이 작은 편이라 훈련장으로 모였는데 다들 뜨문뜨문 보다가 막상 모이니 생각보다 사람이 많았다.
“저거 정말 네가 잡아 온 거라고?”
나와 같이 훈련장에 들어온 레온이 손으로 가리킨 곳에는 통구이가 된 마수가 모락모락 김을 뿜어 대며 먹음직스럽게 놓여 있었다.
“어디서 저런 걸 구한 거야?”
“라푼젤이 좀 도와줬지.”
-감사 인사라면 마음껏 하렴.
“…….”
앞에서 날아다니는 라푼젤에게 찝찝한 표정으로 고개를 꾸벅 숙인 레온.
“그런데 저걸 요리할 도구가 없었을 텐데?”
“그것도 내가 도왔지.”
불 마법을 사용해서 간단히 만들어 줬더니 주방 아주머니들이 이제부터 주방에서 일하라고 난리도 아니었다.
“확실히 화려해졌네. 아이들도 좋아하는 것 같아.”
미오와 에딘을 주축으로 뒤따르는 아이들도 통구이 근처를 맴돌며 신나 하고 있었다.
그런데 음식은 차려 놓고 왜 아직도 안 먹고 있나 했더니 다들 훈련장으로 들어온 레온을 바라본다.
“아.”
나는 이해했다는 탄성을 내뱉으며 슬쩍 레온의 등을 떠밀었고, 눈치를 챈 레온이 천천히 앞으로 걸어가 모두의 중심에서 잔을 들어 올렸다.
“다들 많이 배고플 테니 긴말은 생략할게. 많이 고생했고 앞으로도 험한 시련이 많이 남아 있겠지만 그럼에도, 자유를 위해.”
간단한 건배사.
환호하는 사람들.
“이런 때는 좀 가볍게 하지 꼭 저런 건배사를 해야 하는 거야?”
자유를 위해라니. 먹던 음식도 도로 내뱉어지겠다 싶어 웃으며 투덜거리고 있자니 루이나와 톰이 다가왔다.
“라엘! 통구이 진짜 맛있다!”
“으허허! 술맛 좋은데?”
“저건 왜 벌써 취했냐.”
두 사람은 대련 친구로 꽤나 친해졌다. 비슷한 실력이며 서로 레온과 에레오나의 주 전력이다 보니 라이벌 같은 경쟁 구도를 가지고 있는 것 같긴 하지만.
“아씨, 그만 달라붙어!”
“야! 동료 좋다는 게 뭐냐!”
같이 있는 건 줄 알았는데 잘 보니 취한 톰이 일방적으로 달라붙은 모양새.
“너는 에레오나 좋아하면서 뭔 다 치근덕거리고 다니냐.”
저번에 자벨린 부대원인 하트한테도 그러더니 이건 이제 성별만 다르면 다 괜찮은 수준 아닌가.
“야! 야!”
내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는지 당황하며 주변을 살피는 톰과 어머 하고 웃으며 장난스레 웃는 루이나.
“진짜로? 어쩐지 에레오나 보는 눈에서 꿀이 뚝뚝 떨어지더라.”
“아, 젠장. 술맛 다 버렸네.”
취해서인지 부끄러움인지 얼굴이 붉어져서는 짜증을 내는 톰. 평소의 행실이나 말투와는 다르게 풋풋함이 느껴져 괜히 웃음이 새어 나왔다.
“한 우물만 파야지. 쟤가 너한테 마음이 있어도 그런 행동 보면 다 사라지겠다.”
“하아, 그런가?”
“그러는 라엘은 연애해 본 적은 있어?”
“…….”
루이나의 물음에 입이 다물어진다. 무인이라서 그런지 확실히 빈틈을 찌르는 폼이 일품이다.
이번엔 톰과 루이나의 시선이 동시에 내게 꽂힌다.
아씨, 괜히 아는 척했네.
“뭐야, 지는 경험도 없으면서 아는 척이야?”
“너도 별거 없으면서.”
발끈해서 답하자 톰도 쥐고 있던 술병을 이리저리 흔들며 소리 지른다.
“나한테 풋풋한 마음을 고백한 마을 처녀가 몇인 줄 알아?”
“턱수염이나 깎고 말해라. 내 나이 또래인 게 안 믿긴다.”
톰과 티격태격하고 있자니 옆에서 루이나의 중얼거림이 치고 들어왔다.
“이 정도 수준의 마법사가 된 이유가 있구나.”
“야!”
이것들이 진짜.
이쪽에서 불리한 주제를 가지고 싸울 필요는 없다. 예전 스승님이 자신의 제자는 연애 불가라고 말했었기에 안 했던 것뿐이지, 마음만 먹었으면 나도 했을 거다.
아마도.
불편한 주제 탓에 걸음을 옮긴 곳은 연장자들이 있는 곳.
톨레스와 텐.
두 사람은 가볍게 잔을 나누며 뛰어노는 아이들을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었는데, 내가 가자 자연스럽게 잔을 건네셨다.
“좋은 광경이군요.”
두 사람의 시선의 끝을 보니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특별한 날이라서 그런지 웃음이 많아지는 하루.
“이런 시간도 참 좋지요.”
“미오가 저렇게 웃는 걸 몇 년 만에 보는 건지.”
텐과 톨레스가 각자의 감상을 내놓았고 우리는 잔을 맞추며 술을 마셨다.
저번에 식당에서 새벽에 셋이서 몰래 마시다가 나만 놓고 둘이 도망간 기억이 떠올랐는데, 두 사람도 그랬는지 술을 마시며 슬쩍 내 눈치를 봤다.
“술이 달군요. 과음하지 않게 이번에는 정신 바짝 차려야겠습니다.”
“껄껄, 벌써 추억이 되었군요.”
텐이 웃으며 답하다 자연스레 아이들에서 레온에게로 시선이 넘어간다.
“라엘 님, 레온 님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늘 레온의 뒤에서 서 있는 텐.
눈에 띄지는 않지만, 그가 레온을 정신적으로 많이 돌봐주고 있다는 건 혁명군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어린 나이에 과한 무게를 짊어지신 분입니다. 늘 고민과 자괴감 속에서 살아가시던 분이었죠.”
위치를 생각하면 마땅한 무게감이라는 건 알지만 그렇다고 그 무게가 무겁지 않은 건 아니었다.
“하지만 요즘 라엘 님, 에레오나 님이랑 같이 있을 때는 정말 또래 친구들과 이야기하는 것처럼 편해 보이십니다.”
“에레오나랑요?”
내가 의문부호를 띄우며 묻자 텐은 껄껄 웃어 준다.
“마음이 맞지 않는 악우도 친우이죠.”
“확실히 두 분이 묘한 분위기를 띄우긴 하더군.”
톨레스가 옆에서 끼어들자 텐은 고개를 저으며 잔을 다시금 내밀었다.
“거기까진 끼어들지 말지. 우리는 뒤에서 지켜보는 입장이지 의견을 내밀 나이는 아니지 않은가.”
“뭐, 그건 그렇군. 말년에 우리 애제자 하나 챙기는 것도 힘드니.”
다시금 쨍하는 소리와 함께 같이 잔을 들이켜고, 조금 특이한 조합이 있어 그쪽으로 향한다.
“특이한 조합이시네요.”
테리스 선생과 로버트 씨, 포르쉔 국장이 음식을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여, 몸은 좀 괜찮냐?”
“이제 완전히 괜찮아졌습니다. 역류에 대해서도 나름의 방법을 찾았고요.”
뜻밖의 답을 들었는지 테리스 선생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어디 한번 설명해 보라며 소란을 피웠고, 마인화에 대해서 간단히 말해 주자 선생은 인상을 팍 찌푸렸다.
“그게 된다고?”
“그럼요.”
“한번 해 봐.”
“하는 순간 파티 망칠걸요.”
“이 친구는 예전부터 자기가 이해 못 하면 눈으로 꼭 확인하고 싶어 한다니까.”
“이놈이 상식을 자꾸 벗어나잖아.”
아니, 이걸 내 탓을 한다고.
그러더니 나와 지금까지 겪은 일을 로버트 씨에게 설명하는 테리스 선생. 내 이야기를 옆에서 듣기 민망해서 고개를 돌리니 포르쉔 국장이 웃고 있었다.
“요즘 어떠십니까?”
그러고 보니 라디오 타워를 끝으로 한동안 만나질 못했던 기억이 있다. 이 양반도 어떻게 보면 나 때문에 인생 꼬인 건데…….
“뭐, 나름 살만합니다. 최근엔 라디오 타워에서 가져온 기계를 조금 만지고 있죠.”
포르쉔은 언론사의 국장까지 맡은 전적이 있어 정보부에서 일하고 있다고 들었다.
사실 말이 정보부지 사람 몇 없는 팀이긴 하지만, 나름의 능력으로 순식간에 주요 인원이 됐다고 레온에게 듣긴 했다.
“그러고 보니 그건 어디에 쓰는 겁니까?”
포르쉔의 부탁으로 내가 말하던 도중 자벨린 부대원들이 뜯어냈는데, 막상 어디에 쓰는지는 묻질 않았다.
“경비대 전용 통신 채널이 있다는 거 아시나요?”
“예?”
이건 또 처음 듣는 이야기다.
내 반응이 마음에 들었는지 포르쉔은 뿌듯한 표정으로 말을 이어갔다.
“최근 라디오 타워가 생기면서 경비대 통신 채널이 생겼습니다. 마나를 사용하는 통신기를 이용하면 소유자의 능력에 따라 거리, 음질이 불안정했는데 이젠 누가 쓰더라도 동일한 효율을 낼 수 있는 방법이 생긴 거죠.”
“…….”
“그리고 라디오 타워에서 뜯어 온 그 장비로 경비대 통신 채널을 훔쳐 들을 수 있습니다.”
이건 조금 신기했다.
그러고 보니 퓰리에게 얻었던 마교단장들과 통신할 수 있는 도구를 마나나 권능 없이 이용했던 게 문득 떠올랐다.
“점점 마나가 설 자리를 잃어 가는군요.”
“확실히 마법사여서 그런지 보는 시선이 다르시군요.”
인자한 미소와 함께 포르쉔이 말을 이었다.
“반대로 말하면 평범한 사람들도 능력을 가진 자들의 전유물이던 생활을 누릴 수 있는 시대가 오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확실히.
신을 믿지도 않고, 마나를 다룰 수도 없는 포르쉔이기에 내놓을 수 있는 의견이었고 그는 조금 흥분한 듯했다.
“라엘 님은 불만이실 수 있지만, 개인적으론 기대가 됩니다. 인간이 어디까지 발전할 수 있을지.”
그런 포르쉔에게 나 역시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그것이 세상의 순리라면, 저 역시 환영하겠습니다.”
200년 전의 사람인 내가 지금 인류의 발전에 왈가왈부하는 건 옳지 않았다. 조금 허한 느낌이 들었으나 한 걸음 뒤에서 웃으며 지켜봐야겠지.
“라엘 님! 이리 오세요! 케이크가 있어요!”
“케이크?”
포르쉔과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고 있는 와중 미오가 달려와서는 내 손을 이끌었다.
미오의 뒤에는 흑일, 흑이, 흑삼이가 있었는데 아무래도 미오와 꽤나 친해진 듯 보였다.
뒤따라가니 정말로 케이크가 놓여 있었다. 비록 크기는 크지 않아서 모두가 먹을 수는 없겠지만, 여러 조각으로 나누어져 있었고.
“여기! 다음 참가자입니다!”
“오오, 이게 누구야. 저희의 유일한 마법사 라엘이 참가합니다!”
미오의 외침에 케이크 옆에 서 있던 렉터가 호들갑스럽게 떠들어 댄다.
그런데 렉터가 이름이 맞나? 기억이 잘…….
어쨌든 아무래도 한정된 수량인 케이크를 가지고 내기가 벌어진 듯했다.
‘팩 차기’라는 놀이인 듯했는데 콩이 잔뜩 들어간 주먹만 한 주머니를 땅에 떨어뜨리지 않고 발로 차는 놀이였다.
“자아, 그럼 도전자 라엘은 과연! 자벨린 부대의 아름다운 은빛의 검사, 에레오나의 237번을 넘을 수 있을 것인가!”
몇 번?
237번을 찼다고?
괜히 뒤에서 팔짱 끼고 콧대를 높이고 있던 게 아니구만. 아니, 그것보다 케이크를 얼마나 먹고 싶었던 거야.
“라엘 님! 부탁드립니다!”
“제발요!”
“먹고 싶어요!”
어느샌가 꼬맹이들이 내 뒤에 달라붙어서는 로브를 당기며 초롱초롱한 눈으로 부탁하기 시작했다.
“후우.”
까짓거 좋다.
200년이 지난 세상의 케이크는 어떤 맛인지 궁금하기도 했고 아이들의 부탁도 있으며 에레오나의 콧대를 꺾고 싶기도 했으니 팩을 낚아채곤 그대로 허공에 띄웠다.
다리를 허공에 쭉 뻗은 뒤 그 위에서 마나를 이용해 팩을 위아래로 움직였고.
“반치이이익!”
바로 경고를 먹었다.
“아니, 이게 안 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