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화
“허억! 허억!”
몇 번을 반복했는지 모르겠다.
노아는 이제 완전히 의식을 잃고 쓰러져 있었고, 그 중심으로 사방에 튀어있는 피와 타액들.
강제로 녀석들의 정신을 파괴시킨 게 이걸로 7번째.
봉인시키는 게 아닌 아예 기억 자체를 부숴 버려서 주도권을 없애는 방법을 사용한 탓에 온몸에 식은땀이 흘렀다.
퓰리처럼 정신력이 괴물 같은 녀석들이 아니라 가능한 방법이었지만, 자칫 잘못했다간 노아까지 위험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아직 끝나지 않았다.
‘노아의 몸에 숨어 있는 게 아니라 외부에서 찾아오는 방식이다.’
도대체 아이의 몸에 새겨진 이 각인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아주 악질적인 의도가 숨어 있는 건 분명했다.
하는 수 없이 마나로 푸른빛의 끈을 만들어 아이의 손과 발을 묶은 후, 우선 보육원으로 향했다.
새벽이라 그런지 거리는 조용함을 넘어 황량한 수준이었지만, 오히려 그것이 노아를 옮기는 데 도움이 되었다.
탕탕탕!
늦은 새벽 거친 노크 소리는 미안하지만 그만큼 시급한 사안이었다.
문이 열리고 파자마 차람이지만 아직 자고 있지는 않았는지 또랑또랑하게 눈을 뜬 수녀가 나왔다.
“라만 님?”
“노아를 찾았습니다. 안으로 부탁드립니다.”
“네? 노아를요?”
제대로 확인도 안 하고 노아라는 말에 벌컥 문을 열어 재낀 수녀는 나를 안으로 들였다.
“이건?”
완전히 결박당한 노아를 보고 깜짝 놀라는 수녀였지만,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했는지 큰 침대가 준비된 손님용 방으로 나를 안내했다.
속박을 한 상태로 일단 침대에 눕히긴 했으나 크게 달라지는 건 없었다. 해야 할 건 이제부터.
“이게 무슨 일인가요? 노아는 또 왜 저러고요?”
“지금부터, 제 말 잘 들으세요.”
그 뒤, 노아의 상태에 대해서 설명했다.
노아의 몸에 새겨진 정체 모를 각인부터 시작해서 아이의 몸에 들어오려 발악하는 수많은 영혼들. 그리고 여신 렐의 권능과 비정상적인 신체 능력까지.
수녀는 처음엔 놀라며 입을 막고 듣더니 이젠 눈물을 흘리며 두 손을 꼬옥 모으고 기도했다.
“무슨, 이 무슨 잔혹한.”
“수녀님 저는 실은 마법사입니다. 그것도 상당히 실력이 있는.”
“…….”
이미 마나로 노아를 마나의 실로 속박한 걸 봤기에 마법사라는 것에 크게 놀라진 않았다.
나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주먹을 꾹 쥐며 말했다.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제가 노아를 구하겠습니다.”
“방법이, 있으신 건가요?”
“저 각인을 통해 외부에서 노아와 연결되어 계속해서 다른 인격들이 흘러오고 있습니다. 그곳을 파괴하면 괜찮아질 겁니다.”
“어디인지, 아시는 건가요?”
잠시 고민한 나는 고개를 저었다.
수녀는 고개를 푹 숙이며 눈물을 흘리더니 자신의 바짓자락을 쥐곤 강하게 답했다.
“제발, 부탁드립니다.”
* * *
-…….
“…….”
다시 밖으로 나온 나와 운디네는 침울한 심정이었다. 저 작은 소년과 소년을 지키는 수녀에게 너무도 가혹한 상황.
-라엘, 또 정령왕한테 부탁하고 올까?
다시 한번 자신의 힘을 쓰겠다고 말하는 운디네에게 나는 의문을 품으며 물었다.
“힘을 풀면 찾을 수 있어?”
-대륙 전체에 비를 내리면 불가능한 것도 아니야.
“……아니, 괜찮아.”
조금 솔깃하긴 했지만 그랬다간 진짜로 신계와 정령계의 전쟁이 치러질 수도 있었기에 고개를 저었다.
-그럼 어떻게 하려고? 찾을 수 있어?
“이만한 짓거리를 하는데 흔적 하나 남기지 않을 수는 없겠지.”
보육원 밖으로 나와서 우선은 제도라 갈 생각이었다.
혹시 카밀라가 또 다른 정보를 기억해 냈을 수도 있었으며, 퓰리가 제도에 있던 걸 보면 다른 마교단장들도 제도에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사치와 향락을 즐기는 녀석들이 이런 변방에 있을 것 같지는 않으니까.
마교단장들을 제대로 죽이지 못했기에 이런 비극이 펼쳐졌다.
내가 책임을 지고 녀석들을 확실히 죽일 생각이었기에 제도의 마나 탐지기 같은 건 신경 쓰지 않고 그대로 날아가려 했으나.
“음?”
-저것들은 또 뭐야?
급하게 제도로 가려던 나와 운디네의 눈에 들어온 두 사람.
보육원 울타리 밑에서 슬쩍슬쩍 이쪽을 흘기던 녀석들은 나와 눈이 마주치자 후다닥 도망치기 시작했다.
“후, 지금 힘 조절이 조금 힘든데.”
아마 저 녀석들이 보육원 아이들을 납치하려 했던 녀석들인 듯했기에 몸풀기로 가볍게 제압하려 그대로 날아들었다.
“으아아!”
“뭐야! 뭐야!”
마나로 몸을 강화한 후, 그대로 녀석들의 뒤통수를 잡고 그대로 바닥에 처박는다.
덥수룩한 수염과 거친 피부, 비위생적인 외모 등.
딱 봐도 도적질이나 하는 녀석들로 보여 심기가 더욱 불편했다.
“네놈들이 아이들을 납치하려던 녀석들이구나?”
“예에?”
“아, 아닙니다!”
두 놈이 손사래를 치며 부정했으나 그런 걸 믿을 리가. 그대로 혼쭐 한 번 내 주면 다시는 여기에 오지 않겠거니 생각했으나.
그냥 흘려넘길 수 없는 녀석들의 한마디.
“저, 저희도 하남의 주민이었습니다!”
“맞습니다!”
“같은 주민이었다고?”
“예! 저희는 마을 밖에서 양을 키우는 양치기들이었습니다!”
양치기들?
그런데 마을 밖에서 양 떼를 본 적은 없는데.
“그런데?”
“마을이 망한 후, 타란 마을로 도망쳤는데 집에 남겨 둔 물건들을 챙기려고 다시 왔던 겁니다!”
으음?
이야기를 내 머리가 따라가지 못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망했다고? 무슨 소리야. 이렇게 멀쩡한데.”
슬쩍 마을을 둘러본다.
아직 어두운 밤이라 사람도 돌아다니지 않고 음산한 분위기가 있었지만, 그래도 분명하게 마을은 존재했다.
녀석들은 내 말에 격하게 호응하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게 바로 이상한 점입니다! 고작 일주일 전만 해도 대부분의 건물이 무너지고 사람도 다 죽었었습니다!”
“…….”
“저희는 밖에서 양을 몰아서 휩쓸리지 않았지만, 마을 전체가 불타고 괴한들이 마을 사람들을 죽이고 난리도 아니었단 말입니다!”
“저희가 타란 성의 수호기사들에게 소식을 전하고 왔을 때 다 부서졌던 마을이 다시 원상복구가 되어 있어서 저희도 놀랐습니다. 그 때문에 기사들한테 얼마나 매질을 당했는지…….”
입고 있는 옷을 들어 올리며 군데군데 있는 타박상을 보여 주는 녀석들.
-거짓말은 아닌 것 같은데.
“그래서 너희가 하고 싶은 말은 뭐야. 하남 마을은 일주일 전에 사라졌지만, 막상 다시 와 보니 원래 상태였고 그게 이상해서 주변을 둘러보던 거라고?”
“예! 맞습니다! 이 보육원의 수녀님이 살아계셔서 찾아왔는데 저희를 전혀 모르시더군요.”
“수녀님만이 아닙니다. 다른 주민들도 전부 저희를 모릅니다. 이상합니다! 지금 하남 마을은 정말 이상하단 말입니다!”
그 순간,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보육원의 지붕 한쪽에 구멍이 뚫리며 틈으로 노아가 뛰어나온다.
지붕 위에 서서 우리를 바라보고 있는 노아의 눈에는 여러 감정이 담겨 있는 눈물이 흐르고 있었는데, 나도 모르게 몸이 굳어 버렸다.
“노아?”
“무슨 일이지?”
두 남자는 노아를 알고 있는지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으나, 노아는 한 번의 도약으로 엄청난 속도를 내며 도망쳐 버렸다.
그리고 그 순간 마을 전체를 감싸던 무언가가 흐트러지는 느낌을 받았다. 견고하게 짜여 있던 무언가가 노아의 과격한 움직임으로 흔들리기 시작한 것.
-라……엘.
무언가를 깨달았는지 드물게도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나를 부르는 운디네.
나 역시 주변을 둘러보며 천천히 손을 뻗었다.
만약, 정말로 이 두 녀석의 말처럼 일주일 전에 하남 마을이 사라졌다면.
정말로 마을 주민들이 다 죽어서 무엇 하나 남지 않았다면.
“정화.”
푸른빛의 마나가 내 손에서 뿜어져 나오며 가까이 있던 마을 주민의 집에 닿았고, 견고하게 서 있던 집은 신기루처럼 사라지며 폐허로 변해간다.
추위에 몸이 얼어붙듯 갑작스러운 공포감에 내 온몸이 굳어버리는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멍하니 서 있을 수만은 없었다.
뒤의 두 놈은 내버려 둔 채로 나는 천천히 보육원으로 향했다.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갈 때마다 마음속에선 더 이상 가면 안 된다고 울부짖었으나 멈출 수 없었다.
결국 문 앞에 섰을 때는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을 것만 같았지만, 애써 문을 두드렸다.
똑 똑.
무기질적으로 울리는 노크 소리.
문이 열리고 수녀가 나를 보더니 다급하게 외쳤다.
“죄송해요! 노아가 속박을 풀더니 그대로 도망쳐 버렸어요!”
“…….”
“노아 오빠 어디 간 거예요?”
“형 보고 싶어요!”
“역시 우리 형이야! 방금 봤어? 엄청 높게 뛴 거?”
“졸려어.”
수녀의 뒤를 쫄래쫄래 따라온 수많은 아이들.
지붕이 부서지는 소란 탓인지 모든 아이들이 깨어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무거운 발을 떼고 안으로 들어가 주변을 둘러본다.
바깥의 차가운 바람과 상반되는 따듯한 내부. 벽난로가 타닥타닥하는 소리를 울려 댔고.
고급스러운 가구들의 모서리에 끼워져 있는 부드러운 커버는 아이들이 혹시라도 다치지 않을까 하는 수녀의 배려도 느껴졌다.
진심으로 걱정 어린 눈물을 흘리고 있는 수녀를 정면에서 마주 본 채로 떨리는 입을 천천히 열었다.
“……정화.”
푸른빛의 마나가 발현하며 나를 중심으로 정화의 파도가 한차례 잔잔하게 흘러간다.
따듯하던 내부에 바깥보다 더 쌀쌀하게 느껴지는 바람이 불어오고, 벽난로는 불이 꺼진 상태로 거무튀튀한 피 얼룩이 묻어 있다.
고급스럽던 가구들은 다 사라지고 보육원 자체도 벽이 무너져 구멍이 숭숭 뚫린 폐허가 되었다.
그리고.
방금까지 울고, 웃던 아이들이 있던 자리엔 기이하게 서 있는 작은 시체들이.
수녀복을 입고 있는 무언가 역시 나를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아, 아아…….”
눈시울이 붉어지며 시야가 흐려진다.
어째서 이들에게 이런 고난이 찾아온 걸까 하는 의문과 함께 목이 메어 온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실은, 내가 찾아온 순간엔 이미 끝나있었다.
천천히 수녀였던 시체의 뺨에 손을 가져다 대었으나, 푸석푸석하고 거친 피부가 손바닥에 느껴진다.
이 광경을 봤을 노아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곳으로 가 버린 자신의 가족들을 가지고 펼쳐진 이런 빌어먹을 촌극을 봐 버린 소년의 마음은…….
보육원의 끝에서 푸른색의 불꽃이 피어오르며 천천히 타들어 가기 시작한다.
먼 이국에선 푸른색의 불꽃은 정화의 의미를 가지고 있어 일부러 청염을 다룰 수 있는 마법사를 데려와 화장을 한다는 이야기를 스승님께 들은 적이 있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보육원과 함께 재가 되어 가는 수녀와 아이들을 보며 조용히 눈을 감았고.
감사합니다.
라는 들릴 리 없는 한 마디가 내 귓가를 감싸 왔다.
“부디, 평안하길.”
버거운 시련 속에서도 무너지지 않았던 당신에게, 그리고 죄 없는 아이들의 안녕을 바라며.
몸을 돌렸고 내 뒤에서 이 광경을 전부 지켜본 두 사람에게 나는 말했다.
“이 마을 전체를 화장시키겠습니다.”
“……부탁드립니다.”
“아아, 부디 신께서 저들을 보살피시길.”
그렇게 찬바람이 부는 어두운 대지 위.
하남 마을은 푸른 업화에 감싸여 그 자취를 감추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