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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한 마도사는 반역자가 되어 있었다-43화 (43/200)

43화

-설마 나 말고 다른 바람의 정령이 인간과 계약을 했을 줄은 몰랐단다.

-헤니의 조상들은 아주 오래전부터 우리랑 계약을 했었거든. 사실 백 년 정도는 계약을 안 하고 있다가 맹약에 의거해서 내가 온 거야.

-거야? 말이 짧다?

-……거예요.

운디네가 맨날 나한테 쟤 좀 보라고, 실제 성격이 얼마나 더러운지 아냐고 찡얼거리던 게 이제야 와닿는다.

나한텐 정말 친절했던 거구나.

“살로메를 괴롭히는 건가요?”

-응? 아냐 아냐, 넌 잘 몰랐겠지만 살로메는 원래 이거 좋아해.

-…….

엎드린 살로메 위에서 다리를 꼬고 앉아 있는 라푼젤이 호호 하고 웃었으나 살로메의 표정은 눈에 띄게 썩어 있었다.

“그만 괴롭혀라.”

-나도 원래 이러진 않아. 얘가 나 보자마자 갑자기 재앙이니 뭐니 하면서 소리질러 대니까 기분이 그랬던 것뿐이야.

툭툭 엉덩이를 털며 살로메 위에서 내려오는 라푼젤. 살로메는 바로 헤니에게로 날아가 뒤에 숨는다.

“이제는 인간계로 나와도 괜찮아?”

-뭐, 나오는 것까지는 괜찮아. 신들이 워낙 견제가 심해서 정령왕이 골치가 꽤나 아픈가 봐.

겨우 일주일 지났으니 기대하진 않았지만, 힘을 쓰진 않아도 소환은 가능해진 듯했다.

-아참, 정령왕이 언제 올 거냐고 재촉하던데?

“나중에, 진짜 엄청 나중에 갈 거야.”

-걔는 어차피 죽지를 않아서 문제는 없을 거긴 한데. 너 언제 오나 매일 기다린대.

“하, 걔는 집착이 너무 심해.”

-원래 오래 산 정령들은 자극적인 걸 좋아하거든. 너 정령계 왔을 때만큼 정령왕이 흥분했던 적이 없잖아.

-정령계에 오셨다고요?

오랜만의 라푼젤과의 만남이라 수다를 떨고 있자니, 살로메가 헤니의 뒤에서 고개를 빼꼼 내밀더니 물어 왔다.

라푼젤한테 기죽은 게 불쌍하게 느껴져 자상하게 답해 줬다.

“응, 한 번 갔었지.”

-정령계에 온 인간은 한 명밖에 없는 거로 알고 있는데요?

“맞아, 최초라고 듣긴 했어.”

-그……. 정령계를 쑥대밭으로 만드셨다고 들었는데요?

-맞아, 라엘이 왔을 때 꽤나 고생했지. 정령왕이 나랑 운디네에 테토까지 부를 정도였으니까. 추억이네.

“꽤 고생했지.”

-히이익!

갑자기 고개를 다시 푹 숙이며 헤니에게 속삭이는 살로메. 나름 조용히 말한다고 한 것 같지만 안타깝게도 다 들렸다.

-헤, 헤니! 당장 도망쳐. 저 인간은 괴물이야!

“음? 그래요?”

“뭐, 정령이 나를 그렇게 여기는 건 어쩔 수 없지.”

그때는 동굴이 아닌 다른 장소가 오랜만이라 감정이 좀 쌓였던 상태니까.

“하지만 그건 어쩔 수 없었어. 정령계에 가자마자 다들 죽이려 들었단 말야.”

내가 먼저 공격하진 않았다. 게네가 인간이랍시고 갑자기 무차별적으로 공격했던 거지.

“라엘 님은 참 신기한 경험을 많이 하신 것 같아요. 과거에서 오셨다고도 하시고.”

“뭐, 그렇게 되나.”

해맑은 헤니의 미소에 괜히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싶었지만,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

운디네와 테토도 불러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자니 테리스 선생이 담배 냄새를 풀풀 풍기며 들어왔다.

줄담배를 피웠는지 꽤나 시간이 걸렸는데, 그게 마음에 안 들어 헤니는 코를 막았다.

“선생님, 담배 냄새가 너무 심해요.”

“미안하긴 한데, 이건 또 무슨 상황이니?”

-이 남자가 라엘을 치료해 줬어? 성깔 있어 보이는데.

-아주 불쾌한 냄새구나.

-주인을 치료한 것에 감사를.

“너네는 또 뭐야? 헤니가 불렀니?”

“아뇨, 라엘 님이 불렀어요.”

“당신도 정령사였다고?”

-아, 진짜 못 참겠네.

라푼젤이 짜증을 내며 손을 들자 세찬 바람이 불며 테리스 선생이 태풍을 맞은 것 같은 꼴로 변했다.

“이제 담배 냄새 안 나서 좋네요.”

-그렇지?

헤니가 웃으며 엄지를 척 치켜들자 라푼젤이 윙크로 화답하지만, 테리스가 짜증이 잔뜩 난 표정으로 부스스해진 머리를 정리한다.

“흑주신의 부탁이어도 들어주지 않는 거였어.”

“그래서 생각 정리는 좀 되셨나요?”

내 물음에 테리스 선생은 후 하고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 모르겠어. 역사 속의 악인이었던 너를 믿긴 힘들어.”

하지만 하고 덧붙이는 테리스 선생.

“헤니가 말했듯 네가 미치광이 학살자든 아니면 누명을 쓴 불쌍한 마법사든 결국 내 앞에선 환자일 뿐이다. 일단 살린 후에 생각해 보겠다.”

“선생님!”

와락 하고 선생을 끌어안는 헤니. 선생은 다시 한숨을 내쉬며 헤니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너한테 가르친 걸 너한테 다시 배웠구나.”

“예?”

“고맙다는 얘기다.”

* * *

그렇게 한 달이 지났다.

여전히 몸에 박힌 침은 빼지 못했고 손가락 하나 내 마음대로 움직이기 힘든 상황.

침대에만 누워 있다 보니 감각이 무뎌지는 느낌이 들었지만, 말동무가 워낙 많다 보니 심심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지금도.

-체크!

-몇 번을 설명했는지 모르겠지만 그 말은 그렇게 움직일 수 없다.

-그, 그랬나?

-이 정도면 멍청한 걸 뛰어넘었다. 흠, 새로운 단어를 만들어야 할 것 같군.

테토가 속을 벅벅 긁자 결국 운디네는 참지 못하고 체스 말을 테토에게 던졌다.

-이 대머리야! 그거 못한다고 말 엄청 많네!

“그만해라. 골 울린다.”

-라에엘! 들어 봐! 테토가 나한테 바보라고 하잖아!

-흠, 사실을 말한 것뿐이다.

-네가 대머리인 것도 사실이지!

-저번부터 말하지만 나는 대머리가 아니라…….

“역소환.”

사르륵 하고 사라지는 운디네와 테토.

이것들 한 번 싸우기 시작하면 하루 종일 싸운다는 걸 그동안의 경험으로 알고 있기에, 차라리 바로 역소환 시키고 몇 시간 있다 다시 부르는 게 마음 편하다.

“식사 시간이에요!”

헤니가 웃으며 나무 쟁반을 들고 온다. 이젠 죽이 아닌 부드러운 재료 위주로 식사를 하다 보니 맛도 꽤 있었다.

그렇게 헤니가 먹여 주는 식사를 끝마친 후, 그녀는 식기를 옆으로 치우곤 내 옆자리에 앉았다.

“어디까지 했었더라?”

“흑황 기사단이 마교단장 듄한테 패배한 것까지 말해 주셨어요!”

“아, 거기였구나. 그때부터 제국 기사단은 패퇴의 길을 걷기 시작했지. 당시 친위대 기사단장이던…….”

최근 식사 이후 내 일과 중 하나는 헤니에게 역사에 대한 걸 알려 주는 것이었다.

물론, 말이 역사 이야기지 실은 그냥 내 경험을 이야기처럼 풀어서 해 주는 것뿐이었고, 덕분에 헤니도 재밌게 경청해 주었다.

그렇게 약 한 시간을 떠들어 주자 테리스 선생이 방으로 들어왔다.

“주사 맞을 시간이다.”

매일매일 주사를 맞거나 침을 새것으로 교체하는 하루하루.

“얼마나 이걸 반복해야 합니까?”

“이제 한 달 됐다. 상황을 봐서 최소 몇 달은 해야 한다니까.”

“기다리기 힘든데요.”

“또 저번처럼 재활치료니 뭐니 하기만 해 봐.”

외부의 마나를 사용 가능하다는 건 말했지만 지금 당장에 마법을 다룰 육체가 안 돼서 제지당했다.

“최소한 손 정도는 움직이게 되면 하게 해 줄게. 개인적으로도 궁금하긴 하니까.”

테리스 선생은 그리 말하곤 헤니를 바라본다.

“헤니, 마을에 가서 식재료랑 약품 좀 사 와야 할 것 같다. 입이 늘었더니 자주 부족하네.”

“아예 많이 사 올게요.”

“부탁하마.”

헤니는 일어나 스웨터와 목도리를 두르곤 그대로 밖으로 나섰다.

“애한테 무슨 말을 해 주는 거야.”

그러자 테리스 선생은 헤니가 앉아 있던 자리에 앉아선 물어 온다. 복잡한 감정이 담긴 표정.

“역사를 알려 준 겁니다. 제 이름도 모를 정도면 그런 쪽엔 아예 무지한 것 같아서요.”

“당신이 말하는 그 역사라는 게 내가 아는 거랑 얼마나 차이가 큰지 알아?”

“헤니한테 들으셨나요?”

“재밌다면서 나한테도 쫑알쫑알 시끄럽더군.”

품에서 파이프 담배를 꺼내서 입에 무는 테리스 선생. 하지만 담뱃잎을 넣지는 않고 그냥 입에만 물고 있었다.

“그게 진실인가?”

“…….”

“내가 지금까지 알고 있던 역사가 실은 모조리 거짓된 것이었다고? 마교라는 녀석들의 술수에 놀아난 것이라고?”

헛웃음을 토해 내는 테리스 선생.

“우습군. 그런 지식들로 자신을 똑똑하다고 자부하고 있었던 내가 너무 어리석어서 어이가 없을 정도야.”

“선생 잘못이 아닙니다.”

“네가 오고 난 이후로 당혹스러운 지식들이 강제로 주입되는 느낌이야.”

짜증을 내며 테리스 선생은 자리에서 일어나 그대로 방 밖으로 나갔다.

* * *

“끄응, 끄응.”

타란 마을에서 식재료와 의료품 거기에 테리스 선생이 사용할 가공된 철도 몇 개 구입했다 보니, 헤니는 끙끙거리며 바구니를 끌고 있었다.

‘너무 많이 사 버린 걸까.’

철은 사 오라는 말을 하진 않았지만, 선생이 좋아할 거라 생각하여 저도 모르게 구입해 버렸다.

“도와줄게.”

낑낑거리는 모습이 안쓰러웠던 철을 판매한 대장장이 로벤이 헤니의 짐을 들어 주었고, 그녀는 고개를 푹 숙이며 감사를 표했다.

“선생님은 요즘도 잘 지내셔?”

“예! 꽤 바쁘세요.”

“선생님은 늘 바쁘시지. 의사에 대장장이라니. 참 신기한 분이야.”

“그건 그래요.”

헤헤하고 웃는 헤니와 함께 마을 밖으로 나온다. 헤니가 슬며시 고개를 돌려 마을을 한 번 바라본다.

“기사분들이 많네요?”

타란 마을의 앞에는 기사들이 투입되어 있었는데, 하품하는 자경단 몇 세워뒀던 평소와는 확실히 다른 풍경이었다.

“최근에 혁명군이 여기서 난리를 피워서 그것 때문에 그렇지. 아직 범인이 안 잡혔다고 하더라고.”

“그렇군요.”

입을 꼬옥 다문 헤니.

“여, 여기까지면 돼요. 감사합니다.”

“아직 한참을 올라가야 하는데?”

“괜찮아요, 선생님이 와 주실거예요.”

“그렇다면 뭐.”

로벤은 몸을 틀어 돌아가려다 찝찝한 표정을 지으며 다시 헤니를 바라봤다.

“그런데 선생께 환자가 있어? 양이 많네.”

“어, 예! 환자분이 있어요.”

“흐음, 그래.”

순간 소름 끼치는 시선에 헤니는 저도 모르게 몸을 부르르 떨었지만, 대장장이는 천천히 멀어졌다.

“후! 의심하시는 건 아니겠지?”

그렇게 헤니가 몇 분 정도 짐을 들고 산을 오르고 있자니 흑주신이 내려와 주었다.

[짐이 많구나. 무리한 건 아니니?]

“괜찮아요! 대장장이분께서 도와주셨어요.”

[흠?]

흑주신이 잠시 주변을 둘러보더니 헤니의 짐을 입에 물곤 그녀를 등에 태웠다.

[가자꾸나, 조심하렴.]

“와! 신나요!”

헤니와 흑주신이 산을 올라간 때에 타란 마을로 돌아온 로벤은 무언가를 고민하더니 마을을 지키던 기사에게로 다가갔다.

“저기, 혹시 혁명군한테 현상금이 걸려 있나요?”

“음? 걸려 있긴 한데……. 네가 노리기엔 무리일걸.”

피식하고 비웃는 기사에게 로벤은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렇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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