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한 마도사는 반역자가 되어 있었다-42화 (42/200)

42화

“…….”

“입술 내밀지 마요!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라고요!”

밖에서 재활치료를 하려던 나를 다시 병실로 끌고 온 헤니가 강제로 나를 침대에 눕히며 설교를 시작한다.

“마나가 역류하고 있는데 마나를 운용하겠다는 건 어디서 나온 생각이에요?”

“아니, 마나가 들끓는 걸 해결 못 하고 있는 거니까 그걸 제압하면 괜찮아지지 않을까 했지.”

“목숨을 거시는 거예요! 자칫 잘못하면 바로 죽는다고요!”

헤니가 화를 잔뜩 내며 이리저리 둘러보더니 아까까지 차고 있던 구속구를 가져왔다.

“안 되겠어요. 아프시면 날뛰실까 봐 싶어서 차고 있던 건데, 라엘 님은 이것 좀 차고 계셔야 할 것 같아요.”

“알았어. 안 할 테니까 너무 그러지 마.”

한숨을 내쉬며 항복표시를 해 주니 그제야 헤니가 흥분을 가라앉히곤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곤 곧바로 들어오는 테리스 선생은 꽤나 심통이 나 있는 표정이었다.

“기껏 몇 날 며칠을 고생해 가면서 살려 뒀더니 바로 뒤지려 들어? 그럴 거면 치료비라도 내놓고 뒤져!”

“선생님! 제가 다 말했어요!”

“마법을 못 쓰는 몸이 돼서 힘들다는 건 안타깝지만 그렇다고 의사 눈앞에서 자살을 하려 해?”

“자살하려던 생각은 없었는데.”

“재활치료랍시고 마나 움직이려고 했잖아.”

“…….”

“하아.”

손으로 눈가를 문지르던 선생이 다시금 파이프 담배를 찾지만, 나시를 입고 있던 터라 손은 허공을 맴돌 뿐이었다.

“어쨌든 뒤질 거라면 퇴원한 다음에 뒤져. 의사가 말한 적도 없는 재활치료 하지 말고.”

“조금 침착해 봐요.”

나는 입을 열면 열수록 짜증만 부리는 선생을 진정시키며 천천히 허공을 바라봤다.

“말도 안 돼!”

“예쁘다.”

푸른빛의 구체가 내 위에 둥둥 띄워졌다.

물론, 그 이상을 할 수는 없었고 오래 버티고 있을 수도 없었기에 구체는 사라졌고.

“너 뭐야! 몸속에서 마나가 들끓어 대고 있는데 마법을 사용한다고? 뭐야!”

“컥! 크억!”

“서, 선생님! 그렇게 흔드시면 안 돼요!”

헤니가 막지 않았으면 진짜 아파서 정신을 잃을 뻔했다. 목구멍으로 피 맛이 느껴지는 걸 보면 각혈이 튀어나올 뻔했다.

“어떻게? 도대체……. 어떻게?”

“하아, 하아.”

이젠 완전히 자기만의 세상에 빠진 듯 중얼거리는 선생. 나는 애써 숨을 고르며 입을 열었다.

“외부의 마나를 쓴 겁니다.”

“뭐?”

“대기 중에 흩어진 마나를 사용하면 제 몸에 있는 마나를 쓰지 않아도 이 정도는 가능하죠.”

충격을 받았는지 고개를 저으며 반박하는 테리스 선생.

“아냐, 아냐. 그럴 순 없어. 아주 작은 마법이라도 마법에 이용되는 마나는 정결해야 해. 그런데 대기 중의 마나는 다른 수많은 잡것들과 섞여 있으며 그 양도 적어.”

“맞습니다, 하지만 그 모든 걸 분리할 수 있으면 사용 가능하지요.”

“설마 그게 가능하다고 나한테 말하고 싶은 건 아니지?”

“방금 보여 드렸잖아요.”

내 반응에 테리스 선생은 숨을 고르며 헤니가 나를 위해 끓여온 차를 홀짝인다.

나름 침착함을 유지하려는 듯했는데, 헤니도 저런 선생은 처음 봤는지 당황하며 내 옆으로 다가왔다.

“원래는 몸 내부에서 하면 훨씬 빠르게 됩니다. 시전자가 능숙하기만 해도 일종의 무한한 마나를 다룰 수 있게 되는 거죠.”

“그런 게 가능한 사람은 없어.”

“예, 무한까지는 안 됩니다만 어느 정도는 외부의 마나를 흡수하여 제 마나처럼 사용할 수는 있습니다.”

“그리고 그걸 지금 내 눈앞에서 보여 줬고.”

드디어 조금씩 인정하려는 모습이 보여 잘 움직이지도 않는 고개를 끄덕인다.

“좋아, 알았어. 내 눈으로 봤으니까 그것까지는 인정할게. 그러면 또 다른 문제가 생겨. 너 도대체 누구야?”

“예?”

숨을 고르곤 테리스 선생은 속사포처럼 말을 이어 나간다.

“그런 기예……. 아니, 기적은 말이야, 지금의 대마도사 알로이스도 불가능해. 그만 그럴까? 역사를 뒤져 보면 최초의 마탑주라는 드레이크도 불가능하고…….”

“드레이크는 가능했습니다.”

“뭐?”

“제 스승님이 드레이크의 일지를 보고 연구했으니까요. 지금처럼 상용화할 정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그가 틀은 잡아 뒀다고 볼 수 있겠죠.”

스승님의 일지를 봤을 때 드레이크에 관한 언급이 꽤나 많았기에 당연하게도 기억하고 있었다.

그러자 테리스 선생의 눈이 천천히 크게 뜨여지더니 당차던 모습과는 답지 않게 손이 떨린다.

“당신, 스승의 이름이…….크리스티나 엘리나?”

“…….”

어떻게 알았는가에 대한 말은 굳이 하지 않았다. 테리스 선생의 눈에는 일종의 확신이 담겨 있었다.

그렇게 잠시의 침묵이 끝나고 테리스 선생은 급하게 헤니의 손을 잡아당겨 자신의 쪽으로 끌더니, 책상 밑의 마도권총을 한 자루 꺼내 들며 나를 겨누었다.

“꺄앗! 선생님?”

“라엘 텔리즈먼. 당신은 우리한테 그렇게 자신을 소개했지.”

“예.”

“처음엔 가명을 댔구나 했어. 이름을 알리면 안 되는 혁명군의 악의적인 센스가 담긴 조크라고 생각했는데 말이지.”

여기서 굳이 거짓말을 할 필요는 없어 보였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식은땀을 흘리는 그가 더없이 초조해 보였다.

“진짜 라엘 텔리즈먼이었구나. 200년 전 제국을 멸망시키려 했던.”

“진짜 라엘 텔리즈먼이 맞지만, 제국을 멸망시키려 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습니다.”

구하려면 구하려고 했었지.

이쯤 되면 역으로 내가 궁금해졌다.

“제가 말하는 것도 뭐하지만 이걸 믿으시는 겁니까? 솔직히 처음 이 시대로 왔을 때의 저도 믿지 못했는데요.”

그러자 테리스 선생은 슬며시 헤니를 바라보며 답했다.

“당신이라면 이 아이가 다루던 게 뭔지는 알고 있겠지?”

“바람의 정령이더군요.”

담담하게 답하자 테리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그리고 얼마 전, 살로메가 우리한테 그런 말을 해 주더군. 시공간이 찢어지면서 재앙이 넘어왔다고.”

“…….”

“테리스는 종종 이상한 말을 하곤 하지만 그 말이 틀린 적은 없었어. 그런데 조금씩 이해가 가는군. 타란 마을에서 벌인 그 재앙과도 같은 마법과 떳떳하게 밝힌 본명.”

설마 정령이 알려 줬을 줄이야.

“당신이 살로메가 말했던 그 재앙이야.”

“여러 오해가 있으신 것 같습니다.”

핫 하고 피식 웃으면서도 테리스 선생은 냉정하게 마도권총을 장전했다.

“헤니에게 역사 공부를 괜히 안 시켰어. 의학이 먼저라고 생각해서 이런 일이 벌어졌군.”

“선생님?”

“헤니, 방 밖으로 나가라. 저 남자는 굉장히 위험한 사람이다.”

여기서 내가 그런 사람 아니라고 외쳐 봤자 단순히 살고 싶어서 발악하는 악인 정도로 저쪽에겐 비칠 것이다.

지금 상황에서 저 총에 맞으면 그 즉시 죽는다.

어떻게든 머리를 굴리던 순간, 헤니가 움직인 곳은 문이 아닌 내 앞이었다.

“안 돼요, 선생님.”

“헤니?”

헤니의 당당함에 테리스도, 나도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설마 그녀가 내 편을 들어 줄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으니까.

“이분은 환자예요.”

“헤니, 그는 수많은 무고한 사람을 학살한 대량학살자야.”

“정말인가요?”

슬며시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본 헤니. 나는 전력으로 고개를 저었다.

“아니라잖아요.”

“그걸 지금, 하……. 헤니 비키렴. 선생님 말 들어야지.”

선생의 답답함이 여기까지 전해지는 기분.

냉철하던 그의 눈동자가 조금씩 흔들리는 느낌이 들었다.

자신의 제자에겐 총구를 들이밀 순 없는지 천천히 총을 내리긴 했지만, 그래도 헤니가 옆으로 나오는 순간 쏠 생각임이 분명했다.

“저는 선생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중이에요.”

“뭐?”

“환자는 살린다! 그게 뒤져야 할 놈이든! 살려야 할 놈이든 일단은 살린다!”

“…….”

“애 앞에서 말 좀 가려서 하쇼.”

헤니의 직설적인 말에 테리스 선생은 벙찐 표정이 되었고 나는 한숨을 내쉬며 핀잔을 줬다.

헤니도 부끄러운지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르다가도 단호하게 외쳤다.

“일단은 살려야죠! 저희는 의사니까요!”

단언에 입을 다문 테리스 선생. 헤니는 거기에 탄력을 받아 계속 말을 이어 갔다.

“게다가 흑주신께서 직접 부탁하신 거예요. 저는 라엘 님이 그렇게 나쁜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후우, 담배가 피고 싶군.”

선생의 표정에는 온갖 감정이 들어있었고 실시간으로 빠르게 늙어 가듯 얼굴이 점점 어두워졌다.

그러다 결국.

탁 하고 탁자 위에 마도권총을 내려놨다.

“담배 피우고 올 테니 다시 얘기하자.”

끼익 하고 문을 열고 나가는 테리스 선생.

헤니는 후! 하고 숨을 내쉬더니 당당하게 손을 허리춤에 대었다.

“환자를 살렸네요! 병이나 부상 때문은 아니지만, 이것도 의사로서의 행동이라고 할 수 있겠죠?”

“뭐, 넓은 범위로 보면 그렇지 않을까?”

괜스레 뿌듯해하는 모습이 귀여워 웃으며 답해 주자 헤니는 헤실헤실 의자를 끌어와 앉았다.

“그런데 정말로 살로메가 말해 주셨던 분인가요?”

“음, 아마 맞지 않을까?”

“그런데 아까 살로메는 라엘 님을 대할 때 크게 문제는 없어 보였는데.”

어? 그건 그렇네.

“살로메.”

헤니가 부르자 다시 나타나는 정령 살로메. 헤니의 머리 위를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더니 결국엔 머리 위에 앉았다.

“살로메. 이분이 저번에 말했던 그분이야?”

-시공간을 뚫고 온 건 맞지만, 얘는 재앙이 아니야.

그러고 보니 바람의 정령이면 라푼젤이랑 아는 사이일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럼?”

-내가 말했던 건…….

“라푼젤.”

-우아하게, 이 몸 등…….

-꺄아아아아아아아아!

귀가 찢어지는 비명 소리와 함께 살로메가 저 멀리 날아가 버린다. 헤니도 저런 모습은 처음 봤는지 당황하며 살로메를 쳐다봤고 나 역시 황당한 표정을 지었으나.

-흐응?

라푼젤의 표정이 묘했다.

아 잠깐, 설마.

-재앙이야! 저 녀석이 내가 말했던 재앙이라고!

“안녕하세요, 재앙님.”

-어머, 인사성이 좋은 아이구나. 마음에 들어.

등장한 라푼젤에게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꾸벅 숙이는 헤니를 보며 살로메는 세상 잃은 표정을 지었다.

-하고 싶은 말이 정말 많지만, 우선 라엘, 이게 무슨 모습이야? 요즘 내가 올 때마다 다친 것 같아서 기분이 매우 불쾌하네.

“그럴 일이 있었어. 저번처럼 누구한테 맞은 건 아니니까 걱정 안 해도 괜찮아.”

-조심해. 괜히 몸 상하거나 하면 내 마음 찢어지니까.

조막만 한 손으로 내 뺨을 쓰다듬는 라푼젤의 손길에서 안쓰러움과 슬픔이 분명하게 전해져 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곤 라푼젤이 천천히 몸을 틀며 방구석에서 오들오들 떨고 있는 살로메를 바라봤다.

-꽤나 호들갑스럽게도 맞이해 주는구나, 살로메.

-라, 라푼젤. 미안한데, 나 다시 정령계로 돌아가 볼게.

사라지려던 살로메의 날개를 붙잡는 라푼젤.

-무슨 말이니. 오랜만에 만나서 할 말이 아주 많은데.

싱긋 웃는 라푼젤의 미소는 그 어느 때보다 섬뜩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