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화
뭔가가 뺨을 핥는 축축한 느낌.
눈이 뜨여지지 않아서 감촉만으론 처음엔 강아지나 고양이인가 했지만, 혀가 얼굴 전체를 감싸는 느낌에 혹시 마수한테 잡아먹히는 도중인 건가 하고 겁이 확 들었다.
“흐읍!”
막상 눈을 떴으나 여전히 앞은 어둠. 내가 눈을 뜨긴 한 건가라는 의문 속에서 몸을 움직이려 했으나 무언가에 단단히 고정되어 있었다.
“끄악!”
몸을 움직이려 시도한 것만으로도 과격한 고통이 찌릿하고 몸을 한 번 훑고 지나간다.
“어, 깨셨어요?”
처음 듣는 아이의 목소리.
그 기척이 내 앞까지 다가와서는 눈에 묶어 둔 무언가를 푸는 듯했다.
“앗! 저리 가! 잠시만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내 뺨을 계속 핥아 대던 무언가를 치운 듯했다.
그렇게 다시 부스럭거리는 소리와 함께 시야가 밝아졌고, 아늑한 나무 천장과 머리에 노란 두건을 쓴 연붉은 머리칼의 소녀가 반겨 주었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선생님을 불러올게요!”
아이는 예의 있게도 고개를 숙인 후, 바깥으로 나갔다. 그러자 다시금 달라붙는 검은 무리들.
“야! 그만.”
새끼인지 작은 덩치의 검은 피부를 가진 강아지들이 다시금 내 위에 올라타 얼굴을 핥아 대기 시작했다.
얼굴이 침 범벅이 되었을 때서야 아이는 가운을 걸친 중년의 남자와 함께 방으로 들어왔다.
“흠, 정신은 좀 드냐.”
“예, 구해 주신 것 같은데 감사합니다.”
정황상 나를 발견해서 치료해 준 듯해서 일단은 저자세로 나갔으나, 남자는 콧방귀를 뀌며 품에서 길쭉한 파이프 담배를 꺼내 들었다.
“내가 누군 줄 알고 감사하냐. 네놈을 가지고 인체실험을 할 생각에 살려 뒀구만.”
“선생님!”
남자의 말에 아이는 화를 내며 주먹을 앙 쥐고는 따지고 들었다.
“방금 깬 분한테 그런 농담은 심적으로 굉장히 좋지 않아요! 게다가 담배는 밖에서 피우시라니까요.”
파이프 담배를 뺏긴 남자는 짜증스러운 한숨을 푸욱 쉬며 제대로 자신의 소개를 했다.
“테리스다. 그냥 테리스 선생이라 불러라.”
“안녕하세요, 테리스 선생님의 제자 헤니라고 합니다.”
“라엘, 라엘 텔리즈먼입니다.”
“…….”
“우와, 멋진 이름이네요!”
테리스는 인상을 찌푸리며 나를 내려다봤으나 헤니는 환하게 웃으며 내 몸을 묶은 붕대를 갈아 주기 시작했다.
아이가 예의가 다분해서 내 이름을 듣고도 아무렇지 않은 척해 주는 건 아니었다. 그냥 진짜로 모르는 눈치.
“이름 참 그러네.”
테리스 선생은 처음에만 좀 불편해할 뿐, 의자를 끌어와 내 옆자리에 앉아선 침대 옆 서랍에 놓인 육포를 꺼내 들었다.
그러자 내 위에서 돌아다니던 강아지들이 그대로 선생에게로 날아들었다.
“설명을, 부탁드려도 괜찮겠습니까.”
“설명이라, 간단하게 말해 주자면 어떤 분께서 부탁하셔서 헤니와 내가 다 죽어 가던 그쪽을 구해 줬지.”
정말 간단하다.
“어떤 분이요?”
“밖에서 기다리고 계세요. 조금 있다가 부목이랑 구속구를 풀어 드릴 테니까 만나 뵐 수 있을 거예요.”
“밖에서?”
다시 묻자 헤니는 어색하게 웃으며 답해 준다.
“안으로는 못 들어오시거든요.”
그게 무슨 소리인지는 이해가 힘들었으나 굳이 다시 묻지는 않았다.
“그것보다 지금 상황을 간단히 설명해 줄게.”
내가 누운 침대에 발을 걸치곤 주머니에 손을 꽂은 상태로 천장을 보며 입을 때는 테리스 선생.
“마나의 역류인 건 이해하고 있겠지? 몸속 마나의 일부가 역방향으로 흐르는 현상이지만 너의 경우는 특별해. 일종의 산불이지, 그것도 아주 거대하고 큰.”
흠 하고 잠시 고민하던 선생이 다시 입을 뗀다.
“산이 작고 나무가 적으면 산불 진화가 그나마 쉽겠지? 그런데 너는 산맥이야. 그것도 아주 울창하고 푸르른. 덕분에 마나의 역류가 일어나면 걷잡을 수가 없는 거지.”
눈을 돌려 몸을 살피자 여기저기 침이 꽂혀 있는 게 보였다.
“저것들로 겨우 막아 놓고는 있는데. 저거 빼는 순간 바로 죽는다고 생각해.”
동방 의학에 능통한 의사가 제국에 있을 줄은 몰랐지만, 어쨌든 그는 설명을 이어 나갔다.
“평생 침을 달고 살라는 소리는 아니고. 몇 달 정도는 요양을 해서 타오르던 마나가 가라앉으면 천천히 하나씩 빼면 되겠지. 물론, 그 이후에 마나를 쓰는 건 일체 금지고.”
“그 말은…….”
선생은 아주 담담하게 선언했다.
“마법사 인생은 끝났다고 보면 돼.”
“서, 선생님.”
내 몸을 물수건으로 닦아 주던 헤니는 당황하며 선생을 바라봤으나 이번엔 선생도 물러서지 않았다.
“나중에 의사 생활을 하다 보면 이런 말은 수도 없이 하게 된다. 이때 필요한 건 같잖은 동정이 섞인 거짓말이나 위로가 아니라 담담한 현실이야.”
“그치만.”
“환자를 기만하는 행위다, 헤니.”
냉정하게 말하는 선생과 울상이 된 아이.
두 사람을 보며 입을 다물고 있던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뭐, 알겠습니다. 그것보다 배가 고프군요.”
담담한 내 반응에 헤니는 서둘러 죽을 가져오겠다며 밖으로 나갔고, 선생은 품에서 또 다른 파이프 담배를 꺼내며 나를 바라봤다.
“슬프진 않나?”
“궁금해요?”
후 하고 연기를 내뿜은 선생은 마치 중얼거리는 듯 답해 준다.
“단순 의사 나부랭이인 나조차도 너를 치료하면서 알 수 있었다. 얼마나 노력했는지, 얼마나 말도 안 되는 힘을 가졌는지.”
마나의 역류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사람이다 보니 당연히 치료하다 보면 평범한 사람은 아니라는 걸 알아챘겠지.
“타란 마을 뒷산 근처에서 큰일이 벌어졌다 해서 한번 가 봤다. 아주 처참하더군. 땅은 갈라지고 나무들은 다 뽑혀서 바닥을 나뒹굴고. 딱 봐도 태풍이 지나간 후였어. 그리고 바로 알 수 있었지.”
천천히 뻗었던 다리를 접으며 자리에서 일어나는 선생.
“그놈이구나. 우리가 주워온 그놈이 이 사달을 내놨구나.”
“예, 제가 맞습니다.”
“그리고 이것도 알 수 있었어.”
터벅터벅 내게로 다가와 얼굴을 들이민 선생은 마치 비밀을 속삭이듯 조용히 말했다.
“이 정도 재앙임에도 아직 그놈의 전력은 아니구나.”
“…….”
“실제로 마나의 역류가 일어나려면 몸 안에 마나가 있어야지. 그런데 전심전력으로 마나를 뿜어낸 마법사는 역류가 아니라 마나 탈수 증상이 일어나야 해.”
“그렇겠죠.”
“그만한 일을 벌였는데도 과한 마나로 인해 역류가 일어났다……. 내가 이걸 어떻게 받아들일 것 같아?”
대답을 바라고 묻는 게 아니라는 걸 알기에 입을 다물었다.
“위험한 놈이라고, 죽여야 한다고 바로 생각했어. 넌 인간이 가지고 있기엔 너무 과한 힘을 지녔고 그건 축복이 아니라 재앙이야.”
“…….”
“너와 세상, 모두에게 말이야.”
“그럼 왜 살리신 겁니까.”
솔직히 궁금했다.
이렇게까지 첫인상이 나쁜데 어째서 그는 나를 살린 걸까.
지금 당장이라도 몸의 침을 뽑으면 나는 마나에 휩쓸려 몸이 뒤틀리며 죽을 텐데.
선생은 짜증이 섞인 한숨을 내쉬며 답했다.
“그러게 말이야. 왜 살린 걸까.”
“예?”
“아 몰라. 원래 환자가 눈앞에 있으면 살리고 보는 게 의사야. 이놈이 뒤져야 할 놈인지 아니면 살아야 할 놈인지 알고서 치료하냐? 일단 살리고 보는 거지.”
“…….”
뭔가 힘이 탁 하고 풀리는 느낌에 헛웃음이 지어졌으나, 그대로 몸에서 웃지 말라고 경고하듯 가슴께에 고통이 찾아왔다.
“밥 먹고, 구속구 풀어 주면 밖에서 기다리는 분이 있으니까 그분부터 만나 봐.”
“일단은 알겠습니다.”
“쳇, 골치 아픈 환자가 들어왔어.”
선생이 밖으로 나가는 것과 마주치며 헤니가 식사를 가지고 들어왔다. 배가 허한 느낌이 며칠은 굶은 기분이라 그녀가 후후 하고 불어서 식혀 주는 죽을 낼름 받아먹는다.
“배고프셨죠? 꼬박 일주일은 쓰러져 계셨으니 당분간은 죽을 드셔야 해요.”
“일주일?”
“예! 일주일 동안 선생님이 밤낮없이 간호해 주셨어요!”
자랑스레 웃는 헤니의 모습에 헛웃음이 새어 나온다. 그렇게 오래 쓰러져 있었다고? 어쩐지 몸은 힘들지만 졸리진 않더라.
그렇게 헤니와 간단히 대화하며 식사를 마친 후, 구속구를 풀어서 휠체어에 겨우 앉았다.
그 작은 행동을 하는 것만으로도 엄청나게 아팠지만.
“추우시죠? 이거랑, 이거 덮어 드릴게요.”
“과한데?”
“히히, 눈사람 같으시네요.”
헤니가 덮어 준 털실 옷들 사이로 빼꼼 눈만 나온 채 밖으로 나오니, 별이 보이는 밤이었다.
병실 내부의 창문은 전부 커튼으로 막아 놔서 시간 개념이 잘 잡히지 않았기에 조금 놀랐다.
그리고 밖으로 나오자마자 눈을 확 끄는 존재.
검은 강아지들을 인자하게 바라보는 엄청난 덩치에 근육이 튼실한 녀석.
“흑주신?”
동굴에서 살려 보냈던 녀석이 나를 보더니 저벅저벅 다가왔다.
“잠시만요, 살로메.”
헤니가 웃으며 손을 뻗자 녹색과 회색이 섞인 손바닥 정도 크기의 정령이 나타났다.
‘정령이라고?’
호들갑을 떨고 싶을 정도로 놀랐으나,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헤니는 살로메라는 이름의 정령에게 부탁하여 나와 흑주신이 대화를 할 수 있게 해 주었다.
[괜찮은가.]
어떤 방식으로 할까 궁금했는데 숨소리로 의도를 파악하여 서로에게 전달이 되는 방식.
신기하게도 흑주신의 숨소리가 귀로 들어오면 그 의미가 이해가 되었다.
“네가 나를 살려 주라고 부탁한 거야?”
내 말에 흑주신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곳의 의사와는 예전부터 안면이 있었다. 헤니 덕분에 의사소통도 가능하니까.]
“……고마워.”
내 말에 흑주신의 입고리가 씨익 올라갔다. 어금니가 보였으니 확실하다.
[빚을 갚았군.]
동굴에서 흑주신을 살려 준 덕분에 이렇게 살 수 있었다고 생각하니 참 기분이 묘했다.
보통 이럴 때는 신이 굽어살폈다고 많이들 말하는데, 나는 그게 참 싫었기에.
[한동안은 여기 있을 생각이다. 필요한 게 있다면 말해라.]
“여기 있을 거라고?”
[인적이 드문 곳이라 괜찮다, 걱정 마라.]
뭐, 흑주신이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대화를 나누던 와중에 귀를 찔러오는 망치질 소리.
무엇인가 싶어 고개를 돌리니 비를 피할 지붕만 세워 둔 작업장이 보였다.
“아, 선생님! 밤에는 하지 말라니까요!”
펄쩍 뛰면서도 나를 끌고 작업장 쪽으로 향하는 헤니. 그곳에 도착하니 방금 전의 가운을 입고 있던 의사는 어디로 사라지고 편한 나시에 망치를 들고 있는 테리스 선생이 있었다.
“음? 하지만 지금 해야 내일 치료를 바로 진행할 수 있어.”
“그, 그러면 날 밝을 때 해 두면 됐잖아요! 숲의 동물들이 다 깬다고요!”
“날 밝을 때는 피곤해서 자느라 어쩔 수 없었지. 동물들은 지들이 싫으면 이사 가라고 해.”
그러곤 다시 망치질을 시작한 테리스 선생.
딱 봤을 때 내 몸에 박혀 있는 침을 만들고 있는 것 같은데 주변에 널려 있는 의료 도구들도 다 직접 만든 듯했다.
‘의사에 대장장이라. 참신한 조합이긴 하네.’
독특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긴 했지만 이렇게 독특할 줄은 몰랐다. 망치 잡다가 손에 굳은살 박이면 수술은 어떻게 할 생각이지?
“에휴, 저희 선생님이 좀 별나시죠? 죄송해요.”
“아니, 괜찮아. 그것보다는 집 앞으로 다시 옮겨 줄 수 있을까?”
“네! 잠시만요.”
끼릭끼릭 소리와 함께 다시 병실 앞에 도착한 나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음? 여기서 주무시면 안 돼요! 침대로 바로 옮겨 드릴게요.”
“아니, 잘 생각은 없어.”
“그럼요?”
“재활치료 해야지.”
담담한 내 말과 동시에.
“안 돼욧!”
“야 이 시끼야!”
[이 무슨!]
두 사람과 한 신의 깜짝 놀란 외침이 숲에 퍼져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