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화
대마도사 알로이스 뫼르엔 델폰의 다섯 번째 제자 페르난도 레빌로스.
세 번째 제자 숑이 독에 관한 스페셜리스트였다면, 페르난도는 보조 마법에 관한 전문가였다.
그 깊이는 대마도사인 스승도 인정해 줄 정도로 깊었지만, 직접적인 전투는 하지 못하기에 사실 제자들 중에서도 괄시를 받는 편에 속했다.
특히나 제자들 중 성격이 가장 괴팍하다 소문난 숑에겐 상당한 괴롭힘을 당하던 편이었다.
그렇기에 솔직히 요번 원정을 나설 때, 두려움도 있었지만 궁금증이 컸다.
산사태로 인해서 무너졌다고 알려진 레펠리아 수용소가 실은 한 마법사에 의해서 사라졌다는 걸 스승인 알로이스에게 들은 이후 전율이 일었다.
과연 그 마법사가 누구인지.
학문적인 의미에서도 같은 마법사로서도 궁금했다.
그리고 주제를 모르는 호기심이 명을 단축시킬 수 있다는 옛말을 뼈저리게 실감하고 있었다.
“페르난도.”
거친 바람 소리에 흩날려 명확하진 않았지만, 황자의 떨리는 목소리에 페르난도는 고개를 숙였다.
“예, 황자 전하.”
“대마도사께서도 이런 마법을 부릴 수 있으신가?”
“시간이 걸리시겠지만, 사전 준비와 저희 제자들이 합세한다면 가능합니다.”
가능은 하다.
그 말이 심란한 황자의 마음을 그나마 위로해 주는 듯했다.
물론, 그렇다고 앞의 광경이 이해가 되는 건 아니었다. 진정 한 사람이 저런 힘을 발휘해도 괜찮은 건가?
수많은 폭풍.
크고 작은 폭풍들이 기사들을 맘껏 유린하며 대지를 휩쓸고 있었다. 폭풍이 작위적인 재앙이라는 걸 대변해 주듯 하늘은 참 얄궂게도 푸르렀다.
레펠리아 수용소를 무너뜨린 마법사가 있다는 건 제1황자와 대마도사만이 알고 있던 사실이었지만, 제라니 황자를 위해서 대마도사는 진실을 알려 주었고.
그것을 대비하여 준비한 것이 바로 이 바이올렛 기사단과 요마여우의 가죽 갑옷.
웬만한 마법사라면 마법 한 번 제대로 써 보지 못하고 그대로 말발굽에 짓이겨졌을 전력을 가져왔음에도.
닿지 못했다.
솔직히 행운이 따른다고 생각했다.
철거북 혁명단과 청색횃불 혁명군의 리더가 타란 성 근처로 움직였다는 첩보를 듣고 이동하던 와중 타란 마을에서 큰 소란이 일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페르난도 레빌로스의 마법 덕분에 하루는 족히 걸릴 거리를 고작 5시간 만에 달려올 수 있었으니, 적이 예상치 못한 시점에 급습할 수 있을 거라고 판단해서 포위망을 넓혔고 정확히 들어맞았다.
완승이 코앞이었건만 단 하나의 마법사에 의해서 출정한 지 며칠 되지도 않았건만 승리 대신 패배가 코앞에 놓여 있는 상황.
하늘에 떠 있는 남자를 바라본다.
로브를 뒤집어쓰고 있어 얼굴이 제대로 보이진 않지만, 그의 심기를 자극한 게 본인이라는 건 분명했다.
“마치 신과 같군.”
“…….”
황자는 고개를 들고 마법사를 올려다보다 조용히 입을 열었다.
“페르난도, 내게 강화 마법을.”
“황자 전하! 위험하십니다!”
“그렇다고 이렇게 두 손 놓고 구경만 할 수는 없어.”
오러를 품으며 천천히 보검을 양손으로 쥐고 가슴 앞으로 가져다 댄다.
푸른빛의 오러가 검을 넘어서 그의 온몸을 불사른다. 결사의 일격. 혼과 생을 담은 모든 것을 내지를 각오를 한 것.
“황자님께서도 무사하시지 못하실 겁니다!”
“그렇다면 황자가 아닌 무인으로서 죽을 수 있겠군.”
짐짓 만족스럽다는 미소를 입에 걸며 황자는 보검을 내리고 위로 뛰어오를 자세를 취했다.
어찌하여 일국의 황자가 고작 마법사 하나를 상대로 그 목숨을 걸고 싸울 각오를 다지겠는가.
“페르난도!”
“크흑, 제국 대마도사의 다섯 번째 제자 페르난도 레빌로스! 황자 전하의 명을 받듭니다!”
울컥 눈물이 샘솟았다.
이분은 진정 제국민을 위하시는 분이다.
그동안 봐 왔던 권력에 눈이 먼 귀족이나 자신들의 이익만을 보던 사제들과는 다르다.
이 짧은 시간만으로도 황자는 말과 행동으로 그의 고귀함을 입증했다.
그렇기에 페르난도 레빌로스 역시 목숨을 다해 마나를 쥐어 짜냈다.
“블레스!”
그의 짧은 인생 중 가장 강력한 지원 마법. 그리고 그 마법을 받은 제라니 데 아르니티는 제국의 명운을 어깨에 짊어졌다는 마음으로 그대로 하늘을 향해 뛰었다.
페르난도의 지원 마법의 힘과 더불어, 자신의 검을 밑으로 내려 오러를 이용하여 추진력을 더했다.
순식간에 접근하는 제라니 황자.
로브를 뒤집어쓰고 있던 마법사는 멀리 두었던 눈으로 드디어 황자를 바라봤다.
‘지금 이 자리에서 그를 죽여야 한다.’
제라니 데 아르니티는 그를 죽이지 못한다면 제국의 미래는 없다고 판단했다.
이 정도 실력을 가진 마법사가 마음을 먹고 제도에서 날뛰기 시작한다면 정말 재앙이나 다름없을 테니까.
“황금의 자리에서 일어나, 검을 쥐고 눈을 감겠노라!”
그대로 검을 위로 치켜들며 휘두른다.
푸른빛의 오러는 이미 황자보다 몇 배는 커다란 크기로 마법사를 덮치고 있었다.
깨지는 소리가 들려온다.
마법사가 두르고 있던 보호 마법이 오러에 의해 부서진 것.
그렇게 계속해서 보호막을 부수고 나아간다.
한 겹, 두 겹, 세 겹, 네 겹.
20개의 보호 마법을 부쉈을 때서야 황자는 제대로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도대체.”
투명한 보호막이 녹색 빛을 띄우고 있었다.
도대체 몇 개의 보호막이 중첩되었는지 육안으론 확인이 불가능했다.
황자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마법사의 입은 호선을 그리며 답해 주었다.
“117겹. 총 117개의 보호 마법으로 둘러싸여 있다.”
이제 20개를 부쉈으나 오러는 점차 과격하던 기세를 잃어 갔고, 제라니 황자의 손도 힘이 풀려 왔다.
“멀구나.”
저 남자에게 검을 휘두르기 위한 거리도 거리였지만, 그 수준 차이를 절감한 제라니는 홀로 씁쓸히 한 마디를 내뱉은 후 그대로 추락하기 시작했다.
착지를 생각할 여유는 없었다.
전력을 다한 일격이었기에 온몸의 힘이 빠지는 느낌이 들었고, 이 높이에서 떨어지면 즉사가 확실했다.
‘어머님, 죄송합니다.’
제라니 황자는 그렇게 눈을 감았다.
* * *
“황자님! 황자님!”
자신을 부르는 다급한 남성의 목소리에 제라니 황자는 인상을 찌푸리며 천천히 눈을 떴다.
온몸이 무게 추를 달아놓은 것처럼 무거운 것이 눈을 뜨는 것조차 괴로웠음에도, 앞에 보이는 건 울상이 되어 자신을 내려다보는 페르난도 레빌로스.
“여긴?”
“타란 성입니다. 눈을 뜨셔서 정말 다행입니다.”
타란 성?
점점 머리가 회전하기 시작하고, 자신이 눈을 감기 직전의 일까지 떠오른 제라니 황자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침대에서 일어났다.
물론, 그 탓에 온몸에 치고 들어오는 고통에 신음 소리를 흘릴 수밖에 없었지만 그래도 어찌 자세는 잡았다.
“도대체 어떻게 타란 성에 있을 수 있는 거지? 분명 나는 공격에 실패하고 그대로 하늘에서…….”
소름 끼치는지 황자는 뒷말을 잇지 못했다. 페르난도 역시 몸서리를 치면서도 천천히 상황을 설명했다.
“황자님이 하늘에서 떨어지시던 걸 녀석이 받아서 땅에 내렸습니다.”
“녀석?”
되물음에 페르난도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 마법사가 말입니다. 황자님을 구했습니다.”
“뭐?”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어째서인지는 모릅니다. 솔직히 그가 지상으로 내려온 순간 마나에 눌려서 고개조차 들지 못했습니다.”
정말로, 강림한 신을 본 것만 같다는 말이 페르난도의 입안에서 머물렀으나 뱉지는 않았다.
“나를 구했다고.”
“다른 말은 없었습니다. 그 이후, 마법사는 태풍을 사그라뜨리곤 사라져 버렸습니다.”
“추격은?”
페르난도는 고개를 저었다.
“뒤를 쫓을 수 있는 병력이 없었습니다. 바이올렛 기사단은 다행히도 목숨을 잃은 기사는 없지만, 심각한 부상이 다수 있습니다.”
“목숨을 잃은 기사는 없다…….”
제라니 황자는 페르난도의 말을 다시금 곱씹었다. 마치 자신들에게 힘의 차이를 보여 주는 것만 같은.
“그 뒤, 타란 성의 수호기사들이 합류하여 우선은 부상자들과 함께 황자님을 이곳으로 모셨습니다.”
“시간은 얼마나 지났지?”
“이미 한나절이 지났습니다. 벌써 밖은 어둡습니다.”
“쫓기엔 늦었군.”
제라니 황자는 저도 모르게 쥐어진 주먹이 눈에 들어왔다.
침통한 하루였다.
* * *
“크으읍!”
근처 나무에 기대어 쓰러지듯 앉는다.
바이올렛 기사단과 제라니 황자의 추격을 뿌리친 지 몇 시간이나 되었지만, 몸의 통증이 사라지지 않았다.
200년 만에 세상 밖으로 나와서 진심으로 모든 마나를 풀었던 건 레펠리아 수용소와 마교단장 퓰리를 상대할 때, 그리고 지금. 딱 세 번.
레펠리아 수용소 당시에는 마나를 푼 것만으로도 그 압력을 버티지 못한 맥 포르치와 숑 때문에 허무하게 다시 마나를 거두었고 퓰리 역시 맥없이 승리를 가져왔었지만, 지금은 다르다.
마나를 튕기는 마갑, 요마여우의 가죽갑옷, 기사의 오러 등.
기사단이 마나의 압력을 버틸 수 있는 여건이 갖춰졌던 탓에 전력으로 마법을 사용했다.
처음엔 몰랐다.
그런데 마나를 쓰면 쓸수록 몸의 이상을 느꼈고, 황자의 공격을 막아 내고 그를 구한 이후 곧바로 자리에서 벗어났다.
그리곤 현재.
풀렸던 마나는 다시 회수했지만, 여파로 가슴과 양손, 발이 뒤틀리듯 아파 왔다.
이런 반응의 원인은 딱 하나.
마나의 역류.
온몸의 마나가 길길이 날뛰며 비틀고 찌르며 목을 죄어온다.
어째서 이런 걸까 하는 물음에 해답은 금방 머릿속에 나왔다.
동굴에서는 이 정도의 마나를 운용한 적이 없었다. 마나의 용량은 크게 늘렸고 수많은 마법을 배우고 익혔지만, 정작 그 마나 전체를 사용하며 마법을 다룬 적은 없었다.
동굴에서 과격한 마법을 쓰는 순간 바로 동굴이 무너질 테니까 당연했지만.
쉽게 표현하자면 경험 부족.
이 정도의 마나를 전력으로 다루어 본 적이 없었기에 이런 후속 여파가 있을 줄은 몰랐다.
“크아악!”
결국 땅을 구르며 고통을 호소한다.
어둡고 깊은 산골의 잠들었던 작은 동물들이 화들짝 놀라며 도망치지만, 신경 쓸 겨를이 없다.
‘감당하지 못할 힘이었나?’
이런저런 생각이 들면서도 고통에 몸부림치며 점차 눈이 감겨 왔다.
‘지금 정신을 잃으면 죽는다!’
내가 정신을 잃었다고 마나가 가만히 있지는 않는다. 오히려 고삐를 쥔 손을 놓았으니 더 격렬하게 날뛰기 시작할 것.
허나, 과격한 통증으로 인해 머리가 띵 하고 울려오며 점차 눈이 감겼고.
미약하게 들려오는 사람의 발걸음 소리를 끝으로 정신을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