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화
일단 다행인 점은 당장에 이쪽의 위치를 저쪽에서 모른다는 점이었지만, 위치와 속도를 봤을 때 걸리는 건 금방이었다.
“마법을 걸긴 했지만 무조건 빨라지는 게 아니라 말 자체의 신체 능력을 상승시키는 거야. 한마디로 아무리 마법을 걸어도 강화된 군마와 비교하기엔 부족하다는 말이야.”
설명을 듣고는 다들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몰았다. 목적지는 서쪽.
“넓게 포진이 되어 있었으니 서쪽으로 가면 기사 몇은 만나게 될 거야.”
“어쩔 수 없어. 강행 돌파한다.”
시간이 끌려서 불리한 건 이쪽이다.
말을 몰고 최대한 평지 쪽으로 내려와서 내달린다. 말들은 확실히 이전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속도로 내달렸다.
“우악! 대단해!”
“꽉 잡아라.”
“네.”
뒤에 타고 있는 에딘, 소니아, 에레오나는 거친 말의 내달림이 조금 버거워 보이긴 했지만, 속도를 줄일 때가 아니었다.
“쳇.”
오히려 에레오나 같은 경우는 자신이 말을 몰지 못한다는 것에 불편함이 있는 듯했지만, 올 때는 그녀가 기절한 상태였기에 말이 부족했다.
“대단하긴 하다.”
거세게 바람을 가르며 레온도 칭찬을 해 주었지만, 솔직히 말해서 이런 식으로 마법을 운용하는 마법사가 있을 줄은 몰랐다.
‘사실 처음 해 보는 건데.’
사람을 강화하는 것과 비슷하게 생각하니 쉽게 되었지만, 설마 말을 강화해서 추격을 시도할 줄이야.
그렇게 바람에 눈도 제대로 뜨기 힘든 수준으로 내달리던 중 저 멀리서 갑옷을 입은 기사들이 보였다.
산을 중심으로 포위를 펼치고 있었기에 어디로 가든 만날 수밖에 없는 상황인지라 다들 각오하고 무기를 쥐었다.
“내가 싸울 테니까 너는 말이나 몰아.”
“……알았어.”
검을 뽑으려던 레온은 뒤에 앉은 에레오나의 말에 양손으로 고삐를 쥘 뿐이었다.
선봉으로 나선 건 루이나와 에딘.
마나를 제대로 다루지 못하는 에딘이기에 실상은 루이나 혼자서 창을 들고 나선 것이나 다름없었다.
“앞장서겠습니다!”
상대측에서도 이미 우리 쪽을 확인하고는 말을 몰며 랜스를 꼬나 쥐었다.
“본격적인 무장이구만.”
짧은 길이였지만 랜스까지 준비했을 줄이야. 라디오 타워 일이 꽤나 약이 올랐긴 한 모양이다.
갑옷에는 자줏빛 꽃의 문양, 바이올렛 기사단이었다.
“거물급 기사단이군.”
“3황자가 움직이니까 당연한 거지.”
“손이 근질근질한데요?”
레온과 에레오나가 말하자 루이나가 씨익 웃으며 양손으로 창을 쥐며 크게 들어 올렸다.
“루이나, 지원할게.”
톤파 영감의 뒤에 앉아 있는 소니아의 옆에 푸른 불꽃들이 떠오른다.
말을 타고 가면서 저 정도 양을 만들어 낸 걸 보면 확실히 수준 높은 마법사이긴 했다.
루이나와 기사단의 선봉이 맞부딪치기 몇 초 전, 소니아의 푸른 불꽃들이 그대로 날아들었으나 뜻밖의 상황이 펼쳐졌다.
불꽃이 근처에 다가가자 그대로 튕겨 나간 것.
“내 불꽃이?”
오늘 꽤나 체면 구기는 일만 벌어져서인지 소니아는 입술을 깨물며 분통을 터트렸지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콰앙! 하는 소리와 함께 허공에 뜬 루이나와 에딘.
분명 옆을 스치고 지나치려 했으나, 상대의 군마가 몸을 한 번 틀자 그대로 말과 함께 날아가 버렸다.
‘단순히 육체만 강화한 게 아니다!’
원래였으면 이 정도로 처참하게 패배하진 않았을 것이다. 아무리 말 자체의 차이가 있더라도 마법사의 기량 차이가 있으니까 어느 정도는 메꿀 수 있다 판단했다.
하지만 저쪽에서 준비한 건 그것뿐이 아니었다.
군마가 끼고 있는 마갑.
자줏빛의 마갑에 무언가 장치가 되어 있었다. 그 탓에 닿는 순간 내가 말에 걸었던 마법이 그대로 튕기며 사라진 것.
‘저것도 그 박사인가 하는 놈이 만든 건가?’
포르쉔 국장이 말해 줬던 마나에 관한 발명품은 다 황실 소속의 박사라는 녀석이 만든다고 했으니, 아마 저 마갑도 그 발명품 중 하나일 터였다.
200년 뒤의 세상은 정말 마법사가 살아남기 힘들었다.
“루이나! 에딘!”
깜짝 놀란 레온이 외치지만 두 사람에게 목소리는 닿지 못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대로 바닥에 처박히게 두진 않았다.
“멈추지 말고 달려!”
괜히 속도를 늦췄다간 도망치기 힘들다. 마나로 손을 만들어 날아가는 두 사람을 겨우 받아 냈다.
“테토! 길 좀 뚫어 줘!”
-한동안 우리를 부르지 말라고 했을 텐데.
“부탁할게.”
정령들이 인간계에서 활동하는 걸 신들이 워낙 좋아하지 않다 보니 동굴에서 세 정령들이 한동안은 부르는 걸 자제해 달라고 말했지만, 어쩔 수 없다.
테토의 도움으로 흙과 자갈들이 솟아오르며 군마와 기사들을 뒤덮는다. 죽이거나 할 수는 없지만 아주 조금이라도 시간을 벌 수는 있을 것이다.
그렇게 시간을 번 사이 곧장 치고 나가는 혁명군 멤버들.
루이나와 에딘은 내가 받아 내서 바로 옆에서 마나로 만든 손에 매달린 채 둥둥 떠 있었지만, 돌진으로 입은 피해는 크지 않아 보였다.
“이렇게 계속 도망칠 수 있어?”
“아니, 힘들어.”
보통 속도였어도 힘든데 강화를 한 말을 타고 두 명을 마나로 붙잡은 채로 가는 건 아무래도 지칠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둘을 천천히 내 뒤로 옮겨 말에 태운 후 루이나에게 고삐를 쥐게 했다.
“무슨 생각…….”
루이나가 말을 끝맺기도 전, 나는 말에서 뛰어내리며 바닥에 착지했다.
“야! 무슨 짓이야!”
“라엘!”
다른 이들도 내 행동을 보고 당황하며 말을 멈추려 했지만 나는 단호하게 소리쳤다.
“그냥 가! 어차피 이대로 가다간 결국 다 잡히게 생겼어. 내가 최대한 시간을 끌다가 갈게.”
“……계속 달린다!”
빠르게 판단을 내린 레온이 그대로 나를 지나치며 말을 몰았고, 맨 뒤에 있던 톤파 영감과 소니아 역시 슬픈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지나쳤다.
“그대의 희생에 찬사를.”
“미안해요.”
그렇게 말발굽 소리가 점차 멀어지고 천천히 마나를 끌어올렸다. 이미 저 끝에선 자줏빛 갑옷을 입은 기사들이 대거 몰려오기 시작했다.
“희생 따위를 할 생각은 없는데 말야.”
희한한 오해를 받아 버렸구나 하고 중얼거리며 그대로 땅에 손을 댔다.
마갑에 마법을 차단하는 술수를 부렸다고 해서 마법사가 무력화될 거라는 생각은 너무 안일하다.
마나를 활용한 무궁무진한 방법을 탐구하고 추구해 나아가는 것이 바로 마법사니까.
“불합리하다고 느낄 순 있어.”
그런데 원래 재앙이란 그런 것이다.
사람의 힘으론 어찌하지 못하는 재해.
땅이 울려온다.
자줏빛 기사단의 발밑이 쩌적쩌적 하는 소름 끼치는 소리를 뱉어내더니, 이내 마치 범이 아가리를 쫘악 찢는 것처럼 입을 벌린다.
“뭐야!”
“땅이 열렸다! 지진이야!”
“우아아악!”
“지진이 아니야! 마법사다!”
여러 비명 소리가 들려온다. 사실 꽤나 깊게 파긴 했지만, 이 정도로 중무장한 기사들이라면 운이 나쁘지 않은 한 높은 곳에서 떨어진다고 죽지는 않을 것이다.
“반 정도는 정리됐나.”
하지만 벌써 연락을 받고 달려오고 있는 후속 부대가 눈에 들어왔다.
그런 후속 부대에서도 가장 앞에서 달리고 있는 남자가 하나.
밝은 금발 머리.
뽀얀 피부는 얼마나 귀한 대접을 받고 자랐는지를 말해 주고 있었으나 그가 손에 쥐고 있는 건 검이었다.
기사단처럼 철제 갑옷이 아닌 기동성을 중시한 고급진 가죽 갑옷을 걸치고, 망토가 아닌 붉은 천을 걸고 있는 모습은 제국의 기사가 아닌 무술을 수행하는 검사.
제3황자 제라니 데 아르니티.
어째서 기사들보다 차림새나 무장이 떨어지는지 잠시 의문이 들었지만 깊게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그의 바로 뒤에 있던 회색 로브 마법사의 마나가 모이며 황자가 타고 있는 말에 무언가 주문이 들어갔고, 그 순간.
백마와 황자는 푸른빛을 뿜어 대며 앞으로 치고 나왔다.
얼마나 빠른지 낙하하는 운석이 떠오를 정도의 속도. 황자의 백마가 갈라진 대지를 그대로 뛰어넘어 내 코앞까지 다가오는 데 걸린 시간은 고작 5초였다.
“대단하군.”
“그 목소리!”
내 순수한 감탄에 제라니 황자는 눈을 부릅뜨더니 자신의 대검을 검집에서 꺼내 들며 내게 겨누었다.
“제3황자 제라니 데 아르니티. 여러 죄명이 있으나 그중에서도 황실 모욕죄로 그대를 체포한다.”
푸르게 발현되는 오러.
제3황자는 무예의 재능을 찾고 그쪽 길로 들어섰다고 듣긴 했지만, 이 정도의 수준일 줄은 몰랐다.
‘팔독 기사단처럼 허접한 오러가 아니다. 정말 순수하고 짙은 오러.’
황자는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의 강자였고, 말 위에서 일어나 그대로 몸을 날려 내게로 다가왔다.
오러를 두른 적을 상대로 근접전을 허용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그 기세가 워낙 흉흉하여 거리를 벌릴 시간이 없었다.
“큭!”
흙으로 송곳을 만들어 황자의 돌진을 막아 내긴 했으나, 황자는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앞으로 달려들었다.
“마법사여, 훌륭한 실력이지만 내겐 통하지 않는다!”
오러를 두른 검이 마법을 벤다.
게다가 그가 두른 가죽 갑옷은 지금 보니 요마여우라는 이름을 가진 마수의 가죽으로 만든 갑옷.
요마여우는 특유의 요술로 사람을 홀리는 마수인데, 그 가죽은 마나를 밀어내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한마디로 마법사에겐 완벽한 천적.
괜히 혼자서 가죽 갑옷을 입고 있는 게 아니었다.
‘준비 자체가 달랐다.’
라디오 타워를 부술 때, 마법을 사용했다 보니 상대측에선 마법사에 대한 대응이 완벽하게 되어 있었다.
손발이 묶인 답답한 기분.
“포기해라. 여기서 투항한다면 당장은 고통 없이 연행하마.”
자만했다.
솔직히 오만하다고 손가락질해도 할 말이 없었다.
내가 봤던 200년 후의 제국은 마도의 길이 끊겨 가며 잘못된 역사와 신을 믿고 있는 어리석은 이들뿐이라고 생각했다.
혁명군이랍시고 투쟁을 하는 녀석들은 서로 갈라져서 편을 나누지 않나, 누군 배신을 하지 않나.
하지만 어리석은 건 나였다.
마도의 극의를 깨달았다고 자만하며 이 세상을 무시했던 게 사실이다.
그러니까.
몸을 하늘로 띄운다.
황자 정도의 오러라면 원거리에서도 공격이 가능하겠지만, 지금처럼 노도의 연격은 피할 수 있었다.
위로 올라오니 구덩이를 피해서 바이올렛 기사단이 다가오는 게 보였다.
마나의 물꼬를 푼다.
무지갯빛의 마나가 하늘을 지배하자 황자와 기사단이 신비로워하며 입을 벌리곤 멍하니 하늘을 바라본다.
“인정한다, 너무 무시했어.”
참아오던 마나를 풀어 재끼니, 이런 말은 좀 그렇지만 상쾌한 해방감에 웃음이 새어 나왔다.
“마나를 차단하는 장치? 오러? 요마여우의 가죽 갑옷? 마법을 튕기는 마갑? 그래, 좋다.”
어디 한 번 마음껏 뽐내 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