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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한 마도사는 반역자가 되어 있었다-38화 (38/200)

38화

꽤나 당당하게 말한 후라서 그런지 녀석의 머리에서 손을 떼는 것이 민망하여 잠시 고민했지만, 그래도 하는 수 없이 손을 뒤로 뺐다.

“정말로 기억을 읽을 수 있어?”

“그런 마법이 있는 줄도 몰랐네.”

레온과 소니아가 갸웃거리며 물어왔으나 괜히 헛기침을 하며 답했다.

“안 읽혀.”

“뭐?”

에레오나가 삐딱하게 서서는 되물어 뻘쭘하게 답했다.

“어떤 신인지는 모르겠지만 권능에 보호되고 있어. 정신계 마법까지 차단할 정도면 꽤나 알리고 싶지 않은 게 있나 보네.”

그러자 다들 의아한 시선으로 암살자 리더를 바라봤다.

“신을 믿는다고? 자유 혁명군에서 종교를 믿는 사람이 있을 리가 없는데.”

“왜?”

“마르코스가 신을 원체 싫어해서 종교는 전부 금지시켰어. 강압적이긴 하지만 애초에 자유 혁명군의 모토가 자신들의 길은 자신이 개척하는 거니까 신에게 의지하는 건 뭔가 이치에 맞지 않지.”

루이나의 설명에 고개를 끄덕이며 녀석의 품을 뒤진다. 혹시 로자리오나 복음서 같은 게 있을까 싶었지만 당연하게도 나오지 않았다.

“철저하군.”

톤파 영감의 말에 찌릿하고 뇌가 울린 느낌이 들었다. 확실히 무언가 이상했다.

“그래, 철저해. 그래서 이상해.”

“무슨 말이야?”

알아듣게 설명해 보라는 에레오나. 나는 암살자를 가리키며 이상한 점을 설명했다.

“정보의 통제는 철저해, 목숨을 바쳐서라도 우리를 암살하겠다는 신념 역시 단단하고 장비도 출중해. 그런데 실력은 부족해.”

내 말에 암살자 리더가 눈을 부릅뜨며 달려들려 했으나 바둥거리는 꼴밖에 되지 않았다.

“뭔가 앞이랑 뒤가 잘 맞지 않는 느낌이 들지 않아?”

“그게 그런가?”

루이나는 잘 모르겠다며 의아해했지만, 레온이나 다른 혁명군의 리더들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이 정도의 의지를 가지고 있는 녀석들은 말이야. 최소한의 능력은 가지고 있는 게 보통이야. 목숨을 걸어야 하니까.”

그런데 목숨을 걸고 뛰어들 정도로 이들은 훈련된 병사들이 아니다.

기습 자체는 훌륭했지만 그건 폭탄 덕분이었고, 이후 전투에선 부상당한 우리 측 인원들에게조차 고전을 면치 못했으니까.

“하고 싶은 말이 뭐야?”

“세뇌의 일종이 아닐까 싶은데, 다시 확인해 봐야지.”

다시 한번 팔을 걷어붙인다.

“미안하지만 강제로 권능을 부순다. 많이 괴로울 거야, 잘못하면 정신을 잃거나 기억이 몇 개 정도는 사라질 수도 있지.”

그렇게 녀석의 머리에 다시금 팔을 얹으려는 순간.

“끄, 그르르륵.”

입에서 피거품을 내뱉으며 흰자위가 떠오르는 괴한. 그는 바들바들 몸을 떨더니 그대로 쓰러지며 숨을 거두었다.

“라엘?”

“내가 한 거 아냐.”

레온의 물음에 답한 후, 녀석의 몸에 손을 대고 흐름을 읽는다. 녀석의 기억과 정신을 감싸고 있던 신의 권능이 놈의 뇌를 파괴한 이후, 유유히 사라지고 있었다.

‘사람이 아니라 정보를 보호하는 거였나.’

아마 처음 마나의 간섭을 확인하고 그대로 권능을 움직여 뇌를 터트린 것이겠지.

악랄한 방식이었지만 어떤 신인지 몇몇 후보의 가닥이 잡혔다.

“허무하게 포로를 잃었군.”

“결국 무엇 하나 건진 게 없네요.”

톤파 영감과 소니아가 뒤로 물러나며 아쉬운 기색을 비췄으나 미안하게도 이렇게 끝날 일이 아니었다.

“아마 다른 녀석들도 전부 이런 식이었겠죠. 어쨌든 중요한 건 저희가 암살당할 뻔했다는 거고, 그 범인을 찾았다는 겁니다.”

씁쓸하게 몸을 틀며 내가 말했으나 반응이 묘했다. 레온 역시 이상함을 느낀 듯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왜 그러십니까?”

톤파 영감이나 소니아뿐만이 아닌 에레오나, 루이나까지도 입을 다물고 있던 상황에서 결국 가장 연장자인 톤파 영감이 총대를 멨다.

“레온, 진심으로 마르코스가 우리를 배신했다고 생각하는 건가?”

“영감님, 정황상 저희의 위치를 알고 있던 건 자유 혁명군밖에 없습니다.”

“다른 쪽에서 정보가 새어 나갔을 가능성도 있잖아.”

이번엔 소니아가 말을 받아쳤고 레온은 입을 다물었으나 내 눈에는 그의 답답함이 보였다.

“사실 아직 무엇 하나 제대로 확인된 건 없어. 우리는 방금까지 암살을 당할 뻔했고, 겨우 도망쳐서 동굴에 들어온 것뿐이니까.”

에레오나까지 합세하자 레온은 정말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고, 나는 팔짱을 끼고 가만히 그들을 지켜봤다.

“레온 님, 우선은 여기서 탈출하고 나서 제대로 확인하는 게 필요한 것 같긴 해요. 아무리 그래도 동지에게 칼을 들이미는 데 성급할 필요 없어요.”

‘동지라서 서둘러서 칼을 들이밀어야 하는 거야.’

자칫 잘못하면 무방비하게 등을 찔리니까.

하지만 말을 입 밖으로 내뱉진 않았다. 루이나의 호소에 레온은 슬며시 눈동자를 굴려 내 쪽을 향했지만 나는 침묵을 일관했다.

그게 이들의 선택이라면 존중은 해 줄 뿐.

“그래, 알겠어. 그럼 우선 밖으로 나가고 펠른에서 이야기를 마저 합시다.”

마지못한 레온의 답에 다들 조금씩은 표정이 환해졌다. 그것만으로도 예전 혁명군에서 생활을 할 때, 마르코스라는 인물이 얼마나 친근감 있는 남자였는지 알 수 있었다.

“너는 괜찮냐?”

옆구리에 바짝 붙어 있는 에딘에게 묻자 녀석은 처음 봤을 때의 거만한 분위기로 답했다.

“저는 그때 없었거든요. 혁명군에 들어온 지 이제 3년째에요.”

문득, 이 작은 남자 아이가 어떻게 혁명군까지 흘러들어오게 된 걸까 궁금증이 일었으나, 괜히 상처를 들쑤시는 모양새가 될 수 있어 말을 아꼈다.

그런데 뜻밖에도 에딘이 먼저 입을 열었다.

“뭐, 퍼지는 퍼지였어요. 그런데 10살이 되던 해에 갑자기 손이 막 빛나기 시작한 거예요.”

“…….”

“들어 보니까 마법의 재능? 뭐 그런 게 있다고 하더라고요.”

확실히 첫 만남에서 내 보호막을 깨기 위해 마나를 침투시키려던 기술은 훌륭했다.

“바로 버려졌죠.”

성지에서는 조금 이야기가 다르겠지만, 음지에서 마나를 품은 아이가 태어나면 그 즉시 처형된다.

중요한 건 단순히 아이만 죽는 게 아니라 그 아이를 숨겼다는 명목으로 부모까지 전원 사형이기에 그들은 단호하게 아이를 버린 것.

“마나를 감출 수가 없었기에 늘 팔독 기사들에게 쫓겼죠. 그러던 와중에도 거리를 돌아다니면서 빵 훔치고, 돈 훔치고, 깡패들이랑 싸우고 하다 보니까 미오를 만나게 됐고 덕분에 혁명군에 들어왔죠.”

“지금은 마나를 잘 다룰 수 있니?”

에딘이 손을 쭉 뻗어 독특한 문양이 새겨진 검은 장갑을 보여 주었다. 자세히 보니 마법진이었다.

“혁명군에서 구해 준 마나의 흐름을 고요하게 만들어 주는 장갑이에요. 이게 없으면 마나가 워낙 거세서 이젠 몸이 아파요.”

씁쓸하게 말하는 에딘을 보며 나는 천천히 아이의 몸에 손을 대었다.

거센 마나라는 표현이 딱 어울리는 표현.

아이의 몸속에서 대량의 마나가 거칠게도 파도치고 있었다.

“이번에 무사히 펠른으로 돌아가면 내가 조금 도와주마.”

“예?”

“그 재능을 썩히기엔 아까워. 네가 내 가르침을 잘 따라온다면 너는 꽤 강한 마법사가 될 거다.”

내 말에 눈이 휘둥그레 뜨여진 에딘. 이 거만한 꼬마가 어째서 레펠리아 수용소를 무너뜨리는 나를 보자마자 단박에 저자세로 나왔는지 이제야 조금 이해가 갔다.

아이는 마법사에 대한 꿈을 가지고 있던 것이다.

거대한 마나를 아무렇지 않게 아우르는 나를 보고 동경해 마지않는 마법사가 나타난 기분이었겠지.

“저, 저는 이제 13살이에요. 마법사가 되기엔 너무 늦지 않았나요?”

“너보단 조금 이르지만 나도 10살에 시작했어. 사실 세상이 말하는 빠르니, 늦었니 그런 건 상관없어.”

거기에 씨익 웃으며 엄지로 척 하고 나를 가리키며 당당하게 말해 준다.

“게다가 현 대륙 최고의 마법사가 가르치는데 그 정도 페널티는 없는 거나 다름없다.”

“스승님이 되어 주시는 거군요!”

에딘의 말에 표정이 굳는다. 그렇게 되는 건가.

고개를 끄덕여 주려다 스승님의 미소가 괜스레 떠올랐고.

“미안, 스승님까지는 되어 주지 못해. 흠, 선생님 정도면 어떨까?”

“거기서 거기 아닌가요?”

“미묘하게 다르지. 스승은 끝없이 책임지는 존재이지만, 선생님은 기간이 정해져 있어.”

“스승이 그런 존재였어요?”

“어, 나한텐 그런 존재야.”

어쨌든 신난다며 호들갑을 떨어 대는 에딘은 자신이 무슨 마법을 써 보고 싶은지 줄줄이 늘어놓기 시작했다.

생일에 무슨 선물을 받고 싶은지 말하는 아이와 같은 순박함에 웃음이 지어졌지만, 레온의 외침으로 대화가 끊겼다.

“라엘, 밖으로 나갈 준비를 하자.”

나와 에딘이 이야기를 하는 동안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 현 상황에 대한 정리를 끝낸 듯했다.

“흑주신이 말해 준 출구로 나가자. 그나마 그쪽이 더 안전하겠지.”

그렇게 우리는 동굴 안으로 더 깊게 향했다.

향하는 와중에도 에딘은 내 옆에 콕 박혀서는 이것저것 떠들어 댔고 루이나는 언제 그렇게 친해졌냐며 흐뭇한 미소로 우리를 지켜봤다.

아까보다 깊게 들어가니 확실히 흑주신이 살던 흔적들이 곳곳에 보였고, 더 깊게 가니 햇살이 슬며시 들어오는 통로가 보였다.

“생각보다 넓은데?”

“방금 흑주신이 지나가면서 넓혀 놓은 거겠지.”

“그것보다 흑주신이라니. 한번 보고 싶은데 아쉽네요.”

이런저런 잡담을 하며 밖으로 나오자 따사로운 햇살이 우리를 반겨 주고 있었다.

동굴에서 여기까지 끌고 오느라 애먹었던 말들을 하나씩 부여잡고 올라탔고, 주변을 확인하기 위해 감각을 넓혔다.

“다 조용히.”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 소리.

새의 지저귐.

근처 시냇가의 쪼르르 물이 흐르는 소리.

산의 중턱다운 자연의 소리들 사이로 갑옷과 갑옷이 맞닿는 소리, 말이 거칠게 달리는 소리 등이 섞여서 들어왔다.

그리고 말소리.

“황자님, 산 끄트머리에 마수가 한 마리 나타났다고 합니다.”

“마수? 이런 때에? 흠, 그대가 기사 몇을 데리고 토벌하러 바로 출발하라. 아무리 범죄자들을 잡으러 왔어도 신민의 안전이 우선이다.”

“존명!”

“우리는 계속해서 수색을 진행한다!”

번쩍 눈이 뜨여진다.

황자면 아마 제3황자 제라니 데 아르니티.

벌써 여기까지 왔는가 싶었으나 마법사가 하나 끼어 있는 게 느껴졌다.

‘말에 마법을 걸었군.’

말들의 숨소리와 발걸음이 예사롭지 않은 속도를 내는 거로 보아선 말에 마법을 걸었고, 그 덕분에 순식간에 근처까지 도착한 듯했다.

“라엘?”

에레오나가 불안하게 부르자 나는 숨을 고르며 빠르게 상황을 전했다.

“제3황자가 기사단을 이끌고 우리를 추격해 왔어. 말에 마법이 걸려 있어서 상당한 속도로 쫓아올 거야.”

“뭐?”

“3황자가 벌써 움직인 건가.”

방금까지 햇살을 쬔다고 좋아하던 이들의 얼굴빛이 회색빛으로 물들지만, 그딴 건 무시하고 손을 들어 말에게 마법을 걸었다.

“뭘 죽을상을 하고 있어. 쟤네가 할 수 있는 걸 내가 못 할까 봐?”

“역시 라엘 님!”

말을 못 몰아서 루이나의 뒤에 앉아있는 에딘이 환호성을 지르며 웃었고, 다른 녀석들도 이제야 표정이 좀 풀린다.

“펠른이 서쪽이던가? 죽을 정도로 달려 보자고.”

그렇게 기사단과의 목숨을 건 추격전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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