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화
파직.
파지직.
빠르게 적을 정리하기 위해 마나를 전격으로 변환시키자 적을 향해 날아들겠다며 사납게 짖어대는 푸른빛의 전격.
“정보는 한 명만 있으면 충분하겠지.”
한마디로.
그 한 명 외에는 전부 필요 없었다.
푸른빛의 전격이 빠르게 치고 나간다. 우선은 바깥에서 톤파와 싸우고 있는 괴한들을 시작으로 2층의 레온과 상대하던 적들도 그대로 전격에 관통되어 쓰러진다.
운디네가 불을 진화하는 게 완료되자 지붕을 타고 다가온 암살자들은 근접전은 안 된다고 판단했는지 우리를 둘러싸고 총을 꺼내 들었다.
“다 나한테 모여!”
에딘을 들쳐멘 톤파와 주인장을 안전한 곳에 내려놓은 루이나가 달려왔고, 레온은 에레오나를 업은 채로 2층에서 내 쪽으로 뛰어내렸다.
그렇게 시작된 집중사격.
마을 사람들은 총성에 놀라 도망치기 시작했기에 더욱 쏘기 쉬워졌지만, 마나로 만들어 낸 보호막 탓에 총알은 무의미하게 땅에 떨어졌다.
“말 몰아와서 바로 도망칠 준비해.”
그나마 상태가 좋은 레온이 바로 마구간 쪽으로 달렸다.
대충 보이는 건 20명 남짓.
그중에서도 계속해서 손짓으로 명령을 내리고 있는 남자가 눈에 확 들어왔다.
파직 파지직.
왼손에 두른 전격이 그대로 위층의 괴한들에게로 날아든다. 마치 전염되는 것처럼 하나를 쓰러뜨리면 다음으로 넘어가는 전격은 결국 리더로 보이는 남자만을 남겨 두었다.
“젠장, 괴물 같은 놈이!”
남자는 몸을 틀며 황급히 도망치려 했지만, 발을 헛디뎠는지 미끄러지더니 그대로 지붕에서 떨어졌다.
“크악!”
“저거 바보 아냐?”
루이나가 헛웃음을 치다 고통에 다시 인상을 찌푸렸지만 나는 봤다. 녀석의 발밑에 고였던 작은 물 덩어리를.
“운디네.”
-어, 어차피 네가 할 거였잖아! 라푼젤만 애들 때리고! 나도 아주 흠씬 때려 주고 싶었는데!
-어머, 우아하지 못하게 그게 무슨 말이니.
-저거 가식 떠는 것 좀 봐! 라엘 들어 봐, 그 안테나 지키고 있던 녀석들한테 얘가 뭘 했냐면……!
-얘, 칠칠치 못하게 입에 뭐 묻었다.
라푼젤이 운디네에게 달려들어 양손으로 입을 틀어막았고, 운디네는 버둥거리며 라푼젤을 밀어내려 애썼다.
‘그래도 얘네가 있어서 다행이었어.’
솔직히 정령들과 계약하지 않았으면 여기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을 것이다.
“저놈 챙겨. 레온이 말 몰아오면 바로 도망가야 해.”
상황이 대충 일단락되자 오른손 화상의 고통이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한다. 마치 수많은 벌레가 살을 갉아 먹는 느낌.
“루이나, 따로 쉴 수 있는 장소가 있을까?”
“숲에 동굴 하나 봐 둔 건 있어, 일단 거기로 가자.”
“젠장, 소니아는 어디지?”
톤파 영감이 주변을 둘러보며 물어 미리 피난시켰다고 간단히 설명해 주자 딱 맞춰서 레온이 말을 몰고 도착했다.
그렇게 우리는 바로 말을 몰아서 타란 마을 바깥으로 나왔다. 말을 타면서도 손이 아파서 나도 모르게 숨을 참을 때가 있어 호흡이 거칠어졌다.
루이나가 봐 둔 동굴에 도착하니 감회가 새로웠지만, 예전 내가 지내던 곳도 아니고 결국 동굴은 동굴.
환자가 많은 현 상황에서 그들을 편하게 눕힐 수 있는 자리도 마땅치 않았다.
“젠장, 급하게 오느라 간단한 붕대도 없어.”
레온이 에레오나를 조심스럽게 동굴 바닥에 눕히며 걱정스레 말한다.
현재 가장 상태가 좋은 건 레온과 에딘이었지만, 기절한 상태인지라 환자와 다를 바 없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뭐라도 좀 챙겨오는 건데.”
“그러면, 늦었다. 시간이 조금만 더 끌렸다간 타란 성의 기사들에게 포위당해 그대로 당했을 거다.”
잔뜩 인상을 찌푸리는 루이나와 양손으로 자신과 소니아의 상처를 눌러 지혈하는 톤파 영감.
에딘과 마찬가지로 기절했으나 소니아 쪽은 부상도 심한 게 깨어날 기미가 보이질 않았다.
“에레오나 쪽은?”
“심각해. 파편이 어깨와 가슴, 허리까지 다 박혀 있어.”
레온이 애써 빛의 권능을 이용하여 에레오나의 상처를 치유하고는 있었지만, 애초에 전투적인 부분으로만 사용하던 힘이기에 썩 효과가 있어 보이진 않았다.
“후우, 테토. 동굴 막아 줘.”
-알았다.
그러자 드륵 드르륵 하는 소리와 함께 우리가 들어온 동굴 입구가 막혀 버린다. 밖에서 봤을 때는 동굴이 있는지도 모르겠지.
마나로 동굴을 밝힌 후, 나는 천천히 레온을 불렀다.
“레온, 내 오른손의 고통 좀 줄일 수 있지?”
“가능은 한데…….”
“부탁한다.”
내 말에 순간적으로 다른 사람들의 눈이 내게로 꽂힌다. 특히나 톤파 영감은 뭐 저런 억지스러운 녀석이 다 있나 싶었는지 한마디 내지른다.
“지금 레온이 에레오나에게서 손을 떼면 에레오나는 무조건 죽는다! 이 머저리 같은 녀석! 네놈이 왜 살아 있는지 아느냐? 폭탄이 터지기 전에 에레오나가 네놈 앞으로 달려들었던 덕분에 넌 파편에 맞지 않고 그 정도 상처만 입고 끝난 거다!”
동굴에 쩌렁쩌렁 울리는 톤파 영감의 말이 귀가 아닌 화상을 입은 오른손을 찌르고 들어오는 듯 괜히 상처 부위가 더 아려왔지만, 나는 무시하고 레온을 바라봤다.
“……얼마나?”
“하, 30초.”
내 말에 레온은 힘을 거두곤 천천히 내게로 와서 왼손에 손을 내밀었다.
톤파 영감은 분통을 내며 레온에게도 뭐라 소리쳤지만, 나는 조용히 눈을 감고 내 왼손을 레온과 마찬가지로 상처 부위에 올렸다.
그리고 녹색 빛의 마나가 손에 퍼져왔고.
“힐?”
천천히 오른손의 상처가 아물어가기 시작하며 고통도 사라진다. 완전히 상처가 사라지진 않았지만 그래도 움직일 수 있는 수준은 되었다.
물론, 급격한 피로감이 동반되었지만.
“힐을 사용할 수 있다고? 역사 속으로 사라진 마법을?”
그건 또 처음 듣는 정보인데.
어쨌든 이제 움직일 수 있는 왼손에도 똑같이 녹색 빛을 띄운 채로 에레오나의 상처 부위에 가져다 댔다.
“…….”
나 역시 알고 있다. 테토의 토벽이 생성되기 이전에 에레오나가 온몸을 날려서 나를 보호하려 한 것을.
아마 그녀는 나를 향한 믿음이 있었던 듯했다.
‘나만 살린다면 나머지는 전부 살릴 수 있다고 그 찰나의 순간에 판단한 거다.’
이렇게까지 믿어 줬다면 그 기대에 부응해 줘야 하지 않겠는가.
“설마 회복 마법을 사용하다니.”
루이나가 짧게 중얼거린다.
200년 전의 나라면 회복 마법은 사용하지 못했다. 왜냐면 당시의 나는 오롯이 공격과 화력에만 치중된 일변도의 마법사였고, 그렇기에 재앙이라고 불렸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생기를 다하고 시들어가는 꽃을 바라보듯 스승님의 최후를 내 눈에 직접 담았다.
이후, 동굴에서 살아가며 내가 가장 먼저 배운 마법이 바로 이 회복 마법이었다.
그렇게 한차례 쭉 돌면서 모두의 상처를 치료해 주자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동굴 안에서는 자해를 하고 회복을 하는 일종의 실습을 종종 했었지만, 이렇게 남에게 써 주는 건 또 처음인지라 꽤나 기운이 빠졌다.
“고마워.”
루이나가 슬며시 와서는 꾸벅하고 감사의 인사를 하고, 레온 역시 고개를 끄덕인다. 톤파 영감은 쭈뼛쭈뼛 다가오더니 깊게 고개를 숙인다.
“미안하군, 함부로 말해서.”
“됐습니다, 말할 기운도 없어서 설명을 못 했으니까 오해할 수 있죠.”
가볍게 손을 저으며 답해 주니 톤파는 다시금 고개를 숙이고 소니아의 곁으로 돌아갔고, 레온이 천천히 무리의 중심에 섰다.
“일단 바깥에는 타란 성의 기사들이 쫙 깔려 있을 겁니다. 상황 보고 판단해야겠지만, 며칠은 꼼짝없이 갇혀 있어야 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아니면 아예 안쪽으로 들어가는 방법은 어떨까요?”
루이나가 손을 들어 말하자 레온이 고개를 끄덕인다.
“다른 곳과 연결이 되어 있는지 우선적으로 확인은 해야겠지. 사실 가능하면 빠르게 나가야 해. 우린 식량도, 물도 아무것도 없으니까.”
톤파 영감이 동굴 주변을 살피더니 씁쓸하게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마수가 사는 동굴인 듯하다. 곳곳에 마수의 흔적이 있다.”
그 말에 다들 침울한 분위기가 된다.
이게 예전과는 인식이 많이 달라졌다고 내가 느꼈던 것 중 하나인데, 200년 전에는 마수란 당연한 존재였다.
어디에서도 나타날 수 있고 누구든 마주칠 수 있는 그런 존재.
하지만 지금은 좀 다르다.
대부분의 마수가 토벌당하거나 쫓겨나서 제국 내에서는 마수를 찾기가 힘든 환경.
예전이었다면 펠른에서 제도로 향하는 길에 마수를 적어도 한 번은 만났다면, 지금은 그렇게 돌아다녔는데 한 번을 만난 적이 없었다.
그 탓에 마도의 길이 발전이 더딘 건가 싶기도 했지만, 마수가 없는 건 좋은 일이니 탓할 부분은 아니었다.
“일단 상태가 괜찮은 제가 나서서 마수를 사냥하고 오긴 하겠습니다만, 그것보다 지금 중요한 건…….”
“누가 우리를 습격했느냐.”
내가 레온의 말을 이어서 받자 그가 고개를 끄덕인다.
“맞습니다, 그것도 저희가 모이는 걸 미리 알았다는 듯 꽤나 철저하게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게다가 상대는 누가 이 자리에 모이는지도 알고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 나와 소니아를 의식한 듯 마나를 차단하는 안테나를 먼저 꽂고 시작한 게 그 증거다.
“솔직히 범인은 뻔합니다.”
레온이 천천히 입을 뗐다.
“오늘 모임에서 유일하게 참석하지 않은 혁명군의 리더.”
침울한 분위기가 동굴 내부에 가라앉는다.
배신자의 등장은 언제나 뼈가 시릴 정도로 아프고 매스꺼웠다.
“자유 혁명군의 마르코스가 저희를 배신한 듯합니다.”
고요한 침묵이 잠시 지속되었으나 그걸 깬 건 톤파 영감이었다.
“나는 제국군이라고 생각한다. 라디오 타워 습격 건으로 잔뜩 독기가 올랐고 황자도 움직인다고 했으니까. 우리가 알아챈 것보다 이르게 움직였다고 해도 이상할 건 없다.”
그 말에 루이나도 고개를 끄덕였지만 내가 입을 열었다.
“일단 제국은 절대로 아냐.”
레온도 동의하는지 고개를 끄덕였지만, 루이나와 톤파 영감이 의아한 표정으로 바라봤기에 보충해서 설명을 이어 갔다.
“만약 제국이, 황자가 움직인 거라면 이 정도 수준으로 끝나지도 않았고 타란 성의 기사들이 마을 전체를 포위하고 있었을 거야. 기사들의 움직임이 늦었다는 건 그쪽에서 인지를 못하고 있었다는 증거야.”
“확실히 기사단이라고 하기에는 수준이 낮았어.”
한 손으로 창을 휘두르며 그들을 상대했던 루이나가 나직히 중얼거렸고, 톤파 영감도 이해한 듯 보였다.
“그렇다면 어째서 마르코스가…….”
크허엉!
레온이 이야기를 이어 가려던 순간, 안쪽에서 들려오는 포효 소리.
마수가 우리의 존재를 눈치챘는지 위협적인 포효 소리가 울려왔다.
꽤나 힘이 가득 실린 포효 소리로 보아 보통 녀석은 아니었던 듯하다.
“끄응.”
그 탓인지 가장 부상이 적었던 에딘이 눈을 비비며 천천히 눈을 떴고, 루이나가 옆으로 다가와 다행이라 안아 주었다.
“루이나는 에딘을 돌봐줘. 내가 가서 처리하고 올게.”
“나도 가겠네.”
“영감님은 무기를 잃으시지 않았습니까. 제가 가서 금방 처리하고 오겠습니다.”
레온이 검을 뽑아 들고 동굴 안쪽으로 걷는 걸 보며 나 역시 그 뒤를 따랐다.
“음? 같이 오려고?”
“그래, 어떤 마수인지 궁금해서.”
그렇게 어둠을 해치며 동굴 안쪽으로 점점 들어가도 마수는 나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꽤 규모가 있는 동굴이네.”
“이래서 그동안 토벌되지 않았나 보군.”
이제 입구 쪽에 있는 동료들의 불빛이 완전히 보이지 않게 되었을 때, 나는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자유 혁명군이라는 녀석들이 우리를 습격한 것 같다는 네 의견에는 나도 동의해.”
무장이 상당히 뛰어나며 마나를 차단하는 장치를 가지고 있다는 것만 제외하면 상황이 나름 들어맞았으니까.
내 말에도 레온은 “그렇지?” 하고 앞으로 나아갔으나 다음 한마디에 몸이 굳은 듯 우뚝 다리가 멈춰선다.
“그런데 너는 우리가 습격당할 걸 알고 있었지?”
“그게, 무슨 소리야?”
내 손에는 이미 마나로 만들어 낸 푸른 칼날이 쥐어진 채로 레온의 목에 겨누어져 있었다.
“무슨 이야기인지는 이제 들어 봐야지, 네 입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