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화
쓰러진 사람들을 보니까 뭔가 기분이 묘했다.
예전에는 이 정도의 힘이 없었기에 몰랐지만, 지금은 싸우려고만 하면 다들 해부되는 개구리처럼 납작 엎드려서 반항을 못 하니 꼬마들 괴롭히는 기분.
“괜히 살기 흩뿌리지 마시고 우선 대화부터 합시다, 알겠죠?”
내 말에 두 사람은 애써 고개를 끄덕였고 손을 들어 압박을 풀어 주었다.
“도대체 무슨…….”
“당신 누구야?”
“라엘 텔리즈먼이라고 아까 말했잖아.”
톤파 영감은 그나마 목을 돌리며 압박당한 몸을 풀어 줬지만, 소니아는 당황하며 내게 다시금 물어 왔다.
“이 정도 힘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대륙에 또 있다고? 대마도사와 필적하는 수준이잖아.”
“…….”
그렇게밖에 안 보였다면 거기까지인 거겠지. 나만 뚫어져라 바라보는 두 사람을 무시하며 레온에게 묻는다.
“그런데 자유 혁명군에서는 안 와? 이름이 마르코스였지?”
분명 찬탈자 로마르코의 동생이 이끌고 있는 혁명군으로 알고 있다.
“두 분은 우리한테 먼저 방문하겠다고 연락을 하셨던 거긴 한데, 마침 잘됐다 싶어서 자유 혁명군에 연락을 하긴 했어.”
“마르코스 성격상 이런 자리는 무조건 올 거야.”
레온의 말에 뒤따라 답해 주는 에레오나. 레온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그 말에 동의했다.
“그럼 조금만 기다리자. 라디오 타워에서의 의도와 이유까지, 원하는 건 다 설명해 줄 테니까.”
톤파 영감과 소니아는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였고 10분이 지났다.
레온은 톤파 영감과 소니아에게 사과를 했으나 두 사람은 그런 걸 신경 쓸 겨를이 아니었고, 우리는 다시 카드놀이를 시작했다.
“원 카드!”
“와, 루이나 누나 진짜 잘하네.”
“라엘은 너무 못하는 거 아냐?”
“…….”
실력 차이가 명확해서 상대가 되지 않았다. 루이나랑 심심하다며 참전한 에레오나는 그 신체 능력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었는데 에딘은 꼬마라서 봐준다.
그러다 보니 나한테만 집중적으로 견제와 공격이 들어오는 게 감정이 실려 있는 게 분명했다.
“야, 루이나. 아까 처음 만났을 때 얘기했다고 이러지.”
“아닌데. 그렇게 쪼잔하지 않은데?”
“그러면서 공격하지 마라. 입이랑 행동이랑 아주 달라.”
괜히 투덜거리며 한숨을 내쉬던 그때.
“음?”
가장 먼저 이변을 알아차린 건 나와 소니아였다.
정말 갑자기 일대의 마나가 사라졌으니까.
“이게 무슨?”
“적습이다!”
이런 상황이 처음인지 소니아는 당황하며 손을 들어 마나를 모으려고 애썼지만, 나는 곧장 일어나며 소리를 질렀고 그에 반응한 에레오나와 루이나가 무기를 챙겨 든 그때.
끼익하는 문 열리는 소리와 함께 내부로 데굴데굴 굴러오는 수많은 원형의 무언가.
“폭탄이다!”
레온이 외쳤고 나 역시 그에 맞춰 바로 소리를 질렀다.
“테토!”
내 의도를 정확히 판단한 테토는 각 사람들 앞에 흙으로 된 벽을 세웠으나, 조금 늦어 버렸다.
제대로 벽이 세워지기도 전에 수많은 폭발음이 들려오며 여관방이 통째로 날아가 버렸다.
삐이이 하는 이명이 들려오고 앞이 어둡다.
분명 몸이 붕 뜨는 기분이 들었는데 무슨 상황인지 명확하지가 않았다.
눈을 가리는 뜨거운 피를 닦아 내고 나서야 내가 쓰러져 있다는 걸 인지할 수 있었다.
게다가 마을 도로 한복판.
마차와 사람들이 사용하는 포장되지 않은 도로에 누워 있다는 걸 애써 눈치챈다. 시야에 여관이 들어오는 걸 보면 꽤나 날아온 듯했다.
“커, 헉.”
숨을 쉬어 보려 해도 가슴에 바위라도 낀 것처럼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후들거리는 팔로 애써 일어나서 주변을 둘러보니, 갑자기 날아온 나와 터져나간 2층 여관방을 보며 사람들이 수군거린다.
내 옆에는 연푸른 머리가 땅에 물감처럼 퍼진 소니아가 마찬가지로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었다.
색색 숨을 쉬고 있기는 했지만 의식은 없는 상황.
“하악! 하악! 테, 토.”
-그래, 말하라.
“저, 여자. 안전한 곳.”
단어를 띄엄띄엄 말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도, 테토는 충분히 인지했다고 고개를 끄덕이곤 소니아를 흙으로 만든 받침으로 들어 올리곤 어딘가로 날아갔다.
그나마 테토가 방벽을 쳐 줬기에 상태가 이 정도일 수 있었다.
정확하진 않지만 얼핏 봤을 때 방에 들어온 폭탄 수는 5개
그 좁은 방에서 그걸 직격으로 맞았다면 살아남을 수 있는 사람이 없는 건 물론이고 흔적도 찾기 힘들었을 거다.
“라, 푼젤!”
-…….
우아하게 웃으며 등장한 라푼젤은 내 상태를 보더니 미소를 싹 지우곤 싸늘한 무표정으로 변한다.
-감히, 어떤, 찢어 죽일 자식이!
라푼젤이 저런 말을 쓰는 건 처음 볼 정도로 그녀가 극도로 흥분한 상태.
“숨, 도와줘.”
-알았어. 걱정하지 마.
라푼젤이 내 머리에 손을 얹었고 녹색 바람이 살랑살랑 따스하게 불어오며 점차 호흡이 안정화되었다.
막상 가장 힘들던 게 괜찮아지니 다른 부분들이 점차 눈에 들어왔다.
오른손은 화상으로 피부 가죽이 타들어 갔고, 옆구리에는 여관방 나무 파편이 박혀 들어가 있었다.
그나마 나무 파편은 라푼젤이 조심스레 떼어 준 덕분에 거슬리는 건 없었다.
“고마워, 정말.”
-그래서 누구니?
당장이라도 찢어발기겠다는 의사를 표명하는 라푼젤에게 나는 고개를 저으며 역으로 부탁했다.
“우선은 저번에 퓰리랑 싸울 때 봤던 안테나 기억하지? 아마 근처에 그거랑 비슷한 게 땅에 박혀 있을 거야. 그것부터 부숴 줘.”
-근처에 지키는 녀석들은 다 죽일 거야.
“부탁할게.”
그리 말하고 라푼젤은 사라졌다.
나는 서둘러 여관 쪽으로 향했는데, 갑작스러운 폭발에 인파가 우수수 몰려들었지만 내 몰골 탓인지 손쉽게 길이 터졌다.
여관 바로 앞에는 루이나가 자신의 창을 휘두르며 두건을 뒤집어쓴 괴한들과 전투 중이었다.
루이나의 상태도 말이 아니었는데, 우선은 늘 묶고 다니던 갈색 머리가 풀어진 채였고 피로 뒤덮인 왼손은 못 쓰는지 오른손만으로 창을 휘두르고 있었다.
암살자는 셋.
수적으로 불리한 상황에 부상까지 더해졌으며, 원래라면 양손으로 다루는 무기를 한 손으로 다루고 있음에도 루이나는 비등하게 전투 중이었다.
결국엔 한 남자를 쓰러뜨렸으나 협공에 자세가 무너져 뒤로 밀리기 시작했다.
나는 황급히 루이나가 쓰러뜨린 남자의 품을 뒤졌다. 오른손을 화상으로 못 쓰는 탓에 꽤나 고생했지만 그래도 괜찮은 무기를 찾아낼 수 있었다.
‘설마 이런 걸 쓰는 날이 올 줄이야.’
한 손에 쏙 들어오는 마도 권총, 리볼버 타입.
미리 준비된 마력탄이 있다면 사용자에게 마나가 없더라도 사용 가능한 물건.
안에 마력탄이 들어 있는지 없는지도 확인하지 못한 채 한쪽 눈을 감고 조준하여 방아쇠를 당겼고.
탕! 하는 호쾌한 격발음을 뽐내며 마력탄은 루이나와 대치 중인 남자의 허벅지에 박혀 들어갔다.
머리를 노렸던 건데 썩 훌륭한 사수는 아니었군.
하지만 그 이후에도 바로 연사를 하여 몇 발 더 맞추었고, 밀리던 루이나 쪽으로 승기가 잡혀 남은 두 사람도 쓰러뜨릴 수 있었다.
무슨 거리 불량배들 싸움 구경하듯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이 거슬렸지만 어쨌든 그 사이에서 루이나는 나를 발견하곤 달려왔다.
“라엘! 괜찮아?”
“어, 나름.”
“혹시 지금 마법 쓸 수 있어?”
루이나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당장은 안 돼. 하지만 금방 사용 가능할 거야.”
꽤나 잘도 숨겨놨는지 라푼젤이 찾는 데 시간이 조금 걸린다.
“그러면 나 혼자 내부로 들어갈게. 아직 나오지 못한 사람들이 있어.”
“소니아는 일단 안전한 곳으로 옮겼어. 나는 밖에서 불을 진압할게.”
“부탁할게.”
루이나가 다시 안으로 들어가고 이번엔 운디네를 불렀다.
-운디네에 드응자…….
말끝이 흐려진 운디네는 울컥하고 눈에 눈물이 고인 채로 이곳저곳 살피기 시작했다.
-무슨 일이야, 라엘! 이거 어떡해? 내가 씻어 줄까? 일단 어디 누워서 좀 쉬어야 해!
원래라면 물의 정령인 그녀에게 치유를 부탁하는 게 당연하다면 당연했지만, 안타깝게도 그녀는 재앙의 정령.
누군가를 치료할 수 있는 힘은 없었다.
“운디네, 앞의 여관에 번지는 불부터 꺼줘 . 그게 최우선이야.”
-아, 알았어! 너는 가만히 있어!
신신당부를 하고는 운디네가 여관 불을 진화하기 시작했고, 그러자 연기와 불길에 가려졌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우선은 레온.
빵을 한 입 베어 문 것처럼 우리가 있던 방만 뻥 뚫려있었는데, 레온은 아직도 그 방에서 적들과 대치 중이었다.
경미한 부상만 입은 채로 빛의 권능을 검과 몸에 두르고 빠르게 적을 상대하고 있었고, 그 옆에는 에레오나가 부상을 입었는지 기절한 상태로 쓰러져 있었다.
‘빛의 권능 덕분에 크게 다치지 않은 건가.’
만능이라고 불러도 무방한 빛의 신의 힘이었기에 레온은 생각보다 무사할 수 있었던 듯하다.
‘남은 건 톤파와 에딘이다.’
톤파는 모르겠지만 에딘은 몸집이 작아서 테토의 토벽이 만들어지는 속도가 빨랐고, 다른 사람들처럼 크게 다치진 않았을 거다.
그리 생각하던 순간, 1층 창문에서 톤파 영감이 에딘을 들쳐 맨 채로 밖으로 몸을 날렸다.
에딘은 몸에 상처는 크게 없어 보였지만 기절한 상태였고, 톤파 영감은 꽤나 심각한 부상으로 보였음에도 인상만 쓸 뿐 꽤나 잘 움직이고 있었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창문을 넘어오는 암살자들.
톤파는 무기인 할버드는 챙기지 못했는지 도망치는 데만 급급했고, 나는 끼릭 하는 소리와 함께 이빨로 마도 리볼버에 장전을 해냈다.
다시금 울리는 격발음.
아쉽게도 반이 빗나갔지만, 나머지 반은 맞췄기에 괴한들의 움직임을 멈출 수 있었다. 에딘을 잠시 바닥에 놓은 톤파 영감의 주먹이 바람을 가르며 암살자들에게 꽂혀 들어갔다.
거구의 주먹은 확실한 파괴력이 있었지만, 부상 탓인지 정타로 먹혀들진 않았기에 암살자들은 다시 톤파를 압박하기 시작했다.
거기에 멈추지 않고 저 멀리서 지붕을 넘어오는 수많은 적들.
암살자들의 숫자는 점점 늘어 갔고 무장도 꽤나 위협적인 마도총은 물론이고 심지어는 마도저격총까지 구비했는지, 보이지도 않는 곳에서 날아든 마력탄이 톤파의 허벅지를 꿰뚫었다.
루이나는 연기를 뚫고 여관 주인을 들쳐 매고 밖으로 나온다. 거칠게 숨을 내쉬는 모습이 한계까지 닿았다는 게 보였다.
그렇게 절체절명의 위기의 순간.
바람이 불어 왔고.
“후우.”
왼손에 푸른빛의 마나가 모여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