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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한 마도사는 반역자가 되어 있었다-34화 (34/200)

34화

우선 먼저 방문한 건 여관이자 식당이었다. 타란 마을에서도 꽤나 멋들어지게 큰 건물이었는데, 맛집이라고 루이나가 덧붙여 주었다.

“그런데 이렇게 있어도 괜찮은 거야?”

“뭐가?”

“제도에서는 현상수배 중이라서 얼굴도 못 들고 다녔잖아. 좀 떨어져 있긴 해도 여기도 제국인데?”

후드를 쓰고 있기는 했지만 그래도 에레오나의 은발이 삐져나온 게 대놓고 보인다. 솔직히 조금 풀어진 게 아닌가 싶었다.

“여기는 괜찮아.”

“왜, 여기도 또 혁명군이 운영하는 곳이야?”

만약 그렇다고 하면 이젠 혁명군인지 음식점 체인점인지 모르겠다고 핀잔을 주려 했지만, 레온이 고개를 저었다.

“타란 마을은 타란 성 탓에 관광객이 많이 와서 외지인에게 크게 관심이 없거든. 후드를 쓰고 다니는 게 조금 이상하게 보이긴 하겠지만, 큰 문제는 아닐 거야.”

“흠.”

“나무를 숨기려 숲에 온 것과 비슷한 이치라고 생각하면 돼.”

에레오나의 뒷말에 나는 대강 이해했다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조금 안일한 게 아닐까 생각했다.

그렇게 기다리자니 나온 음식은 내 기억 속 한편에 자리를 잡고 있는 향과 맛을 가지고 있었다.

“이 스튜는?”

“맛있지? 200년 전통의 맛이라고 자부하는 가게거든.”

“벌써 5대째인가? 하여튼 맛있어.”

다시 한번 떠먹자 이상하게도 울컥하고 기분이 묘했다.

‘라엘! 오늘은 이 집이야, 최근 오픈했다는데 줄을 서야 먹을 수 있는 스튜라고 하더라!’

‘줄을 서서 먹을 거예요? 그냥 다른 곳 갑시다.’

‘하하! 주인장한테 어제 말해 둬서 우리 자리를 예약해 뒀지! 보아라, 이 천재 스승님은 무엇이든 만능이란다!’

금발을 흩날리며 내 손을 잡고 이끌던 뒷모습이 아른거린다.

수없이 리모델링을 하며 가게 외형은 그때와는 아예 달라졌지만, 그 맛만큼은 변하지 않고 이어져 오고 있었다.

“맛있…… 라엘 님 우세요?”

내 옆에서 쫑알거리며 숟가락을 휘두르던 에딘이 조심스레 물었고, 나머지 일행들도 심각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왜 그래? 무슨 문제야?”

“설마 독이라도 들은 건가?”

“상비약 가지고 있는 거 가져올까?”

괜히 감정적이 되었구나 하고 속으로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아니야. 그냥 예전에 스승님이랑 같이 먹었던 가게라서 옛 생각이 나서 그래.”

대답이 오묘했는지 묘한 표정을 지으며 망설이는 이들 사이로 꼬마 녀석이 순진하게 물어 왔다.

“라엘 님 스승님도 계시군요!”

에딘이 말하자 다른 일행이 아이를 째려보며 입조심 하라고, 눈치 챙기라고 신호를 줬고 괜히 걱정을 끼치게 된 게 미안해서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 답했다.

“그럼, 내 스승님은 최고였지. 그 누구보다 강하셨어.”

“……라엘보다?”

무술이나 강함에 관심이 많은 루이나였기에 조심스레 물어 왔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분의 깨달음에 닿으려면 아직 멀었지.”

당시의 스승님과 비교해서 단순히 강함을 비교하자면 내 쪽이 우세일 것이다. 동굴에서의 5년은 나를 비약적으로 성장시켰으니까.

하지만 그건 전부 그분이 만들어 놓은 길을 걸은 것뿐이었다.

남겨 주신 책과 연구일지 덕분에 훨씬 빠르게 강해질 수 있었던 것뿐이니까.

나는 여전히 나를 지켜 주시려 펼치셨던 살아 숨 쉬는 마법에 대해서는 깨달음이 도달하지 못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아직 스승님께 닿지 못했다.

“우와.”

“라엘이 아직 멀었다고?”

“…….”

내 말이 조금 충격이었는지 에딘은 감탄을, 에레오나는 황당함을 표했지만, 레온은 입을 다물곤 무언가를 고민하더니 조심스레 물어 왔다.

“혹시 그 스승님은 어디 계신지 알 수 있을까?”

“뭐, 사후 세계가 있다면 거기서 신 노릇이라도 하고 계시지 않을까?”

나름 농담으로 해 본 말이었는데, 레온은 컵을 쥔 손을 놓더니 미안하다 사과했다.

“미안, 너무 경솔했다.”

“상관없어. 스승님의 마지막은 함께했고, 그분이 내게 남겨 주신 것들도 아직 나와 함께하고 있으니까.”

언제까지고 스승님의 로브 자락을 붙잡고 울던 내가 아니다.

그렇게 식사를 다 마치고 식당 위층의 숙소로 향한다. 놀랍게도 여기서 가장 거대한 방을 예약해 뒀고 그곳이 바로 접선 장소.

“이렇게 단순해도 괜찮은 거야 정말?”

내가 다시금 허탈하게 묻자 레온은 고개를 끄덕인다.

“괜찮아, 아니. 오히려 딱 좋지.”

이것도 그 숲에 나무를 숨기는 뭐 그런 전략인 건가.

기다리면서 심심해서 에딘, 루이나와 카드 게임을 하고 있자니 문밖에서 들려온 노크 소리.

문을 열고 맞이하자 들어온 건 옅은 하늘색 머리카락을 가지고 마찬가지로 푸른 로브를 두르고 있는 여인과 호위무사.

“소니아 님, 오랜만입니다.”

“루이나, 오랜만이야.”

나이는 이제 서른 초반이지만 생각보다 외모나 피부가 젊었는데, 마법사들은 아무래도 몸에 마나를 순환시키는 일이 많다 보니 그 덕분이기도 했다.

그녀의 푸른 눈동자가 방을 한 번 스윽 훑더니 레온과 에레오나를 보곤 슬며시 웃었다.

“두 사람도 오랜만이야. 설마 둘이 같이 행동하는 날이 올 줄은 몰랐어.”

“이제 저희도 힘을 합칠 순간이 왔다는 이야기죠.”

레온이 정중하게 의자를 빼 주었고, 에레오나는 간단한 차를 내왔다.

“소니아 님은 여전히 아름다우시네요.”

“어머, 에레오나랑 비교하자면 부끄러운 수준이지.”

하하 호호 하고 얘기를 주고받지만 아무래도 공백의 시간이 있었던 탓인지 어색한 분위기는 숨길 수 없었다.

그렇게 간단한 안부를 묻던 중, 소니아가 슬며시 나를 향해 시선을 두었다.

“그래서 저 남자가 그 사람?”

“예, 맞습니다. 이번 라디오 타워에서 방송을 했었죠, 라엘이라고 합니다.”

“라엘?”

대신 나를 소개해 준 레온 덕분에 편하긴 했지만, 내 이름을 듣고는 깜짝 놀라더니 뚫어져라 보곤 옅은 미소를 지었다.

“재밌는 이름이네, 국가를 무너뜨리려 했던 미치광이 살인자라.”

갑작스레 소니아의 입가의 미소가 싹 사라지며 흉흉한 기세로 나를 노려본다.

“아주 딱 어울려.”

에레오나가 건넸던 찻잔이 떨려온다.

방 전체에 열기가 맴돌기 시작한다. 한겨울임에도 다들 이마에 땀이 맺힌다.

“소니아 님!”

레온이 당황하며 외치지만, 소니아는 힘을 거두지 않고 여전히 나를 노려본다.

“가만히 있어, 레온. 너 역시 책임이 없다고는 할 수 없어. 지금 그 방송으로 혁명군이 어떤 상황에 놓였는지 알고는 있는 거야?”

맹렬한 적의.

에레오나가 검을 뽑으려 했으나, 소니아가 마나를 내뿜음과 동시에 그녀의 호위들이 먼저 검을 뽑았기에 입술을 깨무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들어오기 전부터 계획했군.’

자신이 마나를 끌어올리면 바로 검을 뽑으라고 지시를 해 두었는지, 호위들은 에레오나보다 빠르게 검을 뽑을 수 있었다.

“무려 황자가 움직이기 시작했어. 그것도 기사단을 대동했으며, 심지어는 대마도사의 제자도 하나 같이 껴있다고 하더라.”

정보가 꽤나 빠르다.

우리도 여기 와서 들은 정보를 그녀는 벌써 알고 있었다.

“너무 성급했어. 그 방송으로 얼마나 많은 혁명군이 피를 흘리게 될지, 얼마나 많은 비극이 쌓이게 될지 알아? 자칫 잘못하면 혁명군 전체가 괴멸될 수도 있어.”

“그래, 나도 그 의견에 동의하네.”

끼이익 하고 문이 열리며 들어오는 한 남자.

마치 거북이처럼 머리가 전부 까졌으나 온몸에 다부진 근육이 인상적인 거인.

“톤파 영감.”

“오랜만이구나, 에레오나. 그새 더 아름다워졌어. 이젠 소녀가 아닌 처녀가 되었군.”

“안녕하셨습니까, 영감님.”

“그래, 레온. 너와는 꼭 술잔을 나누고 싶었지만 분위기가 썩 좋지 않군.”

“동의한다고 했으면 당신도 거들어요.”

톤파 영감은 고개를 끄덕이며 허리춤에 매달아 둔 거대한 할버드를 꺼내 들었다.

“그런 무기를 들고 들어올 수 있었다고?”

“주인장이 썩 신경 쓰진 않더군.”

참 웃기는 곳이네.

“자아, 통성명을 해 볼까? 나는 톤파. 철거북 혁명군의 리더이다. 그대는?”

“라엘, 라엘 텔리즈먼.”

톤파는 물론이고 소니아 역시 다시 한번 놀란다.

“라엘 텔리즈먼?”

“설마 성까지 텔리즈먼이라니. 진짜 불길한 남자네.”

톤파는 오히려 호탕하게 웃으며 할버드를 내 목에 겨누었다.

“그래, 우리 혁명군을 망치러 들어온 게 국가 전범이랑 이름이 똑같다라. 어디서 이런 배우를 준비해 왔는지는 모르겠지만 레온이 꽤나 고생했구나.”

안절부절못하던 레온 무언가 말하려고 입을 열었다, 닫았다 하다가 결국 한숨을 내쉬며 포기를 선언했다.

“이렇게 흥분하시면 아무리 말해도 대화가 안 통해. 어쩔 수 없다, 다소 다치더라도 용서를.”

레온의 말에 에레오나는 검을 쥐려던 양손을 들며 항복을 표시했고 루이나와 에딘 역시 뒤로 물러났다.

“그닥 중요한 남자는 아니었나 보네. 하지만 일의 무게를 착각했구나. 단순히 다치는 수준이 아닐 거란다.”

“흠, 포기가 빠른데?”

소니아와 톤파가 의아해하며 레온을 바라봤으나 그는 고개를 저었다.

“두 분께 드린 말씀입니다.”

“뭐?”

“무슨 소리니?”

“다소 다치시더라도, 용서를.”

방이 점점 차가워진다.

소니아의 열기가 지배하던 여관방의 온도가 점점 내려가기 시작하며 입에선 입김이 새어 나온다.

소니아가 당황하는 사이, 톤파는 행동으로 나섰다.

겨누고 있던 할버드를 그대로 휘둘러 내 목을 두 동강 내려 했던 것.

하지만.

팅! 하는 경쾌한 소리와 함께 할버드가 가볍게 튕겨 나왔고, 믿지 못하겠다는 듯 나를 바라보는 두 사람.

“한동안 성질을 조금 죽이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긴 해.”

덤벼오는 싸움 피하지 않는다.

도발에 굳이 분을 삭이려 이를 물고 몸을 돌리지 않는다.

200년 전의 라엘 텔리즈먼이라는 남자는 굉장히 호전적인 성향을 지니고 있었고.

지금도 그 성질은 죽지 않고 내 안에 살아 숨 쉬고 있었다.

“먼저 이빨을 들이민 건 너희다.”

만나고 5분도 채 되지 않았는데 이런 사이가 된 건 유감이다.

털썩 하고 소니아의 호위를 시작으로 소니아와 톤파 역시 애써 버티다가 바닥에 주저앉는다.

“라엘……. 추워.”

“추, 춥습니다, 라엘 님.”

루이나와 에딘이 으슬으슬 떠는 모습에 냉기는 없애고 단순히 마나로만 찍어 누른다.

소니아에게 자신의 특기 마법이 완전히 봉쇄당하는 기분을 느끼게 해 주고 싶었기에 냉기를 쓴 건데, 조금 과했던 듯하다.

“너, 너는 도대체!”

톤파가 애써 고개를 틀어 눈을 흘기며 나를 바라보다가 레온과 에레오나에게 도움을 구하는 눈빛을 보낸다.

“그는 혁명군 소속이 아니라 제가 통제할 수 없습니다.”

“솔직히 소니아 님이랑 톤파 영감이 좀 무례하긴 했잖아.”

각기 다른 이유였지만 레온과 에레오나의 거절에 숨을 거칠게 몰아쉬며 나를 바라보는 두 사람.

그 답답하다는 표정에 나는 투덜거리며 소니아를 위해 에레오나가 타 온 차를 홀짝인다.

“너희 혁명군들은 혹시 다 이렇니? 사실 레온네를 처음 만났을 때도 이거랑 비슷한 상황이었거든.”

“…….”

“아, 쪽팔리게.”

“라, 라엘 님!”

꽤나 흑역사였는지 레온은 부자연스럽게 눈을 돌렸고 루이나는 손으로 얼굴을 감쌌으며 에딘은 애원하는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에레오나만이 푸훗 하고 비웃으며 레온을 쳐다볼 뿐.

어쨌든 하고 뒤에 덧붙이며 나는 의자에 앉았다.

“이제 좀 대화할 준비가 된 것 같아, 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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