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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한 마도사는 반역자가 되어 있었다-32화 (32/200)

32화

“후우!”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으며 등장한 에레오나. 입고 있던 검은색 코트와 들고 있는 검에는 피가 찐득하게 묻어 있었다.

방금까지 길목을 틀어막고 수많은 적을 베어낸 여인으로는 볼 수 없는 상쾌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오랜만에 이렇게 움직이니까 상쾌하네.”

“사람을 베고 저 표정이라고? 저거 정신병의 일종 아니야?”

“거진 두 달을 실전에서 검을 휘두르지 못했잖아, 대장 좀 이해해 줘.”

소름 끼치는 에레오나의 발언을 톰이 애써 감싸며 그녀에게 굽고 있던 꼬치를 건넸지만, 에레오나는 먼저 씻어야겠다며 가 버렸다.

“아, 그것보다 오랜만에 제도는 진짜 좋았는데.”

“시원한 맥주랑 안주 제대로 해서 먹어 본 게 얼마 만이냐.”

“이걸로 참아 다들.”

투덜거리는 자벨린 부대원들에게 밍밍한 온도의 맥주를 한 잔씩 건네는 하트.

모든 작전이 끝나고, 렉터에게 임무를 받았던 개울가에서 다들 간단히 몸을 풀며 작전 성공을 축하하고 있었다.

“하트! 개울에 맥주 담가 놓은 거 맞아?”

“맥주도 겨우 구해 왔는데 개울에 담글 시간이 어디 있니? 해바라기 주인장한테 감사해.”

“안주도 간 하나 되지 않은 꼬치구이라니!”

“고생한 건 알겠지만 그만 투덜거려.”

하트가 핀잔을 주자 톰과 다른 부대원들이 입을 다물었다. 자벨린 부대원들 특유의 가벼운 분위기가 마음을 편하게 해 주었다.

“여기 좀 드세요. 몰래 가져온 후추랑 소금으로 간 해 놓은 거예요.”

“어이쿠, 고마워라.”

다른 부대원들 모르게 슬며시 내게 꼬치를 건네준 하트에게 감사하며 한입 그대로 뜯어 먹는다.

확실히 그냥 꼬치구이를 먹다가 짭조름하게 간이 된 것들이 들어오니 술술 넘어갔다.

“라디오 잘 들었어요.”

“움? 데뷔 괜찮죠?”

“황제한테 경고하면서 데뷔라니, 파격적이긴 하네요.”

입을 가리며 웃는 하트.

고작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전장에 있었던 사람들이 맞는 건가 싶을 정도로 풀어진 모습.

그중 가장 눈이 가는 건 다름 아닌 돌격대장이던 톰.

몸에 붕대를 칭칭 두른 채 맥주를 몇 잔이나 마셨는지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서는 개울 쪽을 힐끔힐끔 티 나게 바라보고 있었다.

“뭐야, 왜 그래?”

슬며시 옆으로 다가가 묻자 톰은 화들짝 놀라며 나를 보더니 주변을 둘러본다.

“너 뭐 하냐.”

“아니, 그게 말야.”

평소에 그렇게 직설적이고 주저함이 없는 녀석이 머뭇거리는 모습이 새삼 어색해서 의아해하며 묻자 톰이 조심스레 속삭였다.

“저기서 대장이 씻고 있잖아.”

톰이 가리킨 곳은 개울 구석이었지만 거리가 있어서 에레오나가 보이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짜게 식은 눈으로 내가 녀석을 바라보자 콧구멍을 벌렁거리며 답한다.

“그, 한 번쯤은 보고……!”

그대로 둥실 몸이 떠서 에레오나 반대편 방향의 개울로 날아가는 톰.

한숨을 내쉬며 팔짱을 끼고, 허우적거리며 개울 밖으로 벗어나려는 톰을 보며 외쳤다.

“술이나 깨라, 미친놈아.”

꼭 저렇게 술만 마시면 정신을 못 차리고 까부는 것들이 있다니까.

“톰이 뭔 짓 했어요?”

뒤따라온 하트가 슬며시 물어 와 나는 간단히 답해 줬다. 처음엔 숨겨 줘야 하나 했지만, 저런 놈들은 정신을 차릴 필요가 있었다.

그러자 하트는 익숙하게도 역하다는 표정으로 톰에게 시선을 둔 채로 말했다.

“저 녀석이 대장을 짝사랑하고 있거든요. 몇 년 됐을걸요?”

“그래요?”

“네! 으음, 꽤 티 나는 편인데 라엘 씨는 이런 쪽으론 눈치가 별로인가 보네요.”

“뭐, 크게 관심이 없다 보니.”

일평생을 마법만 수련했다 보니 크게 관심을 가져 본 적은 없었다. 아직 그럴 때가 아니기도 하고.

‘진짜 다 끝나면 나도 언젠가 그런 사람이 생기려나?’

흐음 하고 눈을 감으며 상상해 보지만 왜인지 그런 자신이 제대로 떠오르지 않는다.

“음? 톰은 수영 중인가?”

개울에서 아예 샤워를 하고 온 에레오나가 자신의 젖은 머리를 말리며 다가왔다.

“야, 사람들이 이렇게 모여 있는데 이런 곳에서 샤워를 하냐.”

“무슨 상관이야. 자벨린 부대원들은 내 가족이야. 그리고 누가 훔쳐보거나 하면 기척으로 알아챌 수 있어.”

다행이다, 톰.

내가 너를 살렸구나.

“됐고, 고기나 먹으러 가자.”

임무 성공에 들뜬 건지 드문 미소를 지으며 에레오나는 나와 하트를 끌고 모닥불로 향했다.

* * *

라디오 타워 사건이 있은 후, 일주일.

제도는 다신 없을 정도로 떠들썩한 하루하루가 지나고 있었다.

시민들은 그 방송에 대하여 각자의 의견을 내놓고 있었고, 고위층인 귀족과 주교들은 대놓고 과격하게 비판과 비난을 해 대고 있었다.

음지 역시 당연하게도 후끈 달아올랐다.

다만, 이전처럼 무작정 얼어붙은 말람의 골짜기를 넘어가려는 것보다는 숨을 고르며 참는다는 분위기.

황실에서는 황제를 모욕한 나를 찾겠다며 난리를 피우고 있지만 그렇게 쉽지는 않을 거다.

“역시, 걸렸네.”

“경비도 꽤 삼엄한데.”

나와 에레오나는 제도로 잠입했던 통로를 멀리서 보며 혀를 찼다.

레온이 따로 파 놓은 뒷구멍이 더 없다면, 이제 자벨린 부대가 제도로 들어갈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하트한테 들었지? 황실에서 제3황자가 움직일 예정이라고.”

“제라니 데 아르니티였나? 황자가 직접 움직이는 건 조금 놀랍네.”

이미 저쪽에선 우리가 혁명군이라고 특정을 해 놓은 상태. 당연히 이제부터 압박이 심하게 들어올 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설마 황자가 직접 움직일 줄은 몰랐다.

“3황자는 권력보다 무술에 더 관심이 많다고 들었어. 친위대가 움직이지는 않겠지만 네임드급의 기사단이 동행할걸?”

에레오나가 담담하게 풀어놓지만, 사실 능력 있는 기사단이 움직이기만 시작해도 자벨린 부대는 태풍이 지나길 기다리는 아이처럼 웅크리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 말을 듣고 나는 이전부터 고민하던 걸 에레오나에게 제안했다.

“다시 펠른으로 돌아가, 에레오나.”

“뭐?”

“너도 알겠지만 지금 제도 주변은 위험해. 당분간은 펠른에서 레온과 함께 행동하는 게 훨씬 안전해.”

이를 뿌득 갈며 나를 노려보는 은발의 검사.

“자벨린 부대는 늘 위험한 상황 속에서 활동했어. 기사단과 황자가 움직인다고 우리가 멈출 것 같아?”

“폭풍에 맨몸으로 맞서는 건 용기가 아닌 만용이야. 무조건 도망만 치는 사람은 어리석은 자이지만, 도망쳐야 할 때 치지 않는 사람 역시 어리석은 건 마찬가지야.”

“…….”

“또 수용소에 갇히고 싶은 건 아니잖아.”

결국 에레오나는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생각하기에도 지금 활동하는 건 상당히 위험했다.

음지의 퍼지들에겐 혁명군에 대한 확실한 각인을 시켜 주었으니 당장에 급할 필요는 없었다.

“사실 마침 잠깐 복귀를 해 달라는 편지를 받았거든.”

오늘 아침 내게 들른 렉스가 쥐어 준 편지를 들어 올리며 말해 주자 그녀는 인상을 팍 쓰면서 물어 왔다.

“뭐야, 나한테 숨겼던 거야?”

“지금 말했잖아.”

“그건…… 그렇네.”

무슨 답을 듣고 싶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포르쉔 국장님은 렉터와 함께 벌써 보냈어. 너희는 내가 날아서 보내 줄게. 몇 시간이면 충분할 거야.”

“아니, 괜찮아. 이런 이동도 훈련의 일부야. 그렇게 급한 건 아닌 듯하니까 우린 뛰어서 이동한다.”

“…….”

“너도 같이.”

그렇게 우리는 잠시 제도에서 물러나기로 했고, 그날 저녁 바로 펠른으로 출발했다.

잠과 휴식을 최소한으로 줄여 가며 3일 만에 도착한 펠른은 여전히 허전한 도시였다.

건물은 있지만 사람은 없다.

멸망한 도시의 지하는 혁명군이 몸을 숨기기에 최적의 장소이기도 했다.

“네 꼴사나운 모습 한번 보고 싶었는데.”

도착했을 때, 톰이 불만족스럽다는 표정을 지으며 투덜댔다. 아무래도 마법사이다 보니 체력이 부족해서 헉헉거리는 걸 보고 싶었던 모양인데 안타깝군.

“나 정도 일류 마법사가 되면 신체를 강화하는 건 일도 아니거든.”

사실 첫날은 내 체력을 키우겠다는 의도로 한 번 이들을 따라 뛰어 봤다. 그리고 진짜로 죽을 뻔했다.

동굴에서 체력을 단련하긴 했었지만, 그 정도 가지곤 혁명을 위해 최전선에서 늘 싸워 온 특공대와 비교할 순 없었다.

그것도 이들은 라디오 타워에서 가져온 거대한 기계들을 등 뒤에 짊어지고 있는데!

결국 이튿날부터 마나로 온몸을 강화한 후에는 오히려 반대로 곤란해졌다.

‘속도를 맞추는 게 힘들었어.’

얼핏 잘못하면 혼자서 앞으로 치고 나가 버리니 이게 우습다면 우스웠다.

어쨌든 펠른의 지하 벙커로 들어오자 오랜만에 보는 텐이 반갑게 웃으며 맞아 준다.

“환영합니다, 여러분. 식사와 쉴 장소를 준비해 뒀습니다.”

“오랜만입니다, 텐 님.”

내가 웃으며 답하자 텐은 인자한 미소와 함께 우리를 안내해 주었다.

“크흠.”

“불편한가 봐?”

“당연하지, 맘에 안 든다고 뛰어나온 지 얼마나 됐다고.”

에레오나의 입장을 잠시 생각해 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쪽팔리긴 하겠네.”

“야.”

일단은 식당에서 식사를 하며 텐이 현 펠른에 대해서 간단히 설명을 해 주었다.

“톨레스와 미오는 베이먼 영지에, 타란 성은 루이나와 에딘이 투입되어 그쪽의 퍼지들을 빼내고 있습니다. 요번 라디오 타워 사건 덕분에 제도로 시선이 쏠려서 훨씬 수월하게 일이 진행되고 있죠.”

내 기억이 맞다면 베이먼 영지는 대귀족 라이노르 체르헨 공작의 영지로 알고 있다.

“뭐, 도움이 되었다면 다행이네요.”

“……라엘 님은 늘 상상 이상의 결과를 가져오시는군요.”

“제가 또 원체 비범해야죠.”

장난스레 씨익 웃어 보이곤 텐에게 묻는다.

“그런데 저를 부른 이유는 뭔가요?”

“내가 설명해 줄게.”

우리가 왔다는 소식을 들었는지 식당으로 찾아온 레온. 슬쩍 에레오나와 눈이 마주쳤지만 두 사람은 서로에게 아무 말 없이 시선을 돌렸다.

“연극을 해라, 아주.”

내가 콧방귀를 뀌며 비아냥거리자 순간적으로 두 사람이 나를 노려봤지만, 레온은 금방 시선을 고치고 내 옆에 앉았다.

“방금 도착한 너에겐 미안하지만 내일 또 바로 출발해야 해.”

“어디로?”

“타란 성.”

의아함에 고개를 갸웃거리자 레온이 머리가 아프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너의 그 라디오 방송이 얼마나 큰 파급력을 가지고 있었는지는 알고 있지?”

“그거 생각 안 하고 했겠니.”

“솔직히 렉스를 통해 임무를 준 것들을 하나라도 성공하면 대단하다고 생각했는데, 그 안에 있는 것들보다 훨씬 엄청난 걸 너는 해냈어. 감사와 동경은 품고 있지만…….”

“혁명군이 위험해졌겠지.”

“……맞아.”

하고 싶은 말을 이미 알고 있다는 투로 얘기해서인지, 레온은 조금 놀란 표정을 짓다가도 차분히 이야기를 이어갔다.

“지금 당장은 제도에 시선이 집중되어 있지만, 곧 있으면 대대적인 혁명군 색출 작업과 토벌이 시작될 거야. 황제와 황족이 모욕당했는데 가만히 있을 리가 없지.”

“제3황자가 움직이는 것도 그 전조 중 하나이고?”

“맞아, 황족이 직접 움직일 정도로 심각한 사안으로 저쪽에선 판단한 거야.”

황제를 도발했는데 당연하겠지.

“그런데 중요한 건 혁명군이 우리뿐만이 아니란 거지.”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 내 입가에 미소가 걸리고 그걸 본 레온은 다시금 한숨을 내쉬었다. 리더의 무게감을 절실히 실감하고 있는 표정.

“표정을 보니까 다 예상하고 있었구나?”

“난 처음부터 말했어. 너와 에레오나가 합심하면 다른 혁명군도 움직일 수도 있다고. 그런데 힘을 합치지 못해서 다른 혁명군과 접촉할 기회도 없애 버린 건 너희야.”

에레오나와 레온이 다시 한번 눈이 마주치곤 동시에 나를 향해 시선을 돌린다.

“너희가 못하니까 내가 강제적으로 그런 상황을 만든 것뿐이야.”

“잠깐만, 그 말은…….”

에레오나가 설마 하는 눈으로 레온을 바라보자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혁명군에서 만나고 싶다고 연락이 왔어. 그나마 가까운 타란 성에서 모두 모일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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