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화
제니아라는 이름을 가진 가수의 공연까지 남은 시간이 4일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어느새 당일 아침이 되었다.
그동안 공연하는 나이트 비어 술집에도 탐문을 다녀오고 암살에 대한 계획이나 도주 경로를 짜는 등 꽤나 바쁘게 준비했다.
“오늘도 바로 나가시나요?”
“아뇨, 저녁때까지는 쉴 생각입니다.”
아침밥을 먹으러 나가는데 모텔 여주인이 나를 불러 세웠다.
“그러면 저희 가게에 들러서 식사라도 하시지 않겠어요? 저희 남편이 식사를 대접하고 싶다고 하셔서요.”
“아침을요?”
“예.”
오늘은 따로 준비할 건 없고 그냥 시간까지 쉬면서 컨디션 관리만 할 생각이었기에,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 그녀와 함께 해바라기로 향했다.
안으로 들어가니 삐걱거리는 바닥 소리와 함께 고소한 빵 냄새가 코를 간질여 왔다.
“오셨군요.”
험상궂은 주인장이 환하게 웃는 모습이 조금 안 어울리면서도 그게 이상하게 웃겨서 피식하고 입꼬리를 올리자 그의 부인도 웃으며 속삭인다.
“귀엽죠? 덩치에 안 어울리게 순수하다니까요.”
“귀여운지는 잘 모르겠지만 매력은 있으시네요.”
내 대답이 만족스러웠는지 부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나를 테이블로 안내했고, 그곳엔 벌써 조식이 준비되어 있었다.
베이컨, 프라이, 소시지, 구운 빵과 잼, 으깬 감자, 옥수수, 샐러드에 귀한 과일까지.
혀를 내두르며 두 사람을 바라보자 둘은 내 반응이 만족스러운지 웃어 보였다.
“이 정도 식사라면 일주일에 한 번씩은 누구 하나 암살해야겠는데요.”
내가 웃으며 말하자 둘은 반대편에 앉아 내게 식기를 건네주었다.
“그것 때문만이 아닙니다. 사실, 주변 점주들한테 들었습니다. 몽약을 전부 수거해 주셨다고.”
몽약이란 내가 수거한 마약의 이름이었다.
예전에는 청화초를 통해서 만들었는데, 지금은 식물에 무슨 짓을 한 건지 적화초라는 이름으로 붉은빛을 띠는 풀.
청화초보다 훨씬 중독성이 강하고 몸에도 해로워서 지금 유통되고 있는 몽약은 청화초로 만든 몽약과는 차원이 다른 물건.
“게다가 몽약 때문에 고통스러워하는 사람들을 찾아가서 도와주셨다 들었어요.”
요 3일간, 내 나름 거리를 돌아다니며 몽약에 중독된 듯 보이는 사람이 있으면 저번에 하우스 옆에 사는 가족들처럼 몸을 개운하게 해 줬다.
찾는 건 크게 어렵지 않았다.
몽약을 쓰던 음식점에 찾아오는 손님들이 대부분 저도 모르게 중독된 상태였으니까.
“그냥 하는 김에 한 것뿐입니다. 큰일은 아니에요.”
멋쩍어서 간단히 답하고 샐러드를 입에 넣자 두 사람은 부드럽게 웃어 주었다.
“같이 드시죠. 양이 많아서 혼자는 다 못 먹습니다.”
둘에게도 식사를 권하자 처음엔 머뭇거리더니, 내가 식기를 쥐어 주니 그제야 함께 먹기 시작했다.
꽤나 풍족한 아침이었다.
“가능하시면 점심도 준비해 드릴까요?”
“아뇨, 너무 배가 부르면 움직이기 힘들어서 괜찮습니다.”
아침을 많이 먹었으니 점심 정도는 그냥 넘겨도 됐다. 애초에 저녁에는 나이트 비어에 가는데 거기서도 안주라도 먹지 않겠는가.
“아참, 혹시 이걸 손바닥에 찍어 드려도 괜찮을까요?”
식사를 끝마치고 잠시 차를 마시고 있는데 여주인이 내게 와서는 태양의 문양이 새겨진 도장을 건넸다.
“엄청 오래전부터 이어진 전통이에요. 큰일을 하러 가는 사람의 손바닥에 이 도장을 찍어 줘요.”
“태양왕국 라스의 문화죠. 태양신의 문양을 몸에 새기는 것으로 신이 떠나는 자와 함께 머문다는 의미를 가진.”
“어머? 어떻게 아세요?”
모를 수가 없지.
세인트 학교에 재학 중이던 당시 몇 번이나 저 도장을 손바닥에 새겼던 기억이 있다.
‘이걸로 태양신께서 너와 함께하신다. 무적이라는 소리지.’
장난스레 웃으며 말하던 펠디어스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만 같다.
잠시 회상에 빠져 도장을 바라보던 나를 이상하게 보는 두 사람에게 어색하게 웃어 주며 손바닥을 내밀었다.
꾸욱 하고 새겨진 문양을 보고 있자니 또 감회가 새로웠지만, 그러다 문득 궁금한 게 생겼다.
“부인은 라스 왕국 분이셨나요?”
“예, 저희 가족이 조금 보수적이어서 지금은 몇 없는 순혈 라스 왕국 핏줄이죠. 하지만 그것도 이제 끊어지겠지만요.”
뒤에 있는 자신의 남편에게 가볍게 몸을 맡긴 그녀는 남편의 따스함과 듬직함을 음미하듯 고개를 파묻었다.
주인장은 내 앞이라 그런지 당황하면서도 싫지는 않은지 또 그녀를 밀어내지는 않았다.
“저희 가족은 아르니에서 평생을 살았습니다. 저희 조상님 때부터 퍼지로 살았죠. 이 가게도 할아버님 때부터 이어진 전통이 있는 가게랍니다.”
“그렇군요.”
라스 왕국이 무너지고 그 모든 포로들을 음지로 내몰았다고는 들었다. 물론, 아르니티에서 워낙 잔혹하게 전쟁을 치렀기에 그 수가 많지는 않다고 듣긴 했지만.
‘그래서 같은 퍼지들 사이에서도 파벌이 나뉘고 은근한 차별이 있던 건가?’
같은 민족이라고 두루뭉술하게 말할 순 없구나. 이들처럼 좋은 만남을 가지게 된 케이스도 있지만, 당연히 좋지 못한 부작용이 더 심할 것이다.
‘거기까지 내가 참견할 일은 아닌 듯하지만.’
참으로 복잡한 상황이 아닐 수는 없구나 하고 중얼거리며, 손바닥에 찍힌 문양을 바라봤다.
* * *
어두운 밤하늘, 음지를 나와 성지를 걷고 있는 오늘 역시 밤의 달도, 별도 먹구름에 가려진 하늘이었다.
음지에서는 최근 날씨에 대해 먹구름이 쌓이기만 하고 비는 내리지 않아서 곧 있으면 큰 호우가 올 거라 대비하는 집들을 손쉽게 볼 수 있었는데, 성지는 좀 달랐다.
이쪽은 판자가 아니라 벽돌집이라 튼튼하기도 하고 배수 시설이 잘되어 있어 걱정할 필요 없다.
나이트 비어에는 벌써부터 줄이 좌르륵 늘어져 있었다. 좋은 자리를 선점하겠다는 거겠지만 나는 그런 줄을 지나쳐 걸었다.
“여기요.”
VIP 티켓.
최근 정보를 수집하면서 느낀 건데 이런 귀한 걸 도대체 음지의 주인장이 어떻게 구할 수 있었던 걸까 싶었다.
가드는 나를 슬쩍 위아래로 훑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비켜 준다. 여주인이 준비해 준 푸른색 정장을 입은 덕에 여유롭게 통과할 수 있었다.
‘설마 차림새를 볼 줄이야.’
옷을 못 입거나 행색이 별로면 아무리 티켓을 가지고 있어도 쫓겨난다는 얘기에 설마 했는데, 분위기를 봐서는 진짜 그럴 것 같았다.
계단을 통해 지하로 내려가니 안은 벌써부터 음악이 흐르고 있었는데 조금 귀가 아파 왔다.
‘테토나 라푼젤 데려왔으면 싫어했겠네.’
시끄러운 걸 싫어하는 테토와 중구난방인 걸 싫어하는 라푼젤이라면 눈살을 찌푸렸을 것이다.
지정석은 무대 바로 앞에 있는 좌석이었는데, 옆에 테이블도 있고 간단한 술과 안주는 벌써 세팅이 되어 있었다.
‘괜히 VIP가 아니구나.’
술집이라는 느낌보다는 무대라는 느낌으로 지어진 곳이구나 하고 이런 곳은 처음인 나도 딱 알 수 있었다.
“비싼 술인 것 같은데.”
괜히 손이 가다가도 혹시 모른다는 생각에 입맛을 다시며 안주로 손을 틀었다.
마른안주들을 질겅질겅 씹으며 기다리고 있자니 입구 쪽에서부터 소란스럽게 들려오는 걸걸한 목소리.
푸짐한 뱃살과 턱살에 가장 먼저 눈이 가는 남자. 꼴에 기사랍시고 허리춤에 차고 있는 칼에는 검을 문 개, 팔독 기사단의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왔구만.’
사진으로 봤을 때도 생각했지만 기사단장이면 좀 관리를 하지 싶었다.
주인장이 준 정보지에 가문 탓에 기사단장이 되었다고 듣긴 했지만, 예전에 저런 기사단장이 있으면 바로 해임뿐만 아니라 기사단의 위상을 해쳤다는 명목으로 죗값을 치러야 했을 거다.
옆에 호위 두 명을 끼고 들어오는데 막상 호위들은 무기가 없다.
아마 가드들이 무기를 놓고 가야 한다고 했지만, 억지를 부려 절충안으로 기사단장인 폴트텍만 챙긴 듯했다.
폴트텍의 자리는 가장 좋은 가장자리였는데, 내 바로 옆 테이블이라 솔직히 조금 놀랐다.
계속해서 VIP 티켓을 어떻게 얻었을까 싶은 의문이 이어졌다.
“칫, 공연은 언제 시작하는 거야?”
“술부터 따라 드리겠습니다.”
투덜거리는 폴트텍은 벌컥벌컥 술을 들이켜며 초조함에 발을 떨어 댔다. 어느 정도의 공연이라 저러는 걸까 나도 조금은 흥미가 생긴다.
그렇게 공연 시작 시각까지 10분 정도 남았을까, 갑자기 VIP석으로 어둠을 틈타 들어오는 한 여인.
공연을 위해서인지 눈에 띄는 연분홍빛 머리칼과 화려한 의상이 인상적인 아리따운 여성, 제니아가 찾아온 것이었다.
“안녕하세요.”
싱긋하고 웃어 주며 다가온 곳은 정말 놀랍게도 내 앞이었다. 아예 예상을 못 한 상황인지라 어벙하게 그녀를 바라보고만 있으니, 그녀는 다시금 웃으며 내게 술을 따라 주었다.
“오늘 공연 재밌게 봐 주세요.”
“……예, 그러죠.”
고운 여성이구나 하고 절로 감탄하는 외모였지만 그녀는 내 앞에 오래 있지 않고 바로 옆에 있는 폴트텍에게로 향했다.
폴트텍은 나를 꽤나 격렬하게 노려보다가 제니아가 다가오자 헤헤하고 표정이 풀어지더니 그녀가 따라 주는 술을 마셔 댔다.
그 외에도 다른 VIP석에도 한 번씩 들른 제니아가 떠나가고 곰곰이 생각하고 있자니, 폴트텍이 내게로 뒤뚱뒤뚱 걸어왔다.
“어이, 넌 이름이 뭐냐.”
거만한 태도에 나는 싱긋 웃으며 답했다.
“라만 아인입니다.”
운디네랑 라푼젤이 가명이 너무 촌스럽다고 뭐라고 하던 게 불현듯 떠오른다.
“어디 듣도 보도 못한 잡것인데 제니아가 너한테 먼저 찾아오냔 말이다. 우리 제니아는 공연이 있을 때마다 늘 내게 먼저 왔었는데.”
들어 본 적 없는 가문명이기 때문일까, 더욱 험악해진 녀석이 제니아가 내게 따라 준 술을 벌컥벌컥 들이마셨다.
“야, 너 내가 누군지 알아?”
“모릅니다.”
“허, 팔독 기사단의 기사단장인 이 폴트텍 레이먼 님을 모른단 말이냐? 정말 잡것이구만.”
그러면서 그는 자신이 어떤 짓거리를 해 왔는지 설명하기 시작했다.
자신에게 잘못 걸린 사람들이 전부 팔다리가 부러져서 구치소 안에 갇혀 있다던가, 이 티켓도 실은 원 주인이 정해져 있었는데 이제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던가, 방금 전까지 자신과 동침을 거절한 여인을 구타하고 고문하고 왔다던가.
한마디로 나한테 겁을 주려고 내뱉는 말.
‘이미 알고 있어.’
네가 얼마나 쓰레기인지.
하지만 여기서는 눈을 깔며 허겁지겁 그의 잔에 술을 따라 준다. 술을 따를 때 손이 덜덜 떨리는 게 포인트.
“죄, 죄송합니다, 제가 귀한 분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용서해 주십쇼.”
“크흠.”
“저는 제니아 양의 옛 동료입니다. 같이 밴드로 활동하다가 건강상의 문제로 그만두었는데, 그녀가 저를 배려해서 이렇게 티켓도 주고 찾아와 준 거죠.”
“혹시, 제니아랑 그런 관계인 건 아니겠지?”
“저, 절대로 그럴 일 없습니다!”
호들갑을 떨며 내가 고개를 좌우로 젓자 그는 만족한 듯 클클 거리고 웃어 대며 단숨에 술을 들이켰다.
투욱 하고 은은하게 밝혀오던 조명이 꺼지고 백그라운드로 음악을 깔아 주던 밴드도 연주를 멈췄다.
공연이 시작할 시간.
자리로 돌아가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나는 조용히 읊조렸다.
“사일런스.”
* * *
폴트텍 레이먼은 적당히 부른 배를 쓰다듬으며 자신의 자리에 앉았다.
제니아가 자신이 아닌 라만 아인이라는 웬 떨거지에게 먼저 찾아간 게 아주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또 놈이 덜덜 떠는 모습을 보니까 수컷으로서의 고양감이 넘쳤다.
다시금 술을 따른 후, 그 안에 극소량의 몽약을 넣고 마신다. 제니아의 공연과 함께하는 약은 단순히 여자를 앉는 것과 비교할 수도 없이 황홀했다.
다시 잔을 채우라고 옆에 기사에게 말하려 했지만 이게 웬걸,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뿐만 아니라 몸도 점점 무거워져 팔걸이에 팔을 걸칠 수밖에 없을뿐더러 고개도 돌아가지 않았다.
가슴 안에서부터 뜨거운 무언가가 점점 퍼져 나간다. 어지러워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아 숨도 제대로 쉬어지지 않았다.
신음 하나 낼 수 없는 그때, 머릿속에서 잔잔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일런스라는 마법이야. 어떤 소리도 낼 수 없어.’
전음.
실력 있는 마법사들이 사용하는 머릿속으로 의사소통을 하는 방법.
폴트텍의 눈이 부릅떠진다.
놈은 마법사다!
당장이라도 그렇게 외치며 검을 뽑아 들고 싶었지만, 애처롭게도 몸에는 이제 힘 하나 들어가지 않는다.
‘몸이 이상하지? 네가 좋아하는 몽약을 집약시켜 봤어. 꽤 어려웠지만 마나를 모으는 것과 비슷한 느낌으로 하니까 되더군.’
몽약?
‘네가 마신 술에 넣었거든. 그러게 함부로 남의 자리에서 술 마시면 쓰나.’
장난스러운 말투였지만 폴트텍은 머리를 굴렸다. 몽약을 도대체 어디서 손에 넣은 거지?
생각을 읽힌 듯 그는 바로 답을 들을 수 있었다.
‘네가 음식점에 준 약들로 만든 거야. 뿌렸으면 처리도 네가 해야지.’
속이 더부룩하다.
마치 뱃속을 뚫고 무언가가 튀어나올 것만 같은 열기와 더부룩함에 토를 하고 싶지만, 이제는 입도 벌려지지도 않는다.
‘아름다운 무대야, 그렇지?’
그 말을 듣고서야 제니아의 노랫소리가 드문드문 들려옴을 눈치챈다.
눈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흐르고 있었다, 자신의 눈물이었다.
제발, 살려 줘.
그렇게 외치고 싶지만, 입이 열리지 않는다. 온몸이 비틀리는 것만 같은 고통, 뇌 속을 수백의 벌레가 기어 다니는 듯한 괴로움.
엉엉 울고 싶지만 하지 못한다.
이 답답함은 상상 이상으로 과격한 고문이었다.
‘살고 싶나?’
살고 싶어요!
속으로 애원하는 폴트텍을 향해 남자는 단호하게 답했다.
‘지금껏, 너를 향해 애원했던 이들에게 너는 어떻게 했지?’
아.
그런가.
나는, 누군가의 애원에 단 한 번도 손을 내밀어 준 적이 없었다. 오히려 그들의 비명을 감미로운 교향곡처럼 음미했을 뿐.
그리고 이제 자신의 차례가 온 것뿐이었다.
‘너 같은 녀석이 최후에 눈에 담기엔 과하게 아름다운 광경이군.’
춤을 추고 노래하는 연분홍빛 머리의 미녀를 눈에 담는 걸 끝으로, 폴트텍은 천천히 눈을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