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화
“…….”
하얀색 고운 가루를 보며 절로 인상이 쓰였다. 코를 찌르는 독한 향을 가진 마약.
슬쩍 주방장을 바라보니 그는 할 말이 없다는 표정으로 입을 다물고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고, 점원은 손님들을 내보내고 있었다.
“너희 말고도 다른 가게에서도 이 짓거리를 하고 있지?”
“예, 맞습니다.”
“어디인지 다 불어.”
마나를 통해서 금고를 부순 여파 탓일까, 가벼운 위협에도 주방장은 덜덜 떨면서도 입을 열었다.
“저……저희가 죽을죄를 지은 건 알고 있습니다. 인간으로서 하면 안 될 행동인 것도요.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저희가 기사단에게 죽습니다!”
“…….”
“매주 월요일마다 찾아와서 양이 얼마나 줄었는지 확인합니다. 그 탓에 저희도 안 쓸 수 없었어요.”
“그냥 버리면 되잖아.”
“어디에 버릴까요? 땅에 묻어도 이게 얼마나 독한지 금세 티가 나고, 쓰레기 봉지에 같이 버려도 저희 가게에서 나오는 쓰레기는 다 확인합니다.”
그 정도라고?
팔독 기사단이 가장 숫자가 많은 기사단인 건 알았지만, 마약을 나눠 준 음식점 쓰레기까지 확인할 정도로 인력이 그렇게까지 많은 건가?
‘아니면 이 일이 그만큼 그들에게 중요하다거나?’
후자가 더 설득력 있었다.
퍼지들을 자신도 모르게 약에 중독되게 만든다면 더욱 손쉽게 다룰 수 있게 될 테니까.
“다 나한테 넘겨.”
“네?”
“지금 가지고 있는 마약 다 넘기라고.”
머릿속에 이 마약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에 대한 방법이 스치듯 떠올랐기에 슬며시 미소가 지어졌다.
* * *
-바쁘군.
“그러게 말이야.”
총 일곱 군데의 음식점, 주점을 돌고 나서야 시중에 유통되는 마약을 전부 수거할 수 있었다.
처음에는 다들 두려워하는 분위기였지만, 양심의 가책 탓인지 아니면 들켰다는 것에 체념한 건지 손쉽게 뺏어올 수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마약이 유통된 지 그렇게 오랜 시간이 지난 건 아니라는 거야.”
-다만, 중독성이 강해서 잠깐이지만 벌써부터 중독 증세를 보이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할 생각이지?
테토의 물음에 나는 팔짱을 끼며 입을 열었다.
“테토, 나는 정의의 사도가 아니야.”
-…….
“그들이 안쓰러운 건 맞아.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게 있다는 건 너도 알고 있잖아.”
나는 마법사이지 의사가 아니다.
중독 증세로 고통을 받고 있는 이들을 위해서 움직일 시간도 없었다.
단순히 마약을 없앤 정도로 죄 없는 피해자들에게 할 수 있는 최대한을 했다고 생각한다.
-훗.
피식하고 웃는 테토를 의아한 표정으로 바라보자 그는 나를 똑바로 바라보며 답했다.
-그대는 자신의 마음을 속이는 것에 큰 재능이 없군.
“뭐라는 거야.”
-아깝군, 운디네나 라푼젤이 있었다면 내기를 해도 좋았을 텐데.
“너희 은근히 사이좋지?”
-같은 계약자 밑에서 함께 동업하는 사이 아닌가. 정이 없다고는 할 수 없겠지.
슬며시 하늘을 보니 오늘은 하루 종일 먹구름이 잔뜩 껴 있었지만, 정작 비는 내리지 않았다.
“잘 틀어막고 있나 보네.”
-음.
그렇게 간단한 잡담을 하며 걷고 있자니 커다란 비닐하우스 여러 동이 좌르륵 나열되어 있는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드디어 도착했군.
“잠깐 기다려 봐. 이것 좀 다 먹고.”
거리에서 파는 브리또라는 걸 사 먹었는데 이게 꽤나 맛있다. 얇게 핀 반죽이 부드러워 샌드위치를 먹는 것과는 색다른 식감.
-잠깐 안 본 사이 그대는 식탐이 좀 늘어난 것 같다.
“야, 동굴에서 마나로만 배를 채우던 게 5년이야. 세상에 모든 것이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더라.”
펠른의 물자가 풍족했다면 살이 쪘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최근 입맛이 돈다. 미래에는 참으로 맛있는 먹거리가 많았다.
-흠, 200년이 지나 조리의 발전은 인류에게 좋은 영향을 끼치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저런 것들 또한 인류의 발전이다.
턱짓으로 하우스를 가리키는 테토의 말을 정정한다.
“저런 건 음식이 아니라 약품이라고 하는 거야.”
-우리가 봤을 때 너희가 입에 넣으면 다 음식으로밖에 안 보인다.
“그래, 그렇겠지.”
운디네나 라푼젤은 그래도 인간에 관심이 많아서 이런 쪽 지식은 나름 준수한 편인데, 테토는 관심이 없어 인간에 대해서 조금 무지했다.
“마법을 조금 쓰고 싶은데.”
-안타깝게도 그건 힘들 것 같군. 저기 네가 말했던 마나를 감지하는 장치가 달려 있다.
카메라처럼 생긴 물건이 삼엄하게도 하우스 주변을 감시하고 있다. 저건 마나를 감지하는 ‘색적 카메라’라는 걸로, 조금만 마나가 감지되면 바로 요란하게 울어 댄다.
자격증이 있으면 마나를 사용할 수 있는 성지와 다르게 음지에서는 그 누구도 마나를 품고 있을 수 없기에, 저게 울리는 순간 기사단이 우르르 몰려올 것이다.
‘방법이 없는 건 아니지만.’
저 카메라들을 누구도 모르게 부수는 건 사실 간단했다. 사각으로 들어가 부술 필요도 없고 그냥 테토를 이용하면 되니까.
정령은 마나를 다루는 개념이 아니기에 저런 것에 걸릴 일도 없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내부는 확인할 수 있겠지만, 카메라에 이상이 생겨 괜히 일이 틀어지게 될 수도 있다.
보고서에 의하면 기사단장 폴트텍은 좋게 말하면 신중하지만 나쁘게 말하면 쫄보인지라, 조금만 이상이 있어도 바로 성지에 있는 대대로 피난해서 상황만 지휘한다고 들었다.
“굳이 안을 확인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아. 그냥 밖에서 규모가 어느 정도 되는지 확인하고 싶었을 뿐이야. 이 정도면 충분하겠네.”
-그렇다면 상관은 없겠군.
하우스에서 눈을 돌리니 금방이라도 허물어질 것 같은 판잣집과 그 안에서 나오는 사람들.
마약을 재배하는 하우스 옆에 살아서 그런지 몸에 두드러기는 물론이거니와, 정신도 조금 오락가락하는지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했다.
“…….”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벗어 두었던 후드를 뒤집어쓰고 그들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내가 옆에 온 것도 눈치채지 못했는지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 가족.
먼저 가장으로 보이는 남자의 머리에 살며시 손을 얹었다.
“정결과 총명이 그대와 함께하길.”
하우스 근처의 감지기에는 걸리지 않을 정도로 아주 옅은 푸른빛의 마나가 띄워지고 잠시 후, 방금까지 제정신이 아니던 남자는 잠에서 깬 듯 번뜩 눈을 뜨더니 주변을 둘러봤다.
“헛?”
쉿 하고 조용히 하라는 제스처를 취한 후, 그의 아내와 아이들에게도 같은 조치를 취해 주자 다들 정신을 차린 듯 눈에 생기가 또렷하게 자리 잡았다.
“가능하면 이곳에서는 살지 않는 게 좋을 겁니다. 몸 안의 독기를 빼낸 것뿐이라 중독 증세를 막는 것도 아니고, 다음에는 더 쉽게 독기에 노출될 거예요.”
“당신은 누구시죠?”
자신의 가족들을 구해 주는 걸 보고 있던 남자의 물음에 피식 웃으며 답해 주었다.
“마법사죠.”
* * *
-라푼젤과 운디네가 있었어도 내기는 성립되지 않았겠군.
“뭔 소리 하는 거야 아까부터.”
로즈 모텔로 돌아가는 길, 테토가 자신의 턱을 쓰다듬으며 중얼거린다.
-아니, 그대가 중독된 사람들에게 아무것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 게 언제 깨질지에 대해서 그녀들이 있었으면 내기를 했을 거라는 얘기다.
“…….”
-나는 하루를 버티지 못할 거라 예상했었지만 아마 그녀들도 나와 같은 의견이었겠지. 내기는 성립되지 않았을 거다.
“미안하다, 내뱉은 말 하나 지키지 못하는 주인이라.”
-그렇기에 우리가 그대를 택한 것이겠지.
“…….”
걸음을 멈추고 테토를 바라보니 그는 평소와 다를 바 없는 표정으로 나를 덤덤히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운디네나 라푼젤과는 다르다. 인간에겐 전혀 관심이 없어. 그들이 대지에 무슨 짓을 하든 나는 크게 상관하지 않는다.
“알고 있어.”
테토는 그런 정령이니까.
-허나, 삶에는 지대한 관심이 있다. 특히나 자비와 긍지는 나를 깨우는 몇 안 되는 주제이지. 그런 의미에서 그대는 매우 적합한 계약자이다.
“한마디로 사람에겐 관심이 없으나 이야기에는 관심이 있다는 소리인가?”
-조금 뭉뚱그려 설명한 느낌이 있지만 그렇다. 그들 자체는 어찌 되든 상관없지만, 그들이 보여 주는 이야기는 좋다.
테토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지어진다. 테토와 그리 오랜 기간 알고 지낸 건 아니었지만 처음 보는 모습이었다.
-그렇기에 두 세기를 거쳐 온 그대의 이야기가 어떤 형태로서 종막을 맞이하게 될지. 그리고 그때 그대가 품고 있는 신념은 무엇인지 솔직히 기대되어 참을 수가 없군.
“가끔 운디네랑 라푼젤이 너한테 욕하는 게 슬슬 이해가 되기 시작해.”
-어쩔 수 없군. 그게 바로 나다.
테토의 당당함에 나 역시 그와 같은 미소가 지어졌다. 어쨌든 그는 내 최후의 순간까지 힘이 되어 줄 것은 분명했다.
그렇게 걷고 있자니 눈앞에 초록빛의 작은 폭풍이 생기더니 그 안에서 라푼젤이 우아한 포즈를 취하며 나타났다.
-이 몸,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게 등장!
-흠, 운디네가 있었다면 물이라도 끼얹을 텐데 아쉽군.
“돌을 던지는 건 어때? 땅의 정령답게.”
-나쁘지 않은 의견이다.
-너희는 내 취급이 좀 너무한 것 같아.
라푼젤이 입술을 삐죽 내밀며 자연스레 내 어깨에 걸터앉는다. 운디네도 그렇고 이 녀석들은 내 어깨를 무슨 벤치 정도로 여기는 것 같다.
-가장 아름답기에 가장 더러운 것을 보고 온 내게 할 말이 그것뿐이라면 서운한데.
“알았어, 미안해. 일단 밥이라도 좀 먹으러 가야겠어. 오늘 브리또 먹은 거 말고는 제대로 먹지를 못했거든.”
-가능하면 아름다운 걸 먹지 않겠어? 저번에 보니까 음식에도 미를 추구하는 요리사들도 있던데.
“아마 성지 쪽에서 본 것 같지만 여기는 하루 먹고살기도 바쁜 사람들밖에 없어. 맛 좋고 양 많은 걸 최고로 친다는 소리야.”
-아쉽네. 하지만 이해해. 극한의 상황 속에서 미를 추구하는 건 나 같은 정령만 가능할 테니까.
역소환할까 싶다가도 오늘 고생한 라푼젤이기에 그녀의 말에 끝까지 맞장구를 쳐 주며 근처 식당에 들어섰다.
간단한 저녁을 시키고 기다리면서 라푼젤의 이야기를 들었다.
-우선 라엘이 생각한 대로 그 시장을 운영하는 것도 같은 퍼지야. 고리대금업도 병행해서 돈을 빌리고 갚지 못하는 사람들을 인력시장으로 데려오는 거지.
“그러면 자기 발로 오는 사람들은?”
-그건 워낙 케이스가 다양해서 하나로 정리하지는 못하지만, 결국엔 자신의 몸을 팔아서 가족이든 친구든 그 돈을 주는 거야. 한마디로 희생이라는 거지.
-흠, 너는 좋아하겠군. 희생이란 미라고 저번에 우리에게 설파하지 않았는가.
-그들의 마음은 아름답지만, 그 아름다움에 맞는 대우를 받지는 못하고 있는 것 때문에 기분이 매우 나빠.
흥 하고 식탁을 탁탁 발로 치는 라푼젤. 작기도 하고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아서 그렇지, 아니었으면 주인장이 한마디 했을 거다.
“대우를 받지 못한다?”
-잘 모르는 것 같지만 몸을 판 금액 대부분을 시장을 운영하는 퍼지들이 챙기고 있어. 몸을 바쳐서 만들어 낸 돈이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들에게 제대로 가지 못하고 있는 거지.
지끈하고 머리가 아파 온다.
이런 모두가 힘든 상황에서까지 같은 민족의 피를 빨아먹어야 속이 시원하단 말인가.
그사이 음식이 나와 테이블에 올라온다.
먼저 밥을 먹고 이야기를 듣겠다고 말하려 했지만, 라푼젤은 코웃음을 치며 괜찮으니 먹으면서 들으라고 말해 주었다.
“괜찮아? 아름다운 나의 이야기를 딴짓하면서 듣는다니 라면서 화를 낼 줄 알았는데.”
-옆의 대머리였으면 당연히 그랬겠지. 아주 바람에 갈기갈기 찢어서 남은 머리숱도 없애 버렸을 거야.
-…….
-하지만 라엘이니까 괜찮아! 라엘은 내 취향이니까.
“것 참 고맙다.”
이놈의 정령들은 알다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