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화
“흐음?”
검문소 앞 경비병이 가뜩이나 좋지 않은 인상을 더욱 찌푸리며 내게로 들이민다. 수염이라도 좀 깎고 다니면 좋겠다.
“이름.”
“라만 아인입니다.”
이미 시민증(위조)를 건네줬는데 그건 쳐다도 보지 않고 나만을 계속 노려보고 있는데, 이럴 거면 시민증은 왜 받았는지 싶다.
“나이는?”
“27살입니다.”
“무슨 일 때문에 방문하는 거지?”
“친척이 세인트구에 살고 있는데 요번에 펠리스 신학 연구소에 취업을 했다고 합니다. 축하를 위한 방문입니다.”
“펠리스 연구소?”
“예.”
펠리스 신학 연구소.
이곳에서 일하는 이들은 대부분 귀족의 자제로, 아르니티가 마도 제국에서 성국으로 뒤바뀐 지금, 주요한 교리들이나 그들이 말하는 복음이라는 것의 해석 대부분이 이곳에서 나오고 있었다.
“크흠.”
괜히 헛기침을 하는 경비병.
펠리스 신학 연구소를 들먹이면 괜찮을 줄 알았는데, 이 경비병은 꽤나 고집이 있는 모양새였기에 속으로 쓴맛을 삼키며 품에서 돈을 몇 푼 꺼내어 건네주었다.
“다음!”
연구소를 들먹여서 그나마 싸게 먹힌 거지, 이곳을 통과하는 대부분의 시민은 저 경비들에게 꽤나 비싼 통행료를 지불해야만 했다.
-정말 짜증 나는 사람이었어.
‘동의한다.’
운디네와 같이 투덜거리며 안으로 들어오니 절로 걸음이 멈추며 방금까지의 기분이 사르르 녹아내렸다.
“와.”
벽돌로 지어진 건물들이 좌르륵 나열되어 있으며 사람들은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고, 중앙에는 도로 위에서 움직이는 자동차가 보였다.
맨 처음에 왔을 때는 단순히 공터에만 있었던지라, 이렇게 성장한 문명을 직접 피부로 느끼니 압도될 수밖에 없었다.
“사진으로 봤을 때랑은 또 다르네.”
-촌스럽긴! 빨리 이쪽으로 가자. 음지는 저쪽이야.
운디네의 뒤를 따라 빠릿빠릿하게 걷는다. 그렇게 30분을 걸어도 레온에게 들었던 음지의 특징이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기에 잠시 멈춰섰다.
“야, 얼마나 가야 하는 거야.”
-음, 지금 속도면 대략 4시간 정도?
“…….”
정령의 생각을 인간의 개념으로 이해했던 내 잘못이었다.
“택시 타자.”
마나를 사용하면 금방 날아갈 수 있지만, 아르니에서는 자격증을 가진 사람만이 마나를 다룰 수 있다고 들었기에 조심할 수밖에 없었다.
자격증은 검문소의 시민증과는 다르게 철저하게 검사하니까.
-택시? 그거 엄청 비싸다고 들었는데?
“그건 또 어디서 주워들었냐.”
-꼬마들이 택시 지나가는 거 보고 얘기하는 거 들었지.
정보 수집하라고 했더니 확실히 편하긴 하구나.
“솔직히 저 자동차라는 거 한번 타 보고 싶단 말야.”
-뭐, 나도 흥미는 조금 있어. 라푼젤이 있으면 매연 탓에 못 탈 것 같긴 해.
“그렇지?”
그래도 레온에게 몇 푼 받아온 것도 있으니까 지나가는 검은색 택시를 잡아 세우고 탔다.
“어서 오세요.”
안이면 조금은 따듯하지 않을까 했는데 찬바람은 창문과 차 문 틈새로 숭숭 들어오고 있고, 쿠션도 생각보다 딱딱했다.
정말 딱 마차였다.
말이 없는 것을 제외하면 마차랑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어디로 가 드릴까요?”
“음지요.”
“네?”
“음지로 가 주세요.”
“……알겠습니다아.”
백미러로 슬쩍 나를 살피더니 찝찝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손님은 외지 분이신가 봐요?”
“예, 뭐.”
“음지에는 어떤 일로 가세요?”
‘뭐지, 원래 이렇게 말이 많은 건가.’
그냥 조용히 가면 안 되나 싶으면서도 뭐라 답할까 하고 고민하고 있자니 택시 기사가 다시금 입을 뗐다.
“퍼지를 구매하시려는 거죠?”
“예?”
“하아, 요즘 그런 분들이 많아요. 음지의 퍼지들을 구매해 가시는 분들이요. 제도 시민으로서는 그러지 않으셨으면 좋겠거든요.”
“왜죠?”
“왜라뇨. 음지의 퍼지들은 저희 노동력인데 어째서 외지인이 훔쳐가는 걸 봐야 하냔 말이죠. 요번에 황실에서 대주교들과 논의하여 외국인의 퍼지 구매 금지법을 제정한다고 들었는데, 얼른 시행됐으면 좋겠네요.”
“…….”
혹시나 했다.
같은 민족을 도구로 여긴다는 것에 분노하고 있기를 바랐다.
그 뒤는 침묵이었다.
택시 기사는 계속 뭐라고 중얼거렸지만 내가 일절 답하지 않자 결국 입을 다물었다.
대화를 하는 것 자체가 역겨웠다.
30분 정도를 가며 조금 느린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 무렵, 깊은 울림을 가진 종소리가 도시 전체에 울려왔고 그와 동시에 택시가 멈췄다.
“무슨 일입니까?”
“9시입니다. 기도드릴 시간이에요.”
“예?”
-뭐라는 거야.
나와 운디네는 황당한 표정을 지었지만, 상황은 전혀 가볍지 않았다.
놀랍게도 모든 차량에 타고 있는 사람들과 바깥을 걷던 시민들이 전부 바닥에 무릎을 꿇고 기도를 시작한 것.
“이게…… 도대체 무슨…….”
관점을 바꾼다면 매우 놀라운 광경이라고 할 수 있었지만, 나로서는 이 시대에 나오고 처음으로 공포라는 걸 느꼈다.
눈을 멀리 둬도 무릎 꿇고 기도하는 사람들밖에 보이지 않는다.
신의 힘은 신자들의 숫자나 믿음과는 전혀 상관없다.
하지만 믿음이 강한 신자들이 많은 신일수록 자신의 권능을 세상에 더 많고 깊게 풀어놓을 수 있다.
한마디로 신자란 신이 세상에 힘을 풀기 위한 매개체일 뿐이었다.
“이런 식으로 세상을 좀먹어 가고 있던 건가.”
-정령 중에는 너무 오래 살아서 미쳐버린 케이스가 종종 있는데, 인간은 기껏해야 100년도 못 살면서 왜 이렇게 미친 애들이 많은 거야?
“그러게.”
이건 운디네의 의견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나라 전체가 광신도 느낌이 물씬 풍기니 거북할 수밖에.
생각 이상으로 비싼 택시비를 지불하고(외지인 할증이 붙었다) 내리니 길게 늘어진 철제 다리와 그 위에 ‘음지’라는 낡아빠진 간판이 크게 붙어 있었다.
“제도 내부에서 구역이 나누어져 있다고 해서 어떻게 되어 있나 궁금했는데, 이런 식이었구나.”
음지는 일종의 섬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말람의 골짜기라는 이름의 깊은 골로 둘러싸여 있으며, 성지로 나오기 위해서는 다리를 지나야 하는데 끝과 끝에 팔독 기사단의 문양을 지니고 있는 기사들이 지키고 있었다.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노예 좀 보려고요.”
택시 기사에게 얻은 정보로 자연스레 어깨를 으쓱거리며 시민증을 건네자, 기사는 잠깐 시민증을 보더니 금세 돌려주곤 통과시켜 주었다.
-이럴 거면 시민증은 왜 있는 거야?
“내가 어떻게 알아.”
숭숭 구멍이 뚫려 있는 철제 다리 바닥으로 보니 어림잡아도 10m는 될 것 같은 깊이.
드문드문 보이는 핏자국들이 골짜기에 깔린 잔혹함의 역사를 말해 주고 있었다.
긴 다리를 건너니 이곳은 아예 분위기 자체가 달랐다. 방금까지 있던 성지는 깔끔하고 단정된 분위기가 있었다면, 음지는 무법지대의 느낌이 강했다.
건물은 전부 판자로 된 판잣집이었고 포장된 도로 따위는 없으며 흙먼지와 함께 비릿하고 역한 냄새가 거리에 배어 있었다.
“…….”
-너무 화내지 마. 마나가 불안정해지잖아.
“미안.”
애써 다시 마나를 정돈하며 거리를 걷고 있자니 꾀죄죄한 아이들이 달려와 깡통을 들이밀었다.
“한 푼만 주세요!”
“제발요!”
“엄마가 많이 아프세요!”
온몸이 상처투성이인 아이들을 보고 있자니 괜히 마음이 아려 왔으나 운디네가 고개를 저었다.
-주면 안 돼. 주는 순간 온 동네 아이들이 너한테 몰려들 거야.
이 말에는 조금 놀란 게 인간을, 특히나 아이들을 워낙 좋아하는 운디네였던지라 당연히 있는 거 없는 거 다 주고 저렇게 만든 놈들도 혼내 주라고 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냉정했다.
아이들을 지나쳐 걸으니 운디네는 입술을 깨물곤 작은 주먹을 꼬옥 쥐었다.
-어쩔 수 없어. 저 아이들한테 돈을 줘 봤자 부모나 건달이 뺏어갈 뿐이고, 근본적으론 해결되지 않으니까.
“잘 참았네.”
-라엘, 나는 정말 저 아이들을 구해 주고 싶어. 저 작은 꼬마들이 무슨 잘못이 있어서 거리를 돌면서 구걸하고 쓰레기통을 뒤지며 식사를 해결해야 하는 거야.
그녀의 다짐에 나는 입을 다물었다.
내가 하려는 일은 마교를 세상에서 지워버리는 일이다.
마교를 없앤다고 해서 저 아이들의 생활이 당장에 유복해지고 환경 자체가 달라질 리는 없지만, 분명 억압받는 지금과 비교하자면 조금은 나아지겠지.
-그런데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 거야?
“말 안 해 줬나?”
-그냥 음지로 가자고 하고 나한테 설명도 안 해 줬잖아. 바로 테토가 말했던 마약 제조하는 하우스로 가는 거 아니었어?
“이쪽에 있는 혁명군이랑 일단 만나기로 했어.”
음지에는 차량이 통행하지 않아서 택시를 탈 수도 없었고, 마나를 사용하자니 10분만 걸어도 길모퉁이에서 팔독 기사단이 한 명은 꼭 보였다.
조금 헤매긴 했지만 어쨌든 간판이 나무도 아니고 천에 대충 이름만 휘갈긴 ‘해바라기’라는 이름의 가게를 찾았다.
안으로 들어오니 아직 오전 시간대라서 그런지 술집엔 손님은 없었고, 주인으로 보이는 턱수염이 인상적인 남자가 잔을 닦고 있었다.
-대머리인데 흙의 정령인가?
“고마해라.”
틈을 노려 흙의 정령을 깐 운디네에게 핀잔을 준 후, 카운터 앞에 놓인 의자에 앉았다.
“아직 영업시간 전입니다.”
중후한 목소리로 축객령을 내린 그에게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뜨거운 맥주에 얼음 띄워서.”
-뭐라니 얘는.
“라엘 님이시군요, 기다렸습니다.”
-오잉?
암호를 듣자 고개를 숙이며 정중하게 인사하는 주인장. 운디네가 깜짝 놀란 눈으로 나와 주인장을 번갈아 가며 바라봤다.
“팔독 기사단의 단장인 폴트텍에 관한 자료입니다. 그리고 이건 요번 주에 ‘나이트 비어’라는 곳에서 열리는 제니아라는 가수의 공연 티켓입니다.”
“공연 티켓?”
“폴트텍이 제니아의 광팬인지라 무조건 나타날 겁니다. 그곳에서 거사를 치르시는 게 좋으실 것 같아 구해 뒀습니다.”
“흐음.”
음지의 작은 술집을 하면서 어떻게 이런 걸 구했나 싶었지만 어쨌든 감사히 받았다. 술을 마시고 유흥에 빠진 타깃만큼 암살하기 쉬운 대상은 없으니까.
“그리고 여기서 길을 따라 5분만 가시면 로즈 모텔이라고 나올 겁니다. 저희 안사람이 운영하고 있는 가게이니 음지에서 머무르시는 동안 이용하시면 됩니다.”
“감사를. 아, 노예시장은 어디 있죠?”
“북쪽으로 가시면 됩니다. 음지에서 가장 사람이 많이 몰리는 곳이라 이정표가 많아 찾기 쉬우실 겁니다.”
음음 하고 고개를 끄덕이자 주인장이 한마디 덧붙였다.
“참고로 그들은 인력시장이라고 부르지 노예시장이라고 부르진 않습니다.”
“같잖은 말장난이네요.”
씁쓸하게 웃는 주인장을 뒤로한 채 술집 밖으로 나와 북쪽으로 향한다.
-숙소부터 가면 안 돼? 궁금한데.
“노예를 보러 왔다고 하고 들어왔잖아. 혹시 모르니까 말이랑 행동을 맞춰야지. 그리고 한번 보고 싶기도 해.”
어떤 짓거리를 하고 있어서 타지인들도 이곳에 방문해서 사람들을 사 가는 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