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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한 마도사는 반역자가 되어 있었다-11화 (11/200)

11화

“루이나 언니를 패셨다면서요?”

“난 고작 한 대 때렸다. 걔는 날 몇 대를 후두려 팬 줄 알아?”

과자를 먹고 있자니 미오가 옆에 와서는 내 과자를 같이 먹으며 장난스레 웃었다.

“하나도 안 아파했다면서요. 언니가 금강불괴 같은 거 아니냐고 엄청 욕했어요.”

“금강불괴라. 여기도 그런 존재가 있어?”

“없죠. 그건 그냥 헛소문이잖아요. 도시 전설 같은 거.”

“글쎄.”

내가 아는 바로는 팔미산이라는 곳에 살던 도인이 금강불괴라고 스승님께서 말해 주셨던 기억이 있다.

뭐, 별 중요한 건 아니지만.

“이 과자는 조금 짜지 않아요?”

“그게 마음에 들어. 사실 이런 건 처음 먹어 보거든.”

감자칩이라는 건 내 시대에는 없던 음식이지만, 솔직히 기대는 전혀 없었다.

감자로 만든 건 거기서 거기라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막상 입에 넣고 나니 이건 신세계 그 자체였다.

이 독특하고 중독성 있는 짠맛에 손이 계속 갔다.

미오는 짙은 초록빛의 머리를 손가락으로 배배 꼬며 무언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 듯 입이 달싹달싹 움직였으나, 결국 감자칩만 들어갈 뿐이었다.

“근데 왜 여기 있냐. 톨레스 님을 구해 온 지 3일도 안 됐어. 오랜만의 스승님과 재회인데 더 오래 봐야지.”

“텐 님이랑 얘기하고 계세요, 라엘 님도 스승님이 있나요?”

“당연하지.”

아무렇지 않은 척하고 싶었지만 씁쓸한 표정을 지울 수 없었다. 그분에 관한 이야기만 나오면 절로 그 태양처럼 밝고 아름다운 미소가 떠올랐다.

“아, 죄송해요.”

표정에서 무언가 눈치챘는지 고개를 숙이며 사과하는 미오였지만, 나는 가볍게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사과할 필요 없다고 답해 줬다.

“내 스승님은 엄청 강하고 엄청나게 멋진 분이셨어.”

“라엘 님보다요?”

말똥말똥한 눈동자로 물어 오는 게 귀여워서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럼, 강하셨지.”

동굴에 있는 모든 마법을 깨달았으나 정작 스승님께서 마지막에 내게 보여 주신 스스로 호흡하는 마법이나 시공간을 다루는 마법에 대해서는 어디에도 적혀 있지 않았다.

전투라면 모르겠으나 마나와 마법의 깊이에 있어선 난 아직도 스승님에게 닿지 못했다는 이야기.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내게 아직도 남아 있는 목표가 있다면, 그건 신교를 무너뜨리는 것과 그분에 대한 세상의 인식을 바로잡는 거야.”

“으음?”

이해하지 못했는지 고개만 갸웃거리는 미오의 머리를 한 번 쓰다듬어 준 후, 자리에서 일어난다.

다시 한번 회의 시간이 되었다.

나 혼자서 별동대로서 아르니티에 타격을 주는 것에 대한 안건을 가지고 다시금 토론이 벌어질 걸 생각하니, 절로 한숨이 내쉬어졌다.

* * *

“뭐야. 회의 끝났는데?”

조금씩 내 쪽으로 기울어지는 분위기에서 회의는 끝이 났다. 2시간을 떠들고 있자니 목이 아파서 차를 끓여서 방에서 마시고 있었는데 레온과 에레오나가 들어왔다.

“쉬는 데 방해해서 미안해.”

“잠깐이면 돼. 어차피 아무것도 안 하잖아.”

솔직히 맞는 말이기도 했으니 아무 말 안 하자, 두 사람은 들고 온 접이식 의자를 펴서 앉았다.

방이 좁다 보니 이렇게만 해도 꽉 차는 느낌이 들었지만 두 사람의 표정이 워낙 심각해서 딴지를 걸지는 않았다.

“라엘, 나는 여전히 반대야. 너 혼자서 별동대를 운용하며 적의 주요 인원 암살이나 거점에 피해를 준다는 건 상상 이상으로 위험한 일이야.”

“그 얘기만 벌써 다섯 번은 들었어. 난 이미 실적으로 증명해서 안 통해.”

레펠리아 수용소를 혼자 무너뜨린 것만으로도 저 이야긴 가볍게 논파할 수 있었다.

이런 부분 때문인지, 아니면 술을 마시며 나눴던 탓인지 정신적 지주인 텐과 톨레스는 내 의견에 찬성해 준 상태다.

“정보나 첩보도 중요해. 너 혼자서 가져오는 정보의 양은 한정됨은 물론이거니와, 한 사람만의 정보로는 진위를 파악하기도 쉽지 않아.”

이번엔 에레오나가 말했다.

이 부분은 확실히 그녀가 옳았다고 보이지만, 내 입장에서는 조금 달랐다.

나는 분명하고 확실하게 여러 정보를 얻어 올 자신이 있었다.

고작 수십의 혁명군 멤버보다 훨씬 안전하고 압도적으로 효율적인 방법임을 확신하지만, 누군가에게 말할 수 있는 방법은 아니었다.

“내 나름의 방법으로 할 수 있어. 한번 시켜 보면 알 수 있잖아?”

“괜히 네가 잡혔다가 꼬리라도 물리면 어떻게 하자고? 레펠리아 수용소 건은 고맙지만 그렇다고 생사고락을 함께한 다른 동료들만큼 너를 믿는 건 아니야.”

“거기까지 바라지도 않으니까 걱정 마. 그리고 나를 잡는다고? 대마도사라도 오지 않는 한 그럴 일은 없어.”

결국엔 실적이다.

이렇게 말로만 떠드는 게 아니라 맥 포르치는 물론이거니와 마도사인 숑까지 2:1로 상대한 나이기에 할 수 있는 말이었다.

거기까지 말하자 에레오나도 머뭇거리며 무언가를 말하려다가도 다시 입을 다물었다.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레온은 결심한 듯 주먹을 쥐고 말했다.

“알았어, 라엘. 너를 별동대로 파견할게.”

“드디어 결정한 거야?”

“그래, 다만 한 달 정도는 여기서 생활해 준 다음에 움직여 줘.”

뜬금없는 조건에 의문스러운 표정을 지으니 레온이 어색하게 웃으며 답했다.

“네가 어디서 왔는지는 잘 모르지만, 기본적이고 당연한 지식이 결여되어 있다고 느꼈어. 그런 부분을 채울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크흠.”

맞는 말이다.

팔독 기사단의 기사와 레펠리아 수용소의 델핀이라는 쓰레기의 기억이 있긴 하지만 일부에 불과했고, 직접 피부로 느끼는 것과 단순히 보는 건 엄연히 달랐다.

“우리도 인원이 많아지는 시점이라서 펠른의 정비가 필요해서 한동안은 움직이지 못해. 그동안 여기 사람들에게 믿음도 얻고 지식도 얻으면 좋겠어.”

“좋아, 나 역시 그 부분은 필요하다고 생각했으니까.”

한동안 움직이지 않는다는 부분에서 에레오나는 불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지만, 굳이 입 밖으로 꺼내진 않았다.

“한 달이라, 빠듯하게 준비해야겠구만.”

200년간 변해버린 세상을 공부하려면 시간이 상당히 빠듯했다.

* * *

한 달이라는 시간은 생각보다 금방 지나갔다.

생활 패턴도 정형화되었는데, 아침에 일어나면 루이나에게 끌려가서 대련을 한다.

나도 그녀에게 창술에 대해서 배우는 귀중한 시간이었고 중간에 에레오나와 레온도 와서 이제는 각자 대련하는 시간이 되어 버렸다.

그렇게 오전을 보내고 나면 아침 겸 점심을 먹고 오후에는 책이나 신문을 읽거나 지하에서 잘 잡히지 않는 주파수를 억지로 맞추며 라디오를 들었다.

예전과는 다르게 확실히 세상에 대해 배울 수 있는 방법이 훨씬 다양해지고 접근성이 좋아진 건 내게는 다행이었다.

저녁에는 마나를 다루는 법을 혁명군에게 가르친다.

이게 또 생각보다 성장하는 모습을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한 달이라는 시간은 생각보다 짧았으나 그럼에도 충분히 알찬 시간이었다.

“벌써 한 달이 지났네.”

짐을 챙기는 내 뒤에서 레온은 아쉬운 듯 말했다.

“무조건 시험을 통과하는 사람이 있을 줄 알았는데.”

“톨레스 님은 아까웠어.”

여전히 나를 혼자 보내기엔 불안하다는 의견이 있었기에 그러면 내가 두르고 있는 장벽을 깨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동행해도 된다고 말했으나.

당연하게도 누구도 깰 수 없었다.

그나마 톨레스의 심검은 조금 위험했지만 어쨌든 결과는 0명.

나는 예정대로 혼자서 별동대로서 행동하기로 했다.

“이미 들어서 알고 있겠지만 연락은 3일에 한 번이고…….”

“연락 장소는 매번 바뀐다고. 알아 알아, 몇 번을 들었다고 생각하는 거야.”

“위험한 상황이면 뒤도 보지 말고 도망쳐야 해, 알았지.”

“고만해라.”

시간이 다가올수록 점점 걱정이 심해지더니 이제는 완전 보호자처럼 간섭해 오는 게 슬슬 귀찮아졌다.

“그럼 가 보마.”

조용하게 떠나려 급하게 짐을 동여맸으나 밖에서 우다다 들려오는 발걸음 소리에 한숨이 쉬어졌다.

* * *

지하 벙커를 나오면 쨍한 햇빛이 반겨 줄 거로 생각했건만, 이게 웬걸. 어두운 하늘과 함께 대지엔 축축한 폭우가 쏟아지고 있었다.

“끄아.”

로브의 후드를 쓰며 주변을 둘러본다. 폐허가 된 도시 펠른에 숨어 있는 지하 벙커는 다시 봐도 기묘한 위치에 숨겨져 있었다.

“첫 미션이 암살이니까 우선 제도로 다시 돌아가긴 해야겠네.”

암살 대상은 우습게도 처음 제압했던 팔독 기사단의 기사단장 폴트텍이라는 남자였다.

팔독 기사단은 가장 활동이 활발하고 규모가 큰 기사단이지만, 최약의 기사단으로 실상 비중 없고 더러운 일을 처리하는 청소부 역할.

그만큼 퍼지들과 가장 가깝게 생활하며 많은 악행을 저지르고 있는 게 바로 팔독 기사단이었다.

“오는 데 5일 정도 걸렸지.”

쉬는 게 귀찮아서 중간중간 사람들에게 마법을 걸어 줬음에도 5일이나 걸려서 도착했다.

혼자 가면 3일 정도로 줄일 수 있겠지만 여전히 멀었다.

마침, 비도 오겠다 딱 좋은 방법이 있었다.

“운디네.”

잠시 눈을 감고 집중하여 그녀를 부르자 손바닥만 한 크기의 푸른 머리칼을 가진 작은 꼬마의 모습을 한 소녀가 튀어나왔다.

-오랜만이야, 드디어 그 칙칙한 동굴에서 나왔네?

“말로 변해 줄래?”

-뭐?

“말. 변신해 달라고.”

다짜고짜 불러서 할 말인가 싶다가도 뭐 어떤가. 정령왕과의 계약을 통해서 내가 지정한 정령들은 내 부탁은 가능한 들어줘야 하는 게 조항이다.

-오랜만에 불러서 하는 말이 인사도 아니고, 사과도 아니고 나를 한낱 짐승인 말로 변하라고?

“굳이 말로 할 필요는 없고. 자존심 상하면 유니콘 같은 거로 하면 되잖…….”

퍽 하고 운디네가 날린 물 덩어리가 내 얼굴에 직격한다.

깔깔대며 웃어 대는 운디네를 지긋이 바라보니 한참을 웃던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유니콘의 형태로 변했다.

내부가 관통되는 투명함.

마치 장인이 깎아낸 유니콘 얼음 조각상을 보는 것만 같았다.

“그럼 감사히!”

철푸덕.

운디네의 위에 앉으려던 나는 그대로 관통되며 바닥에 떨어졌다. 힘껏 내리찍은 엉덩이가 아파 문지르며 녀석을 바라보니 다시금 깔깔거리며 대놓고 비웃고 있었다.

-아유 통쾌해! 좋아, 이 정도면 된 것 같아.

“진짜 정령계 가서 다른 정령이랑 계약하고 싶게 만드네.”

-응 못 하죠? 이미 정령왕이랑 계약 끝났죠?

낼름 혀를 내미는 유니콘의 위에 올라타니 녀석이 점점 하늘로 떠오르기 시작한다.

“야! 야! 날면 안 돼. 은밀하게 가야 한다고.”

-바라는 것도 많아요.

그래도 운디네는 다시 땅으로 내려와 말처럼 달리기 시작했다. 비가 와서인지 힘이 상당히 좋아서 금방 도착하겠구나 하고는 생각했는데, 반나절 만에 예정 지점에 도착했다.

“확실히 비가 와서 빠르네.”

-내가 대단한 거야. 이제 간다?

“라푼젤이랑 테토도 부를 건데, 보고 가지?”

-그 공주병은 또 왜?

-오랜만이야, 라엘. 여전히 내 취향이네?

-벌써 왔네. 하루 종일 얘가 불러 주는 거 기다리니?

-그럴 리가. 바쁜데 겨우 시간 내서 왔다, 얘.

이번에는 연초록 머리의 손바닥만 한 소녀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것들은 하여튼 모이면 말이 많아진다.

“테토.”

-오랜만이군.

다른 두 녀석과 마찬가지로 손바닥 정도의 크기지만 두꺼운 목소리와 짧은 머리. 땅의 정령들은 과묵해서 마음에 들었다.

-어머, 쟤는 아직도 머리가 저래? 탈모 아냐?

-몰랐어? 땅의 정령들은 원래 조금씩 부족해. 인간들이 왜 땅에 씨앗을 뿌리는지 알아? 쟤네 탈모인 거 불쌍해서 이거라도 자라라는 거잖아.

-내가 분명 저 두 녀석이랑 같이 부르지 말라고 부탁하지 않았었나, 라엘.

“나도 후회 중이야. 너네 그만 떠들고 나한테 와봐.”

한참을 떠들던 운디네와 라푼젤이 투덜거리며 곁으로 다가온다.

“저기 큰 도시 보이지.”

-저게 뭐야? 잠깐 인간계에 안 왔더니 세상이 바뀌었네. 인간은 참 신기한 것 같아.

-인간계에 계약자가 없어진 지 벌써 몇 년이나 지난 거지?

-땅의 기운이 현저히 약하군. 풀과 나무도 거의 보이지 않는다.

각자 한마디씩 하는 녀석들을 가볍게 무시해 주고 내 말을 이어 간다.

“이제부터 신관, 병사, 귀족 등. 너희가 얻을 수 있는 정보는 전부 나한테 가져와.”

-오케이! 나는 정령왕한테 계약 파기해 달라고 하러 갈 건데, 너희 둘도 갈래?

-라엘이 조금만 더 못생겼으면 그랬을 텐데, 아직 내 취향이라서 버텨 볼래.

-범위가 너무 넓다. 조금 수정이 필요하군.

“저기 보이는 황궁 있지? 저기를 기점으로 할 수 있는 데까지 해 봐. 아마 황궁에는 접근이 불가능할 거야. 그건 조심하고, 그리고 제복 입은 놈들 우선해서.”

-알았다.

테토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땅으로 들어가 버렸다. 나머지는 이 두 놈인데.

-뭐, 오랜만에 인간 세상 탐방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 기대해, 라엘. 물이나 흙과 다르게 바람은 어디에든 있으니까.

다행히도 라푼젤도 크게 투정 부리지 않고 바람이 되어 흩날려갔다. 마지막은 운디네인데.

-아, 진짜 하기 싫은데. 솔직히 저기 물은 인간들이 이상한 짓거리 해서 조금 불쾌하단 말이야.

계곡물 등을 소독하고 정화하는 작업이 마음에 안 드는 운디네였지만, 결국엔 한숨을 내쉬며 비가 되어 사라졌다.

“에휴, 저것들 언제 한 번 기강을 잡아야 하는데.”

어쨌든 일단 정보에 관련된 부분은 해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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