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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한 마도사는 반역자가 되어 있었다-10화 (10/200)

10화

“흐아암.”

한숨 자고 침대에서 일어났으나 지하 벙커라서 그런지 내부에선 시간을 알기가 어려웠다.

‘방에 시계를 놔 달라고 해야겠네.’

푹 자고 일어난 느낌이긴 한데 몇 시간을 잤는지 알지를 못한다. 아니 잠깐만.

“이거 동굴에서도 이랬는데?”

시공간을 차단하는 결계 탓에 시간에 대해서는 거의 무감각해질 정도였으니까.

스승이 준비해 놓은 시계가 아니었으면 동굴 내부에서 5년이 지났는지도 몰랐을 거다.

방 밖으로 나와서 복도에 걸려 있는 커다란 시계를 보니 시간은 오전 4시 13분.

아직 다들 한창 자고 있을 새벽 시간대.

방금 일어나서인지 공복이 느껴져 간단한 요깃거리라도 먹을 겸 주방으로 향하니 주방 불이 아직 켜져 있었다.

빼꼼하고 고개를 들이미니 안에서는 간부 중 가장 나이가 많은 텐과 톨레스가 껄껄 웃으며 술잔을 정답게 나누고 있었다.

“오! 라엘 님 오셨군요.”

“아직 이른 시간인데 부지런하십니다.”

“저도 모르게 일찍 일어나 버렸네요. 두 분은 밤새워서 드신 건가요?”

내 말에 멋쩍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두 사람. 술에 취해서 그런지 평소의 두 사람과는 분위기가 많이 달랐지만, 오히려 이쪽이 더 정감이 갔다.

“괜찮으시면 저도 한 잔 주시겠습니까? 오랜만에 한 잔 마시고 싶네요.”

“하하! 좋습니다!”

톨레스가 꺼이꺼이 웃으며 술잔을 건넨다.

일어나자마자 술이라. 예전에 무식한 기사단 녀석들이랑 술을 마실 때면 늘 이랬다. 마시다가 쓰러져 잠들고 일어나면 그 자리에서 다시 마신다.

장장 3일을 그 짓거리를 반복했더니 스승님이 엄청 화가 나 찾아와서는 뒤집어엎었던 기억이 있다.

“안주는 제가 간단히 만든 겁니다. 입에 맞으실지 모르겠네요.”

텐이 내민 것은 한참 전에 만들어서 이미 다 식은 야채 볶음. 하지만 배가 고팠기 때문인지 술과 함께 아주 술술 들어갔다.

“두 분은 언제부터 친구 사이셨습니까?”

내가 홀짝이며 묻자 텐은 잠시 고민하는 표정을 지었으나 톨레스는 호탕하게 웃으며 답해줬다.

“세인트 학교에서 만났었죠. 이 친구랑 저랑 동문으로 219기입니다. 아주 날아다녔죠.”

“세인트 학교 출신이십니까? 거기다 219기?”

순간 나도 모르게 “나 54기야!”라고 말할 뻔한 걸 가까스로 다물었다. 이런 곳에서 후배님들을 만날 줄이야.

“그런데 퍼지들은 학교에 못 다닌다고 미오에게 들었습니다만?”

“예전에는 퍼지가 아니었습니다. 나름대로 이름 있는 검술 명가의 장남이었죠.”

톨레스가 씁쓸하면서도 익숙한 표정을 지으며 답했다. 무언가 더 깊은 과거가 있는 듯했지만 이미 극복한 노인의 모습이었다.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신교의 장학생으로 선발되어 학교를 다녔지만, 그들의 더러운 뒷면을 보고 뛰쳐나왔죠.”

텐의 말에 눈이 번쩍 뜨여졌다.

신교의 더러운 뒷면?

“혹시 그 뒷면이라는 것에 대해 실례가 안 된다면 자세히 들을 수 있을까요?”

톨레스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으나 텐은 잠시 고민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죠, 라엘 님의 목표는 저희처럼 아르니티가 아니지요.”

“예, 저는 신교가 목적입니다.”

혁명군이 아르니티를 무너뜨리건 아니면 독립을 얻어내건 사실 내게 가장 중요한 건 신교의 완전한 파괴와 그들의 과거를 세상에 알리는 것이다.

혁명군이 모든 과업을 이루더라도 신교의 잔재가 있으면 나는 계속해서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최대한 간추려서만 설명드리겠습니다.”

“부탁드립니다.”

텐은 본인이 직접 겪었던 이야기에 대해서 풀어주었다.

신교라는 새로운 이름을 쓰더라도, 마교가 악신을 섬기는 종교인 이상 그 본질이 변할 수는 없었다.

그들은 국교가 되기 위해 겉으로는 멀쩡한 교리를 내세웠으나, 고위층 중에서 자신들에게 동조할 사람을 엄선하여 포섭했다. 그리고 비밀리에 악신을 기쁘게 할 행위를 계속했다.

예를 들면, 귀족과 주교들의 친목을 다지기 위한 식사자리는 실은 인육 파티.

재정적으로 어려운 아이들을 위한 기숙사 지원은 그들만을 위한 성적 착취 기숙사.

주교들의 이름 아래에서 벌어지는 정화의식이란 이름의 친족살해 등.

하는 짓거리가 예전보다 더욱 괴팍하고 악랄해졌으나, 겉으로 봤을 때는 선함을 칭하고 있다는 것이 더 악질이었다.

사람은 선의와 명분이라는 가면 아래에서 이토록 떨어질 수도 있었다.

신교의 진실을 알게 된 자들은 신교가 제공하는 쾌락에 중독되거나 협박을 통해 열렬한 신도가 되고, 신교의 위장을 유지하는 조력자가 된다.

설사 몇몇 악행이 발각된다고 해도, 단순히 일탈 범죄자들의 행동으로 간단히 조작되어 버린다.

신교는 악신을 섬기는 고위층과 위장된 겉면만을 섬기며 악신의 이름에 기도를 드리는 일반 신도로 나누어져 있는 것이다.

“입에 담기도 힘든 이야기를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치 입을 소독하려는 듯 술을 마시는 텐에게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하자 텐은 미소로 답해줬다.

“그런데 라엘 님, 이번엔 제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예, 제가 답할 수 있는 것이라면.”

내 답에 톨레스는 잠시 술잔을 만지작거리더니 결심한 듯 입을 뗐다.

“정말 혼자서 별동대 역할을 해내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오늘 있던 회의에서의 일.

레온과 에레오나의 논쟁의 해법으로 내가 내놓은 답.

나는 더없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예, 충분하죠.”

“별동대라는 건 생각보다 다루는 일이 많습니다. 레펠리아 수용소를 단신의 힘으로 무너뜨리신 건 정말 엄청난 성과이시지만, 별동대는 단순히 강함으로만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에레오나에게 오늘 하루 종일 그 이야기를 들었죠. 덕분에 외웠습니다. 정보 수집, 요인 암살, 군사 시설 테러, 민심 파악, 정찰 등. 아직도 에레오나의 목소리가 귓가에 맴도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 몇 사람은 더 데려가시죠. 가령 저는 어떠십니까. 늙은 몸이긴 하나 아직 검을 쥘 두 손과 뛸 수 있는 두 다리가 남아 있습니다.”

“톨레스 님은 저보다 건강해 보이십니다.”

내가 웃으며 말하자 톨레스와 텐은 껄껄 웃으며 잔을 부딪쳤다.

“하지만 5년을 수감되셨다가 이제 막 돌아오셨습니다. 미오와 톨레스 님은 사제지간이라고 들었는데, 미오도 챙겨주셔야죠.”

“끄흠.”

“그럼 저는 어떠십니까?”

“제가 여기 온 지 고작 하루가 지났지만, 텐 님이 없으면 레온의 심적 부담감이 많이 커질 거라는 건 눈치챘습니다.”

“…….”

“두 분뿐만이 아닙니다. 루이나도 그렇고 심지어는 미오나 에딘 같은 꼬맹이들도 이곳에 꼭 필요한 존재들입니다. 하지만 저는 어떻습니까?”

탕탕 가슴을 치는 제스쳐를 보인다. 몇 잔 마셨는데 나도 살짝 알딸딸한 느낌이 든다.

“이곳에 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았지만 저는 누구보다 강합니다. 솔직히 다른 사람을 데려가지 않는 이유 중 하나는 걸리적거리기 때문도 있습니다.”

술기운 탓인지 강하게 얘기한 느낌이 있지만 틀린 말은 아니었다. 애초에 마법사는 다수와 함께 움직이는 것보다 체력만 된다면 혼자 돌아다니는 게 효율이 높았다.

“그렇게 말씀하시면 할 말이 없군요.”

“이 나이 먹고 누군가의 발목을 잡을 수도 있다는 느낌은 처음이군요.”

“두 분 잘못이 아닙니다.”

“아뇨, 덕분에 꽤나 오래 잊고 있던 열정이 불타는 기분이군요.”

웃으며 잔을 내미는 두 사람을 보며 나 역시 잔을 들이밀었다.

짠 하는 소리가 다시금 주방에 울려오고.

한참을 같이 먹고 마시고 하며 슬슬 취기에 어지러움이 느껴지는 순간.

“어디 있나 했는데 여기 있었네.”

“이게 도대체 무슨…….”

다른 주방 아주머니들과 나를 찾아온 루이나가 들어오면서 한숨을 내쉰다. 당황해서 내 옆에 있는 고참 두 분에게 의지하려 했으나 이게 웬걸.

두 사람은 이미 자신들의 술잔과 술병을 숨기고 태연한 표정으로 아침 식사 준비를 돕고 있었다.

“와, 달인은 달인이시네들.”

내가 혀를 두르며 말하자 두 사람은 웃음만 지을 뿐 모른 척했다.

“이모, 숙취 해소제 있어요?”

“저번 회식 때 쓰고 몇 개 남겨 둔 게…… 여기 있다.”

“자, 이거 마셔.”

“…….”

주방 이모에게 받아든 숙취 해소제를 건네는 루이나에게 나를 챙겨주는 건가 싶었으나, 그 뒤에 이어진 한마디.

“바로 대련장으로 가자. 오늘 아침에 나 수련하는 거 도와주기로 했잖아.”

“내가?”

일단 발뺌한다.

기억은 나지만, 술에 취해서 기억 못 하는 척했다. 루이나는 웃으며 네모난 무언가를 꺼냈고.

-내일 아침 훈련 좀 도와주라.

-아 알았어. 알았으니까 귀찮게 좀 하지 마.

음질은 별로지만 확실하게 나와 루이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녹음하고 있는 줄은 몰랐지?”

“그런 걸 왜 가지고 있는 거야.”

“회의 녹취하는 게 내 일이거든.”

내 손목을 잡고 그대로 훈련장으로 끌고 가는 루이나의 뒤를 따를 수밖에 없었다.

“술을 마셔서 힘 조절이 어려운데.”

“조절하지 마.”

훈련장에서 나무 봉을 들며 몸을 풀기 시작한 루이나.

‘취기부터 좀 풀어야겠다.’

자리에 그대로 주저앉아 가부좌를 틀고 눈을 감으며 잠시 명상에 잠겼다. 몸 안에 있는 마나를 뱉어내고 대기 중의 마나를 들이킨다.

그와 동시에 몸 안에서 흡수한 마나를 정결하게 뒤바꾼다. 정결하고 순수한 푸른빛의 마나가 온몸을 돌며 순환한다.

“후우.”

“정신통일? 나도 좋아해.”

“아 깜짝이야.”

천천히 눈을 뜨니 바로 앞에서 지켜보고 있던 루이나 때문에 깜짝 놀랐지만, 어쨌든 취기는 가셨다.

“몸이 많이 별로야? 너무 힘들면 내일 해도 괜찮아.”

“여기까지 끌고 와 놓고 무슨. 됐어, 취기는 가셨어.”

명상하는 모습이 취기 때문에 힘들어하는 거로 보였나 보다.

루이나도 몸을 다 풀었는지 훈련장 중앙으로 향했고 나도 그녀의 맞은편에 섰다.

“룰은?”

“한 사람이 기절할 때까지라고 하고 싶지만, 그건 조금 과한가?”

“많이. 대충 졌다고 생각되면 알아서 기권하자고.”

“그럼, 시작!”

호쾌하게 앞으로 치고 나오며 장봉을 휘두르는 루이나. 솔직히 처음에는 조금 귀찮았지만 나도 배울 게 있는 시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맨몸임에도 루이나의 공격에는 손속이 없었다. 쾅 하는 소리는 진심으로 나를 한 방에 쓰러뜨리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었으나.

“마나에 의한 육체 강화?”

“나도 무술을 좀 배우고 싶었거든.”

대답이 의외였는지 루이나는 놀란 표정을 짓다가도 바로 호쾌하게 웃으며 장봉을 휘둘렀다.

“그럼 나는 네가 마법을 쓰게 만들어야겠네!”

화려하진 않지만, 군더더기 없는 몸놀림.

간결하고 위력적으로 장봉을 휘두르며 앞으로 치고 나오려는 루이나였지만, 나는 단 한 걸음도 뒤로 물러나지도, 방어하지도 않았다.

그저 맞아 주면서 역으로 내 쪽에서 앞으로 치고 나갔고, 결국 노도와도 같은 기세를 멈추고 루이나가 뒤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맥 포르치는 이것보다 더 강렬했어.”

“나도 알아.”

대놓고 비교해서일까 아니면 자신의 힘이 전혀 통하지 않는다는 것 때문일까. 루이나는 이빨을 강하게 물며 자신의 몸에 마나를 정렬했다.

나와 마찬가지로 육체 강화.

예전에도 종종 사용하던 무인들이 있었다. 물론, 많지는 않았지만.

하지만 이 세상은 마나를 통한 육체 강화가 당연한 시대인 듯했다.

맥 포르치도 그렇고 루이나도 그렇고 심지어는 미오도 할 줄 알았으니까.

다만, 루이나는 아직 오러까지는 사용할 수 없는 듯했다.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다시금 장봉과 나의 어깨가 부딪친다. 허나, 이번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무런 피해도 입지 않은 내 모습에 루이나는 잠시 공포에 물든 표정을 지었고, 몸을 뒤로 빼려던 순간. 이미 내가 그녀의 장봉을 한 손으로 쥐고 가볍게 꺾어 부러뜨린 상태였다.

“이게 무슨…….”

‘과했을까?’

보통의 무인이라면 여기서 마음이 꺾여도 이상하지 않았다. 자신의 무력감에 자괴감을 느끼며 무기를 놓아도 해 줄 말이 없었다.

자신이 평생을 단련해 온 모든 것이 통하지 않으니까.

하지만 루이나는 달랐다.

“진짜, 장난 없네.”

“방금 겁먹었던 거 같은데?”

“맞아, 그리고 극복했어.”

부러진 봉을 버리고 주먹을 쥐고 자세를 잡는 루이나.

그대로 달려든다. 무기를 들고도 상처 하나 입히지 못한 적을 향해 두려움을 가졌으나, 순식간에 그걸 이기고 싸움을 이어 갔다.

‘허, 잘못 봤었네.’

그녀는 무인이었지만 그 이상으로 타고난 싸움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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