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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한 마도사는 반역자가 되어 있었다-8화 (8/200)

8화

허전함에 공허한 한숨만 절로 나온다.

막상 해볼까 하고 주먹을 쥐니 끝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무지갯빛의 마나가 이루던 장관이 사라지고 수용동에 펼쳐 놨던 보호막도 없애자 하나둘 사람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환희와 기쁨 그리고 감사가 얼룩진 그들의 눈물과 웃음을 보니 또 그렇게 허무하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라엘 님!”

모두를 이끌고 수용동을 제압한 톨레스가 급하게 뛰어온다.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정말 감사합니다.”

“필요한 일이라 한 것뿐입니다.”

그렇게 말해도, 이들에겐 단순히 수용소에서 간수들의 장난감으로 살아가다 죽어 갈 인생 자체가 뒤바뀌는 일이었겠지.

톨레스의 뒤로 1174번이라고 적힌 죄수복을 입은 은발의 여인이 다가왔다.

다른 수감자들에 비해서는 눈에 띄는 상처도 없고 아직 눈동자에 의지가 살아 있는 걸 보면 이곳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여인 같았다.

“에레오나라고 합니다, 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별말씀을.”

오늘 하루 종일 감사만 듣겠구나 싶었지만 뭐 그렇다고 나쁜 기분은 아니었으니까.

“실례가 안 된다면 레펠리아 수용소를 무너뜨린 이유를 알 수 있을까요?”

“에레오나 님!”

톨레스가 화들짝 놀라며 에레오나를 말리려 했으나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녀는 지금 내게 무슨 목적을 가지고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었고, 나는 간단하게 레온과의 이야기를 해 주었다.

“혁명군에 들어오고 싶어서…….”

에레오나는 무언가 당황스러워 내 말을 음미하듯 중얼거렸으나 톨레스는 감동을 받은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았다.

“스승님!”

“라……라엘 니이임!”

저 뒤에서 들려오는 꼬맹이들의 목소리.

체력적으로 훨씬 뛰어난 미오가 먼저 다가와 톨레스에게 몸을 날려 와락 안겼고, 톨레스는 처음엔 놀랐다가 다정하고 그리움이 묻어 나오는 손길로 그녀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리고 에딘은.

“라엘 님! 정말 대단하십니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나한테 존댓말은 물론이거니와 ‘님’자를 붙이기 시작했다.

“라엘 ‘님’?”

“정말 엄청나셨습니다! 설마 단신으로 레펠리아 수용소를 무너뜨리시다니! 게다가 맥 포르치와 숑을 상대로 승리까지! 진짜 최고십니다!”

“꼬맹아. 이렇게 대우가 확확 바뀌는 것도 참 웃기지 않냐?”

“에딘 진짜 꼴사납네.”

나와 미오의 말에 에딘은 잠시 주춤거렸지만 어쨌든 흥분이 가시지 않는다며 계속 말을 이어 나갔다. 대부분 나에 대한 극찬과 마법에 대한 이야기였지만 무시했다.

“사자 혁명군의 미오와 에딘.”

두 사람을 보더니 에레오나는 잠시 입을 다물곤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방금까지도 내 존재에 대한 의심을 품고 있었던 것 같은데, 두 사람의 등장으로 나름의 믿음이 생긴 듯했다.

‘생각보다 침착하네.’

너무 좋게만 풀려 가는 상황을 의심한다.

아무리 자신을 구해 준 은인이어도 그 목적에 대해 명확하게 파악한다.

아마 이건 그녀 자신의 고질적인 성격이 아닌, 어깨에 짊어지고 있는 많은 것들의 무게가 그녀를 이렇게 만든 것이리라.

특히 이곳에 끌려온 이후로 아마 자기 자신에 대한 죄책감과 자책감이 온몸을 옥죄여 왔겠지.

‘저런 사람들 많이 봐 왔지.’

책임감의 무게에 짓눌려 있으나 포기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은 수없이 많이 봐 왔고, 나 역시 그들 중의 하나였다.

“두 사람이 같이 있다면 믿을 수 있긴 하네.”

조용히 중얼거리는 그녀를 보며 피식 웃음을 흘리며 톨레스에게 말했다.

“이제 그만 돌아가시죠.”

승전보를 울리러 갈 시간이다.

* * *

펠른.

처음 사자 혁명군을 만났던 천막촌과는 다르게 이곳은 폐허가 된 도시의 지하에 위치하고 있었다.

아르니 제도와는 꽤나 떨어져 있는 장소였지만, 사자 혁명군은 이곳 지하에 만들어진 벙커 안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우와.”

그리고 솔직히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아니, 동굴에선 살아 봤는데 설마 지하에 이런 훌륭한 시설을 만들어 두다니.

미래는 참으로 신비로운 기술이 넘쳐 나고 있었다.

“대단하죠? 예전에 무슨 종교에서 만들었다고는 들었는데 버려졌다고 하더라고요.”

“음? 너희가 만든 게 아니야?”

“천막이나 짓고 사는 저희가 이런 걸 어떻게 만들어요.”

미오의 말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이 정도 기술이 있으면 천막촌 같은 곳을 거점이라고 하지는 않았겠지.

“펠른은 저희 사자 혁명군의 본거지와도 같은 곳이에요!”

“알았다, 조금 떨어져라.”

“쪽팔리게.”

에딘이 과하게 내게로 달라붙어 오는 걸 보며 한숨을 내쉬는 미오. 결국 두 사람은 투덕거리기 시작했는데, 여기까지 오는 5일간 이 장면만 거의 스무 번은 넘게 본 것 같다.

“어릴 땐 다 싸우면서 크는 거지요.”

“저러던 애들이 이제 나중 되면 손잡고, 뽀뽀하고, 이 새끼 저 새끼 하다가 애 아빠, 애 엄마 하는 거라고 듣긴 했습니다.”

“절대로 아니에요!”

“라엘 님 말씀이 심하십니다!”

톨레스와 나의 대화가 들렸는지 울컥해서는 나를 노려보는 두 사람.

“여기가 사자 혁명군의 본진 펠른. 확실히 우리 부대랑은 차원이 다른 설비네.”

“에레오나가 이끌던 혁명군은 달랐어?”

5일 동안 걸어오면서 비슷한 나이인 걸 알게 된 에레오나는 말을 놓기로 했다.

물론 실제로 치면 나는 227살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젊은 마음을 잃고 싶지 않다.

‘나는 27살이야.’

“우리는 게릴라전을 주로 하는 별동대를 운용했으니까. 사자 혁명군보다 인원도 훨씬 적고 텐트를 치거나 나무 위에서 잘 때가 대부분이었지.”

은발을 한 번 쓸어 넘기며 답하는 에레오나.

“그 때문에 에레오나 님이 이끌던 혁명군은 자벨린 부대라고 불렸습니다.”

“사실 혁명군이라는 이름을 달기도 뭣한 인원이긴 했지만 말이야.”

톨레스의 말에 피식 웃는 에레오나.

그러다 주변을 돌아보더니 눈이 크게 뜨여진다.

“에레오나 님!”

“진짜 에레오나 님이라고? 정말로?”

“살아 계셨군요!”

“너희들 어떻게 여기에?”

에레오나를 보곤 눈물을 글썽이며 다가온 8명 정도 되는 인원의 남녀. 그들의 보호구에는 하나같이 하늘을 꿰뚫는 창의 문양이 그려져 있었다.

“저들이 바로 그 자벨린 부대인가요?”

“맞습니다, 아무래도 레온 님이 펠른으로 이동하며 흩어진 자벨린 부대원들을 모으신 것 같군요.”

얼싸 끌어안고 서로의 생존을 축복하고 감사하는 그들을 보며 다시금 그 더러운 수용소를 부숴 버리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잠시 기다리고 있자니 레온과 텐이 헐레벌떡 뛰어온다. 처음엔 당혹스러운 눈이었으나 이내 나를 향해 고개를 깊게 숙였다.

“동포들을 구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이 정도면 믿음을 심어 줄 수 있었을까?”

“충분히, 정말 충분하게.”

다시 고개를 들었을 때 나를 향한 레온의 눈동자는 동경과 감사로 얼룩져 있었다.

“그럼 다행이야. 혹시나 싶어서 일단 증거들도 몇 개 가져오긴 했는데.”

“미오와 에딘이 동행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증거가 됩니다.”

자신들을 향한 믿음의 말이 좋았는지 가슴을 냅다 들이미는 미오와 에딘.

숑의 지팡이와 맥 포르치의 장갑은 괜히 가져왔나 싶었다.

장갑은 몰라도 지팡이 쪽은 한 번 써 볼까 했지만, 워낙 독기에 심하게 침식되어 일반인은 건드리기도 힘든 수준이었고 나와 그닥 맞지도 않았다.

‘그러고 보니 내 지팡이는 어디 갔지.’

나름 귀한 물건이었는데 하고 생각에 빠지려다 특이한 상황을 보게 되었다.

레온과 에레오나가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던 것.

처음엔 연인끼리의 정인가 싶었으나 그렇게 달콤하고 따사로운 감정은 아닌 듯했다.

“둘이 사이가 안 좋나요?”

“레온 님과 에레오나 님이요? 아뇨, 그렇진 않습니다.”

“오히려 두 분은 어릴 때부터 함께 지내신 소꿉친구십니다.”

감동의 재회를 하고 있던 톨레스와 텐에게 가서 묻자 두 사람은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답해 주었다.

“그렇게 서로를 반기는 표정은 아닌데요.”

“각자의 신념 차이 탓에 떨어지게 되셨거든요. 레온 님은 추방된 퍼지들을 최대한 수습하고 구하는 방향으로 혁명단을 운영하셨다면, 에레오나 님은 아르니티를 무너뜨리는 방향으로 움직이셨습니다.”

“…….”

어느 쪽이 맞고 틀리다고 할 사안은 아닌 듯했다.

저 거대한 제국 아르니티에게서 독립을 하기 위해선 공격적으로 움직이면서도 내실을 다질 줄 알아야 했다.

“일단 우리 부대원들을 모아 준 건 고마워, 레온.”

“먼 길 오느라 고생했어, 일단 오늘을 푹 쉬고 내일 이야기하자.”

“고마워.”

“이들에게 먹거리와 쉴 장소를 제공해 줘, 텐. 그리고 라엘 님은 저에게 잠시 시간을 내주실 수 있으실까요?”

“그러지 뭐.”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고 안내하는 레온의 뒤를 따라 걷는다. 이전의 텐트와는 차원이 다른 설비에 조금 감탄한 건 덤이었다.

“출출하실 테니 식사를 미리 준비해 뒀습니다.”

“…….”

구운 감자를 시작으로 베이컨과 달걀 프라이 그리고 수프. 따끈따끈한 요리들을 보며 나는 짜게 식은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

“밖의 사람들은 무엇을 먹지?”

“예?”

“저만한 인원한테 이 정도 식사를 제공할 수는 없을 거 아니야.”

내 말이 꽤나 정곡을 찔렀는지 씁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슬며시 식사를 밀어 두고 수프만 챙긴다.

“남은 건 꼬마들한테 줘. 한창 성장기인 애들 먹거리 뺏어 먹는 기분이라 썩 내키지 않네.”

“알겠습니다.”

레온이 슬며시 음식을 챙겨 뒤따라온 텐에게 건네준다. 텐이 나가고 문득 궁금증이 생겨 입을 뗐다.

“그런데 재정적인 부분은 어떻게 하고 있지? 여기 인원이…….”

“저희 혁명군은 즉시 전력감만으로 놓고 본다면 200명 정도 됩니다. 물론, 펠른 말고 곳곳에 나누어져 있지만요.”

그 말에 나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것밖에 안 된다고?”

아르니티 제국의 규모를 생각하면 이백은 정말 택도 없는 숫자였기에 한 소리였지만, 레온도 아는지 씁쓸한 표정으로 답했다.

“실은 1년 전, 아르니티의 흉계에 빠져 대부분의 전력을 잃었습니다. 그 탓에 저희 혁명군은 지금 당장 활동은 불가능하다고 봐야 합니다.”

“레펠리아 수용소에서 데려온 인원이 200명 정도 되는 거로 알고 있어. 여기 설비를 봤을 때 수용은 가능해 보이지만, 당장에 식사 같은 부분은 문제일 것 같은데.”

“확실히 갑작스러운 상황이긴 하지만 괜찮습니다. 재정적인 부분에서는 확실한 지원이 있으니까요.”

“흠.”

조금 궁금하긴 했지만 입장 상 거기까지 말해 주진 않을 거라는 걸 알고 있었기에 다음으로 넘어갔다.

“그래서 나를 부른 이유는?”

“다시금 감사와 함께 저희에게 협력해 주시길 바라서입니다.”

고개를 깊게 숙이며 말하는 그의 목소리에는 간절함이 담겨 있었다.

“저희 사자 혁명군은 지금 위태로운 상태입니다. 1년 전의 상처가 여전히 저희의 발목을 붙잡고 있어 혁명군 활동을 제대로 한 지는 꽤 되었습니다.”

“…….”

“그렇기에 라엘 님이 필요합니다. 홀로 레펠리아 수용소를 무너뜨리실 정도의 힘이라면, 진정한 자유도 꿈은 아닙니다.”

“이미 너희 혁명군에 들어간다고 얘기했었는데?”

내가 의아한 표정으로 되묻자 레온은 천천히 고개를 들며 답했다.

“정중히 모시고 싶었습니다. 조촐해 보이더라도 환영회와 함께요.”

‘그렇구먼.’

단번에 그의 말뜻을 이해했다.

이미 혁명군에 들어오는 게 확정인 나에게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단순했다.

레펠리아 수용소를 무너뜨린 내 힘을 보니 절대로 놓치면 안 될 존재라는 걸 분명히 인지했다.

그러니 내게 어필하는 중이었다.

당신이 필요합니다.

여기에 정을 붙여 주세요. 우리는 최대한 당신에게 맞춰 드릴게요.

실제로 나와 친해지고 싶다는 의도라기보다는, 그냥 놓치면 안 되니 무엇이든 내가 여기 남을 구실을 만들어 두고 싶은 것이리라.

어차피 서로 이용하는 관계다.

까짓거 장단에 맞춰 주는 게 여기서 생활하는데 더 편할 거다.

속이 뻔히 들여다보이는 레온에게 나는 방긋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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