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흐음?”
‘대마도사’라는 칭호는 현시대 아르니티 제국 최고의 마법사에게 쥐어지는 극히 영광스러우며 후대에까지 길이길이 남는 칭호이다.
부정과 부패가 난무하는 현시대에서도 이 ‘대마도사’만큼은 순수 실력으로 정해지며, 황제가 바뀔 때마다 이 대마도사 역시 마도 대회를 통해 정해진다.
그리고 현시대의 대마도사인 알로이스 뫼르엔 델폰은 한 세기에 나올까 말까 한 천재 중의 천재라고 불렸다.
희대의 천재인 크리스티나 엘리나와 동급이라는 것이 세간의 평가였으나. 그걸 입 밖으로 내뱉는 간이 큰 사람은 없었다.
현 대마도사와 국가를 전복시키려 한 추악한 반역자를 비교하기라도 했다간 그 자리에서 목이 날아가도 이상하지 않으니까.
그런 알로이스는 지금 자신의 수정구 앞에서 무언가 이상함을 느꼈다.
그가 가지고 있는 수정구는 ‘펠리아의 눈’이라는 아티팩트로, 과거와 미래를 예지하는 힘이 있는 물건이었다.
물론 엄청난 마나가 쓰이지만, 무언가 찜찜한 신탁을 받은 그가 펠리아의 눈을 사용하자 북서쪽에 강한 경고를 알리고 있었다.
‘이 방향이면 레펠리아 수용소인데?’
알로이스는 더더욱 모르겠다는 표정이 되었다. 하얀 늑대라고 불리는 맥 포르치가 지키는 레펠리아 수용소.
그 자체의 견고함도 있었지만, 맥 포르치라는 존재에 대한 믿음이 알로이스에겐 더욱 컸다.
마나를 통해 마법을 사용하진 못하지만, 자신의 육체를 강화하는 그 질과 본연의 무력은 알로이스마저 인정해 줄 정도였으니까.
그런 레펠리아 수용소가 위험하다?
알로이스는 잠시 고민하다 자신의 3번째 제자 숑을 불러들였다.
“부르셨어요?”
비쩍 꼴은 몸집, 거친 말투, 뒷골목 건달에 더 어울릴 것만 같은 행색.
그가 가지고 있는 재능만 아니었으면 알로이스가 그를 제자로 들이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허나, 반대로 말하면 그런 모든 걸 감안하더라도 제자로 들일 정도로 숑은 훌륭한 마법사였다.
“숑, 네가 레펠리아 수용소로 가 봐야겠다.”
* * *
톨레스와 이야기를 마치고 나와 다시 델핀이라는 녀석을 죽인 곳으로 향했다.
“자리 하나는 잘 잡았어. 훤히 보이네.”
언덕에서 보이는 레펠리아 수용소는 그야말로 철벽의 요새 그 자체였다. 예전엔 황실도 이 정도 보안은 없었는데, 시대의 흐름에 따른 기술의 발전 덕인 듯했다.
‘설마 망막과 지문을 읽는 도구가 있다니.’
델핀의 기억 속에서 읽은 마나를 이용한 기록 장치 CCTV라는 것도 신기했고, 마나 자체를 차단하는 역장도 기묘했다.
덕분에 감옥 내부에선 마나를 다루지 못하니 라엘 역시 평범한 인간과 다를 바 없었지만.
‘이 반지는 특히나 신기해.’
소유자 본인의 마나를 머금어 어떠한 제약도 없이 사용할 수 있게 해 준다.
체내의 마나를 다 사용하더라도 이 반지에 저장한 마나를 다시 사용할 수 있다.
이런 아티팩트가 과거에 없는 건 아니었지만, 중요한 건 모든 간수가 사용할 정도로 상용화가 되어 있다는 점이 신기했다.
이 도구 덕분에 간수들은 마나가 없는 수용소 내부에서도 마나를 사용할 수 있었다.
아마 이런 구조를 통해 마나를 이용한 기록 장치도 내부에서 사용하고 있는 거겠지.
물론, 많은 마나를 저장할 수도 없고 수용소 안에서는 마법을 쏴 댈 수도 없으며 단순히 육체를 강화하는 수단밖에 없었지만, 그 정도만으로도 힘없는 죄수를 제압하기엔 충분하겠지.
외모를 바꾼 마법도 이 반지 덕분에 사용할 수 있었다.
‘결국 수용소 내부엔 마나 자체가 없다. 아무리 나여도 저 안에선 불 하나 붙일 수 없어.’
수용소는 마나를 흡수하고 내뿜던 기사단의 마나 제어 수갑과는 차원이 달랐다.
저 내부는 마나를 완전히 죽이고 있다고 봐도 무방했다.
“그렇다고 방법이 없는 건 아니지.”
솔직하게 말하자면 이런 상황이 취향이자 특기였다.
텐에게 받은 샌드위치를 먹는다.
샌드위치는 200년 전이나 지금이나 비슷한 맛이었지만, 살짝 울컥했다.
동굴 안에서는 마나로 공복을 채우는 훈련을 하다 보니 제대로 된 음식을 먹어 본 게 몇 년 만인지.
“아, 맛있다.”
예전에는 음식에 대한 욕구는 크게 없었지만, 막상 입에 넣고 나니 다른 맛있는 것들도 먹고 싶어졌다.
미래엔 얼마나 맛있는 것들이 많이 생겼을까?
모든 일을 끝마친 이후, 식도락 여행을 다니는 것도 썩 나쁘진 않을 것 같았다.
물론, 아주 먼 훗날의 이야기겠지만.
“아! 찾았다!”
“허억 허억. 뭐 이렇게 높은 곳에 있는 거야.”
슬슬 날이 어둑해지고, 톨레스에게 말해 준 작전시간이 다가와 준비를 하고 있자니 뒤에서 들려온 남녀의 목소리.
혁명군의 꼬맹이 듀오 미오와 에딘.
미오는 체력적으로 여유로워 보였지만, 에딘이라는 꼬마는 거칠게 몰아쉬는 숨을 애써 숨겨 보려 노력했다. 그럴수록 더 힘든 게 티가 날 뿐이었지만.
“뭐야. 왜 왔니?”
분명 내가 나간 이후, 다른 곳으로 내뺐을 줄 알았는데 말이지.
“흐, 헉…… 후. 네가 잘하고 있는지 보러 왔지!”
애써 숨을 고르며 당차게 말하는 에딘.
저번에도 생각했지만, 꼬마가 생각보다 강단이 있었다. 너무 까부는 것도 보기 별로긴 하지만.
“내가 너보다 몇 년을 더 살았는지 알면 깜짝 놀랄 거다.”
얄미운 꼬마의 머리를 한 번 헝클어뜨리며 장난스럽게 말했다. 미오는 뭔가 안심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진지하게 말했다.
“마지막까지 책임을 지러 왔어요.”
“책임?”
“당신을 데려왔으니 혹시라도 배신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는 거예요.”
슬쩍 어깨를 보니 미미하게 떨리고 있다. 나에 대한 두려움을 애써 억누르고 있는 게 보여 조금 미안했다.
무엇이 이 여린 아이를 이렇게까지 내몰았을까.
고민해 볼 여지도 없었다.
단순한 꼬마 아이인 줄 알았고, 실제로 겉모습과 나이는 꼬마지만 이 아이들도 혁명군으로서 무언가를 잃고 상처를 입어 가면서도 싸우고 있는 것이었다.
그런 생각이 드니 괜히 미안하면서도 대견한 감정이 가슴 속에서 퍼져 갔다.
이런 미래를 만들어 버린 자신의 부족함에 대한 사죄와 그럼에도 부러지지 않고 씩씩하게 버텨 준 것에 대한 대견함.
괜히 양손으로 두 아이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어 준 후, 나는 천천히 레펠리아 수용소로 눈을 돌렸다.
“마침 좋은 타이밍에 왔어. 오늘 좋은 구경하게 될 거야.”
세상에 크리스티나 엘리나의 애제자 라엘 텔리즈먼의 복귀를 화려하게 알릴 시간.
천천히 몸을 띄워 레펠리아 수용소 위로 올라간다.
“부유 마법?”
“말도 안돼!”
뒤에선 꼬맹이들의 감탄사가 들려오지만, 고작 부유 마법 가지고 이 정도로 놀라다니. 앞으로 벌어질 일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데 말이지.
“오랜만에 세상 밖에 나와서 잠깐 사이에 여러 마법을 썼네.”
단순히 마나를 방출시켜 기사단을 제압한 적도 있었고 기억을 읽는 마법을 통해 상황을 파악했으며, 혁명군 녀석들을 포박하기도 했고 지금은 또 부유 마법을 쓰고 있다.
하지만 정작 내가 가장 자신 있는 마법은 단 한 번도 사용한 적이 없었다.
애초에 내 마법은 그렇게 자주 사용할 일이 거의 없긴 하지만.
“레펠리아 수용소. 톨레스한테 들은 바로는 저기가 수용 1, 2, 3동이고.”
일 열로 좌르륵 늘어져 있는 삭막한 건물을 보며 씨익 웃었다.
이렇게 깔끔하게 죽일 놈, 살릴 놈 분류되어 있으면 얼마나 좋은가. 나를 위한 무대였다.
마나를 끌어모은다.
꽤나 오랜만이라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아아, 나는 천성이 마법사였다.
짙고 푸른 마나가 코를 통해 들어와 몸을 한차례 정결하게 만들어 주며 입을 통해 나간다.
레펠리아 수용소가 산 중턱에 있는 건 다행이었다. 귀찮게 다른 곳에서 무기를 끌어올 필요가 없었으니까.
“뭐, 뭐야?”
“이게 무슨…….”
저 밑에서 미오와 에딘의 놀란 목소리가 들려온다. 마나의 순환을 통해 감각이 극한까지 끌어올려졌기에 거리가 있음에도 목소리가 들렸다.
꼬맹이들에겐 꽤나 장관이겠지.
수많은 거대한 바위들이 하늘에 떠 있는 모습은.
산맥의 일부를 떼어 낸 듯한 광경.
다수의 바위들이 내 옆에 둥둥 떠서는 언제든 떨어질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내가 가장 잘 다루는 마법.
공격 계열의 마법에서도 극의에 달한다는 대군 마법.
“원래 일 대 다수가 내 특기야.”
대마도사인 스승님에 대한 세간의 평은 이 대륙에 다신 없을 전무후무한 천재. 완벽한 육각형의 마법사.
그렇다면 나에 대한 평가는 조금 부끄럽지만.
재앙.
인간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천재지변.
대항할 수 없는 흉포하고 압도적인 폭력의 힘.
“추악한 성이여, 오늘이 그 최후의 날이다.”
오늘 이후, 그 누구도 레펠리아 수용소를 입에 올리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렇게 수많은 산맥의 바위들이 무수한 운석이 되어 수용소를 향해 내리치기 시작했다.
* * *
살면서 단 한 번도 들어 본 적 없는 압도적인 파괴음에 이미 준비하고 있던 톨레스도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여기서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취조실에서 라엘이라는 남자에게 받은 열쇠를 품에서 꺼내어 감옥 문을 열었다.
감시를 하고 있던 간수들도 바깥의 소리에 깜짝 놀라 그쪽에 시선이 간 틈을 타서, 톨레스와 그와 같은 감옥에 갇혀 있던 수감자들이 다 함께 간수들을 제압했다.
새벽 시간대여서 최소한의 인원만 배치가 되어 있었기에 손쉬운 일이었다.
그동안 간수들에게 당한 걸 풀기라도 하듯 수감자들은 거칠게 그들을 구타하고 울부짖었으나, 감성적으로 될 시간이 없었다.
“열쇠! 우선 열쇠부터!”
톨레스는 간수가 차고 있던 열쇠를 찾아 다른 감옥의 문을 열어 주었고, 그들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톨레스에게 물었다.
“설마 탈옥입니까?”
“아니, 탈옥이 아니다.”
결의에 찬 톨레스는 주먹을 쥐며 답했다.
“혁명이다.”
오늘 그들은 도망치지 않는다.
감옥을 빠져나오는 행위를 탈옥이라 부른다면, 그들은 오늘 탈옥을 하는 게 아니었다.
레펠리아 수용소를 무너뜨린다.
* * *
마나 자체를 죽여 버리는 레펠리아 수용소.
마법사의 무덤이라고 불리던 이곳이었지만 사실 내겐 공략하기 그닥 어렵지 않았다.
애초에 내부에서의 습격이나 몰래 탈옥을 시킨다 같은 생각은 전혀 없었다.
어차피 전체를 쓸어버릴 힘이 있는데 굳이 왜 도망을 치는가.
마나를 죽이는 장치의 범위 밖에서 바위를 모아 그대로 쏘아 내린다. 중간에 마나가 사라지더라도 어차피 중량으로 찍어 누르면 그만이다.
이미 떨어지고 있는 바위가 마나가 사라진다고 사라질 일은 없으니까.
“대충 이 정도면 됐을까?”
약 10분을 멈추지 않고 포격을 했다 보니 죄수들이 있는 수용소를 제외하고는 이미 모든 건물이 무너졌고, 생존자들이 하나둘 기어 나오고 있었다.
마나를 죽이는 장치 역시 파괴되었는지 이젠 주변의 마나가 활기차게 돌아다니는 게 느껴졌다.
수용소로 내려오니 톨레스가 한 동을 이미 점령하고 다른 동으로 죄수들을 이끌고 가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간수들이 쓰던 단봉을 들고 휘두르는 모습이 확실히 검술에 일가견이 있어 보였다.
“그럼 나는 나머지를 처리해 볼까.”
낡은 로브를 뒤집어쓴 내 모습이 눈에 띄는지, 살아남은 간수들 중 눈치 좋은 녀석들은 내가 이 재앙의 주범이라는 걸 알아채곤 단봉을 들고 달려들거나 마도 권총을 고민도 안 하고 쏴 대기 시작했다.
“마나를 이용하는 획기적인 무기라는 건 인정하지만.”
마나를 응축해서 쏴 대는 무기. 제대로 준비된 마력탄만 있으면 누구라도 일종의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신묘한 무기였지만.
내 눈앞까지 날아든 마력탄은 푸른빛의 연기가 되어 사라졌다.
“의지도 없는 마력으론 내 옷깃 하나 건드릴 수 없을 거야.”
나는 같잖은 양산형 마법에 당해 줄 정도로 어리숙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