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썩 좋은 상황이 아닌 건 확실했다.
이들이 나를 반기지 않을 것은 당연히 알고 있었지만, 곳곳에서 날아드는 살기는 그들이 생각 이상으로 과민 반응을 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너무 가시 세우지 말자. 이거 봐, 난 구속당한 상태야.”
슬쩍 손을 들어 올려 수갑을 보여 줬으나 오히려 리더라는 녀석은 더 경계를 하며 입을 연다.
“그게 수상해. 생판 모르는 남한테 목숨을 맡긴다? 뭔가 뒤가 있다는 이야기로밖에 안 들리는군.”
생각보다 머리가 좋은 친구네 하고 속으로 감탄했다.
미오는 설마 하는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었고, 다른 녀석들은 리더가 검에 손을 얹은 순간부터 달려들 준비를 하고 있었다.
“팔독 기사단 녀석들을 죽였다고는 들었지만, 오히려 아르니티 측에서 살을 주고 뼈를 깎는다는 작전으로 내주고 우리 위치를 파악한 걸 수도 있어.”
“미오라는 저 아이가 내가 기사단을 실제로 죽이는 걸 본 것도 아니니까?”
리더의 말을 받아서 내가 답하자, 잠시 움찔하더니 고개를 끄덕인다.
“지금 네가 얼마나 억지를 부리는지는 알고 있지?”
공격적인 나의 발언 탓일까, 리더의 눈가가 떨려 온다.
“네 말대로라면 미오라는 저 아이가 하수구 밑에 있다는 걸 안다는 전제를 기본으로 깔고 가야 하는데.”
“…….”
“거기까지 알고 있으면 이미 네가 말한 작전 따위는 필요 없겠지? 미오를 잡아다가 고문을 하든, 아니면 뒤를 쫓아서 너희를 찾아내거나 하면 끝이니까.”
아무리 리더로서 여러 가능성을 확인해야 한다고 하더라도, 긴장을 해서인지 아니면 중압감 때문인지 과하게 생각했다.
“나는 너희와 적대할 생각이 없어. 믿기는 힘들겠지만, 오히려 도움을 줄 의향도 있어.”
“목적은?”
“협력.”
내 말이 의외였는지 리더의 눈이 크게 뜨여진다.
200년이 지난 이 세상에 와서 내게 남아 있는 목표라고는, 스승을 죽이고 시민들을 핍박한 마교의 잔재를 완전히 지우는 것과 스승의 오명을 씻는 것.
현시대의 배경은 물론이거니와 기본적인 지식을 쌓기 위해서라도. 이들의 도움이 필요했다.
꽤나 고민이 많아 보이는 표정을 짓는 리더에게 나는 잠시 망설이다 결국 주먹을 쥐었다.
서로 오랜 시간을 가지고 끈끈한 동료애를 만들 수도 있다. 지금 여기서 그들의 말을 따르며 최대한 내가 위험한 사람이 아니라는 어필을 한다면 말이다.
하지만 말했듯 시간이 오래 걸린다. 나는 이들에게 믿을 수 있는 동료가 아니라 ‘위험하지만 이용이 가능한 파괴적인 무기’가 되어 줄 생각이었다.
투둑.
수갑이 부서진다.
리더는 순간 눈을 크게 뜨며 놀랐으나 행동에 망설임은 없었다.
그대로 검을 뽑으며 나를 향해 휘두른 것이었다.
당연히 예상한 반응이었고 준비도 해 뒀지만, 상상하지도 못한 장면이 눈앞에 펼쳐졌다.
리더의 검에서 백색의 빛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한 것.
저건 소드마스터들이 사용하던 검기와는 차원이 다른 힘이었다.
권능.
그것도 백색이면 빛의 신의 권능.
‘우리 시대에서도 드문 빛의 신의 권능을 다룬다고?’
워낙 귀한 권능인지라 조금 놀랐지만, 어쨌든 녀석의 검은 미리 쳐 둔 보호막에 막혀 버렸다.
검을 쥐고 있는 자세부터 무술을 배운 티가 팍팍 났다. 예전이었다면 이 수준의 검사들이 접근해 온 것만으로도 이미 패배가 확정되었다고 봐도 무방했으나.
‘폼으로 5년을 수행한 게 아니거든.’
동굴에서 가장 주요하게 수련했던 것이 바로 이 근접전에 대한 대처 방법이었다.
마교와의 싸움에서도 마교단장들의 합공으로 이루어진 근접전에서 결국 패배하고야 말았으니까.
굳이 변명을 하자면 그때 1:5로 싸워서 진 거다.
어쨌든 근접 전투에 있어 동굴 안에서의 체력 단련은 물론이거니와 몸을 보호하는 보호막, 그리고 마나를 통한 육체 강화까지.
나는 이제 더 이상 적이 다가오면 허덕이던 마법사가 아니었다.
“권능 덕분에 그나마 비벼 볼 수는 있겠는데…….”
어떠한 속성이든 우위를 점하는 빛의 권능 탓에 보호막이 조금씩 흔들리고 있기는 하지만, 뚫기에는 무리였다.
“더 연습해 와.”
마력을 방출해서 밀어내자 그대로 뒤로 날아가며 넘어지는 리더. 하지만 그와 동시에 다른 녀석들이 덤벼들었다.
가장 먼저 튀어나온 건 머리를 묶고 있는 여성.
손에 쥐어져 있는 건 1m 정도밖에 안 되는 단창이었는데, 바로 앞까지 다가오자 촤르륵 소리를 내며 길이가 두 배로 늘어났다.
“음?”
쾅 하고 보호막이 흔들린다.
실려 있는 힘이나 자세부터 단순 위력만큼은 리더보다 훨씬 강력했지만, 권능이 없다 보니 위협은 적었다.
그와 동시에 치고 나오는 미오 정도 크기의 작은 남자아이.
손에는 장갑을 끼고 있었는데 뭔가 특이했다. 처음엔 권법가인가 했지만, 근육이 하나도 없었다.
녀석은 주먹을 거칠게 내지르지도 않고 손바닥을 펼친 채로 보호막에 손을 댔다.
“거기서 튀어나오시지!”
남자아이는 한껏 웃음을 머금은 채로 마나를 보호막으로 집어넣기 시작했는데, 아마 보호막에 자신의 마나를 섞어 보호막의 질을 낮추거나 파괴시키려는 것으로 보였다.
“감히 나한테 마나의 운용으로 승부를 걸어?”
기가 차서 말도 안 나온다.
어린 나이에 마나를 다루는 능력은 꽤나 준수했지만, 그래 봤자 꼬마.
새어들어 오는 꼬마의 마나를 역으로 거칠게 잡아먹어 버리자 녀석은 놀라며 화들짝 뒤로 빠진다.
“눈치 좋네.”
만약 빼지 않고 그대로 계속 있었다면 역으로 꼬마 놈의 몸에 있는 마나까지 뺏거나 마나의 역류를 일으킬 수도 있었다.
탕! 하는 소리와 함께 마도 저격총에서 나온 총알이 그대로 보호막에 튕겨 땅에 박힌다.
‘위력은 강한 것 같기는 한데.’
아직까지 어둠 속에 숨어 있는 저격총을 들고 있는 남자가 쏠 때까지 계속 기다렸는데, 막상 맞아 보니 크게 위협적이진 않았다.
“이 정도인가.”
이제 미오까지 품에서 단검을 꺼내 들고 합세했지만, 결국 내 보호막 하나 뚫지 못했다.
“할 거 다 했지?”
격의 차이를 보여 줘야 했기에 일부러 할 수 있는 한 최대로 해 보란 의미로 기다려 줬다.
“이제 내 차례야.”
손바닥 위에 마력탄이 만들어진다. 그리곤 마력탄이 다섯 갈래로 나뉘었고 그대로 각자 한 사람씩 날려 보냈다.
그리 빠르지 않았던 탓에 다들 유연하게 피하는 줄 알았겠지만.
마력탄은 녀석들 앞에서 넓게 퍼지며 마치 그물처럼 바뀌며 그대로 속박했다.
“크윽!”
“이게 뭐야?”
“꺄앗!”
다들 발버둥 치며 벗어나려 애를 쓰는 와중, 다시금 총알이 날아든다. 이번엔 정확하게 이마를 노리고 날아왔지만, 당연히 보호막에 튕긴다.
“이걸 피했네?”
얼굴 좀 보자 하는 심정으로 푸른빛의 마력탄을 위로 올렸고, 어둡던 공장이 환하게 밝혀졌다.
가장 뒤에서 저격총을 여전히 겨누고 있는 드문드문 백발이 있는 콧수염이 인상적인 노인.
내 마력 그물을 피한 건 육체가 뛰어나다기보다는 노련미에서 나온 회피였던 듯했다.
“이쯤 되면 격의 차이는 보여 줬다고 생각하는데.”
“…….”
내 말에 노인은 천천히 저격총을 내리며 앞으로 나와 고개를 깊게 숙였다.
“뻔뻔하게 느껴지시겠지만 용서해 주실 수 있으십니까?”
“애초에 이 정도는 예상하고 있었습니다. 괜찮아요.”
먼저 수갑을 풀면서 도발한 건 이쪽이기도 하니까.
손가락을 튕겨 녀석들을 구속하고 있는 마나의 그물을 없애 주자 다들 앓는 소리를 내면서 일어난다.
고작 한 방에 전부가 제압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는지,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나를 보면서도 이제는 함부로 달려들지 못하고 있다.
이제야 대화할 준비가 끝난 듯하다.
* * *
낡은 텐트.
눅눅하고 퀴퀴한 냄새가 코 근처를 스멀스멀 맴돌았는데, 그런 것보다도 텐트를 펼치는 게 예전에 비해서 훨씬 간편화되어 그 부분에 눈이 갔다.
몇 겹 걸친 천을 당겨서 만든 침대에 걸터앉아 잠깐 기다리니, 금방 안으로 들어온 리더와 콧수염 저격수.
아까까지의 경계하던 모습과는 정반대로 지금은 최대한 공손하게 내 심기를 거스르지 않으려는 태도가 다분히 보였다.
“사자 혁명군의 리더, 레온 엘 라디어트입니다.”
“보좌관 텐이라고 합니다.”
“음? 라디어트?”
의아한 표정으로 바라보자 금발의 남자는 잠시 당황한 표정을 지었으나, 내 눈치를 보더니 결국 숨을 고르며 시선에 답했다.
“옛 태양왕국 라스의 왕족 후손입니다.”
태양왕국 라스.
우리의 제국 아르니티와 친화적인 우국이었으며 교류가 활발했다. 상호 협력으로 세워진 ‘세인트 학교’는 각국의 우수한 자제들이 모여 서로의 협력과 경합이 공존하던 장소였다.
‘나도 거기 졸업생인데.’
아르니티 제국이 마도 강국이었다면, 태양왕국 라스는 권능이라는 능력에 재능이 있는 자들이 많았다.
마나가 일종의 자연의 힘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사용하는 것이라면, 권능은 신에게서 힘을 빌려오는 걸 의미했다.
마나와는 또 다른, 인간에게 주어진 강력한 힘.
‘왕족이라서 빛의 신이 선택한 거였나?’
워낙 많은 신이 있고 보통 하나의 신은 수많은 자신의 신도들에게 그 힘을 선물한다.
당장에 마교만 보더라도 수많은 악신에게서 그 힘을 빌려오고 있었으니까.
그런데 빛의 신은 조금 특별했다.
한 세기에 최소 한 명에서 많게는 두 명에서 세 명.
정말 특별한 사람들만이 빛의 권능을 사용할 수 있었다.
“놀랍군요. 태양왕국 라스는 150년도 전에 멸망했기에 그 왕족의 성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은 드문데, 역사에 대해 아주 잘 아시는 분인 것 같습니다.”
텐이 콧수염을 만지며 흥미로워하는 모습에 나는 헛웃음이 새어 나왔다.
‘너희에겐 역사였으나, 내겐 추억이었다.’
펠디어스 엘 라디어트.
나의 오랜 친우.
앞의 레온과 마찬가지로 빛의 신에게 선택받아 그 권능을 이용하여 나라의 굳건한 방패가 된 성스러운 왕자.
마교와의 전쟁이 끝난다면 태양교의 교리를 어기고 같이 독한 술을 잔뜩 모아서 파티를 벌이자고 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건만.
“저기, 괜찮으십니까?”
잠시 추억에 잠겼던 게 이상하게 보였는지 레온은 걱정스레 물어 왔고, 나는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이제 이곳이 나의 현실이니까.
“아까도 말했지만 내 이름은 라엘, 라엘 텔리즈먼.”
“라엘…….”
“게다가 텔리즈먼?”
성까지 똑같을 줄은 몰랐는지 두 사람은 저도 모르게 중얼거리다 나를 보곤 입을 다물었다.
서로 소개도 끝났고 굳이 이렇게 분위기가 처질 필요도 없으니, 텐이 가져온 의자에 앉아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일단 지금 당장에 원하는 건 아르니티의 현 상황입니다. 제가 아주 오랫동안 다른 곳에서 살다 와서 어떻게 나라가 돌아가고 있는지 모르겠네요.”
내 말에 텐은 잠시 고민하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등에 메고 온 가방에서 간단한 음료를 꺼내 나와 레온에게 건네주며 입을 열었다.
“설명드리겠습니다.”
오래된 동화를 듣는 것 같은 기분으로 나는 텐의 이야기를 경청했다.
우선, 이곳은 내 예상대로 200년 후의 아르니티 제국이며 제국의 수도 아르니였다.
‘황녀님의 별궁이 그대로 자리를 잡고 있으니까.’
지금은 박물관으로 쓰이고 있었지만.
지금의 황제는 제32대 황제인 젤라이트 데 아르니티.
성군도, 폭군도 아닌 황제.
대외적으로 모습을 보인 적은 거의 없으며, 있더라도 간단한 인사말이나 연설 정도만 할 뿐이었으나 최근 몇 년간 지병으로 그마저도 하지 않는다고 한다.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었으나 가장 중요한 건 바로 ‘퍼지’라는 존재들에 대해서였다.
천마주교 파이엔이 제국의 실권을 잡고 마교가 신교라는 이름으로 둔갑하여 국교가 된 순간, 나라는 성지와 음지로 나뉘었다.
신교를 믿는 시민들과 그렇지 않은 시민들.
당시엔 반발이 심했으나 결국 천마주교 파이엔의 힘에 대항하지 못했다.
그렇게 나뉘고 나서부터 본격적인 차별과 핍박 그리고 억압이 시작된다.
당시에는 신교를 믿는다고만 선언하고 그들의 세례를 받으면 언제든 성지의 신민이 될 수 있었으나, 이제는 그렇지 않다.
시간이 흐르며 음지의 시민들은 모든 권리를 박탈당했다.
성지의 시민이 보증한다면 성지로 들어갈 수 있으나 그 무엇도 할 수 없고, 자신을 데려와 준 성지 시민의 노예로서 생활해야 한다.
음지에서 생활하는 시민들은 추방자, ‘퍼지’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여전히 핍박을 받고 있었다.
이들 중에는 단순히 마교를 믿지 않아 퍼지가 된 자들만 있는 건 아니었다.
“150년 전, 마도제국 아르니티와 태양왕국 라스의 전쟁에서 라스가 패배와 함께 멸망하고, 라스의 신민들도 음지로 쫓겨났습니다.”
그 말에 쓴맛이 입안을 가득 메웠다. 당시 태양왕국 라스의 왕은 ‘펠디어스 엘 라디어트’.
나의 오랜 친우.
결국, 그 역시 천마주교와 마교에게 패배하고 만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