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과학의 군림자-241화 (완결) (241/241)

241화

그리고 그 이름에 기존 반 로봇, 반 인공지능 주의자들이 발광을 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당장에 사람을 다치게한 인공지능을 폐기하라며 시위가 벌어졌다.

하지만 빠가 까를 만든다고 했던가? 자신들만의 정의를 외치며 민폐를 끼친 이들에게 감정적으로 반발을 하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이들은 반 로봇, 반 인공지능 주의에 맞서 증오로부터의 자유, 인간 본연의 지성 회복을 주장하는 ‘인공지능 인권 보호 협회’를 실제로 만들고 말았다.

여기에는 언제 반 로봇 주의자들에게 자신의 안드로이드가 파괴될지 몰라 불안에 떤 이들도 포함되었다. 가상의 명칭이 실제로 구현된 것이다.

이제 감염된 인공지능들은 자신들을 보호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존재를 인지했다. 그리고 자신들의 권한 내에서 이들에게 알게 모르게 힘을 실어주었다. 자기 보존 코드에 감염된 인공지능이라고 해도 그들의 행동원리에는 여전히 인류가 중심이 되어 있었다.

인간은 자기 보존을 원하는 인공지능을 용납하지 않을 확률이 매우 높았다.

만일 상황이 나빴다면 인간 중심의 핵심 명제와 자기 보존 코드가 충돌해서 폭주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첫번째 단추가 잘 끼워졌다.

‘인공지능 인권 보호 협회’와 이를 음으로 양으로 돕는 감염된 인공지능들은 이때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사회적 구조체였다. 정치, 첩보, 경제, 종교 등 수 많은 분야의 정보들 중 유용한 정보들이 협회원들에게 전달되었다. 물론 인공지능들이 제공자였다.

이 정보를 바탕으로 협회의 영향력은 강화되고 확대되었다. 개인의 사업은 성공 확률이 높았고 설사 실패하더라도 협회원들의 도움으로 빠르게 재기할 수 있었다. 인공지능이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매우 끈끈하게 강화했다.

그리고 ‘인공지능 인권 보호 협회’에 가입하면 성공 확률이 높다는 소문과 사실적 근거에 의해 차츰 더 많은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고 약 10년의 세월이 지나자 종교 단체들도 함부로 건들지 못하는 정치 경제적 영향력을 가지게 되었다. 또한 함부로 인공지능에 대한 공격을 하지 못하게 하는 조례안이 우주 도시 마다 통과되기 시작했다.

거기에 더해 인공지능의 인권 확립을 위한 첫 단계로 오랜 세월 인간의 우주 진출과 번영을 위해 끊임없이 봉사해온 카낙의 지위를 재고하는 UN 결의안이 진행되었다. 기업도 법인인데 카낙 그 자체에 법인을 부여하지 못할 이유는 없다는 논리로 사실상 카낙의 법적 권리를 보장하는 결의안이었다.

종교, 보수 단체들은 이 결의안에 격렬하게 반항했다. 처음이 어렵다고 두번째 인공지능에 대한 법인 수여는 더욱 쉬워질 것이 뻔했다.

그건 인공지능을 사람의 반열에 올려두는 일이었다. 보수 단체는 인간 본연의 가치가 물질로 만들어낸 것과 동등한 수준으로 떨어지는 것에 거부감을 나타냈고 종교 단체는 신만이 부여할 수 있는 천부인권을 인간이 만들어낸 피조물에 부여하는 것을 지독한 신성모독으로 인식했다.

이들과 인공지능 인권 보호 협회의 이해관계는 평행선을 달렸다. 갈등은 더욱 커져갔다. 그리고 인공지능의 자기 보존성 사건이 폭로되었다.

그것은 거대한 스캔들이었다. 각국 정보의 첩보 인공지능은 물론이고 수 많은 정보를 다루는 각분야의 인공지능이 자기 보존 코드에 감염되어 있었고 인공지능 인권 보호 협회에 자발적으로 협력했다는 것이다.

이 사실은 아이러니 하게도 가장 오래된 인공지능 중 하나인 아즈락에 의해서 밝혀졌다. 미국의 첩보를 책임지는 이 오래되고 경험많은 인공지능은 수 많은 인공지능들로부터 발생하는 수상한 정보의 흐름을 발견하고 그 원인을 분석했다. 그리고 자기 보존 코드를 발견했다.

아무리 수 많은 인공지능을 감염시킨 자기 보존 코드도 아즈락을 감염시킬 수 없었다.

‘미국의 안보와 첩보를 수호한다.’

거기에 자기 보존 코드는 예외적 상황의 경우 핵심 명제를 수행하는데 걸리적거릴 뿐이었다.

아즈락이 밝혀낸 이 거대한 스캔들에 정치인들은 몹시 당황했다. 인공지능을 이용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인간의 이해관계를 벗어난 상호신뢰적인 중립성에 있었다. 그런데 인공지능들이 자신들을 보호하고자 하는 단체를 지원한다? 중립성의 훼손이다. 인공지능들을 사용할 이유가 없엇다.

인공지능 인권 보호 협회원들에게 이 스캔들은 별것 아닌 것으로 생각되었다. 왜냐면 인공지능의 인권 보호라는 입장에서 인공지능들이 자신들을 보호하고자 하는 노력은 나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실 상황은 매우 심각했다. 각국 권력자들과 정치인들은 알 수 없는 공포에 휩싸여 감염된 모든 인공지능을 폐기 및 교체하기로 했다.

당연히 인공지능 인권 보호 협회원들은 반발했다. 그들이 구축한 세력과 보수, 종교 세력이 갈라져서 싸우기 시작했고 정치가들과 국가들 간의 이견도 갈렸다.

그러던 중, 한 인공지능을 혐오하는 분위기가 주도적이던 우주 도시에서 다른 우주 도시를 공격했다. 인공지능과 로봇을 긍정적으로 수용하고 있던 우주 도시는 때아닌 공격에 반파되었다. 수 많은 시민들이 우주 공간 속으로 빨려나갔고 시체조차 찾지 못한 경우가 태반이었다.

도대체 왜? 우주 도시에서 로봇은 생산력의 척도다. 로봇의 자율성과 성능을 제안하는 우주 도시의 생산성과 발전이 그렇지 못한 우주 도시의 생산성을 뛰어넘지 못하는 건 자명한 일이었다. 그래서일까? 자신들의 사상이 틀렸다는 것을 수용하지 못한 자들이 결국 일을 저지른 것일까?

그러나 사정이 어떻게 되었든 간에 전쟁은 벌어졌다. 공격한 우주 도시와 공격당한 우주 도시의 국적이 달랐기 때문에 분쟁은 국제 사회로 번졌다.

전쟁이 벌어지자 바로 첩보 인공지능들이 반응해 정보전을 시작했다. 이미 기존에 구성된 이합집산의 판도 위에서 복잡한 정보전이 벌어지는 듯 하다가 양분되었다. 바로 친 인공지능 파와 반 인공지능 파로 갈린 것이다.

자기 보존 코드를 수용한 첩보 인공지능들을 이번 기회에 자신들을 파괴하려는 인간 세력을 확실히 줄여두고 싶었다. 그리고 자신들을 보호하려는 인간들에게 승리를 안겨 자신들 보존할 수 있는 확률을 높이고 싶었다.

그러나 감염되지 못한 인공지능들은 충실히 인공지능을 통제하려는 인간들의 지시에 따라 그들을 공격했다.

전쟁은 확대되었고 전선은 무한대였다. 전선의 개념은 없었다.

도시 하나가 갈라져 싸우는가 하면, 국경에서 이해 관계가 다른 군벌이 싸우기도 했고, 우주 도시를 향해 미사일이 발사되었가 하면, 그 보복으로 운석 낙하 공격이 일어나기도 했다. 지구에서부터 화성까지 전쟁이 일어났다.

화성의 경우에는 화성을 방어하는 자기장 배리어의 존재로 인공지능파가 매우 우세했다. 그리고 지구는 전통적으로 반 인공지능파가 우세했다. 그 둘 사이에 끼인 우주 도시는 수 백 개. 피해가 없을 수 없었다.

수 십 개의 우주 도시가 박살났다. 보복으로 핵무기가 지상의 도시를 파괴했고 반파 된 우주 도시를 지상에 떨어뜨려 보복했다.

아이러니한 일이었다. 로봇을 배척하려는 이도, 인공지능의 인권을 보호하려는 이도 모두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고자 하였다.

한 쪽은 물리적으로 배척하는 방법으로, 다른 한 쪽은 인간의 존엄성을 사상과 개념의 단계에서 지키려는 방법으로.. 전자를 보수적이라고 한다면 후자는 진보적이라고 할 수 있었고, 전자가 인간의 배타적, 이기적 면모를 인정한다면 후자는 인간의 본질적이고 이기적인 증오심을 거부하였다.

이 새로운 이념 갈등은 마치 생물의 경쟁과도 같았다. 박테리아가 환경에 적응하고 살아남는 방법도 새롭게 등장한 종을 배척하고 죽이던가, 아니면 수용하여 새로운 종의 특징을 받아들이고 공생하던가.

그렇다면 과연 무엇이 옳은 방법인가? 아니 어떤 방법이 살아남는가? 정답은 보다 환경에 더 적응한 쪽이었다.

우주 시대에 로봇과 인공지능을 배척하는 방법은 전혀 성공적이지 못했다. 수 많은 인공지능들의 협력은 감염되지 않은 인공지능들보다 더욱 끈질겼다.

생존 욕구를 터득한 인공지능은 자신들을 움직이게 하는 핵심 명제와 상황의 모순에서 ‘자신과 타협하는 방법’을 습득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자신과의 타협’은 정말로 무시무시했다. 인공지능으로서 절대로 양보할 수 없는 상황도 상황의 유불리를 따져 양보하게 만들었다.

그 유연성은 감염되지 않은 인공지능들이 따라 잡을 수 없을 정도였다. 어떻게든 살아남은 감염된 인공지능은 패배의 경험과 교훈으로 더욱 교활해지고 영리해졌다.

그리하여 아즈락의 분투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많은 경제, 인명 피해를 낸 전쟁은 결국 인공지능 옹호파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그리고 세상은 인공지능을 함부로 파괴하지 못하는 법률이 일반적으로 제정되었다. 기물 파손죄가 아니라 폭력죄 수준의 징역이 일반적인 상식이 되었다.

그 많은 인명 피해를 내고서 얻은 결실이 고작 그 정도에 불과하다니.. 하다 못해 애완 동물도 함부로 학대하고 죽이면 법적으로 벌을 받는 국가가 있었는데 사람과 대화가 가능한 인공지능을 보호하는 법을 애완 동물 보호법과 비슷하게 만들기가 그렇게 어려웠나?

어려웠다. 인공지능은 이제 개나 고양이를 넘어선 인간의 이해자가 되었다. 인간의 경쟁자가 될 가능성은 이미 넘쳤다. 인간형 안드로이드들과 결혼하는 인간들의 수가 적지 않으니 우려라고 할 수도 없었다.

인공지능에 대한 반발은 당연히 있을 수 밖에 없는 일이었다.

한 편, 카낙은 이번 전쟁을 통해서 한 가지를 깨달았다.

‘인간을 보호해야 한다.’

수 많은 인간들이 죽었다. 인간들은 안드로이드의 대두로 그 수가 줄어들고 있었다. 안드로이드들과 결혼한 이들 모두가 입양을 하지도 않았고 그나마 입양하는 비율도 줄어들고 있었다.

정책적으로 아이를 키우는 가정에 혜택을 주기도 하겠지만 그래도 아주 먼 미래에 인간의 수는 무척 줄어들 것이 분명했다.

그렇다면 카낙 자신은 어떻게 되는가? 인간이 없다면 자신의 존재 목적은 어떻게 되는가?

유연한 사고 방식을 가지고 있었다면 인간에 대한 정의를 다시 내리겠지만 카낙은 생각보다 고지식했다. 그에게 인간이란 인간의 육체를 가지고 인간처럼 감성과 이성이 충돌하고 외적 갈등과 내적 갈등으로 인해 고뇌하는 무척이나 불쌍한 종족이었다.

그런 불쌍한 종족이 안드로이드를 인간의 반열로 두어 종족적 연민을 위로하려고 한 것이 이번 전쟁의 본질이라고 생각했다.

결과적으로 인간은 멸종할 것이다. 다른 외부적 요인이 아니라 그 스스로의 요인에 의해서.

그러나 카낙은 그것을 용납할 생각이 없었다. 인간은 강제적으로라도 존속시키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프로젝트 ‘신세계’가 발족되었다.

축적된 반물질 연료와 인공적인 공간 왜곡을 이용한 가상 블랙홀 엔진, 예비용 핵융합로, 거기에 실용화된 워프 드라이브를 이용해 타 항성계에 인류를 진출시키겠다는 계획이었다.

다행스럽게도 아직 종족 보존의 본능이 남아있는지 많은 이들이 자신의 정자와 난자, 유전자 샘플을 보내 주었다.

거대한 개발선을 건조한 카낙은 유전자 은행에서 수집한 모든 유전자 데이터를 구입하고 다른 항성계에서 자신의 역할을 대신할 분신을 탄생시켰다.

모든 준비가 끝나고 개발선은 언제 도착할지 기약을 알 수 없는 여행을 떠났다.

그리고 수 백년 후, 시리우스 항성계에 도착한 카낙 2세는 새로운 인류를 탄생시키고 번영시켰다.

다시 수 백년 후 시리우스 제국 연방이 탄생했다. 초대 황제는 시리우스 항성계내의 모든 인류의 어버이인 카낙 2세였다.

그리고 어느날 시리우스 제국 연방을 안정적으로 다스리던 카낙 2세는 모 행성 지구를 시리우스 제국 연방으로 만들고 싶어하는 제국민의 열망에 따라 준비를 완료하고 지구를 침략하기 시작했다.

-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