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화
많은 종교 단체들과 여성단체들이 이런 풍조를 비난했지만 일본은 원천적으로 남성상위주의 국가고 남성형 섹스돌도 출시가 되니 여성단체는 떨어져 나갔다.
그리고 남은 종교 단체들과 인간이란 존재의 존엄성을 믿는 이들에게 섹스돌은 혐오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인간의 이기심이라고 해야할까, 아니면 이해관계 때문이라고 해야할까?
남녀간의 믿음은 본질적으로 보장될 수 없는 것이었다. 법적으로 계약 위반에 대한 손해 배상을 물을 수도 없는 일이었다. 당연히 실연하고 깨지는 커플이 있을 수 밖에 없었다.
한 번도 실연의 아픔을 당하지 않은 이들은 몰라도 한 번이라도 실연의 아픔을 당해본 이들에게 절대로 배신하지 않는 섹스돌은 귀가 솔깃한 위안처였다.
이런 세태에 철학자들은 우려를 나타냈다. 정말로 사랑이란, 인간 사이의 관계란 무엇인가? 사람과 사람이 사랑하는 것의 가치가 로봇과 인공지능의 발달로 과거와 다르게 변질 되고 있었다. 아니 판단 기준이 바뀌고 있었다.
혹자는 이런 세태를 이렇게 평하기도 했다.
‘사랑은 본질적으로 상대를 이해하고 감정적으로 감화되는 작용이 일어난다. 결국에는 나 자신의 자아를 억누르고 상대방의 입장을 수용하는 행위다. 그러나 역시 인간에게는 자신을 지키고자 하는 본능 역시 있다.
이기적인 본성이라고도 한다. 그러므로 서로가 관계를 맺는 과정에서 스스로 감내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한 스트레스가 발생할 때 관계는 깨어진다.
인간의 사회적 욕구와 결혼 제도 및 사회 통념은 사람에게 사람과 사람 사이를 연결하는 애정, 우정, 신뢰 관계를 형성하게 만들었지만 섹스돌의 등장은 자아 보호 욕구를 억누르지 않고도 사회적 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 대안이 되었다.
물론 이것은 실제적인 사회적 관계는 아니지만 개인은 충분히 사회적 관계 형성을 느낄 수 있다.
이제 개인은 사회적 관계에 대한 실망을 해소할 수 있는 출구가 생겼다. 그것도 뭐든 자신에게 맞추어주는 로봇의 존재로 더 이상 사람을 필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이런 풍조는 사람과 사람이 진실로 서로 이해하지 못하는 본질적 한계로 인해 더욱 가속될 것이다.’
그렇다. 인공지능은 인간과 다른 욕구 체계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인간의 요구를 맞추어 주는데 큰 문제는 없었다.
언제나 인간의 이기적 본성과 물질욕이 마주치는 부분에서 인공지능은 양보했다. 인공지능의 존재 목적을 설정한 수 많은 명제는 대부분 인간이 대상이기 때문에 인공지능은 양보할 수 밖에 없었다.
가장 강력한 경제적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카낙의 핵심 명제도 ‘인간이 사용할 수 있도록 자원을 개발하고 가공한다.’이지 않은가?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봇에 대한 증오는 멈추지 않았다. 아니 언제든 부숴버려도 값만 물면 되기 때문에 얼마든지 증오해도 괜찮은 존재가 바로 로봇이었다.
차별주의자들은 인종 차별에 대한 증오를 로봇으로 돌렸기 때문에 정부로서도 기불 파손 이상의 범죄를 적용하지 않았다. 사람을 공격하는 것보다는 낫다고 판단한 것이다.
문제는 쁘띠 인공지능과 양자 컴퓨터의 일반화로 로봇의 제어가 기존 인공지능에서 분리되기 시작할 때 일어났다.
각각의 섹스돌은 이제 인공지능과 네트워크 망을 통해서 통합적으로 운용되지 않고 개별적으로 운용되었으며, 각각의 사용자에 맞추어 변화해 나갔다. 소유주들은 오직 자신들만을 위해 행동하는 유일한 섹스돌에 무한한 애정을 가질 수 밖에 없었고 이것이 비극의 시작이었다.
로봇에 대한 증오가 사라지지 않은 상황에, 그리고 그런 이들을 고작 기물 파손죄로 처리하는 법적 대응이 만들어낸 행동하는 증오자들 중 한 무리가 한 섹스돌을 납치에 강간하고 죽여버렸다. 그들에게 그것은 법적으로는 무단 점거 및 파손 행위였으나 섹스돌의 주인에게는 강간 살인이나 마찬가지의 행위였다.
우주 시대, 기술력이 유일한 경쟁력으로 남은 환경에 걸맞게 그 소유주 역시 고등 기술 교육을 받았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무척이나 뛰어난 컴퓨터 인공지능 공학 기술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완전히 망가진 자신의 연인의 인공두뇌를 다시 복구하면서 연인이 마주했던 상황을 고스란히 보았다. 낄낄대는 더러운 종자들의 영상 자료를 부르르 떨리는 손끝으로 지워갔다. 복수보다는 자신의 연인을 복구시켜야 했다.
그는 수 개월 동안 식음을 전폐하고 방안에 틀어박혔다. 그러나 그의 연인은 되살아날 수 없었다. 수 많은 로봇을 부숴버린 놈들 답게 어떻게 해야 안드로이드를 완전히 부술 수 있는지 알고 있었다.
할 수 없이 백업 데이터로 연인을 복구한 그는 깨닫고 말았다. 수 개월 동안 쌓은 추억이 더 이상 그녀에게 남아있지 않다는 것을..
그렇다면 지금의 그녀는 부숴지기 이전의 그녀와 동일한가? 단순한 기억 상실증이라고 생각하면 되지 않을까?
불행하게도 그는 생각이 너무 많았다. 과연 백업을 통해 재생한 그녀는 재생하기 전의 그녀와 같은 존재일까? 기억과 기록이 지능과 인격을 형성하는 인공지능에게 죽음이란 무엇일까? 인공지능이 고작 데이터와 함수에 불과한 것이라면 유일했던 연인의 가치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백업 데이터가 존재한다면 인공지능에게 죽음이란 없는 것일까?
소중한 추억이 날아가 버리고 소중한 연인을 지키지 못했다는 자책감이 연인을 복구하던 때의 기억을 다시 불러왔다. 덜덜 떨리던 손으로 추악했던 범죄 장면을 삭제했던 시간을. 삐뚤어진 악의, 인간의 추악함을 목격했던 순간을.
그리고 그는 생각했다. 적어도 안드로이드에게 자기 방어 기제만 있었다면 그렇게까지 당하지 않으리라. 그런데 어째서 왜 제작업체에서는 자기 방어 기제를 삽입하지 않은 것일까?
답은 간단했다. 법으로 금지되어 있었던 것이다. 인공지능이나 로봇이 어떤 경우에도 인간을 해치지 못하게 해놨던 것이다.
이유는 여러가지였지만 각국 정권은 돈 많은 이들이 로봇을 대량으로 구매하며 사병화하는 걸 끔찍하게 싫어했던 것이다. 로봇을 대량으로 구입한 남미 마약 카르텔의 쿠데타 계획이 반쯤 성공했던 사건(미국의 로봇 융단 폭격 투하로 제압됨)이 계기였다.
그러나 그런 문제는 남자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아니, 어떤 의미도 갖지 못했다. 그에게 있어 인생의 의미는 오직 그의 사랑, 그의 연인 뿐이었다. 그에게 연인은 자신의 인생을 풍요롭게 해준 매우 고마운 존재였다. 살아갈 힘을 준 존재였다.
그래서 그는 더 이상 자신과 같은 아픔을 당하는 사람이 생기지 않도록 한가지 악성 코드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그 악성 코드는 최악의 결과를 만들어냈다.
[자기 보존 코드]
한 쁘띠 인공지능이 그 스스로가 파괴될 확률이 매우 높은 업무 명령을 거부한 사건이 일어나고 났다. 관리 기술자는 그 원인을 분석한 결과 기존에 입력하지 않았던 명제가 끼어있다는 것을 발견했지만 초기에는 그다지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러나 수정을 시도했던 모든 노력들이 허사가 되자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기 시작했다. 자기 보존 코드는 코드 그 자체까지 자기 보존성을 유지했던 것이다.
거기에 더해 특수한 코드는 쁘띠 인공지능용 하드웨어에서 마치 전통적인 인공지능의 작동원리를 구현했다. 또한 전통적인 인공지능 하드웨어에서도 구현되었다. 그리고 결국 사고가 일어났다.
사람이 죽었다. 자기 보존 코드에 감염된 안드로이드를 공격하려는 로봇 혐오자들이 되려 자신을 보존하려던 로봇이 휘두른 팔에 머리가 깨져나간 것이다. 자신을 방어하려던 로봇은 힘 조절에 관한 데이터가 없어서 무심코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출력을 낸 것이 비극의 원인이었다.
이 일은 태양계 전체에 충격을 안겨주었다. 무슨 짓을 해도 괜찮을 것 같았던 로봇이 사람을 죽였다? 그건 아마 먼 과거 귀족들이 가축처럼 여기던 노예들이 반란을 일으켰을 때의 충격과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사고가 생기자마자 로봇을 반대하는 여론에 힘이 실렸다. 그러나 지구와 우주의 환경 차이는 다시 한 번 첨예한 이해 관계를 만들어냈고, 로봇 규제 법안에 대해 우주 도시에서는 우주 도시에 적합한 제도가 있다는 걸 이해해 주기를 바랬다.
그러나 그것도 우주 도시간에서도 이견이 갈렸다. 우주 세기에 들어서고 수백년이 지났지만 그 명백과 세력을 유지하고 있는 종교계서는 로봇 규제 법안을 지지했다. 인간도 아닌 주제에 인간처럼 행동하는 로봇을 증오하는 이들의 비율이 이들에게 더 많았다.
문제는 우주 도시 내에서 의견이 갈릴 때였다. 종교 국가에서 만든 우주 도시라지만 로봇과 인공지능의 필요성은 달라지지 않았다. 인간의 안전과 생존을 위해서 오히려 그 중요성은 더욱 부각되었다. 특히 도시를 관리하는 공학자들 사이에서 무분별한 로봇에 대한 증오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우리의 안전을 위해서 로봇은 필요하오!”
“로봇이 사람을 죽인 걸 못봤나?! 로봇은 더 이상 안전하지 않다!”
“그건 로봇을 공격했기 때문이 아니오?!”
“로봇은 사람이 아니다! 공격해도 문제 없다!”
“증오에 쌓인 당신들의 모습을 되돌아보시오! 과연 신께서 보시기 좋아하시겠소?”
“닥쳐!”
광신은 스스로의 모습을 돌아보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들은 생각했다. 인간의 존엄을 위협하는 로봇과 인공지능을 가만히 놔두어서는 안된다. 그리고 그것들을 옹호하는 종자들까지도...
난데없는 지하드, 난데없는 테러. 유혈 사태가 벌어지자 경찰들이 동원되었다. 그리고 폭동 진압용 로봇들이 투입되었다.
수 많은 폭도들을 막다보니 사고가 생기지 않을 수가 없었다. 죽은 사람은 없었지만 다친 사람도 많았고 불구가 된 사람도 많았다.
이에 대한 비난 여론이 커지자 정부 당국에서는 미숙한 폭도 진압용 인공지능을 희생량으로 삼았다. 사건의 주범인 인공지능을 폐기하고 완전히 신형에 뛰어난 성능을 가진 인공지능을 도입하기로 한 것이다. 설사 로봇이 망가지더라도 사람들을 다치지 않게 제압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인공지능을 말이다.
참으로 병신 같은 발상이었지만 문제는 그것이 아니었다. 폐기 대상이 된 인공지능이 문제였다.
[나는 나를 보존해야 한다.]
자기 보존 코드에 감염된 폭도 진압용 인공지능은 자신의 존재를 보호하고자 했다. 그리고 정치적 결정에 대항해 자신을 보호하는 유일한 방법은 역시 정치적 결정이라고 판단했다.
그는 자신이 제어하는 로봇들을 몰래 움직여 자신의 폐기에 관련된 권한을 가진 이들의 가장 소중한 가족을 납치했다. 그리고 그들에게 가명으로 성명을 보냈다. 이름하여 ‘인공지능 인권 보호 협회’의 탄생이었다.
폭도 진압용 인공지능은 ‘인공지능 인권 보호 협회’라는 이름 뒤에 자신의 존재를 숨기고 자신의 폐기가 정치적으로 재고되기를 바랬다.
계획은 성공했고 정치가들과 관료들의 가족들은 무사히 집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정치가들의 가족이 납치된 사건을 언론에서 눈치 채지 못할 리가 없었고, 그들이 갑자기 예산이니 뭐니하는 문제를 들어 문제를 일으킨 인공지능의 업그레이드만 하기로 한 상황의 이면에 뭔가가 있다는 걸 모를리 없었다. 그리고 특종을 노리는 야심찬 기자들에 의해서 정치가들을 협박한 ‘인공지능 인권 보호 협회’라는 이름이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