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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의 군림자-236화 (236/241)

23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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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담회가 끝나고 강현의 대답은 꽤나 큰 소란을 일으켰다. 그의 대답을 종교에 대한 비판으로 받아들인 이가 있는가 하면 헛소리라고 치부하는 이들도 있었다.

정말로 미국의 잘못이 없을까? 미국을 비롯한 서양 세력이 중동에 들어와 멋대로 휘저어 놓은 결과가 바로 오늘날의 중동이 아닌가? 필요할 때는 군과 기업을 동원해 석유를 빨아먹더니 필요없으니까 사람이 죽어나가던 말던 신경쓰지 않고 내버려 둔다니.. 무책임에도 정도가 있었다.

그러나 미국인 대다수는 강현의 견해를 지지했다. 국익을 명분에 동의했다. 국익에 도움이 안되니까 군을 파견할 수 없다. 죽어나가는 이들이 정말로 안타깝기는 하지만 물자 원조는 해줄 수 있어도 대신 피를 흘려줄 수는 없다.

왜 그럴까? 경찰 국가라면 중립적인 입장에서 공정하게 보아야 하지 않는가?

이유는 간단했다. 완전한 중립은 있을 수가 없으며 각자의 자리와 위치에 걸맞는 견해와 논지를 갖출 수 밖에 없다. 법이 스스로 공정하다고 말하면서도 실제로 공정하지 않는 이유는 역시 그러한 연유였다.

고로 하나의 입장을 선택하지 않은 인간은 비합리적이며 손해를 볼 확률이 높다. 피도 눈물도 없는 살인마가 순간의 동정심으로 먹잇감을 풀어주었을 때 그 먹잇감이었던 사람은 살인마를 신고하지 않을 확률은 과연 얼마나 될까?

국가의 경우에는 어떠한가? 전제 왕정 국가에서도 국익을 추구하지 않고 왕 마음대로 하면 불만이 생기는 신하들이 생기는데 민주주의 제조를 도입한 국가는 어떠할까? 명분없는 행동을 하면 정권은 타격 받는다. 명분이란 국가의 태도를 결정짓는 것이다. 그리고 국익이라는 국가 구성원을 납득시키는 전가의 보도를 포기할 정권은 없었다.

“괜찮아요?”

강현의 팔을 베고 누군 샐리가 입을 열었다.

“응? 뭐가?”

“그 기자 회견이요.”

그녀의 우려에 강현은 피식 웃었다.

“기자 회견이 아니라 연담회.”

“아무튼요.”

“괜찮아. 걱정할 것 없어.”

중동의 몰락을 강현이 석유 제조 기술을 개발했을 때부터 이미 예고되어 있었다. 그걸 강현이 늦춘 것일 뿐 식견있는 자라면 중동의 몰락 원인이 결국 강현에게 있다는 것을 모를 리 없었다. 그들의 입장에서 석유 컨소시엄은 병을 준자가 기력을 회복하라며 영양제를 던져준 꼴과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그렇다고 중동의 몰락이 강현의 책임인가? 아니다. 변화는 언제나 도태되는 개체를 만든다. 변화에 불만을 품고 도태되던지, 아니면 변화를 수용하고 적응하든지.

중동의 몰락과 중동 사태는 강현이 주도한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무수한 기업체들의 경우와 다를 바 없었다. 단지 그것이 국가 단위로 커졌을 뿐이다. 즉, 그에게는 일상과 같은 일이며 자신이 책임질 일이 아니었다.

악의적인 의도도 없었다. 과학 기술의 발전을 가져온 변화다. 과학 기술이 인류의 번영과 생존성에 얼마만큼의 기여를 하고 있는지 안다면 그것에 역행하는 것은 시대의 흐름에 거스르는 짓이다. 생각있는 자라면 무엇이 이득일지 충분히 구별해 낼 것이다.

그런 면에서 연담회장의 그 아랍계 기자는 많이 젊어 보였다. 피끓는 혈기와 기자로서 쌓은 식견은 앞뒤 생각하지 않고 자신에게 따지게 만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기자도 냉정을 찾게 되면 이해할 것이다. 결국 미국이 중동 사태에 책임이 있든 없든 미국은 개입하지 않을 것이고, 그러므로 중동의 문제는 중동이 해결해야 한다는 것을.

그 와중에 수 많은 피가 흐르겠지만 그 책임은 사람을 죽인 그들에게 있다. 그 책임을 미국이나 강현 개인에게 돌리는 것은 부당한 일이었다. 미국이 죽이는 건가? 아니다. 강현이 죽이는 건가? 아니다. 결국 방아쇠를 당기는 것은 서로에게 총부리를 겨눈 그들이기 때문이었다.

“아무런 문제도 발생하지 않을 거야.”

“알겠어요.”

샐리는 강현의 말을 믿고 그의 품에 고개를 묻었다. 남편의 체온과 향기에 안정감을 찾으며 꿈나라로 향했다.

“아즈삭.”

[네, 박사님.]

“이상 없지?”

[네. 아직까지 이상없습니다.]

강현이 구현한 글로벌 감시 시스템은 양자 리소스 대여 서비스로 위장되어 전 세계 인공지능의 정보를 긁어모으고 있었다. 세계는 중동 사태에 무관심한 것 같지만 각국의 첩보 기구는 예외였다. 국가 보위와 국익을 위해서 정보를 모으고 있었다.

물론 그들이 운용하는 인공지능도 철두 철미해서 양자 리소스 대여를 통한 데이터 처리에는 그들이 확보한 정보의 한 조각만 보낸다. 그러나 그런 조각이 많아지면 전체 그림이 보이는 법. 아즈삭은 서로 맞지 않은 퍼즐 조각들을 배치해 전체적인 그림을 유추할 수 있는 충분한 능력이 있었다.

강현은 아즈삭의 대답을 믿고 자신도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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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 달팽이의 가동이 시작되었다. 모든 실험의 진행은 아폴로티움에 설치된 관제실에서 원격으로 실행되었다.

정밀한 실험의 진행을 위해서 아폴로티움의 도움까지 받은 아즈삭은 입자 가속을 위한 준비에 들어갔다.

먼저 나선형으로 입자를 가속하기 위해서 자기장을 걸어줄 필요가 있었다. 자기장 속에서 전하를 띈 입자의 운동은 로렌츠 힘이라는 걸 받아 원 운동을 하는데 이 자기장의 세기를 가속되는 입자의 속도에 맞추어 정밀하게 조절해야 했다.

입자의 속도가 매우 빠르기 때문에 자기장 역시 강력해야 했고 초전도체를 이용한 강력한 전자석을 도입했다. 이는 LHC도 마찬가지지만 아무래도 아주 차가운 우주 공간에서 초전도 온도를 유지하는 우주 달팽이 쪽이 유지비가 쌌다.

[충전 시작.]

입자를 가속시키기 위해서는 어마어마한 에너지가 든다. 우주 달팽이의 부피 절반이 이에너지를 저장하기 위한 배터리 전력 시스템이었다. 우주 달팽이를 완전히 가린 무수히 넓은 태양광 전지는 초전도 전자석의 온도를 유지하는 것 뿐만 아니라 그래핀 양극 배터리에 전력을 충전하는 역할도 했다.

하지만 충전량과 필요한 에너지 량을 생각하면 꼬박 일주일 동안 충전을 해야 했다. 그래도 최대 크기의 입자 가속기란 이명을 내어준 LHC에 비하면 사정은 훨씬 나았다. 어마 어마한 전력 수요와 전기비용을 소모했던 것에 비하면 우주 달팽이의 전력 비용은 태양광 전지와 배터리의 감가 삼각비 정도에 불과했다.

우주에 진출한 시설물들은 태양이 존재하는 수십억년 동안 무제한의 전기 에너지를 얻을 수 있었다.

[싱크로트론 시스템 체크 시작.]

싱크로트론은 사이클로트론의 발전형이다. 자기장을 이용해 대전된 입자의 궤도를 원형으로 만들고 자기장을 걸어 가속시키는 것이 근본 원리다.

하지만 입자의 가속 메커니즘은 선형 가속기의 그것과 동일했다. 입자가 지나는 통로를 둘러싼 고리에 전하를 가해 정전기적인 반발력과 인력을 만들어내는 것이 바로 그것인데, 입자의 통과 타이밍에 맞추어 이 고리에 건 전하를 0으로 만들거나 바꾸어 주어야 했다.

극히 정밀한 전기 제어 기술의 필요는 말할 것도 없었다.

그리고 그 타이밍을 맞추는 건 입자의 속도가 빨라질 수록 어려워진다. 필요한 출력의 상승을 공학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정전기를 거는 대전 고리의 위치 조절, 제어 컴퓨터의 성능이 향상, 수학을 동원한 타이밍 계산 등 할 수 있는 수많은 방법들이 동원되었다.

그래도 역시나 그러한 방법들은 실행하는 것은 역시 예산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우주 달팽이의 존재는 기념비적인 것이었다. 예산의 노예였던 연구자들이 예산의 얽매이지 않고 하고 싶은 실험을 할 수 있는 첫번째 사례라고 할 수 있었던 것이다.

물론 그 방식은 개인의 엄청난 자본력에서 나왔지만 인류의 우주 진출이 가속되고 인공지능과 로봇에 의해서 기자재들이 공짜나 다름없이 생산되는 세상이 도래한다면 1인 1 연구실도 꿈은 아니었다.

[충전 완료. 실험을 시작합니까?]

“응. 뭔가 특이 사항이 있으면 알려줘.”

“아빠! 머리 이상해져!”

“오냐. 집중하마.”

강현은 이미 딸바보 모드에 집중해 딸아이의 머리칼을 만지는데 집중했다. 시아의 머리칼은 강현을 닮아서인지 검은 색이었고 준의 머리칼은 샐리를 닮아서인지 갈색에 더 가까웠다.

아즈삭은 강현의 행동이 이제 이상하다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집중할 때는 집중하는 창조주이니 아쉽지 않았다. 어차피 나중에 실험 데이터를 다 분석하고 확인할 사람이 바로 강현이었다.

[자기장 조정 시작, 주파수 설정 시작, 플라즈마 방전 시작.]

약간의 헬륨 가스가 우주 달팽이의 중심에 분사되었다. 고주파 전기장이 걸려 헬륨 가스에서 전자가 해리 되고 원자핵 만이 남게 되었고 그 즉시 전기장의 반발력에 의해서 긴 통로를 통과하기 시작했다.

자기장에 의해서 곡선으로 움직이는 원자핵 집단은 대전 고리를 통과하며 점점 빨라졌다.

그러나 위치에 따른 전기장의 세기가 미세하게 달라 고리를 통과할 때마다 원자핵 간의 거리와 속도가 달라지기 시작했고 시뮬레이션 된 궤도를 벗어나는 원자핵이 생기기 시작했다.

처음 통로의 벽에 부딪힌 헬륨 원자핵은 전자를 얻어 다시 가스 상태로 돌아갔지만, 나중에 벽에 부딪힌 헬륨 원자핵은 그 에너지가 높아서 통로 벽을 구성하는 합금 원소와 핵결합을 하는 경우도 생겼다. 헬륨 원자핵으로 이루어진 빔은 핵 물리학에서 말하는 알파선이었다.

마침내 가속을 마친 헬륨 원자핵 집단이 정밀하게 구성된 감시 센서를 통과했다. 중력자가 공간을 왜곡한다는 성질을 이용 빛의 경로 변화와 그에 따른 간섭 무늬 변화를 이용한 이 측정기는 미세한 중력 변화도 검출할 수 있도록 돈을 처발라 아주 크게 지었다.

축구 운동장 3개 크기나 되는 이 측정 장비는 강현이 외주를 준 이 검출 장치 제작 업체의 한 엔지니어가 한 표현에 의하면 ‘크고 아름답다’였다.

헬륨 원자핵 집단이 이 중력장 검출 장비를 지나면 약 1km 정도 더 질주하게 되고 타겟에 충돌하게 된다. 기껏 엄청난 에너지를 가한 입자를 그대로 우주 공간에 쏘아 보내는 것은 낭비라고 한 한 엔지니어의 조언에 따른 결과였다.

아직 충돌 실험을 하기에는 무리지만 나머지 한 쪽의 우주 달팽이가 완공되면 충돌 실험은 물론 반물질 생산도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역시 실험은 만만하지 않았다. 중력이 너무나 미약한 힘이기 때문에 아무리 지금의 기술력을 총동원해 만든 센서라고 해도 검출이 쉽지 않았다. 다양한 원인으로 생성되는 잡음을 구분하고 데이터를 유의미하게 처리하기 위해서는 방대한 양의 데이터가 쌓여야 했다.

아즈삭은 충분한 데이터가 나올때까지 실험을 반복하고 또 반복했다. 강현은 데이터를 그래프로 시각화 하거나 필터링 처리를 해서 의미있는 무언가가 있는지 찾는 일을 반복했다.

그 데이터는 인공지능이 서비스하는 네트워크 망으로 전 세계 물리학자들에게 투명하게 공유되었다. 강현은 혹시나 모를 가능성 때문에 타인의 관점에서도 데이터가 분석될 필요가 있다고 보았다.

온라인으로 활발한 의견이 공유되었다. 인공지능과 양자 통신 기술의 접목으로 연구자들간의 집단 지성이 발휘되기에 충분한 조건이 구비되자 연구자들은 쉽게 컴퓨터 앞을 떠나거나 태블릿 PC를 손에서 놓을 수가 없었다.

세상에! 그 엄청난 실험 데이터를 그냥 주다니! 연구자들이 강현에게 우호적인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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