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과학의 군림자-235화 (235/241)

235화

수니파 내부에서 골육상쟁이 일어난다면 시아파에는 이득이었다. 어차피 수니파와 필요 이상 친해질 수 없었다. 종교적인 갈등은 언제나 피로 귀결되는 만큼 수니파가 내분으로 상처를 입을 수록 시아파는 우위에 설 수 있었다.

어쩌면 수니파가 IS로 어려움을 겪는다면 도움을 빌미로 시리아에 시아파 정권을 안정적으로 정착시킬 수 있었다.

어쩌면 이해관계는 이런 정치 종교적인 문제만 있지는 않았다. 부족간에 그 동안 쌓아온 원한은 중동에 커다란 피바람을 몰고 올 것이다.

결국 중동은 테러와 테러에 바람 잘 날 없었다. 심지어 테러에 경도되어 내전 양상으로 확대되는 곳도 있었다. 빈부격차로 불만이 많은 젊은이들에게 IS나 테러 조직들의 명분은 돌파구나 기회로 여겨졌다.

피비린내나는 사태가 계속되었고 전 세계의 우려가 집중되었지만 세계의 경찰 국가라는 미국은 뭘 했나? 안타깝지만 그런 일이 벌어져도 미국은 그들에게 신경 쓰지 않았다. 기존의 병력과 자원을 우주에 투입해 우주 안보를 지킬 시스템 구성에 더욱 많은 신경을 썼기 때문이다.

물론 경찰국가라면서 중동 사태에 개입하지 않는다는 비난에 ‘미국은 더 이상 광신적 무리에 의해 미군의 젊은이들을 희생 시킬 수 없다.’고 발표했다.

덕분에 역시 경찰국가가 아니라 깡패국가였다는 비웃음 어린 조소를 받았다. 로봇독을 전술적으로 사용하는 미육군의 군인은 거의 죽지 않는데 희생은 무슨 희생?

한편, 미국 내에서는 미국이 중동 사태에 개입하는 문제에 관련해 군수 기업들 사이에 알력이 벌어졌다. 전차나 로봇독같은 지상 장비를 생산하는 군수업체와 보잉같은 항공 장비를 생산하는 군수업체 사이에 이윤 차이가 생겼기 때문이다.

전자는 지상에 대한 미군의 영향력을 지속하기를 바랬다. 실전이 없는 군대는 결국 약해진다는 이들의 주장은 일리가 있었지만 결국에는 지속적인 지상전으로 자신들의 수익을 보전하기를 원했다.

그러나 그들의 명분은 아무래도 후자의 명분에는 많이 딸렸다. 항공 장비를 생산하는 군수 업체는 우주 항공 장비 생산으로 한층 업그레이드를 하면서 우주 진출이야 말로 미국이 가야 할 길이라고 입을 모았다. 우주의 전략성을 따져도 그들의 말이 더 타당했다.

거기에 국민들의 뜻이 중동이 아니라 우주에 있다는 것을 파악한 백악관, 타국을 위해서 목숨을 바치기 싫다는 장병들의 내심을 파악한 펜타곤의 이해관계가 일치했다. 명분과 실익이 결국에는 우주를 향해 있었다.

다양한 이해관계가 조율된 결과, 결국 중동 사태는 방치되었다. 죽음의 상인들은 좋다고 총과 바주카포를 팔아넘겼다. 세계가 우려를 나타냈지만 석유는 이제 얼마든지 대체할 수 있었다. 계산기를 두들겨 손해와 이득을 점쳐본 국가들 중 이득이 있을 거라고 예상되어 손을 내미는 곳은 얼마되지 않았다.

유럽은 미국이 군사적 자원을 우주 개발에 쏟는 것을 보고는 자신들도 자신들의 군사 자원을 우주 개발에 투입했다. 북대서양 조약 기구, 일명 NATO 군이라고 불리는 군사 동맹의 자원 역시 마찬가지였다.

남미, 아시아권은 물론 오세아니아까지 우주 진출에 신경을 쓰면서 (아프리카는 자기들 먹고 사는데에도 바빠 외부에 눈을 돌릴 수가 없었다.)중동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되어가기 시작했다.

지구촌 한쪽에서 피비린내나는 전쟁과 테러가 반복되는 동안 지구촌 한쪽에는 인류의 과학적 진보를 축하일이 진행되었다.

우주 달팽이의 검수가 완료되었고 실험 가동에서도 문제가 발견되지 않았다. 이제 본격적으로 실험을 하고 데이터를 축적하면 된다.

이 우주 달팽이의 능력이 어느정도냐면 가속질량을 정지질량의 무려 1.7배로 만들 수 있는 엄청난 스팩을 자랑한다. 광속의 절반일 때 1.155배, 광속의 90%일 때 약 2.3배인 것을 생각하면 가히 엄청난 스펙이다.

그러니 물리학자, 양자물리 등을 공부한 이들이 열광하지 않을 도리가 있나?

한 과학자 단체에서는 이 기념비적인 물건의 완공을 전 인류가 알고 기뻐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강현에게 연담회를 가진 것을 부탁했다.

강현은 이 연담회가 홍보적인 성격을 띌 수 밖에 없기 때문에 기자들과 마주해야 했다. 유대인과 얽혀 언론 플레이를 해봤기 때문에 기자들에게 그리 호의적인 감정을 가질 수 없었지만 결국 연담회를 가지기로 했다.

과학계와 이리저리 많이 친한 점이 크게 작용했다. 우주 달팽이의 검수 과정에서 여러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기도 했고 말이다.

[많은 분들이 이렇게 찾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모두의 관심과 도움으로 GPA 프로젝트가 무사히 완료되었습니다.

그 결과물인 우주 달팽이(유니버셜 스네어)는 크기가 무려 18km로 부피는 작지만 길이 만큼은 우주 도시(반경 8km)을 능가합니다. 이는 최대 입자 가속기로 불렸던 LHC가 직경 9km 인것을 가만하면 엄청난 크기입니다.]

강현은 홍보성을 띈 행사에 걸맞에 우주 스네어의 능력을 홍보했다. 물론 그 자신의 말투는 매우 담담했다. 강현의 성격은 언론 플레이로 적대 세력을 뭉개버리지 내가 이렇게 저렇게 잘났다고 홍보같은 걸 할 성격이 아니었다.

[… 가속질량을 정지질량의 1.7가량으로 만들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되어 요즘 논란이 되는 중력장의 성질 중 한 가지를 규명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됩니다.]

가속질량이 중력장의 세기를 증가시킨다는 것은 에너지의 밀집이 중력장을 형성한다고 볼 수 있었다. 물론 그것이 중력자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은 아니나 공간왜곡 그 자체가 중력 현상이라는 강현의 가설, 공간 왜곡이 힉스장의 왜곡을 가져오고 그것이 중력현상을 보인다는 것에 좀 더 무게가 실린다.

강현의 말에 참가한 과학자들은 너무나 부러워서 미칠 지경이다.

자신의 가설을 증명하기 위해서 천문학적인 예산을 사용할 수 있다니!

물론 그것이 다 사유 재산이지만 고도화되고 극한적인 실험이 필요한 요즘 기술 문명의 수준을 보면 과학자 개인이 사유 재산을 아무리 털어도 자신의 가설을 증명할 실험을 하기는 무리였다.

예전에 화학에 대한 지식이 없을 때에는 물질을 태우고 갈고 부수고 등등 단순한 실험 도구만으로도 실험을 통해서 영감을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지식이 쌓이고 화학적 수준에서 알 수 있는 건 거의다 알게 되자 그 이상 세상만물의 본질을 연구하는 것이 보통 힘든 일이 아니게 되었다.

일단 가설을 증명할 실험 장치를 구성하기 위한 기술적, 지식적 능력은 개인이 담당하는 전문분야를 훌쩍 뛰어넘은지 오래였고, 비용은 뛰어넘다 못해 은하계 저편으로 날아가는 중이었다.

원래 연구자라는 인종은 실험과 관찰을 통해서 연구를 받지만 현실적 제약으로 인해서 사물의 본질을 탐구할 수 있는 도구는 오직 수학과 상상력 뿐이게 되었다. 그래서 이론 물리학자라는 존재가 탄생한 것이다. 누구나 알겠지만 그중 가장 유명한 이론 물리학자는 바로 아인슈타인이었다.

실험과 가설의 증명을 위해 예산, 시간, 전문인력 등 필요한 자원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기 시작하자 이론 물리학자의 존재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되었다.

그냥 실험을 하다가, ‘어라? 이게 뭐지?’는 여전히 과학의 패러다임을 전환해주는 요소였지만, 지속적인 진보는 ‘수학적 가설은 이러이러하다. 정말로 그런지 실험해보자.’를 통해서 이루어졌다.

과학적 방법론의 최적화란 바로 그런 것이었다.

하지만 강현은 넘치는 예산으로 수많은 과학자들이 겪는 어려움을 단숨에 뛰어넘었다. 연구자들이 공통적으로 겪는 가장 큰 어려움은 과학적 난제보다는 예산을 타내기 위한 사무실 문턱이 아닐까?

[… 이상입니다. 질문 있으신가요?]

강현은 모든 연구자들의 부러움을 받으며 발언을 마쳤다. 질문할 시간이 되자 기자들이 너도 나도 손을 들며 무언가를 물어보기 시작했다.

[앞으로 인류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요?]

[우주에 필요한 과학 기술 분야는 무엇입니까?]

[다른 은하로 진출할 수 있을 때까지는 얼마의 시간이 걸릴까요?]

다양한 질문이 나왔고 강현은 자신이 할 수 있는 만큼 최대한 성의껏 대답을 했다.

일단 태양계를 생활권으로 하는 우주 진출은 이미 확실하다. 그러나 다른 성계, 다른 은하로 진출하기에는 좀 더 큰 진보가 필요했다. 예를 들면 스타트랙에서나 나오는 워프 항법 같은 기술 말이다.

질문과 대답은 과학적 기술의 진보와 인류라는 주제에 걸맞게 진행되었지만 사람이 많다보니 엉뚱한 질문을 하는 없을 수가 없었다.

[박사님께서는 중동 사태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안타까운 일이죠.]

[하지만 그 중동의 몰락에 박사님도 일조하지 않으셨습니까?]

….

연담회장은 순식간에 침묵에 휩싸였다.

강현은 눈을 가늘게 뜨고 질문한 기자를 보았다. 갈색피부, 곱슬머리, 전형적인 중동인의 이목구비에 억양도 좀 그랬다.

강현은 입을 열었다.

[자동차가 발명되고 나서 마차는 운송수단으로서 경쟁력을 상실했습니다. 전기와 가스가 에너지원으로 공급되면서 석유등, 석탄, 연탄 같은 것들은 가정에서 그 지위가 박탈당했습니다. 플라스틱의 등장은 기존에 있던 수 많은 재료들을 대체했습니다. 제가 개발한 석유 제조 기술은 바로 그러한 것이었습니다.]

그는 눈을 한 번 감았다가 숨을 돌렸다. 속에서 일어나는 분노를 삭힌 것이다. 그는 차분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저는 급격한 변화로 몰락할 중동을 배려하여 제 자신의 이득을 포기하면서까지 석유 라이센스 컨소시엄을 구성했습니다. 그리고 중동은 몇 년의 기회를 가질 수 있었죠. 하지만 결국 그들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게 제 책임입니까?]

[하지만 미국은 세계의 경찰 국가가 아닙니까?!]

[저는 미국 정부의 대변인이 아닙니다. 그래도 제 생각을 듣고 싶다면 대답하겠습니다. 미국의 도움을 받으면 중동은 대신 미국에 무엇을 줄 수 있습니까?]

[….]

[하다못해 미국의 51번째 주(State)가 될 생각도 없겠죠.]

[무슨 말을!]

[도덕이니 뭐니하는 것들을 배제하고 순수하게 미국인 입장에서 국익의 관점에서 물어보겠습니다. 미국의 청년들이 중동을 위해서 피와 목숨을 바친다면 중동은 무엇을 대가로 치르겠습니까?]

[저는 일개 기자일 뿐입니다.]

[저도 과학분야에 자문을 할 뿐입니다. 하지만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건 중동은 미국에게 줄 것이 없다는 겁니다. 당신들의 사정은 당신들의 사정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죽고 있습니다!]

[그건 그들의 잘못입니다.]

[….]

[저는 기본적으로 신의 이름으로 사람을 죽이는 종교를 굉장히 혐오합니다. 신의 이름으로 타인을 차별하고 멸시하는 행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신의 뜻이 아니라고 하지 마세요. 사람이 문제라고 말하지 마세요. 신의 이름으로 타인을 죽이지 않은 종교도 있습니다. 신의 뜻이라며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 종교도 있습니다. 그런데 왜 특정 종교는 그런 종교처럼 되지 않고 신의 이름으로 타인을 죽이는 행위를 정당화 하는 사람이 나타나는 걸까요?]

[….]

[고민해본 적 없으시죠? 그럼 지금부터 고민해보시기 바랍니다.]

아랍계 기자는 뭔가를 말하기 위해서 입술을 달싹였지만 마이크는 이미 꺼진 상태였다.

질문 시간은 그 뒤로도 몇 분 더 이어졌지만 연담회 분위기는 어두워진 채로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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