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3화
[없습니다. 대부분 돈이 되는 약효 물질 생산이나 인공 장기에 관한 것 뿐입니다.]
JH 세포를 신경세포처럼 만들기 위해서는 JH 세포에 신경 세포의 축삭 돌기가 만들어지는 메커니즘을 적용해야 했다. 신경 세포의 축삭 돌기가 만들어지고 길어지는 메커니즘은 액틴(actin) 단백질 필라멘트가 관여하는 필로포디아(Filopodia)라는 진핵 세포의 이동 방식으로 분류된다.
이 필로포디아 현상은 세포간 박테리아 이동이나, 상처의 재생을 위한 세포의 성장에도 관여한다.
그러니까 강현은 JH 세포에 필로포디아 현상을 적용한 기술이 있는지를 물어본 것이다. 물론 필로포디아 현상을 적용해 JH 세포를 길쭉하게 늘려도, 나트륨 펌프를 통한 세포막 전위 형성, 미엘린 수초나 슈반 세포를 이용한 절연 처리, 축삭 말단 등 JH 세포를 신경세포처럼 만들기 위해서는 많은 난제들이 잇달았지만 천리길도 한 걸음부터라고 JH 세포가 필로포디아 현상을 일으킬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기로 했다.
그래서 자료를 모으고 신경세포의 발생과 발달에 대해서 이해하고 공부를 계속하던 어느 날, 아즈삭이 이렇게 물었다.
[그런데 박사님. 인공뇌에서 탄생한 자아는 어떻게 하실 겁니까?]
“응? 뭐라고 그랬지?”
[인공뇌라고 하셨으니 인공뇌에서도 자아가 탄생하지 않겠습니까?]
강현의 목적은 뇌의 활동에 의한 인지와 지능의 발달 연구와 그에 대한 적용이었다. 그런데 사물이란 객체를 인지하기 위해서는 주체가 있어야 했다. 그 주체는 자아를 갈 수 밖에 없었다. 강현의 연구 목적을 실험하기 위해서는 자아의 존재가 전제되어야 했다.
그것을 깨닫는 순간 강현은 표정이 굳었다. 손도 꿈쩍하지 않았다.
[박사님?]
강현은 그제서야 자신이 큰 실수를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자신은 프랑켄슈타인 박사가 될려고 했던 것인가?
자신이 자아를 가진 피조물을 가지고 실험을 하려고 했다는 말인가? 물론 그런 의도는 없었다. 다만 지능 개발 기술을 실험하기 위해서 최대한 인간의 뇌를 닮은 것을 만들려고 했을 뿐이다.
그러나 그가 만들려는 인공뇌는 아즈삭과 같은 인공지능과 본질적으로 달랐다. 그것은 ‘논리 기계’적인 특성을 가진 인공지능과는 달리 ‘생물’처럼 작동했다.
인간의 뇌 발달을 모방해 인간과 같은 사고 능력을 가지려고 계획되었다. 인간의 발달과 같은 식으로 구성되어야 두뇌를 발달 시키는 기술을 실험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만약 그렇게 된다면 자신이 탄생시킨 자아는 인간처럼 생각하고 인간처럼 욕구할 것이다. 그렇다면 자신은 도대체 무엇에게 실험을 하는 것이 되는가? 인간? 인간이 아니라고? 인간이란 무엇인가?
비약적인 상상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형성된 자아를 붕괴시킬 위험이 있는 실험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아즈삭에게도 위험이 되는 일을 시키고 싶지 않았던 강현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인공뇌에 자아가 생기고 거기에 다가 실험을 하는 건 그가 스스로 세운 원칙을 벗어나는 일이었다.
생명의 불꽃을 실험하겠다는 욕망으로 괴물을 만든 프랑켄슈타인 박사, 그리고 인간의 지능 발달 기술을 연구하겠다고 인공뇌를 만들겠다는 자신. 결과가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결말이 다를 수는 있지만, 그러나 호기심이란 욕망에 물들어 앞뒤 가리지 않고 돌진하는 프랑켄슈타인 박사의 모습은 지금의 자신과 너무 닮았다.
강현은 소름이 끼쳤다. 물론 자신과 프랑켄슈타인 박사는 다르다. 의도하지 않을 자아가 탄생할 수 있다는 것을 이미 인지했기에 외면할 수는 없었다. 그의 양심이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가족이 생기고 아버지가 생기면서 책임감을 배웠기 때문에 더 그랬다.
“계획은 중지다.”
강현은 모든 계획을 중지했다. 어쩔 수 없다. 방법이 없었다. 인간으로서 소중한 것을 잃어버리면서까지 실험을 강행할 수는 없었다. 금기는 한 번 범하는 것이 어렵지 두 번째는 쉽다. 아들과 딸에게 부끄럽지 않은 아버지가 되고 싶었다.
[알겠습니다.]
아즈삭은 그동안 기록됐던 자료들을 암호화해서 보관했다. 아즈삭에게 자료 폐기라는 단어는 없었다. 그것은 인간이 자신의 마음대로 기억을 삭제하는 것과 같은 일이었다. 무슨 데이터이든 아즈삭의 성장과 적응의 자양분이었다.
아무튼, 뇌 개발 기술 개발을 포기한 강현은 시원 섭섭한 기분이었다. 물론 지능 개발 기술이 인간의 진보에 큰 영향을 끼치리라는 것은 안다. 그러나 그렇다고 자신의 원칙과 가치관을 깨면서까지 그러고 싶지는 않았다. 아니 정확히는 비난과 가족에게 올 피해를 무릅쓰고 싶지 않았다.
과학자로서는 비겁한 외면이었지만 사람으로서, 그리고 아버지로서는 최선의 선택이었다.
= = = = =
결국, 강현의 지능 개발 기술 연구는 삽질로 끝났다. 준은 학교 선생님과의 상담이 효과적이었는지 심신에 안정을 찾고 학업이 원래 궤도로 돌아왔다.
안타깝지만 강현의 뒤를 이을 재목은 아니라는 현실을 받아들인 것 같다. 나름대로 사춘기 시기의 한 고비를 잘 넘긴 준이었지만 강현은 거기서 끝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아들에게 뭘 해주기 보다는 그냥 믿기로 했다. 아들의 인생은 아들 것이다. 자신이 이래라 뭐래라 간섭을 해도 결국 준은 강현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자신이 원하는 대로의 인생을 살리라.. 다른 이가 아니라 자신의 아들이지 않은가?
강현이 이번 일로 좀 더 성숙해 지는 동안 세계는 급변하고 있었다. 사실상 무한대의 광물 자원이 생산되기 시작하면서 강대국들은 우주로 나가는 것이 생존에 필수라고 느꼈다.
우주에서 캐낸 광물 덩어리의 폭격은 MD 시스템으로도 막을 수 없다는 군사적 견해에 따라 국가의 생존과 도발의 억제를 위해서 더 많은 우주 도시의 필요성을 느꼈다. 설사 지상이 폭격당하더라도 우주 도시가 보복을 해줄 수 있다면 광물 덩어리를 무기로 사용할 생각은 하지않을 것이라고 본 것이다.
냉전시대에 양 진영이 핵을 쌓아두고 전쟁 억지력을 부렸던 것과 같은 이유였다.
그렇기 때문에 더 많은 우주 도시가 필요했고 그에 따라 더 많은 우주 자원이 필요했다. 국가적 차원에서는 물론 기업들도 우주 광산을 개발하기 시작했고 이런 이들을 상대로 서비스 업을 시작한 카낙의 RP 포인트는 점점 가치가 상승했다.
그러나 결코 이윤에 연연하지 않는 카낙은 그렇게 쌓은 RP 포인트로 지구와 몇몇 기업들이 생산하는 고품질의 부품을 구입해 더 빨리 자원을 생산해 RP 포인트의 가격은 안정 시켰고 경쟁자들과 격차를 더욱 벌렸다. 거기에 목성의 위성과 토성의 위성에 자원 개발선을 보내어 질소, 탄화수소 따위의 비금속 자원을 축적하기 시작했다.
특히 액체 질소는 우주 도시의 대기를 구성하는데 필수였기 때문에 인류가 우주로 진출할 수록 더욱 많은 수요가 예상되었다.
거기다가 외생성계라 거리가 멀었기 때문에 더욱 많은 태양광 전지가 필요했고 그로 인해 태양광 패널 자동 생산 공장 역시 증축되었고 규모도 커졌다.
이에 지지 않기 위해서 각국의 국가 재정을 투입 받은 자원 개발선과 인공지능들 역시 더욱 광구를 파는데 집중하기 시작했고 자원의 양은 점점 더 많아졌다. 한 곳에 자원이 쌓이기 시작하니 농도가 높은 곳에서 농도가 낮은 곳으로 물질이 확산하는 것처럼 지구에까지 자원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철같이 무겁고 큰 것들은 무리였지만 희토류 같이 고부가가치가 큰 자원은 경우가 달랐다. 기본적인 수요는 물론 증강 현실 기기의 일상화와 각종 디스플레이 기기 등의 상용화로 매우 많은 수요를 만들어내었다.
거기에 희토류 광맥의 발견과 플라즈마 정제소의 존재는 희토류의 가격을 대폭 낮추었고 지상으로 희토류 정련괴를 이송하는 것이 수 백 배는 더 싸게 먹히자 희토류 최대 생산 국가인 중국도 어쩔 수 없었다.
중국이 중요한 외교적 카드를 하나를 잃는 아픔을 겪기는 했지만 우주 개발에 똥을 뿌릴 수는 없었다. 자원이 풍부해 질 수록 각국만의 우주 도시를 가질 수 있는 가능성은 점점 눈 앞에 가까워졌기 때문이다.
유럽은 공동으로 건설한 유러피아를 유럽 통합의 촉매로 사용하고자 했지만 동아시아 3국은 센타리움에서 일어나는 각종 분쟁 때문에 암이 걸릴 지경이었다. 중국인의 중화 사상과 혐일, 일본의 우경화와 제국주의적 자존심, 과거 세계를 양분 했던 러시아의 높은 콧대에 눈에 확 들어오는 인종적인 차이로 인해 센타리움의 치안에 들어가는 비용이 예상보다 훨씬 많았다.
차라리 센타리움을 기점으로 각국만의 우주 도시를 건설한 이후 센타리움은 다른 나라에 팔아버리는 계획안에 동의할 정도로 센타리움에는 갖가지 문제점이 많았다.
팔아버릴 시점은 세 개의 우주 도시가 건설된 이후라고 생각되지만 그래도 우주 도시가 없는 나라가 많으니 적지 않은 가격에 팔 수 있으리라고 기대했다. 물론 판매처와 수익을 어떻게 나누느냐를 협의하느라 적지 않은 진통이 있을 거라고 예상되지만 센타리움으로 인해 오히려 국민간 갈등이 고조되는 상황이라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오월동주는 본질적으로 오래가지 못하니 이들 세 나라도 마찬가지였다.
한편, 어느 나라보다 빠른 우주 진출에 성공한 미국은 지하 자원의 가치 하락으로 인해 중요한 자원의 목록을 다시 정했다.
끝없이 넓은 우주에서 가장 중요한 자원은 지정학적인 위치 바로 그 자체였다. 파나마 운하와 수에즈 운하가 벌어들이는 돈의 액수를 보라. 우주 시대에 돌입해 무한한 자원을 캘 수 있게 되면서 가장 빨리 자원이나 원료를 필요한 곳에 이송시킬 수 있는 항로는 그 자체로 무한한 가치를 지닌다.
마찬가지로 외행성계를 개발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소행성대를 거쳐야 했다. 또한 거리가 멀어 태양광이 적은 외행성계에서 캔 자원을 정제하는 건 많은 힘이 든다. 미리 자리를 잡은 발전소가 있다면 에너지 비용으로 많은 돈을 벌어들 일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미국이 먼저 선점해야 했다. 카낙의 경우에는 이미 국제적으로 공인된 법인이 되어 버렸다. 인공지능이라 미국의 국익대로 움직여 주지도 않았다.
미 정부는 NASA의 관측 자료와 자원 분포 및 지구로 오가는 항로를 분석해 자원 정련 공장을 세우기로 했다. 적당히 소행성대 중간 쯤이면 태양으로 오는 태양광의 강도도 괜찮고 주변의 소행성대에서 캐낸 자원을 정련해 주는 서비스를 제공해서 돈을 버는 것도 가능했다.
두번째 중요 자원은 역시나 기술 지식에 관련된 특허였다. 다른 나라 역시 익히 알고 있으니 경쟁은 치열했고 앞으로도 치열할 것이다.
결국에는 인재를 얼마나 키워내느냐가 핵심이었다. 때문에 붕괴된 공교육을 정상화 시키기 위한 법안을 준비했지만 많은 진통이 예상되었다.
각 주마다 공교육이 처한 입장, 재정과 주 정부의 사정 등이 달랐기 때문이다.
그리고 세번째로 중요 자원은 다름 아닌 생물 자원이었다. 새로운 유전자 코드는 그것만으로 많은 가능성을 품었다.
비단 약같은 고부가가치 산업 뿐만 아니라 인간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생명이 필요했다. 강현이 아폴로티움에서 가장 신경을 쓴 시스템이 공원이라는 점을 생각해 보면 자연환경 속에서 진화해온 인간에게 가장 안정적인 곳은 역시 자연이기 때문이었다.
이에 미국은 국가적인 차원에서 생물학자, 생태학자들을 지원하는 법안도 통과시키기로 했다. 기존의 유전자 은행 제도를 확대시키고 강화해서 단순히 생물의 유전자를 보관하고 분석하는 일 뿐만 아니라 유전자 코드를 응용할 수 있는 기술에도 투자를 시작했다.
인공 씨앗 기술은 그 중 가장 기초적인 단계로 작물의 유전자 코드 대로 유전 물질을 합성해서 인공적으로 씨앗을 만드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