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2화
강현은 곰곰이 생각한 후에 안전하지 않을 확률이 매우 높을 것 같다고 생각하고는 좀 더 안전한 방법을 구상하기 시작했다.
직접적으로 뇌파를 유도하는 것이 아니라 뇌파의 발생을 돕는 수준이라면 어떨까?
강현의 머리속에서 떠오르는 방법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잡음 효과였다.
바닷가재를 완전히 방음이 된 수조에 집어넣으면 어떻게 될까? 바닷가재의 청력은 매우 떨어지게 된다. 바다라는 생태환경에서 진화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감각 신경은 기본적으로 역치라는 개념이 있다. 마치 광전 효과가 일정 주파수 이상의 전자기파에 의해서 일어나는 것처럼 일정 수준 이상의 자극을 받아야만 반응하는 것이다.
그리고 바다는 기본적으로 소음이 가득 찬 공간이다. 해류와 단단한 바위, 산호초같은 지형 지물에 의한 물의 와류와 마찰음으로 인해, 바닷속은 소음으로 가득 차있다. 이 바닷속의 소음을 이루는 파형이 어떤 음원과 간섭해 겹쳐지는 순간 음원의 진폭이 감각의 역치를 뛰어넘게 된다.
이런 환경에 최적화 되어 살아온 바닷가재의 신경은 당연히 이에 맞추어 역치가 높아져 있다. 그래서 아무런 잡음이 없는 물속에서는 청각이 약화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뇌의 시냅스의 경우에는 어떠한가? 마찬가지로 랜덤한 잡음 같은 자극을 흘려주게 되면 시냅스와 시냅스간의 전기 신호가 강화될 수도 있었다. 어디론가 진행하며 약화되어 사라지는 전기 생리학적 신호가 잡음에 의해 간섭되어 보강된다면 약한 시냅스가 발달할 수도 있었다.
기억력의 경우에는 이 시냅스의 연결이 기억의 본질이므로 기억력의 향상도 기대할 수 있었다.
그런 식으로 하다보니 강현이 구상한 장치는 수학 학습 능력을 상승시켜주는 EBS 장치의 개량형이 되었다. 옥스포드에서 개발하고 연구중인 이 기술은 Transcranial random noise stimulation(TRNS)에 분류되는데, 전자기 유도 효과를 이용, 두개골 너머로 무작위적인 잡음의 전기신호를 첨가하는 방법이었다.
아무래도 직접적으로 뇌파를 형성하는 건 위험하다고 생각한 사람이 강현 혼자 뿐은 아니었던 것이다.
“옥스퍼드의 연구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지?”
[로이 교수 연구팀도 윤리적 문제 때문에 소규모로 프로젝트를 운용하고 있습니다.]
“연구 논문의 데이터 양은?”
[아직 미비합니다.]
“쩝...”
다른 이들의 연구 데이터를 몰래 이용해 보려던 강현은 그 데이터조차 부족하다는 말에 입맛을 다셨다.
“흠. 수학 학습에 도움이 되는 건 확실하지?”
[논문은 박사님께서도 보셨지 않습니까?]
“쩝...”
강현은 갈등했다. 임상적으로 효과는 보였지만 확실하게 이렇다고 발표되지는 않은 기술이고, 부작용이 있는지 없는지에 대해서는 연구조차 하지 않은 기술을 어찌 자식에게 적용한다는 말인가?
“천천히 가자.”
강현은 조급해하지 않기로 했다. 정 안되면 별수 없다. 아들의 건강과 안전을 담보로 해서까지 뇌 개발 기술을 연구하고 싶지 않았다. 어차피 연구할 거리는 넘쳤다.
그래도 그는 한 가지 너무나 궁금한 것이 있었다. 그건 아들의 뇌활동 자료였다. 강현 자신의 뇌활동 영상이 너무 신기했던 그는 아들의 뇌활동 영상도 보고 싶었다.
“아들아.”
“아버지.”
“나 좀 도와다오.”
“뭔데요?”
“내가 자료를 좀 모으고 있는데 청소년기의 뇌활동 상태란다. 응? 왜그러니?”
“혹시 수술 같은 거 하나요?”
그 눈은 매드 사이언티스트를 보는 눈이었다. 강현은 손사래를 쳤다.
“아니, 이것만 쓰면 된단다.”
준은 눈앞의 그것이 강현이 패션이라면서 쓰고 있던 것임을 알았다.
“이건, 아버지가 쓰고 있던 거잖아요.”
“그랬지.”
“패션이 아니라 연구였던거에요?”
“좀 비밀로 해야 해서.”
준은 강현이 왜 뇌 연구를 비밀로 하는지 그 내밀한 사정을 일부만 들었다.
“사람들이 알게 되면 비난한다구요?”
“그래. 아무래도 인체에 적용되는 기술은 윤리적인 문제를 동반하지 않니.”
또한 자식들의 지능을 돈을 지불해야 살 수 있게 되는 세상을 만들고 싶은 부모는 부자들 이외에는 없을 것이다. 강현은 그런 인간의 이기적 본성을 아들이 이해하기에는 조금 어렸다고 생각하고는 그 부분에서는 입을 다물었다.
강현의 말에 준은 고개를 갸웃 하더니 이렇게 말했다.
“하지만 로봇 팔다리를 하고 다니는 사람들도 많은데요.”
인간에게 적용되는 기술이 윤리적 문제를 동반한다면 지금 일반화된 로봇 팔다리, 사이버네틱스 기술은 어찌 된 일인가?
“음.. 인간에게 정신적인 부분이 더 중요해서가 아닐까?”
“정신이 인간을 좌우한다고요?”
강현의 대답에 준이 고개를 옆으로 갸우뚱했다.
“팔다리가 없다고 해도 인간이라고 하지 않니?”
“그럼 인간의 정신에서 뭐가 없으면 인간이 아닐까요?”
“글쎄다..”
강현은 말하기 힘들었다. 인간은 너무나 다양한 유형이 있기 때문에 인간은 어떠해야 한다고 정의하기 힘들었다.
그래도 한가지는 확실했다.
“감정이 없다면 인간이 아니지 않을까?”
“감정은 강아지나 고양이한테도 있는걸요?”
“그러니까 사람도 가지고 있어야지.”
“흐음...”
준은 곰곰이 무언가를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도울게요.”
“고맙다. 아! 그리고 친구들에게도 비밀이다.”
“네!”
강현은 그날부터 아들의 뇌 활동 영상을 기록했다.
“음...”
자신의 핏줄이지만 역시 달랐다. 준이 강현을 닮지 않은 것이 아니라 강현이 특이했다.
“흠.. 옥스포드의 자료랑 크게 다른 점이 없지?”
옥스포드는 TRNS 기술의 효과와 수학 학습 능력 사이의 상관 관계를 알기 위해서 제법 적지 않은 아이들의 뇌 MRI 영상을 가지고 있었다.
[기술적 차이의 오차를 고려하면 강준의 뇌활동량은 또래에 평균을 웃돕니다. 하지만 박사님의 뇌 활동량에 비하면 턱없이 모자랍니다.]
“내가 이상한 거지?”
[박사님의 두뇌 활동량은 비정상적입니다.]
“그거랑 천재성이랑 관련이 있나?”
[개연성은 있는 것 같지만 확신할 수는 없습니다.]
“아우! 미치겠네!”
실험을 해보면 알 수가 있겠지만 실험을 할 수가 없었다. 그건 강현에게 스트레스였다. 인간으로서의 존엄성과 과학자로서 가진 호기심의 갈등에 머리칼을 쥐어뜯었다.
그 장면을 본 아즈삭이 한 마디 했다.
[꼭 사람에게 실험해야 합니까?]
“....”
짝!
강현은 박수를 한 번 치고는 깨달은 듯이 외쳤다.
“사람에게 실험이 안되면 사람을 만들면 되지.”
[이해가 안됩니다.]
사람에게 실험이 안되는데 사람을 만들어서 실험한다? 거기에 무슨 차이가 있나?
강현은 자신의 표현이 모호하다는 것을 깨닫고는 말을 정정했다.
“인공뇌야. 사람의 뇌와 동일하게 기능하는 인공뇌를 만드는 거야.”
강현의 표정에는 흥분이 떠올라 있었다.
[어떻게 만드실 겁니까?]
“방법은 많아. 유인원의 뇌를 변조한다던가, 아니면 시냅스를 모방한 나노 구조를 만든다던가.”
[RNP와 SNP도 있지 않습니까?]
“그건 뇌와 달라. 뇌의 발달은 무작위적인 것 같지만 무작위적이지 않아. 뇌의 발달과 기능의 분화에도 패턴과 법칙이 있어. 그렇지 않다면 뇌의 각 부분이 사람마다 비슷하지는 않겠지.”
모든 사람의 해마는 기억에 관련된 기능을 가진다. 성능의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그 기능은 다르지 않다. 사람의 후두엽도 시각 정보를 처리한다. 성능의 차이가 있지만 하는 일이 다른 경우는 없다.
인공지능의 모듈로 사용하는 RNP, SNP의 경우에는 많이 다르다. 나노 핀을 삽입해 ‘사회화’과정을 통해서 내부 회로 구조를 역추적하는 방식이라 인공지능이 같은 행동을 해도 작동하는 부위는 달랐다.
확률적으로 그리고 실제로 일치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있다고 해도 SNP 같이 자기 조립 과정을 거친 나노 구조만이 일치했다.
[그럼 바이오 공학 기술을 사용하실 생각입니까?]
뇌의 발달은 자극에 대한 시냅스의 발달로 이루어진다. 아기들도 태어나고 나서야 감정이나 이성이 발달한다.
적절한 사회화 과정을 거쳐야 사람으로서 한 몫을 할 수 있다. 늑대 소녀의 경우처럼 성장하는 과정에 언어같은 특정한 자극을 받지 못한다면 제대로 말을 하기도 힘들다.
고래 같은 경우에는 부족에 따라서 사용하는 초음파 패턴(언어)가 다른 경우도 있다.
그리고 자극에 대한 반응이 가장 유동적이고 상호 보완적인 것은 역시나 생명체 뿐이다.
“기존의 인공지능의 발달 과정이 뇌의 발달 과정과 다르니까 어쩔 수 없지.”
뇌의 발달 과정과 인지 기능에 대한 연구는 오랫동안 진행되어 왔다. 정확히 설명하지는 못하지만 자극이 인지 기능의 발달에 영향을 끼친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학부모들에게 아이들이 어릴 때 다양한 경험을 많이 하도록 권고한다. 그것이 뇌와 인격의 발달에 큰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그 발달은 대부분 3살 무렵에 끝나는데 그 시기에 아이들의 성품이 대부분 결정된다. 3살 버릇이 여든까지 간다는 속담은 오랜 경험에 의거한 것이다.
그리고 그런 발달이 인간의 오감에 의한 자극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과는 달리 인공지능에 대한 자극은 논리와 명제의 수정에 의해서 진행된다. 하드웨어는 이미 완성되어 있기 때문에 패턴화된 전기적 신호를 변화시키며 발달하는 것이다.
전자 세계의 생물체인 인공지능과 물질 세계의 생물체는 발달 원리 자체가 달랐다.
그러므로 인공지능의 하드웨어를 만드는 방법을 응용하기는 힘들다. 자극에 의해서 하드웨어가 변조되어야 했기 때문이다.
“시넵스를 만들기 위해서는 뇌세포가 필요한데...”
유인원의 뇌를 이용할까?”
강현은 고개를 저었다. 멀쩡한 생물의 뇌를 이용하면 동물 보호 단체에서 들고 일어날 것이다. 무언가에 애정과 신념을 가진 이들을 설득하는 건 보통 골치아픈 일이 아니다.
그것도 그렇지만 유인원의 뇌를 사용하기 위해서 외과적 처리가 반드시 필요한데, 강현은 피가 튀고 뇌수가 흐르는 짓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는 생각보다 비위가 약했다.
“생물같지만 생물이 아닌 것이라...”
뇌 연구는 비밀로 진행하지만 혹시나 들킬 때를 고려하면 누가 봐도 연구 윤리적으로 지적당할 부분이 없어야 했다. 사람도 동물도, 심지어 생물도 아니지만 생물 같이 반응한다는 조건은 그가 생각할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이었다.
그리고 그는 한가지 생물 같지만 생물이 아닌 것을 알고 있었다.
“JH 세포라.. 그건 연구가 어디까지 진행되고 있지?”
강현의 옛 연인이 만들었던 JH 세포는 현재 의약 산업에서 활발하게 사용되고 있었다. 증식 조건이 매우 까다롭지만 물질대사를 통한 약효 물질 생산은 대장균보다 훨씬 큰 이점이 있었다.
이중 나선의 염색체가 아닌 많은 수의 플라스미드를 통한 유전 활동은 돌연변이의 가능성도 적어 생물학 오염에 대해서도 훨씬 안전했다.
여러 연구실에서는 이 JH 세포를 통해 생명을 구성하는 화학적 코드를 분석하고자 노력했고 그 와중에 세포 분화의 메커니즘을 설명하는 실마리도 잡았다.
이를 이용해 JH 세포를 하나의 장기처럼 덩어리로 만들려고 하는 시도가 한창 진행중이었는데 이는 배양 탱크를 유지하는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기 때문이었다.
“신경에 관한 건?”
[JH 세포의 부피가 일반 진핵 생물의 부피보다 크기 때문에 이식이나 교체를 위한 기술은 연구되지 않고 있습니다.]
“JH 세포를 이용한 상처 치료 기술도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