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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의 군림자-230화 (230/241)

230화

이에 시민단체들이 나서서 격렬히 반대했다. 문화가 다른 외국 노동자들의 이민으로 생길 각종 사회 문제를 생각하지 않고 기업의 입장만 고려했다는 명분에 불체자들로 인해서 생기는 각종 범죄 문제를 들어 오히려 외국인 노동자를 철저하게 규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부와 기업에서는 그러면 국가의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둥, 글로벌 시대에 맞지 않는 생각이라는 둥 온갖 변명을 늘어놓았다. 그러나 시민단체는 요지부동으로 시위를 계속했다. 기업들은 이를 갈았다.

분명 뒤에 누가 있었다. 외노자 수입을 하지 않아도 괜찮은 곳, 아니 외노자 수입 금지로 기업이 타격을 입으면 반사 이득을 얻을 수 있는 곳. 바로 제현 그룹이었다.

제현 그룹에서는 결코 불체자 따위는 고용하지 않았다. 외국인 노동자를 고용하는 것도 철저하게 고급 인력 위주였다. 왜? 이유는 얼마 뒤에 드러났다. 협력 하청 업체인 세컨드 밴드 연합에서도 인력난이 있었는데 제현 그룹이 지원한 인공지능과 로봇들으로 인력난을 크게 줄였기 때문이었다.

외노자 수입 반대 시위를 한 시민들 입장에서는 외국인 노동자들 보다 차라리 로봇이 달가웠다. 시민 단체들은 정말로 노동력이 없어서 문제라면 조금 비용이 더 들더라도 로봇을 도입하자고 주장했다. 적어로 로봇은 생리후생, 복지 문제나 범죄 문제를 고려하지 않아도 되지 않은가?

제현 그룹은 품질이 인정된 미제 안드로이드를 들여왔다. 미국에서는 제현 그룹과 세컨드 밴드를 친미파로 분류해 가격에 대한 편의를 봐주었다. 마진을 줄여준 것이다.

왜 우리에게는 팔지 않는가? 다른 대기업도 안드로이드를 도입하기 위해 미국 관련 업체에 문의해 봤지만 물량이 제현 그룹에 다 들어가서 팔 수가 없단다. 언제쯤 팔 수 있냐고 물으니 한 5년 동안의 물량이 다 예약 되어 있단다.

증산 계획은 없냐고 물으니 없다고 한다. 투자해 줄테니 증산해 줄 수 있냐고 물으니 미 정부의 허락을 받아야 한단다.

바보도 아니고 이쯤되면 미국 정부의 입김이 들어갔다고 확신할 수 있었다. 더불어 미국이 제현 그룹 뒤에 있다고 눈치를 주고 있는 것도 알 수 있었다.

미국의 눈치만 있었다면 친중파나 친러파에서 뭐라고 할 수도 있었겠지만 안타깝게도 단일 민족이라는 국가의 정체성을 고집하는 여론을 완전히 거부할 수 없었다. 대안이 없었다면 대안이 없다며 밀고 나갈 수도 있었겠지만 이미 로봇이라는 대안이 있었다.

그대로 밀고 나가다가는 민족의 배반자, 혹은 제2의 매국노라는 딱지가 붙을 수도 있었다.

상황이 이러니 재벌들도 어쩔 수가 없었다. 그들은 단순 노동이 가장 절실한 건축 현장을 돌리기 위해서 제현 그룹으로부터 노동용 로봇들을 대여했다. 그러자 새로운 불만이 생겼다.

[로봇 도입 반대한다!]

[생존권을 보장하라!]

일일 노동자들이 불법 체류자들과 함께 연대해 시위에 나선 것이다.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었다.

일일 노동자들이 시위를 해? 일용직이 흔히 그렇듯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었고 일자리는 적었다. 게다가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이들이라 일을 나가지 못하면 손해였다.

그들은 시위를 하면 생계가 어려워지는 정도가 아니라 사회의 밑바닥으로 떨어진다. 그런데 왜?

원인은 하청업체에 있었다. 건설 현장에서 인맥이나 뇌물에 의해 하청에 재하청이 잇따르는 건 이제 비밀도 아니었다. 그러나 제현 그룹에서 로봇을 임대받는 사업자는 굳이 재하청을 할 필요가 없으니 이 재하청 업체들이 모조리 죽게 된 것이었다.

그들은 제현 그룹 앞에서 시위를 벌여 보기도 했지만 카랄니 킴은 눈도 깜짝 안했다. 하청에 재하청이라? 유통과정이 줄어들면 가격은 싸진다.

이득은 생산자와 소비자가 본다. 창고형 대형 마트로 인해 중간 유통 과정이 축소되어 있는 미국에서 나고 자란 카랄니 킴의 시각으로 보면 하청의 재하청이란 구조는 쓸데없이 군더더기가 많은 구조였고 비생산적이었다.

복잡한 부품으로 구성된 첨단 제품도 아니고 노동력을 제공할 뿐인 건설 현장에서의 재하청은 결국 하청 업자만 남겨먹는 구조였다. 노동 유연화? 그러나 그 이득은 노동자에게 떨어지지 않았다.

[제현 그룹은 생존권을 위협하는 로봇 도입을 즉각 중지하라!]

[더 많은 일자리! 더 많은 기회!]

시위대의 말과 명분은 좋았지만 사람들은 바보가 아니었다. 위험하고 힘든 일을 하고 싶은 사람은 없었다. 돈이라도 많이 주면 몰라.. 여전히 몸 쓰는 일을 천하게 여기는 한국 사회는 안 그래도 3D(Dirty, Difficult, Dangerous)인 직종에 그만큼의 위험 수당도 주지 않았다.

언론은 중립을 지켰고 여론은 동조하지 않았다. 주판을 튕겨보던 원청(주로 대기업)들은 하청에 재하청이라는 형식을 포기하기로 하고 로봇을 대여했다.

그 많은 건설 현장에 제현 그룹이 일일이 로봇을 대여해 줄 수 없으니 일정 이상의 자격을 가진 노동력 사무소에 하청의 하청을 하지 않는다는 조건을 붙여 로봇을 대여하기로 했다.

하청 업계는 이 일로 구조 조정을 할 수 밖에 없었다. 많은 하청 업체가 문을 닫았고 십 수 개의 하청 업체로 통합 되었다. 여기에 얽힌 하류 인생들, 특히 폭력 조직이나 재하청으로 먹고산 인맥 비리 인사들이 끊임없이 잡음을 내어 봤지만 시류를 거스를 수는 없었다.

로봇에게 신체적 폭력과 협박이 먹힐 리가 없었고 또한 제현 그룹의 자산이었다. 만일 문제를 일으키면 제현 그룹이라는 거대 회사가 나선다. 조폭 같은 불법 단체는 제현 그룹이 밟고자 하면 밟힐 수 밖에 없었다.

이렇게 한국의 일용직 시장은 재편되었고 본격적으로 로봇이 도입된 노동 시장의 등장은 각국의 많은 관심을 받았다.

한국이 빠른 인터넷의 보급으로 첨단 IT 기술 환경을 시험할 수 있는 무대가 된 것과 비슷하게 로봇을 빨리 도입한 한국의 노동 시장은 앞으로 로봇이 인력 시장에 끼칠 영향력을 가늠할 수 있는 시금석이었다. 성공을 하든, 실패를 하든, 어떤 식으로든 보완할 수 있는 실마리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 봤다.

게다가 급격히 노령화되는 한국이 아니던가? 노령화 사회에서 로봇의 쓸모가 과연 예상대로인지 확인할 수 있어서 이웃인 일본이 흥미롭게 관찰하기 시작했다. 이미 노령화 사회에 접어든 일본보다 늦게 노령화가 시작된 한국 사회지만 초 노령화 사회로의 진입은 오히려 일본보다 빠를 것이라고 예측되는 한국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면 한국의 입장에서 로봇을 이용한 단순 노동과 3D 노동 인력확보는 어쩌면 선택이 아니라 필수일 수도 있었다.

한편, 한국의 인력 시장에 로봇이 도입되자 이미 충분히 주판을 튕겨봤던 미국의 자본가와 투자가, 기업들은 열불이 났다. 우리도 빨리 도입하자! 이건 돈이 된다! 왜 안된다는 거냐?!

당연히 안된다. 표를 의식하는 미국 정치인들은 급격한 노동 시장 붕괴를 원하지 않았다. 위기는 기회라며 노동 시장 붕괴로 인한 혼란이 사업 확장과 이윤 창출에 도움이 될 거라고 계산하는 이들과는 생각하는 방향이 달랐다. 아무리 선거에 돈이 필요하다고 해도 민심과 완전히 이반할 수는 없었다.

미국에서 로봇의 노동 시장 조기 도입에 관련해 사회 각층이 열변을 토해내고 있는 와중에 강현은 학부모 상담을 받기 위해 준의 진로 지도를 담당하는 선생과 마주했다.

“반갑습니다. 조셉입니다.”

“반갑습니다. 강이라고 불러주세요.”

세계를 주무르는 영향력을 가진 강현과의 만남이라 선생은 다소 긴장 했지만 그럼에도 침착함을 잃지 않고 이야기를 꺼냈다.

“요즘 준의 학업 성적이 떨어지고 있습니다.”

“그렇겠죠.”

“.... 알고 계셨습니까?”

“네.”

강현의 표정이 씁쓸해졌다. 아들의 영웅은 아버지라고 했던가? 그리고 으례 남자는 영웅을 닮고 싶고 영웅이 되고 싶어 한다. 거기에 준의 경우에는 강현을 칭송하는 말을 여기저기에서 들었으니 더욱 그러했다. 그러나..

“천재성은 유전이 아니었죠.”

안타깝게도 준의 지능은 강현의 수준이 되지 못했다. 물론 스스로의 노력으로 또래 아이들보다 더 많이 알고 있었지만 그 정도였다. 도저히 당시 나이의 강현 수준이 될 수가 없었다.

그것을 깨닫게 되자 준은 혹여나 자신이 아버지의 기대를 저버리는 것이 아닌지 절망하고 두려워 했다.

그런 기대를 표현하지 않았지만 강현도 안타깝기는 마찬가지였다. 부자가 나란히 과학자가 되어 심도 있는 토론을 하면 좋지 아니한가?

그는 기가 죽은 아들을 동정했지만 그것을 티내지 않았다. 실패한 이를 실패했다고 동정하는 것은 그를 실패자로 낙인찍는 일이었다. 그는 아들 마음에 실패자라는 낙인을 찍고 싶지 않았다.

더구나 아들이 자신에게 인정을 받기 위해서 과학을 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었다. 누군가의 인정을 받는 일보다 자신이 즐거운 일을 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누누이 이야기를 했지만 아들이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찾아서 열정을 불태울 수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할 수 있었다.

돈을 못 버는 일이라도 괜찮다. 자신이 돈을 많이 물려주면 된다. 돈 많은 아버지의 특권이다.

“앞으로 준이 어떻게 하기를 바라시나요?”

“별 다른 게 있겠습니까? 그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살았으면 합니다.”

“하지만 준은 강 박사님처럼 될 수 없습니다. 설사 과학자의 꿈을 이루고 살아도 강 박사님의 그림자가 드리워 질 겁니다.”

“모든 이가 1등이 될 수는 없습니다. 모든 이가 저처럼 운이 좋을 수도 없는 일이죠. 저는 준이 그것을 이해하기를 바랍니다. 과학으로 자신을 증명하는 삶을 사는 것보다는 과학이 인생의 즐거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물론 과학이 아니라 다른 걸로도 준의 인생이 풍요로워진다면 저는 언제든지 지지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도록 지도해 보겠습니다.”

가족이기 때문에 할 수 없는 말도 있다. 준이 자신의 절망을 강현에게 고백할 수 없는 것 역시 그러한 영역이었다. 적어도 스스로 그 절망을 이겨내기 전에 둘 사이에 그러한 이야기가 오가는 건 서로에게 상처만 남길 수 있었다. 그러니 학교 선생님이 준에게 도움이 될 수도 있었다.

강현은 준이 다시 자신을 찾을 때까지 불편한 마음으로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그러나 천성적으로 급한 그의 성미는 채 두 달도 기다리지 못했다.

“천재가 아니라서 고민이라면 천재로 만들어주자.”

[그게 가능합니까?]

“몰라. 시도는 해봐야지.”

Electrical Brain Stimulation(EBS)라는 것이 있다. 전두엽 부분에서 논리를 관장하는 부분에 미세한 전기적 자극을 주어 수학적 학습 능력을 증진시키는 기술이다.

뇌신경 윤리학자들에게 많은 비판을 받는 기술이지만 이미 자식들이 똑똑하기를 바라는 부자들의 투자를 받으면서 많은 연구가 진행되고 있었다.

피험자는 전기회로가 설치된 헤어 밴드를 착용한다. 전자기 유도의 원리로 좌뇌 전두엽의 일부분을 자극해 주는 이 헤어 밴드는 수학을 학습하는 능률을 높여준다.

그것이 단순한 플라시보 효과에 불과할 수도 있다. 좀 더 대규모로 실험을 한다면 확실한 결과가 나오겠지만 사람에게 실험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윤리적으로 문제가 있었다. 게다가 이제는 돈이 없으면 머리도 멍청해 져야 하는 세상이냐며 자식들이 도태될 것에 공포감을 느끼는 학부모들의 저항도 무시할 수 없었다.

그러니 강현이 정말로 범인(凡人)을 천재로 만들어 주는 기술을 만들어내 낸다면 그 파급력은 어마어마할 것이다. 부자들은 돈을 싸들고 찾아올 것이고 국가는 천재의 희소성을 위해서 기술을 통제하려고 들 것이다.

천재를 만드는 기술이 국익이라는 명분을 들어 국가의 통제를 받는 순간 소수의 사람에게 독점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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