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7화
[그럼 아이들이 재밌어할 교재를 챙겨가시는 건 어떻습니까?]
“어떤 걸로?”
[작은 로봇들은 어떻습니까?]
강현은 아즈삭이 낸 아이디어에 감탄했다. 아이들이 로봇을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며 제어하는 활동은 분명 아이들에게 과학자에 대한 깊은 흥미를 유발시킬 것이다.
사실 학습을 즐거운 놀이의 일환으로 여기게 하는 건 창의적 교육을 시도하는 곳에서 많이 시도하는 방법 중 하나였다. 공부를 놀이로 여기게 해서 자발적인 학습을 유도하는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강력한 경쟁 상대들이 있었다. TV, 만화, 영화 등의 각종 매스 미디어는 물론, 비디오 게임, 스포츠, 음악 같은 것들에 비하면 공부가 정말로 재밌는 아이들이 몇이나 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시도를 하는 이유는 그 중에서 정말로 공부에 재미를 붙이는 아이들에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천명 중에 한 아이라도 공부에 재미를 붙이게 되면 사회적으로 남는 장사다.
모든 아이들이 공부를 다 잘할 필요는 없으며 공부에 재능이 없는 아이들에게 억지로 공부시키는 것이 오히려 비능률 적이다.
그럼 공부에 재미를 붙이지 못한 아이들은 어쩌냐고? 그런 아이들을 위해서 창의적 교육이 필요한 것이다. 스스로 재능이 있는 영역을 발견하도록 하는 것이 바로 선진 교육의 현재였다.
사실 그것이 합리적이었다. 전 세계 모든 기초 교육 과정은 모두 동일하다. 어떻게 동일하냐면 대학에 진학하여 대학 수업을 받을 수 있도록 체계적으로 짜여져 있다. 왜냐면 이 커리큘럼은 대학 수준의 고등교육을 받은 전문가들이 짠 것이기 때문이다. 즉, ‘학자’를 양성하기 위한 커리큘럼인 것이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학자가 될 수는 없다. 아이들 중에서는 농부가 되는 아이, 비지니스 맨이 되는 아이, 경영자가 되는 아이, 스포츠 선수가 되는 아이 등 다양한 재능과 또는 재능의 한계로 인한 현실과의 타협으로 다양한 직업을 가지게 된다.
그중에는 운이 좋아 일찍 자신의 길을 발견하고 학교를 그만두고는 성공한 이들도 있었다. 그런 예들을 보면 획일적으로 ‘학자’를 양성하기 위한 커리큘럼은 모순점이 있었다.
이 문제를 인식한 각국 정부는 국민들의 역량을 강화하고 비합리적인 커리큘럼을 개선하기 위해 많은 투자를 했으나 아이들의 재능을 찾아낸다는 것은 정말로 어려운 일이었으며 관료주의적인 틀 안에서 빠르게 제도를 개선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반면 사립학교들은 그런 부분에서 빨랐다. 아이들의 재능을 일찍 발견하여 아이들의 가장 소중한 자산인 시간을 아껴주고 싶은 부모들의 요구사항을 재빨리 발견하여 커리큘럼을 수정하였고 미네르바툼도 마찬가지였다. 이른바 창조성 교육이라는 것이다.
앞으로 미래는 로봇 기술이 발달하게 된다. 단순 노동과 힘들고 위험한 일도 로봇이 맡게 되면서 일자리는 급감하게 될 것이다.
미국 정부는 로봇의 도입으로 일자리가 줄어들 수 있는 분야에 대해서 강력하게 규제를 해서 최대한 시기를 늦춰보려고 하고 있지만 뜻대로 되지 않을 거라고 예상했다.
생산성은 곧 국가의 역량. 타국이 먼저 로봇 노동자의 전격적인 도입으로 미국을 능가하는 생산성을 가지는 것도 고려해야 했고 이윤을 추구하는 투자자나 기업들의 로비 역시 만만하지는 않았다.
물론 환경이 변화하면 후손들도 그에 맞추어 적응해 어찌 어찌 살아가나, 너무 급격한 변화에 도태되는 기성 세대들이 문제였다. 사회에서 낙오된 이들로 생기는 각종 사회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 사회 구조를 바꾸거나 개인이 다시 사회에 적응할 능력을 키워야했다.
정부로서는 당연히 후자가 편하다. 사회 구조를 바꾸는 것은 생각만큼 쉬운 문제가 아니었고 가속이 붙은 현대의 변화는 대세를 거스르기 어려운 면이 있었다.
그러나 인간의 학습 능력은 젊은 시절을 지나게 되면 감소한다. 그리고 몸에 익은 기술에 그것을 무용지물로 만드는 기술이 개발되는 순간 쓸모없어 진다. 선천적인 이유와 후천적인 이유로 인해 개인에게만 책임을 지우는 순간 사회에서 도태되는 사람들이 대거 양산 된다.
그렇다고 시간이 지나 그런 사람들이 죽고 사라지면 괜찮아질까? 절대 그렇지 않다. 과학기술이 촉발시킨 변화의 속도는 후손들이 어른이 되어도 멈추지 않을 것이다. 아니 오히려 더 심해질 것이다.
그래서 창의성 교육이 필요한 것이다. 주입된 지식이 아니라 지식을 사용하는 능력 그 자체를 키우는 것을 목적으로, 아이들이 나중에 변화하는 세상에서도 창의적으로 적응할 수 있도록 고안되었다.
지금도 기업들이 필요로 하는 창의적 인재라는 테마 때문에 얼마전부터 커리큘럼을 개선하고 있었고 정보화 사회가 된 지금을 생각해 보면 주입식 교육보다는 역시 창의성 교육이 합리적이었다.
즉, 끊임없이 변화되는 세상에서 아이들을 잉여인간으로 만들지 않기 위해서 창의성 교육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였고 우주 개척의 첨두에 서있는 아폴로티움으로서토 최초의 교육기관인 미네르바툼에 권고하지 않을 수 없는 제도였다.
그리고 그 커리큘럼 중 하나인 일일 교사 제도는 아이들에게 미리 다양한 직업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식시키고 일찍부터 자신이 무엇을 할 것인지 고민시키기 위한 과정 중 하나였다.
그런 의미에서 강현은 과학자라는 것이 얼마나 재밌고 흥미로운 것인지 일일 교사로서 아이들에게 알려줄 의무가 있었다.
“어.. 이거 너무 복잡하지 않아?”
[좀 더 간단하게 하면 제대로 작동하지 않습니다.]
작은 로봇을 교재로 사용한다면 어떤식으로 사용해야 하는가? 아이들에게 저항이나 반도체 칩을 납땜하게 만들어야 할까? 하지만 아이들은 겨우 4학년이다. 너무 복합하고 전기 회로를 이해할 정도로 지식을 축적해야 했다.
그렇다고 단순히 다이오드가 이쁘게 반짝거리는 걸 하기에는 임팩트가 너무 약했다. 스마트 기기 같은 첨단 전자 제품에 노출된 아이들에게 자신의 손으로 직접했다고 해도 고작 불빛이 반짝이는 건 결과만 보면 시시하기 짝이 없었다.
지식을 축적한 인재들이 개발한 물건과 아이들이 수업 시간에 만든 물건의 수준이 같을리 없었고 첨단 전자 기기에 익숙한 아이들이 자신들의 결과물에 흡족해 할 가능성은 더욱 없었다.
그렇다면 아이들에게 첨단 지식을 알려줄까? 그건 이해할 수 있냐는 문제를 떠나 ‘아이들에게도 쉽고 즐거운 과학’이라는 테마를 벗어나는 일이다.
아이들이 좀 더 쉽게 로봇의 작동원리를 이해할 수 있도록 단순화해야 했다.
“모듈화를 해보자.”
미군이나 각국의 군대에서는 부품을 모듈화했다. 복잡하게 구성된 장비의 기능을 물리적으로 구역화하여 문제가 생겼을 시에 즉시 예비 모듈과 교체할 수 있게 한 것이다. 그리고 고장난 모듈은 다시 생산 업체나 수리 시설로 보내 전문 엔지니어가 수리한다.
이 방법의 장점은 장비를 운용하는 병사가 전기 공학적 지식에 해박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메뉴얼 대로 문제를 체크해 문제가 생긴 부분이 어디인지만 파악할 능력이 있으면 된다.
마찬가지로 로봇을 모듈화 시키면 아이들도 복잡한 지식 없이 로봇을 구성할 수 있게 된다. 사실 모듈화된 기계공학적 장난감도 적지 않았지만 복잡한 일렉트로메카닉스(electromechanics)를 할 수 있을 수준의 장난감은 없었다.
“문제는 소프트웨어군.”
로봇의 행동을 제어하기 위한 소프트웨어 역시 직관적으로 구성해야 했다. 아이들이 아직 숫자에 약하기 때문에 운동역학적 공식을 이해하고 직접 수치를 집어넣는 것이 어렵고 거부감이 들 수도 있었다.
물론 강현에게는 숨 쉬듯이 쉬운 일이었지만 그는 어딘가의 밥 선생님이 될 생각은 없었다.
제어 소프트웨어를 구성하기 위한 첫번째 조건은 아이들이 구성한 로봇의 형태를 컴퓨터가 인식하게 하는 것이다. 이는 어렵지 않았다. 연결된 모듈이 보내는 전기적 신호를 받아 3D 시뮬레이션을 하면 되니까.
그러나 그것을 토대로 아이들이 쉽게 로봇을 제어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를 짜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시간이 없는데..”
당장 주말이 지나면 학교로 가야했다. 일주일 밖에 남지 않았으니 이틀 안에 적절한 인터페이스를 생각해 내야 했다. 모듈은 이미 그동안 축적한 아이디어 노트 중에서 쓸만한 것이 있어서 그걸 적당히 고쳐서 만들고 있었다. 아이들의 수에 맞추어 HA가 열심히 밤새서 만들 것이다.
“로봇에 동작을 각인시키는 건 일단 수동으로 입력하고 그 동작의 속도를 조절하는 건 역시 숫자로 해야할까?”
[다른 방법이 있습니까?]
“없어.”
강현의 머리속에 순간 생각만으로 컴퓨터를 다루는 뇌파 입력 장치가 스쳐지나 갔지만 그것까지 시도하기엔 시간이 너무 없었다.
결국 강현은 최대한 단순하게 인터페이스를 만들고 수업 시간에 가져갔다. 인터페이스가 할 수 있는 일은 모터의 동작 속도를 조절하는 것 뿐이었다. 모듈의 움직임 크기는 아이들이 직접 손으로 움직여서 입력하도록 되어 있었다.
“안녕.”
“““안녕하세요.”””
강현이 아이들에게 인사를 하자 아이들이 대답했다. 그의 시야에 시아게 히죽 웃는 모습이 보였다. 그도 싱긋이 웃고는 수업을 시작했다.
“자, 오늘은 로봇을 만들어 볼 거에요.”
강현이 손짓을 하자 안드로이드가 커다란 상자를 들고 들어왔다.
“우와아!”
아이들의 반응이 안드로이드에게 더 격렬했다. 상자의 내용에 대한 관심보다 턱턱 걸어다니는 안드로이드에게 더 관심이 갔다.
하긴 아무리 안드로이드 기술이 발달했다고 해도 안드로이드는 기본적으로 매우 비싼 녀석이다. 거기에 노동 시장의 붕괴를 최대한 늦추기 위해서 정부에서 각종 규제를 걸었으니 상업적으로 판매하는 일은 없었고 여전히 보기 힘든 물건이었다.
“자자. 이 안에 로봇을 만들 재료가 있단다.”
강현이 주의를 끌어봤지만 아이들의 시선은 작은 상자를 하나씩 나눠주는 HA에게서 떨어질 줄 몰랐다. 유일하게 안 그러는 아이는 HA에 익숙한 자신의 딸 밖에 없었다.
아이들이 HA에게서 눈을 때지 못하자 강현은 선택할 수 밖에 없었다. 자신에게 아이들이 집중하게 만들려면 수업 시간이 반이 지나갈 지도 모른다.
“어.. 아즈삭. 네가 수업해라.”
[알겠습니다.]
아이들이 HA 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자 강현은 결국 아즈삭에게 수업을 맡겨버렸다.
그는 결국 교사감이 아니었다.
= = = = =
로봇이 진행하는 수업은 아이들이 집에 돌아가자 학부모들에게 알려졌고 학부모들은 직장에서 어제 자신의 자식들이 로봇에게 수업을 받았다는 썰을 풀어 놓았다.
과연 강 박사라는 감탄과 함께 역시 미래 시대를 주도하는 사람이라고 엄지를 추켜 올렸다. 그 말을 강현이 들었다면 한 손으로 눈과 눈썹을 가리고 한 숨을 내쉬었을 것이다.
진실을 모르는 이들은 사건의 표면적 부분과 자신의 상식을 조합해 자신이 납득할 수 있는 이야기를 만든다. 누가 강현이 로봇에게 인기가 밀려 교사 자리를 내놔야 했다는 걸 상상이나 해봤을까?
아무튼 부모들은 쉬는 시간에 동료들과 로봇 교사에 대한 이야기와 미래 세상의 형태에 관해서 이야기를 하며 자식들의 교육은 어찌되는가에 대한 서로의 생각도 풀어놨다. 역시 교육은 사람이 관여해야 한다고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다.
그리고 직장 동료들은 물론 부모 중에서도 로봇 교사에 관한 일을 SNS에 올리면서 세상에 알려졌고 인공지능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기대와 경각심을 동시에 일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