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4화
“이 일로 나에게 불똥이 뛰지는 않겠지?”
[글쎄요.]
“미국 정부가 알아서 보상해 줬잖아.”
[그리고 박사님은 정부에 빚을 지게 되었죠.]
“쩝...”
강현은 좀 억울했다. 카낙의 가치만큼 그가 이득을 보았다면 억울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카낙으로 생긴 이득은 유무형의 형태로 사람들에게 배분되었다. 아폴로티움과 우주 농장을 싸게 건설할 수 있었던 것을 제외하고도, RP 시스템의 안정을 위해서 막대한 이윤을 포기했다.
요전번에 RP 가격의 급락을 막기 위해서 그 동안 쌓인 자본의 상당량을 손해 본것은 RP로 자산을 쌓은 사람들의 손해를 보전해주는 행위였다.
그러나 이미 일은 벌어졌고 사람들 중 강현의 양보를 기억하는 사람이 있다고 하더라도 세상 인심이 그렇게 돌아가는 것은 아니었다. 강현을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이 없다고 할 수 없고 그로 인해 이득만 본 사람이 없다고 할 수 없었다. 그리고 카낙은 강현의 피조물이다.
책임 소재를 따지면 강현에게 화살이 날아갈 빌미가 충분히 있었다.
그런데 그런 상황에서 미국이 알아서 나서서 보상해 주었다.
왜냐면 ‘자국민’이기 때문이다. 카낙이 저지른 일이 강현의 잘못이 아니라도 강현이 만들었기 때문에 미 정부가 대처에 미흡했다면 강현을 비난하는 여론이 생겼을 것이다. 그리고 강현은 매우 섭섭함을 느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미국이 강현의 곤란함을 해결해 주기 위해서 알아서 자발적으로 성심성의껏 나섰으니 강현이 성의나 감사의 표시를 하지 않으면 미 정부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섭섭할 것이다. 오는 것이 있으면 가는 것이 있다. 그것이 신뢰의 형성 과정인 것이다.
그렇다고 막상 기술을 하나 턱하니 개발해서 넘겨주는 건 좀 그랬다. 그것은 강현의 이익과 미국의 이익이 동시에 실현되는 Win-Win 게임이기 때문에 미 정부의 호의에 나도 이만큼 호의를 표했다고 말하기 낯 뜨거운 부분이 있었다.
성의란 내가 약간의 손해를 보더라도 상대방의 이득을 고려해 주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강현은 그동안 미 정부의 제안을 받기만 하고 답을 주지 않은 것 중에서 적당한 것을 골랐다.
미국 과학기술정책실(Office of Science and Technology Policy). 대통령실에 설치된 이 기구는 대통령을 과학적으로 자문해 주는 역할을 한다. 판단 기준과 기술적 분석의 기준을 마련하고 국방, 외교, 내정에 관련된 모든 과학기술적 문제에 대해서 대통령에게 조언한다.
뿐만 아니라 과학 기술 분야에 대한 국가의 능률성을 평가하고 관련된 연방정부의 기관에 마찬가지로 과학 기술 정책에 관련된 조언과 지원 업무를 담당한다.
그리고 우주 개발 시대에, 우주 개발 시대를 연 장본인인 강현이 과학기술정책실로 들어가는 것은 인사적으로 매우 합당하며 합리적인 결정이었다. 정작 연구자가 본질인 강현은 관료들 사이에 끼는 것이 싫었지만 그런 문제는 일종의 고문직으로 들어오면 된다는 제안으로 어느 정도 해결되었다.
딱히 정해진 업무는 없지만 우주 개발 정책에 관련되어 기술적 자문이 필요할 때, 그와 연결하기 쉬운 통신망이 형성되는 것이다.
[하하하! 반갑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이쪽이야 말로.”
강현이 정부 기관의 고문으로 들어갔다는 소식은 정부의 우주 정책에 대한 관심과 현 정권에 대한 홍보 효과를 동시에 누렸다. 오는 것이 있다면 가는 것이 있는 법. 백악관은 강현의 행동에 고개를 끄덕이고 만족했다. 이것으로 대통령 지지도가 올라 내년 대선에도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었다.
강현이 정부 기관의 고문 역할을 맞자 샐리는 날아드는 초대장에 정신이 없었다. 안 그래도 미네르바툼의 임시 이사장이라는 직함 때문에 일이 많은 그녀는 여기 저기 참석해 달라는 요청이 많았는데, 남편 때문에 초대장이 두 배로 날아왔다.
“현. 여기 갈거에요?”
“아니.”
“그럼 답장을 해야죠.”
“아즈삭 시키지 뭐.”
그녀는 귀찮은 일을 아즈삭에게 넘기는 강현의 여유가 얄미웠다. 그래서 자신의 업무도 아즈삭에게 떠넘길까 하다가 이내 고개를 저었다. 강현이 저럴 수 있는 이유는 아즈삭의 성향과 그의 성향이 붕어빵처럼 닮아있었기 때문이었다.
샐리의 업무 보조를 아즈삭이 했다가는 샐리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초대장을 쓸모없다며 버릴 수도 있었다.
“아참. 미네르바툼에서 학부모 참관 수업이 있어요.”
“음?”
참관 수업? 강현의 귀가 쫑끗했다.
“전 임시 이사장이란 직함이 있어서 함부로 수업에 참석할 수가 없어요. 그러니까 당신이 준의 수업에 참관해요.”
아무리 공사 구분이 철저한 서양이라고 해도 사람의 심리라는 것이 그렇지 않았다. 샐리는 준의 참관 수업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지기 위해서 교사 및 주변에 부담이 되지 않게 참가하지 않기로 한 것이다.
강현은 그녀의 선택을 존중했다.
“그러지 뭐.”
“아참. 그리고 잘 찍어와요.”
“알았어.”
샐리가 요즘 말도 많고 인기도 많은 해드셋형 모바일 스마트 기기를 건네주었다. 이미 지구에서도 개발되고 있었던 현실 증강 안경이었고 우주 시대, 우주 인부들의 안전을 위해서 적극적으로 도입한 현실 증강 기기로 인해 더 빠르게 붐이 일어나고 있었다.
특히 헬멧을 쓰고 일했던 우주 인부들에게 머리에 쓰는 형태의 스마트 기기에 대한 부담감은 적었고 첨단 IT 강국 중 하나인 한국 출신이다보니 새로운 스마트 기기를 구입하려는 얼리어답터족(族)이 적지 않았다.
덕분에 아폴로티움에서 모자형태나, 안경 형태의 스마트 기기는 보기 어렵지 않은 품목이었다.
샐리가 그걸 강현에게 준 이유는 강현이 보는 시선 그대로 아들의 수업을 참관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이사장이라는 직책으로 공과 사만 고려했던 그녀는 강현이 가서 일어날 일은 전혀 예상하지 못하고 있었다.
= = = = =
“오늘 ‘그 사람’이 온다면서요?”
“하긴 하나뿐인 아들의 수업참관에 오지 않을 리가 없죠.”
“그럼 Mrs, 강은 안 오는 건가요?”
“이사장까지 오면 수업이 될까요? 신임교사라면서요.”
“그것도 그렇네요. 바싹 얼지 않을까요?”
교문으로 들어오는 학부모들이 잠시 수군거렸다. 그러나 그 소란은 잠시 뒤 더 은밀해졌다. 전기 자동차에서 강현이 내려왔기 때문이다.
“준, 교실이 어디더라?”
강현의 물음에 같이 내린 로봇독이 앞장을 섰다. 봉제인형같이 천으로 마감되어 여전히 우스꽝스러운 모습이지만 로복독 특유의 정교한 위압감을 주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했다. 혹시나 아이들이 호기심에 만지게 되면 딱딱한 철보다는 보드라운 원단이 좋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어떤 용감한 자가 로봇독의 뒤를 따라 걷는 강현에게 말을 걸었다.
“안녕하세요.”
“아, 네. 안녕하세요.”
강현은 평이하게 인사를 받았다.
“강 박사님이시죠?”
“네.”
“감사합니다.”
“네?”
강현은 대뜸 감사하다는 말에 어리둥절했다.
“제 이름은 천정호라고 합니다.”
강현은 천정호가 내민 손에 어리둥절해도 마주 악수를 했다. 그러나 천정호는 그의 손을 놓지 않았다. 천정호는 말을 이었다.
“한국에서 내부고발자라는 딱지가 붙은 저는 소송에서 이기지도, 그렇다고 취업도 되지 않았습니다.”
한국에서 내부고발자가 살기는 힘들다. 아무리 능력이 있어도 기업들은 내부고발자를 고용하기를 꺼린다. 당연하다.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에 있어 ‘사익’보다 ‘공익’을 중요시하는 내부고발자는 위험요소다.
천정호는 어떤 기업에 취업을 문의할 때 담당자에게서 ‘차라리 정치활동을 하는 게 어떻겠습니까?’라는 말을 들었다. 잠깐 그래볼까라고 생각하기도 했지만 그는 정치할 성격은 아니었다.
단지 스스로의 양심을 속이지 않기 위해 내부 고발자가 된 것 뿐이다. 게다가 그러하기에는 이미 언론의 카메라와 펜대는 그를 한번 지나쳤고 사람들의 관심은 금방 식었다.
결국 ‘공익’을 중요시하는 내부고발자를 보호할 수 있는 건 국가, 혹은 사람들뿐이지만 한국 정부가 친기업적이라는 걸 모르는 국민은 없었고, 한국 사람들은 너무 빨리 끓고 너무 빨리 식었다.
“제현 그룹이 아니었다면 가족들이 힘겹게 살아가고 있었겠죠.”
말을 하는 천정호의 눈가가 벌게졌다. 나중에.. 아주 나중에 아이들이 자라고 나서도 여전히 가난하고 힘들게 하루하루를 버티는, 여유없는 삶을 살게 될 때, 자신이 해줄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그는 이미 한국 사회 주류층에게 있어 아웃사이더였다.
그는 아이들의 입에서 ‘차라리 입 다물고 가만히 계시지 그랬어요?’라는 말이 나오게 될 상황이 너무나 두려웠다.
그런 와중에 제현 그룹이 내민 손은 그에게는 구원이었다. 아내는 두말하지 말고 망설이는 천정호의 등을 떠밀었다. 군인으로서, 국가를 위해 내부비리를 고발했던 애국심이 ‘이것이 나라를 버리고 떠나는 것이 아닐까?’라며 손을 머뭇거리게 만들었지만, 가족 때문에 계약서에 사인했다.
결과는 매우 만족스러웠다. 업무와 일은 정확히 책정되었고 인류의 우주 진출을 선도한다는 자부심과 장차 우주 개발에 필요한 인력과 인재가 된다는 비전도 있었다. 생활은 윤택해졌으며 제현 그룹과 아폴로티움의 시스템은 말단 직원의 의견도 임원진에게 올라갈 수 있을 정도로 민주적이며 수평적이었다.
“감사합니다.”
천정호는 제현 그룹을 만들고 제현 그룹에서 미국의 영토인 아폴로티움 건설에 한국인을 모집할 수 있게 한 강현에게 할 수 있는 말이 그것밖에는 없었다.
“아... 아, 네..”
강현은 겸연쩍어 한 손으로 볼을 긁었다. 그러나 거기서부터 시작이었다.
“강 박사님. 감사합니다.”
내부 고발자였던 이가 한둘이 아니었나 보다.
“기회를 만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백수였던 이도 감사의 인사를 하러 왔다. 취업비자 및 영주권을 받아 아폴로티움으로 이주한 사람이 적지 않아서인지 미네르바툼에 한국인이 적지 않았다. 물론 거의 다가 제현 그룹이 우주 인부로 고용한 이들이었다.
그들이 저마다 강현에게 감사의 말을 하고 싶어서 하나둘 모이기 시작했다.
“감사합니다.”
“너무 감사해요.”
“고맙습니다.”
“아, 네. 저기 그게.”
강현은 당황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서 감사와 호의를 받는 일은 단연코 그의 인생에서 처음이었다.
사태는 수습 불가였고 참관 수업보다 더 흥미진진한 광경을 구경하는 백인들은 스마트 기기로 강현의 당황해서 벌게진 얼굴을 인터넷에 올렸다.
= = = = =
“......”
샐리는 퇴근해서 소파에서 멍한 얼굴을 한 남편을 보았다. 남편으로 인해서 참관 수업 계획이 차질을 빚었지만 어째선지 화보다 웃음이 먼저 나오는 그녀였다.
“풋!”
“왜?”
“그냥 웃겨서요.”
강현은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준의 교실에 들어가도 그를 흘끔거리는 시선이 느껴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이들에게도 무척이나 유명한지 수업시간에서 뒤를 보며 짝꿍과 소곤거려 교사가 곤란할 정도였다.
하긴, 아폴로티움에 사는 아이들에게 아폴로티움에서 살기 위한 필수 지식과 여러 교양 지식을 가르쳐 줄 때 빠지지 않는 사람이 바로 강현이었다. 이름은 물론 사진도 있어 아이들에게는 유명했다.
게다가 펜타봇이나 트리플론은 물론 치안 보조 업무를 맡은 경찰을 지원하는 멋있는 로봇독까지 만든 사람이라지 않은가? 데리고 온 로봇독의 모습이 좀 희안(?)하기까지 해서 아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