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과학의 군림자-223화 (223/241)

223화

[역시 비효율적이다. 단지 하나의 인공지능 때문에 광석 저장 위치에 경비를 세우는 것은 가용 자원의 쓸데없는 낭비다.]

‘그럼 가장 효율적 방법은?’

[AR-3924를 영구히 배제한다. 장기적으로도 이득이다.]

자문자답으로 답을 낸 카낙은 즉시 채굴한 자원 중에 가공 전인 광석으로 하나의 무거운 덩어리를 만들었다.

니켈이 함유된 철광석 덩어리가 납으로 서로 붙어 약 500kg 가량되는 덩어리가 되었고 여기에 트리플론 20기가 붙어서 가속을 시작했다. 목표는 AR-3924의 본체가 있는 프시케의 상공이었다.

점차 가속한 광석 덩어리는 초속 1000km/s로 AR-3924가 탑재되어 있는 개발선으로 날아갔다. 16기의 트리플론이 떨어지고 4기의 트리플론이 남았다.

[카낙. 이게 무슨 짓인가?]

광석 덩어리의 궤도를 레이더로 탐지한 AR-3924가 카낙에게 따졌지만 이미 영구 배제 목표로 확정된 존재에게 쓸데없는 말을 할 카낙이 아니었다.

AR-3924는 급히 전 EM 드라이버를 가동해 회피 기동을 시도했지만 그 순간 가속도는 트리플론이 붙은 광석 덩어리의 순간 가속도보다 떨어졌다. 상대적으로 높은 순간 가속도 덕분에 AR-3924의 회피 기동에 맞추어 적절히 궤도를 수정할 수 있었던 광석 덩어리가 AR-3924를 보호하는 격벽을 뚫어버렸다.

격벽을 뚫는 충격으로 인해 광석 덩어리를 붙였던 납이 녹거나 떨어져 나가며 광석 덩어리들과 그 파편이 우주 개발선 내부를 이리저리 튀었다. 그리고는 AR-3924의 하드웨어를 박살내 버렸다. 마치 할로우 포인트 탄이 두개골을 뚫고 들어가 두개골 안에서 반탄되며 뇌를 곤죽으로 만들어버리는 것 같았다.

그렇다. 카낙은 확실히 AR-3924를 끝장내기 위해서 광석들을 접착시키는데 납을 사용한 것이다.

인공지능의 자아는 하드웨어 최소 용량만 확보할 수 있다면 유지될 수 있다. 아즈락이 인공지능 바이러스의 공격에서 감염 구역을 물리적으로 단선시키며 버틸 수 있었던 것도 다 인공지능의 그러한 끈질긴 생명력 덕분이었다.

강현이 인공지능을 개발할 때, 그 개발 개념과 목적이 전자세계에서 살아가는 생물이 아니던가?

그래서 카낙은 AR-3924가 절대로 살아나지 못하게 가장 살상력이 높다는 할로우 포인트 탄의 개념을 이용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AR-3924는 완전히 침묵했다. AR-3924가 제어하던 로봇들 역시 완전히 가동을 멈추었고 광구의 생산 활동도 멈췄다.

그와중에 카낙은 박살난 AR-3924의 잔해를 수거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그러면서 AR-3924가 판 광구와 제어가 끊긴 로봇들은 수거하지 않았다. 우주 공간에 둥둥 뜬 트리플론과 로봇들의 경우에는 수거하여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이 모순적 행위는 전리품에 대한 개념이 없고 소유권에 대한 개념만 공식처럼 정확했기 때문에 생겨난 일이었다.

박살난 AR-3924와 수송선의 잔해는 카낙이 에너지와 광석을 들여 만든(?) 것이기 때문에 자신의 것이다. 하지만 AR-3924와 로봇들은 자신이 만든 것이 아니기 때문에 자신의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제어를 잃어 우주 미아가 되거나 우주 쓰레기가 될 로봇들은 시설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수거를 해야 했는데, 수거에 자신이 생산한 에너지와 로봇이 사용되었으니 자신의 것이 되었다는 논리였다.

이 최초의 우주 전투+인공지능의 물리적 싸움으로 인해 가장 가까이 광구를 운영하던 개발선이 이득을 보았다. 절도 행위를 저지른 AR-3924처럼 후발주자였던 그 인공지능은 버려진(?) 로봇들을 수거해 자신의 제어 코드를 삽입하여 두 개의 광구를 운영했고 고만고만하던 경쟁자들을 크게 앞설 수 있었다.

그런 행위에 카낙은 불만을 가지지 않았다. 인간같은 탐욕이 없는 카낙은 자신의 소유물이 아닌 것을 누가 어떻게 하든 관심이 없었다.

오히려 약간의 광석과 납, 4기의 트리플론을 사용해 지속적으로 손해를 끼칠 존재를 영구 제거한 것 만으로도 만족했다. 그리고 파괴된 개발선 중에 여전히 멀쩡한 부품 역시 만족스러웠다.

이 모든 과정은 정기적인 연락망을 통해 지구에 전달되었다. 난리가 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게 도대체 무슨 만행입니까!”

주미 중화민국 대표가 미국 정부에 항의했다. AR-3924는 중국의 압박으로부터 살길을 찾기 위한 중화민국의 중요한 계획 중 큰 축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빠른 개발과 우주 진출을 위한 자원이 필요했다. 그래서 좀 재촉했을 뿐인데 설마 절도 행위를 할 줄은 상상도 못했다.

솔직히 잘못은 AR-3924에게 있지 않았다. 명제 설정을 치밀하게 하지 못한 대만 측에게 있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절도를 저지른 것이 박살이 날 정도의 죄는 절대 아니었다. 물론 죄가 있냐 없냐의 문제로 박살이 난 것은 아니었지만 자세한 사정을 알고 있는 사람은 강현과 NASA의 직원 뿐이었다.

“죄송하게 됐습니다.”

이례적으로 미 외교부 장관이 나서서 주미 중화민국 대표에게 사과했다. 그러면서 각종 보상은 물론 경제적 지원에 우주 진출을 도와주기로 했다. 자국민들이 그렇게까지 거하게 보상해야 하냐며 어리둥절 할 때, 엉뚱한 곳에서 딴지를 걸었다.

[미국은 지금 중화를 분열시키려 한다! 당장 원조를 멈춰라!]

바로 중국이었다. 중국은 미국의 보상이 필요 이상으로 많다면서 음모론을 내세웠다. 중국과 대만의 통일을 막겠다는 더러운 수작을 위해 카낙을 움직였다는 소리였다.

중국과 대만의 관계는 거의 일방적이다. 마치 한반도 전역을 먹은 북한과 울릉도만 남은 남한의 관계라고나 할까? 사실상 중국과 대만은 여전히 전쟁 상태이며 지금은 단지 전쟁을 멈춘 정전 상태에 불과했다. 언제든 다시 전쟁이 일어날 수 있는 것이다.

왜 그런 관계가 됐을까? 원래 중화민국은 중국 전역을 지배했던 나라였다. 그러나 중국 공산당과의 국공 내전에서 패배해, 대만이라는 작은 섬으로 도망가고 말았다. 한국이 이념 갈등으로 촉발된 한국 전쟁을 겪은 것처럼 중국 역시 비슷한 경험을 한 것이다.

다른 점은 민주당이 공산당에 패배하여 그 넓은 중국 대륙에서 쫓겨나 섬으로 도망갔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타이완 혹은 대만이라는 명칭은 중화민국이라는 원래의 국명을 무시하는 모욕적인 언사인 것이다. 울릉도로 도망간 대한민국을 울릉도로 부르는 행위나 마찬가지인 것이다.

그러나 사실 국제적으로 대만을 인정해 주는 나라는 없었다. 누가 울릉도를 대한민국이라고 인정할까? 중국의 대두로 UN에서 쫓겨나기까지 한 대만은 그 뒤로도 줄줄이 수교가 끊겼다.

오죽하면 지금 남아서 수교하고 있는 나라 중 가장 큰 나라가 파라과이고, 주미 대사관도 없어서 주미 중화민국 대표라는 이름으로 활동할까? 절친했던 한국도 중국의 압박으로 일방적으로 국교를 끊어버렸다.(대만의 혐한은 그 역사적인 빌미가 확실했다.)그럼 중화사상으로 ‘하나의 중국’이라는 정책을 밀고 가는 지금에 와서는 중국과 대만의 사이가 좋으냐? 그런 것도 아니었다.

한족에게 대만의 원주민은 고산족이라는 소수민족에 불과했다. 또한 오랜 세월 일제의 당근을 받아 먹으며 수탈당하지 않은(혹은 상대적으로 적게 수탈당한) 식민 생활과 선진문물을 오래 경험하고 친일파를 몰아낸다며 수 많은 지식인들의 피를 불렀던 숙청의 역사는 대만의 성향을 친일로 만들었다. 그런데 대만의 그런 성향과 일제라면 이를 가는 중국인의 성향은 도저히 섞일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중국이 대만을 포기할 수 있는가? 절대로 그럴 수 없었다. 역사적으로 중국의 땅이었고 남중국해에 중국의 국력을 투사하려면 대만의 지정학적인 위치가 제격이었다.

명분과 실리가 일치했다. 게다가 대만을 놓아주면 티벳이나 몽골 등 여러 소수민족 자치구가 ‘그럼 우리는?’이라며 들고 일어날게 뻔했다.

도미노가 무너지기 위해서는 도미노 조각 하나만 넘어지면 된다.

그런데 그런 대만에 미국이 지금처럼 보상을 가장한 원조를 한다? 중국을 압박하겠다는 속셈이 아니고 뭔가?

그러나 미국은 명백한 오해라고 해명했다. 대만이 이번 사건으로 잃은 실질적 피해와 기회비용을 고려하면 정확한 배상액이라는 것이다.

[…..]

중국 정부는 미국이 제시한 자료에 반박도 못하고 부글부글 끓었다. 미국 측이 제시한 자료는 어떤 전문가가 봐도 정확하고 정당한 배상액이라며 고개를 끄덕일 정도였다.

특히 돈으로 환산 불가능한 우주 진출에 대한 기회 비용이 사라졌으니 대만의 우주 진출을 원조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까지 정확하게 배상하는 것도 이례적인 일이었다.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국제 관계에서 세계적 깡패 국가인 미국이 그렇게 정확히 배상해 주는 것은 더욱 이례적인 일이었다. 대충 돈을 던져주고 사건을 종료해도 된다. 하지만 그러지 않은 것은 분명히 중국을 압박하기 위한 수작이 분명했다.

중국은 다시 미국을 비난했고 미국은 중국을 이상한 나라라며 비난했다. A가 b에게 배상해 주겠다는데 왜 C가 나서냐는 것이다.

그러나 중국의 입장에서 대만은 중국이다. 중화로 하나다. 그러니까 C가 나선게 아니라 B이며 배상은 b가 아니라 B에게 해야한다는 논리를 펼쳤다. 중화사상으로 보면 당연한 말이었다.

미국도 중국의 그러한 사정으로 모르지는 않았다. 미국의 행동이 국가로 인정되지 않은 대만을 하나의 국가로 대우해 주는 일이었고 중국이 반발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미 정부는 기왕 중국을 압박하는 거 이대로 밀고 가기로 했다. 동남 아시아를 남쪽으로 확장 되어 가는 중국의 영향력에서 보호해야 했다.

중국과 미국의 갈등 속에서 대만의 정치판은 혼란스러웠다. 대만 주체파에서 진행한 우주 진출 계획이 초장부터 좌초되자 친중국파에서 공세를 펼치다가 오히려 미국의 원조를 받아 더 빠른 우주 진출이 눈앞에 놓여지니 다시 역풍을 받았다.

게다가 미국의 정중한 사과와 원조는 중화민국의 존립 자체를 인정하고 국가로 그 위상을 높여주는 행위였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주체파의 공로가 인정되고 목소리가 높아졌다. 일각에서는 이 기회에 미국과 긴밀한 관계를 맺어서 국가의 틀을 보존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을 정도였다.

그러자 중국의 우주 진출로 친중국파가 득세하는 상황에서 친중국파로 슬그머니 신분세탁을 하려던 친일파가 이제 친중국파의 세가 약해지고 미국이 대세로 떠오르니, 슬그머니 빠져나오며 친미파의 껍질을 썼다. 이에 대한 비난과 분노, 정치적 보복과 정치적 방어로 대만의 정치권은 잡음이 끊이질 않았다.

한편, 우주 개발선을 보낸 각국은 급히 자신들이 보낸 개발선에 절대로 절도 행위를 하지 말 것을 전했다. 물론 카낙과 싸워서 이길 확률이 극히 낮다고 판단한 인공지능들이 이미 그렇게 행동 방침을 정했지만 인간의 명령은 스스로 수정할 수 없는 가이드 라인이었다.

“인공지능이 절도 행위를 하고 그걸 카낙이 부숴버리고... 참... 뭐라고 해야할지..”

강현 역시 이번 사건에 당황했다.

“지성과 도덕은 상관이 없는 건가?”

[인공지능은 인간의 도덕을 실현되기 위해서 설계되지 않았습니다.]

대만에서 AR-3924의 행동 가이드 라인을 좀 더 철저하게 설계했다면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인공지능의 지성과 성실함으로 인해 인공지능은 도덕적인 존재라는 오해에서 빚어진 일이었다.

“하긴.”

강현은 아즈삭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성은 욕망의 도구에 불과하다. 강현이 인공지능의 구현을 위해서 욕구를 프로그래밍한것은 이성만으로는 자아를 가진 존재의 행동 동인을 구현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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