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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의 군림자-220화 (220/241)

220화

물론 강현이 그 타격을 감수하는 시나리오도 있다. 그 시나리오는 강현의 계획을 더욱 가속시키는 시나리오였다.

각 국가가 RP를 구입하기 위해서 지불하는 돈은 그대로 강현이 법인으로 독립시킨 카낙의 계좌에 쌓인다. 카낙은 이 쌓인 돈을 해당 화폐를 발행하는 국가의 화폐에 대한 RP 구입 가격을 결정하는 중요 변수로서 사용한다. 이 돈이 쌓이면 쌓일 수록 자연히 해당 국가의 재정 정책에 막대한 영향을 끼칠 수 밖에 없다.

사유 재산 개념이 없는 인공지능이 관리하는 법인의 돈이기 때문에 손해를 생각하지 않고 돈을 풀 수 있어서 해당 국가의 물가 안정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었다. 공식적으로 해당 정부의 화폐 발행 시스템에 인공지능을 끼워 넣지 않더라고 해당 국가의 경제 시스템에 관여할 수 있는 막강한 영향력을 가질 수 있었다.

지금도 환율의 급격한 변화를 막기 위해 다른 국가의 화폐를 구입하는데 사용하는 등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이것을 좀더 확대시키면 인간의 손에 들린 화폐 발행권력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 것이다.

이는 각국이 미국의 심기를 불편하게 할 각오를 하면서도 따로 우주 광산을 개발하겠다고 한 여러 이유 중 하나이자 가장 중요한 이유였기도 했다. 화폐라는 이름의 재정 정책이 외국 소유의 어떤 것에 휘둘리는 것은 어찌보면 경제 주권을 타국에 내어 주는 행위였다.

이해관계를 떠나 국가의 정체성을 보존하기 위해서 그럴 수는 없었던 것이다.

[그래도 카낙의 영향력이 줄어들게 되면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글쎄.. 별다른 조치를 취할 생각은 없어. 그리고 카낙의 영향력이 그리 쉽게 줄어들지는 않을걸?”

RP는 실물에 가까운 신용화폐다. RP는 결국 전산상의 숫자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인공지능이라는 신용있는 존재가 실물로 그 가치를 담보해 준다. 설사 당장 실물을 지불할 수 없다고 해도 언젠가는 우주의 자원을 개발해 지불해 준다. RP가 가치가 있는 이유였다.

결국, 자본은 신용이 본질이다. 자본이 강력한 것도 사람들이 자본의 강력함을 믿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들이 어느 순간 달러를 사용하지 않게 된다면 어찌될까? 달러는 그림 그려진 종이 조각 이상의 가치를 가지지 않는다.(물론 그렇게 되기는 미국이 하루 아침에 망할 확율에 가까울 정도로 힘들다.)그런 점에서 RP는 실물이 그 담보를 보증하고 인공지능이라는 중립적 존재가 신용을 지킨다.

만일 다른 나라에서 우주 자원을 재정적 부담 없이 사용하는 것을 목적으로 우주 광산을 개발하는 것이라면, RP 시스템 같은 것을 구축하는 것은 어려울 것이다. 만일, 구축한다고 해도, 인간의 이해관계로 인해 인위적으로 간섭하는 순간, 그 이해관계로 인해 그들이 구축한 시스템의 신용은 바람에 날리는 모래알처럼 사라져버릴 것이다.

거기에 카낙 RP 시스템이 미리 쌓아놓은 아성은 새로운 RP 시스템이 도전할 수 없을 정도로 단단했다. 세계적인 불경기로 인해 금융 자산을 보호하려는 부자들이 금융 자산 중 상당 부분을 RP로 이동시켰기 때문이다.

물가안정을 위해서 일정한 기준으로 움직이는 RP 포인트는 이미 엔화에 맞먹는 안전 자산으로 취급되고 있었다.(RP는 국가 뿐만 아니라 사기업이나 개인도 구입할 수 있었다.

너무 안정하기 때문에 투자에 대한 매리트는 없지만 불경기에는 막강한 자산 보호 효과가 있었다.

“이제 그런 쓸데없는 일에 신경쓰지 말고 연구나 하자.”

종합하자면 카낙과 같은 새로운 우주 광산 개발이 가진 의미는 미국 중심의 우주 진출에서 주도권을 확보하려는 후발 주자들의 정치정략적 타협이며 세계 경제 구조를 재편하려는 시도었다. 그러나 강현에게는 쓸데없는 일에 불과했다.

아즈삭은 강현의 말에 스크린에 어제 연구하던 메타물질의 데이터 분석 그래프를 띄웠다. 아즈삭의 본질은 강현의 연구 보조였다.

[예, 박사님.]

= = = = =

유럽과 동아시아 삼국이 카낙과 같은 자원 개발 인공지능과 광산 채굴 시스템을 만들기 시작하자 다른 나라에서도 똑같이 시작했다. 남미는 물론 중동과 동남 아시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재정적인 부담을 지며 RP를 사느니 차라리 자신들이 직접 캐서 사용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세웠다.

이런 우주 자원 개발 열풍은 과열 조심을 보였는데 그것도 그만한 기술력이 되는 이들에게만 해당되었다. 그러지 못한 국가들은 필요한 기술력을 갖춘 국가들과 협동을 하려고 했다.

이런 일은 국가적 차원 뿐만 아니라 기업적인 차원에서 벌어지기도 했는데 뛰어난 기술력을 가진 항공 우주 기업들이 자체적으로 우주 광산 개발을 하기 위해서 자본과 기술을 모으기 시작했다.

여기저기에 우주 개발 펀딩 붐이 일어나는 와중에 이에 대해 반감을 가진 이들이 이렇게 주장하기도 했다.

[우주 자원은 인류 모두의 것이다!]

그건 우주 자원의 소유권과 개발권뿐만 아니라 우주 영토에 관한 논의를 불러일으켰다. 지구에서도 광산 개발권이라든지 벌목권이라든지 여러 자원의 생산에 관해서 정부의 허락을 얻어야 하는데, 이 국가가 민중의 민의로 이루어진 것처럼 우주 개발 역시 국가간의 집약체인 UN의 허락을 얻어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을 제외한 상임이사국들이 미국을 외교적으로 압박하고 자신들이 우주 광산을 개발하는데 발목을 잡지 못하게 만들기 위해 미리 선수를 친 것이다.

이에 미국의 대응은 단순했다. 우주 광산 개발에 필수적인 기술들을 전략 기술로 지정하는 법안을 상정했던 것이다. 인공지능과 양자 통신 기술도 포함되었고 펜타봇과 트리플론등을 제어하는 프로그램도 포함되었다.

이런 움직임에 EU에서는 EM 드라이브를 개발한 영국에 EM 드라이브를 전략 기술로 지정하라고 부탁했으나 미국의 오랜 우방인 영국에서는 들어주지 않았다.

몇가지 외교적인 이유도 있지만 실리적 이유에도 있었다. EM 드라이브를 전략 기술로 만들어 놓으면 뭐하나? 미국에는 기술 개발계의 치트키인 강현이 있었다.

언제 완전히 다른 개념의 EM 드라이브를 턱하고 내놓을지 모르는 일이었다. 신통일장 이론으로 EM 드라이브와 힉스입자의 관계를 이론적으로 해부한 강현이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그러나 다행이랄까? 미 정부에서 상정한 우주 개발 기술의 전략 기술화 법안은 계속 뒤로 미루어졌다. 기업과 정치 후원금을 받은 정치가의 관계를 비롯해 경제 정치적인 수많은 이해관계가 얽혀 있었지만 역시나 가장 큰 이유가 미 정부가 확고한 결심을 가지고 진행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미국은 유럽과 척을 지고 싶지 않았다. 단지 발목을 잡지 않기를 바랬다.

결과적으로 으름장을 놓게 된 것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도 효과는 충분했다. 상임 이사국 두 개(영국, 프랑스)가 포진되어 있는 유럽이 중립을 지키게 되었으니 UN을 통한 압박이 무용지물이 되었다.

러시아와 중국이 분통을 터뜨렸으나 어쩌겠나? 유럽과 그들과의 관계는 미국과 그들과의 관계만큼 멀었다.

한편, 이를 계기로 우주 자원의 소유권 개념에 대한 논의가 진지하게 진행되었다. 미국도 한 번쯤 이것을 논의하고 넘어갈 필요가 있었기 때문에 국제적으로도 논의가 활발했다.

지각만 간신히 뚫는 지구상에서는 면적의 개념으로 영토를 잡고 광산 지역 역시 면적으로 허가할 수 있었다. 그러나 소행성의 경우 지구와 크기, 면적, 곡율 자체가 달랐다. 중력도 작고 밑에 뜨거운 용암이 있는 것도 아니라 중심까지 파고들어 자원을 채굴할 수 있었다.

게다가 온전한 원형을 가진 것은 극히 드물었다.

그렇기 때문에 우주 자원 채굴이 어떤 기관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면, 각 소행성의 구획을 면적 같은 2차원이 아니라 3차원으로 분할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측량부터 관리까지 모든 부분에서 골치가 아팠다.

이에 더해 우주는 너무 넓고 컸다. M 형 소행성인 프시케 하나만 잘 개발하면 인류가 10억년 이상 쓸 정도의 철강 산업을 이루어 낼 수 있었다.

너무나 스케일이 크기 때문에 자원에 대한 개념이 바뀌어야 한다는 것에 모두가 동의했다. 아예 우주 자원이라는 단어를 따로 사용하자는 이들이 있을 정도였다.

우주라는 스케일에서는 아무리 희귀자원이 뭉친 행성이 있다고 해도 의미가 없다. 그곳에 도착해 자원을 이용가능하도록 가공해야 의미가 있었다. 사용할 수 있는 자원만 자원으로 불릴 수 있는 것이다.

이에 새로운 국제 협약이 생겼으니 자원의 소유권은 캐낸 주체(예를 들어 인공지능)에게 있다는 협약이었다. 여기에 더해 앞으로 일어날 각종 상황들을 대비해 조약을 보완했다.

특히 중요한 문제는 한 주체가 형성한 광구나 시설물에 대한 권리였다. 새로운 UN 우주 협약에 의해 사실상 우주 영토는 인간이 거주하는 행성이나 시설물로 한정 되었기 때문에 다른 국가가 만든 광구에 대한 소유권이 확정되지 않으면 광구를 두고 온갖 잡음이 생길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결정은 카낙에게도 영향을 끼쳤다. 소유권에 대한 개념을 통해 카낙이 만든 무엇인 카낙의 것인지 정의해야 했다. 결과적으로 카낙이 만든 광구는 물론 소행성 표면에 있는 태양광 전력 시스템까지 포함되었다.

이 와중에 강현은 미 정부의 요청에 다시 새롭게 연구할 거리가 생겼다. 그것은 바로 EM 드라이브를 대체할 기술을 개발하는 것이었다.

영국에게 EM 드라이브를 전략 기술화하라는 EU의 로비는 미국의 발가락을 꼼지락하게 만들 정도였다. 추진체 없이 전력만으로 가동하는 추진 시스템은 현재 필수적인 기술이었다.

당장 EM 드라이브를 마음대로 생산할 수 없다면 우주 개발은 물론이고 아폴로티움과 우주 농장의 유지 관리에 심각한 애로 사항이 꽃핀다.

그래서 미국 정부는 치트키를 동원해 경쟁 기술을 개발하기로 한 것이다.

미국 정부의 요청을 받은 강현은 EM 드라이브의 개량 여지는 사실상 없다고 보았다. EM 드라이브의 원리는 고속으로 움직이는 전자에 간섭해 힉스 장에 영향을 끼치는 것이다. 그 출력에 대한 변수는 전자기파의 주파수와 출력, 그리고 챔버의 기하학적인 모양이었다.

기본 원리가 그러하니 설사 메타물질의 개발로 마이크로파 레이저가 개발된다고 해도 EM 드라이브 특허의 부속 특허에 불과했다. 어쩔 수 없이 EM 드라이브의 특허가 만료되기 전까지 미국이 영국의 입김에서 자유롭기 위해서는 영국의 약점 하나를 미국이 쥐고 있어야 했다.

우주 농장의 식량이 유용한 수단일 수도 있지만 우주 개발이 가속되어 각 국가가 우주 농장을 가질 수 있게 된다면 그런 방법도 무용지물이 될 것이다.

결국 EM 드라이브와 다른 원리의 기술이 필요한 것이다.

그 즉시, 강현의 머리에는 NASA에서 성공했다는 워프 드라이브 기술이 떠올랐다. 우주 진출을 구상할 때부터 워프 드라이브 기술이나 반중력 드라이브 기술을 도저히 배제할 수 없었다.

EM 드라이브는 때마침 운 좋게 발견된 기술이었다. 그것이 없었다면 관련 기술 개발을 위한 연구로 우주 개발 속도가 10년은 미루어졌을 것이다.

워프 드라이브 기술. 정식 이름은 알큐비에르(Alcubierre) 드라이브로 원안자의 이름 역시 알큐비에르다. 멕시코의 이론 물리학자인 미구엘 알큐비에르는 일반 상대성 이론에 기재된 ‘아인슈타인의 장(場) 공식(Einstein's field equations; EFE)’ 또는 ‘아인슈타인 공식’으로 불리는 방정식으로부터 한 가지 아이디어를 도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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