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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의 군림자-219화 (219/241)

219화

화폐 발행권, 환율 조절 능력. 한 국가의 부를 좌지우지 할 수 있는 강력한 힘이며 경제적 핵폭탄이 될 수 있는 힘이었다. 그것을 그리 쉽게 포기하다니..

“RP 발행권을 다시 가져올 수 있는 방법은 없나?”

“물리적으로 카낙과 접촉해 카낙보다 능력이 뛰어난 인공지능 3기가 해킹해야 해요. 그 외에는 불가능합니다. 인공지능에는 백도어 자체가 없으니까요.”

지구와 카낙과의 통신 시간으로 인해서 카낙은 지구에서의 해킹에 대해서 무적이었다. 해킹 속도가 물리적으로 카낙의 방어 속도에 비해 압도적으로 낮을 수 밖에 없었다.

또한 백도어는 존재자체가 인공지능의 사고 논리에 영향을 끼쳐 불안정하게 한다. 각국 정부와 기업에서 몰래 백도어가 심어진 인공지능을 개발하려고 노력을 하고 있지만 아직 성공한 바는 없었다.

강현의 단언에 파셀 의원은 이마를 짚으며 물었다.

“그럼, 다른 국가의 우주 광산 진출을 막는 방법은 없는건가?”

“막으면 그 나라들이 가만히 있을까요?”

가만히 있을 리가 없다.

“....”

“냉정하게 생각하세요. 지금 미국이 해야 할 일이 뭔지.”

강현은 돌아가기 위해 무인 전동차를 타는 파셀 의원과 수행원을 배웅했다. 그들의 모습이 사라지자 집으로 돌아오며 못 말리겠다는 듯이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뭐? 다른 국가들의 우주 광산 사업을 방해해?

어떻게 그렇게 근시안적인 생각을 할 수 있는 걸까?

정보화 시대다. 기술의 확산은 막을 수가 없다. 기술을 보안한다고 해도 기술 강국의 역설계 능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인간은 본래 창조보다 모방을 더 잘하는 종족이었다.

그러니까 기술 개발 경쟁이 벌어지는 것이다. 영원히 끝나지 않는, 기술들이 탄생하고 도태하는 진화의 장인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한 걸음 더 나가서 생각해야 했다. 좀 더 큰 그림을 그리고 장기적으로 준비하지 않으면 따라 잡힌다.

“쯧. 이제 그 사람도 판단 능력이 떨어진 걸까?”

아니면 그릇이 그 정도일 수도 있었다. 어찌 됐던간 이미 세계를 주름잡는 미국 대통령으로서의 자격은 없어 보였다.

[박사님. 정말로 괜찮겠습니까?]

아즈삭이 물었다. 파셀 의원의 식견은 일리가 있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을 곧 힘이며 그 힘의 근본인 화폐 발행권은 수 많은 이해 관계가 얽힌 핵심이었다.

강현의 손아귀에 RP 시스템이 있기만 한다면 수 많은 공격을 효과적으로 막을 수 있는 날카로운 칼이 될 수 있었다. 뭐하면 해당 국의 환율과 경제를 엉망으로 만들어 천문학적인 피해를 낼 수도 있었다.

“아즈삭. 어쩔 수 없는 일이었잖아.”

강현이 아즈삭을 다시 타일렀다. 아즈삭이라면 카낙과 협상을 통해 RP 시스템의 제어권 일부를 다시 되찾아올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그의 목적에 합치되지 않았다.

우주 진출의 계기가 되었던 자본주의를 붕괴시키겠다는 발상. 그리고 그 핵심 개념인 무한의 공유지.

인공지능의 생산 계획 아래 디플레이션 없이 자본보다 더 많은 생산량으로 인간의 생존에서 자본의 영향력을 제거하려는 계획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었다.

그러나 카낙 하나 만으로는 무리였다. 우주 농장의 확장과 가속되는 아폴로티움의 성장에서 자본의 논리가 끼친 영향력을 본 강현은 확신했다.

자본주의 환경에서 돈을 벌기 위한 행위는 인간의 발전욕, 혹은 욕망, 탐욕을 상징했다. 그리고 그 힘은 강현의 상상 이상이었다. 아무리 카낙에서 많이 생산하고 우주 농장을 많이 지어 잉여 생산물을 만들면 뭐하나? 권리, 지분라는 이름 등으로 특정인의 소유가 되는 것이 더 빨랐다.

그것은 신용화폐의 자본화가 아닌 실물의 자본화였다. 과거 지주 계급이 땅이라는 자산을 쥐고 귀족이 되었던 것처럼 자원과 지분이라는 이름의 재산권의 확장을 통한 새로운 계급의 탄생할 수 있었다. 자본주의는 강현이 만들어내는 환경에서 새롭게 적응하기 위해서 돌연변이를 할 양상을 보인 것이다.

이는 다른 국가의 우주 진출을 막기 위해서 강현에게 도움을 청한 파셀 의원의 태도를 보면 알 수 있다. 자원이 많으면 돈이 된다. 돈이 많으면 권력이 된다. 권력을 가지면 다른 계급이 된다.

결국 문제는 자본주의가 아니라 사람에게 있었다. 자신이 가진 힘이 자본이든 권력이든, 그것을 지키기 위해서 행동하는 인간 본연의 욕망이 문제였다.

원래 자본주의는 경제체제를 일컫는다. 하지만 자본주의가 인간에게 적용되는 순간 자본주의는 경제체제가 아니라 정치체제의 성격을 띄게 되었다. 돈이 있으면 못하는 것이 없는 세상. 돈으로 로비를 하고 돈으로 권력을 강화하고 돈으로 신분을 나누는 이데올로기로서의 형상을 보였다.

강현은 그것은 인지하는 순간 인간에 대한 자본주의의 영향력이 축소된다고 해도 인간의 모습은 크게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직감했다. 어쩌면 강현 자신 같은 과학 기술력을 지닌 이에게 권력이 집중 되는 세상이 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혹은 사람 사이의 관계를 잘 조율하는 달변가가 권력자가 되는 세상이 될 수도 있다.

그렇다. 문제는 체제가 아니라 ‘위에 서는 사람’이 누구냐라는 것이었다. ‘위에 서는 사람’의 행동과 결정에 의해서 ‘아래에 서는 사람’의 운명이 바뀌는 것이 인간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이었다.

그러나 이대로 가다가는 자본가들이 바로 그 ‘위에 서는 사람’이 될 것이 뻔했다. 자본을 앞세워 우주 개발에 대한 권리를 호시탐탐 노리는 그들은 자신들의 영향력을 계속 확장하려고 노력할 것이고 지분, 특허, 채권 등 법을 이용해 자신들의 재산권을 보호하고 지위를 굳힐 것이다. 새로운 계급주의의 탄생이다.

강현은 그것을 인정했다. 인간에게서 계급을 분리할 수는 없었다.

사회라는 생태계 안에서 생존과 번영을 위해 분업이라는 방법을 택한 근본적 원인으로 인해 인간은 계급을 형성할 수 밖에 없었다. 강현 자신도 가족이 있으니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가족을 데리고 범죄률이 높은 할렘가로 이사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으니까..

그럼, 자본주의를 붕괴시킨다는 목적은 폐기할 생각인가? 그렇지 않았다. 천재 특유의 고집과 호기심이 현실에 안주하도록 두지 않았다. 계속되는 변화가 흥미로웠다.

그렇기 때문에 강현은 그 스스로 자본가가 될 생각은 없었다. 그래서 RP 시스템를 자율화 시킨 것이다. RP 시스템이 강현의 손에 있는 한 그는 자본가 취급을 받으며, 사회와 자본가로서 상호작용을 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건 과학자로서의 정체성을 가진 그에게 불편한 일이었다.

RP 시스템을 완전히 독립 시킨 일은 결과적으로 그에게 매우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일단 그를 경계하는 세력이 확 줄었다. 강력한 힘의 집중, 그리고 그 힘이 집중된 이가 기존 기득권과 사고 방식이나 가치체계가 다른 사람이라는 것은 상류사회에 긴장감을 형성했다. 그것이 해소된 것이다.

각국 정부로서도 환영할 만한 일이었다. 미국의 입김도, 강현의 결정도 영향력을 끼치지 못하는 RP 시스템은 달러의 가치 체계를 보증하는 기준 화폐로서 그 신용을 더욱 단단히 했다.

경제학자들은 자본주의의 수호신이라며 강현을 칭송했다. 인간의 이해 관계에서 분리되어 인간이 생산하는 재화량과 수요에 맞추어 기계적으로 RP 포인트를 책정하는 인공지능의 존재는 인간의 탐욕이라는 자본주의의 약점을 보완할 수 있는 가능성이 될 수도 있었다.

이런 맥락에서 갈라져 나온 몇몇 학자는 달러화 역시 인공지능에게 맡겨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미친 연방 준비 은행의 멍청한 재정정책으로 미국 경제는 물론 세계 경제도 말아 먹을 뻔 했, 아니 반쯤 말아 먹었으니, 멍청하지 않고 욕심에 휘둘리지 않는 인공지능에게 달러화 발행을 맡겨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많은 사람들에게 환영을 받았다. 강현과 유대인의 싸움으로 인해 미국 정부는 연방 준비 은행의 최대 주주가 되는 어부지리를 누렸다. 그러나 미 정부 역시 사람으로 구성하는 곳이고 정권의 향방에 따라 재정 정책이 바뀔 수 있었다.

달러화의 발행 문제에 수 많은 이들의 이해 관계가 얽히게 되니 차라리 사람의 손에서 떠나 보내자는 것이다.

케인즈주의 경제학자들은 그 부작용에 대해서 조심스럽게 타진했지만 나쁠 것은 없었다. 인간과 달리 인간이 가지는 권리가 없는 인공지능이었다. 또한 인간과 본질적으로 달랐다. 문제가 생기면 폐기해 버리고 기존처럼 이사회에서 결정을 내려도 된다.

그러나 화폐 발행권을 인간이 아닌 인공지능에게 준다는 발상은 너무나 급진적이었다. 거기에 반대파 및 거기에 얽힌 기득권 인사들의 저항에 부딪히고 말았다. 화폐 발행권에 얽힌 거대 자본가들이 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이를 계기로 정치적으로 큰 갈등이 일어났다. RP 시스템을 완전히 자동화한 예시인 카낙과 그 창조자인 강현에게도 귀찮은 불똥이 튀려고 할 때 이 갈등을 미약한 불씨로 진화한 사람이 바로 제이먼 옐리, 현 연방 준비 은행장이었다.

그는 안정적인 재정 정책으로 전임자가 싼 똥을 잘 처리했다는 평가를 받았기 때문에 유대인의 영향력에서 연방 준비 은행의 영향력이 확 축소되어도 여전히 연방 준비 은행장으로 남을 수 있었다. 재정 정책에 대한 한결 같은 태도 역시 사람들이 그를 신뢰하는 요소였다.

자신만의 확고한 경제 철학이 그가 유대인이지만 그를 신뢰할 수 있는 사람으로 만든 것이다.

사실 그가 정치권 인사들을 만나면서 갈등을 가라앉힌 일에는 강현의 입김이 들어가 있었다. 유대인인 그가 강현의 부탁아닌 부탁을 들어준 것은 유대인과 강현 사이에 친분이 쌓이고 있다는 정황을 보여주었기 때문에 화교나 일본 자본의 지원을 받는 정치인들이 화폐 발행권에 얽힌 이권에 대해서 집중하게 못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화폐 발행권을 인공지능에게 완전히 맡기는 것은 아니지만 인공지능의 판단을 심각하게 고려하는 행정적 시스템을 진지하게 논의하기 시작했다. 이 역시 제이먼 옐리가 강현과 은밀한 통화를 한 내용이 반영된 것이었다.

“자본주의는 이념이 아니라 환경이 되어야 해.”

RP 시스템과 국제 신용 화폐인 달러의 발행에 인공지능이 깊숙하게 관련되는 것은 강현이 그린 미래 사회를 위한 포석이었다. 돈이라는 인간의 탐욕을 깨우는 마물로부터 인간의 영혼과 이성을 자유롭게 하기 위해서는 돈이 생성하는 권력의 힘을 약화해야 했다.

거기에 인간과 다른 욕구 체계로 작동하는 인공지능이라는 지성은 최적의 도구였다. 즉, 강현은 RP 시스템을 이용하려는 파셀 의원의 말을 들어줄 생각이 애시당초 없었던 것이다.

[그럼 다른 우주 광산의 영향력이 카낙을 앞서게 되면 어떻게 하실 겁니까?]

“글쎄.. RP 포인트가 낮아지게 되면 우주 진출 비용이 줄어드니 그건 그것대로 나쁜 일은 아니야.”

더 많은 우주 광산이 개발되어 우주 자원의 가격이 줄어들면 우주 진출에 대한 비용도 줄어들고 우주 진출이 가속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카낙의 영향력이 줄어들게 되겠지만 강현이 목표로하는 무한의 공유지를 형성할 수 있는 가능성은 높아진다.

여기에 각 종자 회사의 종자 특허가 사라지는 시기에 맞추어 우주 농장을 완전 자동화 시킨다면 인류는 먹을 것에서 자본의 힘을 제거할 수 있게 된다.

강현이 권력을 추구한다면 다른 우주 광산 개발을 방해하겠지만 강현은 권력 지향적 인간이 아니었다. 그의 목적에 비추어보면 방해하는 것이 더 손해였다. 거기에 그가 그 동안 쌓아 올린 국제적 신용에 타격이 온다.

============================ 작품 후기 ============================

페니스 님께 : RP 시스템의 독립으로 주인공은 우주 자원의 생산으로 인해 돈을 벌지 못합니다.

-龍- 님께 : 각종 교양 서적을 중심으로 이해하지 못한 개념은 인터넷을 뒤집니다. 특히 과학 분야는 구글과 위키백과의 도움을 정말 많이 받았습니다. 만일 호기심이 생기신다면 반드시 영문 페이지도 함께 보세요. 기초과학 분야에 대한 더 자세한 설명은 영문 페이지가 더 상세합니다.

창공을 꿰뚫는 의지의 발현 님께 : 서른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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