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과학의 군림자-217화 (217/241)

217화

이 원리를 이용한 첨단 기술 중에 대표적인 것이 바로 광케이블이었다. 광케이블은 굴절률이 큰 코어를 굴절률이 작은 유리로 둘러싼 구조로 되어 있어 빛을 멀리 보낼 수 있게 되어 있었다. 거울과 달리 전반사 현상은 빛의 에너지 손실이 극미하기 때문이다.

이런 전반사 효과는 공기나 진공에서 들어오는 빛에서는 일어날 수 없다. 왜냐면 모든 고체 물질의 굴절률이 더 높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이너스 굴절률을 가진 물질이 있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전반사의 효과가 진공에서 들어오는 빛에서도 일어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감마선도 마찬가지다. 만일 마이너스 굴절율을 가진 메타물질이 실현 된다면 전반사의 원리를 이용해 특정 각도로 오는 감마선은 완벽히 차단할 수 있다.

아니 굳이 마이너스 굴절률이 아니어도 된다. 그저 굴절률이 1보다 작은 물질이라면 전반사가 가능하다.

강현은 수집해 놓았던 메타물질의 자료를 분석하면서 구조를 파악했다. 광학적 특성을 형성하기 위한 메타물질은 거의 대부분 전기 회로의 요소들로 구성이 되어 있었다.

전자기적인 상호작용이 일반적인 원자나 전자와 다르게 일어나도록 코일의 전자기 유도적 특성이라든지 축전기의 임피던스 효과 따위가 고려되어 매우 복잡햇다.

그래서인지 현재 개발된 거의 모든 메타물질은 2차원적으로만 그 특성을 보이지 3차원적으로 특성을 보이지는 못하고 있었다.

이유는 여러가지지만 대표적으로 두 가지 큰 문제가 있었다. 하나는 이론적인 차원에서 2차원적 특성을 3차원적인 특성으로 만들기 위해서 추가되는 3차원 축에 대한 추가 요소의 단순한 선형적 합이 크게 신통한 효과를 못 본다는 것이다.

비유하자면 마치 책상을 3차원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책상 다리를 추가로 90도로 올려 붙이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었다. 기존에 붙은 책상 다리는 2차원적으로 여전히 책상 다리의 역할을 할 수는 있지만, 추가로 붙인 책상 다리로 책상에 추가된 특성은 쓸모 없음 혹은 가게 간판 따위 같은 전혀 생각지도 못한 특성일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이는 책상이라는 것이 본래 땅바닥 위, 2 차원에서 그 특성을 보이도록 설계되었기 때문이다.

즉, 책상을 3차원 방향으로 사용하기 위한 책상으로 설계하기 위해서는 처음부터 3차원 환경을 고려한 디자인이 필요했고 이는 3차원 메타물질의 개발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두번째 문제는 메타물질을 구현하기 위한 기술적 난이도였다. 광학적 메타물질은 기본적으로 작은 전기 회로의 일정한 배열이라고 할 수 있다. 콘덴서적인 특성, 코일적인 특성도 구현한 작은 단위 요소는 그것 하나로는 전혀 특이특성을 보이지 못하지만 일정한 배열을 통해서 그 특성을 보인다.

이 와중에 실제적인 적용을 위해 이 단위 요소를 소형화시키면 시킬수록 극도로 정교한 금속가공기술이 필요해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소형화 시키게 되어 단위 요소의 크기가 작아지면 단위 요소 자체의 전기적 특성이 변하는 것도 고려해야 했다. 단위 요소의 크기 자체도 메타물질을 개발하기 위한 변수가 되는 것이다.

단위 요소의 크기와 구조, 단위 요소의 배열, 그리고 그 배열에 의한 단위 요소간의 상호 작용들이 서로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감히 사람의 머리만으로는 이것들을 복합적으로 고려한 디자인을 할 수가 없었다.

다행이 요즘에는 인공지능이 대학마다 있어서 큰 도움을 받을 수 있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어려웠다. 특정 단위 요소의 설계와 배열이 어떤 특성을 가지고 있는지 결과를 추측하는 건 인공지능의 시뮬레이션 기능 덕분에 어려운 문제는 아니었지만 목표하는 특성이 나오도록 단위 요소를 예측설계하고 그것을 배열하는 방법은 여전히 사람의 몫이었기 때문이다.

강현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는 여러 단위 요소를 설계하고 그것을 배열하고 시뮬레이션하는 일을 반복했다.

그러나 곧 이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설계하고 시뮬레이션하고 결과를 확인하고 다시 설계하고.. 만들 수 있는 단위 요소의 가짓수와 단위 요소를 배열할 수 있는 수는 그 경우의 수가 무한대로 있으니 무한대로 작업을 진행시켜 나가야 했다.

전형적인 Try&Error 방식으로, 원하는 성능을 가진 메타물질을 만드는 건 순전히 운에 맞길 수 밖에 없었다.

이런 시행착오를 줄이려면 결국에는 메타물질에 대한 수학적인 모델이 필요했다. 하지만 아직 그런 수학적 모델은 없었다. 광학적 메타물질을 설계하는 기본 이론은 결국에는 전자기학이었지만 메타물질처럼 수 많은 회로의 집합체에 적용할 수 있을 정도로 메크로하고 집합적이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강현은 이를 인지하고 그에 걸맞는 수학적 모델을 만들어 보려고 했지만 이것 역시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단위 요소의 회로가 닫힌 구조인지 열린 구조인지, 평면인지 3차원 형태인지에 따라서 수학적 모델 역시 무수하게 많이 만들어지기 때문이었다.

하긴 전기전자공학도 그것의 이론 수식은 몇 페이지 분량에 불과하지만 이를 바탕으로 발전된 공학적인 기술은 엄청나게 많았다. 이는 바로 과학 현상을 분석하고 규명하려는 과학과 이를 응용하는 공학의 근본적인 차이였고 메타물질의 연구는 보다 더 공학쪽으로 치우쳐진 영역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강현은 메타물질의 연구에 대한 태도를 전적으로 바꾸기로 했다. 감마선을 막는 걸 목적으로 하는 메타물질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냥 메타물질을 만드는 ‘놀이’를 하기로 한 것이다.

언젠가는 감마선에 대해서 마이너스 굴절률이 나오는 메타 물질이 나오겠지.. 하다 못해 1보다 작은 굴절률이 나와도 된다.

결국 그는 아즈삭의 방호는 좀 더 두텁게 방벽을 세우는 것으로 처리하고, 돈은.... 뭐 감마선 EMP 방어 기술이 나오지 않아도 자유롭게 연구하는 중에 뭐 하나 나오지 않을까? 설마 돈이 떨어지기 전까지 돈 되는 기술 하나 개발하지 못할 자신도 아니었고 정말로 어쩔 수 없다면 미국의 도움을 받는 것도 수용할 수 있었다.

처음 설래발을 쳤던 것과는 판이하게 다른 모습이었다. 그런 모습을 보니 아즈삭이 태평한 이유가 있었다. 손발은 머리를 닮는다.

아무튼 그렇게 마음을 정리한 강현은 욕심을 버리고 메타물질이란 흥미로운 분야를 장난감 삼아 가지고 놀아보기로 했다. 장난감 치고는 비용이 엄청났지만 어른 남자들의 장난감이란 다 그런 것이 아니겠는가? 단지 강현의 스케일이 좀 더 클 뿐이었다.

크게 보면 우주 달팽이 역시 즐겁게 과학으로 놀 수 있는 과학자들의 장난감 아니겠는가?

놀이, 아니 연구를 시작한 강현은 메타물질의 본질이 결국에는 작은 단위 요소의 밀집 배열이라는 것에 착안해 매우 단순한 실험을 해보기로 했다.

회로 기판에 사용하는 작은 코일 수만 개를 상자를 담아 다양한 주파수의 마이크로파와 라디오파를 쪼여 투과율이나 반사율 따위를 측정해 보기도 한다든가, 그런 와중에 코일의 용량을 바꿔보기도 하고, 이것 저것 다른 용량의 코일을 섞어보기도 하고, 배열을 일정하게 해보기도 하고, 불규칙하게 만들어보기도 했다. 비슷한 짓을 코일이 아닌 콘덴서로 해보는 것도 빠뜨리지 않았다.

남들이 볼 때는 뻘짓이나 마찬가지였지만 원래 새로운 현상의 발견은 남들이 왜 저러는지 이상하게 생각하는 이런 뻘짓에서 일어나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지구 온난화와 대기중 이산화탄소의 증가를 발견한 일도 역시 남에게는 뻘짓으로 간주되는 짓을 포기하지 않고 수 십 년 동안 해온 과학자가 있었기에 세상에 알려지게 된 것이다.

페니실린의 발견자인 플레밍 교수에 대한 일화도 대표적이다. 남들이 곰팡이가 피면 눈길도 안주고 다 버리는 실패한 배양 접시에서 페니실린을 발견한다던가 콧물을 첨가한 배양 접시에서 미생물 군체가 없는 것을 발견하고 콧물이나 점액 속에 항생물질(리소자임)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기도 했다.

즉, 연구자들이 하는 뻘짓이 남들 눈에는 비효율적이고 이상하게 보일지라도 새로운 가능성과 창조적 발견은 여기에서 태어난다. 그리고 연구자들이 이런 뻘짓을 포기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이 뻘짓이 남들이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재미있다는 것이었다. 복잡한 수식적 이론이나 수익성 따위를 고려하지 않고 자신의 흥미와 호기심만을 풀기 위한 연구 실험이라니! 모든 연구원들이 꿈꾸는 일이 아닌가?

강현의 경우도 비슷했다. 이것저것 복잡한 세상일따위 머리에서 지워버리고 밀집한 전기공학적 요소들에 대한 특정 각도로 입사한 특정 주파수의 흡수율 변화를 관측하는 재미는 독특했다. 상상 밖의 일이 종종 벌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만 한다면 생산성이 없었다. 강현은 변수를 추측하고 아즈삭의 시뮬레이션 결과와 실제 결과를 비교하며 데이터를 축적했다. 언젠가는 이 축적된 데이터를 바탕으로 메타물질을 설계 할 수 있는 효과적인 수학적 모델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거라 기대했기 때문이다.

다양한 용량의 코일과 콘덴서의 집단적인 밀집체가 가진 광학적 특성에 대한 연구와 데이터 축적을 하던 강현은 이제는 단순한 형태의 단위 요소를 만들어서 실험을 시작했다.

단위 요소는 마이크로 크기의 구형 플라스틱인데, 리소그래피 기술을 이용해 중앙에 나선형의 도선을 깔았다.

이 마이크로 크기의 플라스틱 알갱이를 상자에 가득 담아 전자기파를 쪼여 그 특성을 관찰했다.

이런 식으로 데이터를 착착 쌓아가고 이에 관한 논문을 내놓기 시작하니 다른 과학자들도 어느새 이런 흐름에 동참했다.

3차원적인 메타 물질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강현과 비슷한 방식으로 3차원으로 배열된 전기학적 단위요소가 가진 특성들을 연구한 데이터 베이스가 필요하다는 것에 공감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언제 효과적인 수학적 모델이 개발될지 알 수 없었기 때문에 강현은 아즈삭의 EMP 방호 강화를 위한 공사를 발주했다. 아예 걱정하지 않게 원자로 수준의 방사선 방호벽을 쌓기로 한 것이다. 돈은 쫌 깨지겠지만 어차피 강현의 재산 수준에 비하면 푼 돈이고 아즈삭의 중요성을 고려하면 당연한 투자였다.

= = = = =

“아빠! 백 점 받았어요!”

“그래?”

쪽지 시험에서 백 점을 받고 온 준이 시험지를 자랑스럽게 내밀었다. 그러나 아빠의 반응이 영 심심했다. 준은 볼을 부풀렸다.

“백 점 맞았다구요.”

“어... 그러니까 백 점이 만점이니?”

강현은 준이 내민 시험지를 보고는 중얼거렸다.

“에.. 그러니까 총 열 문제니까 한 문제당 십 점이구나.”

하지만 준의 불퉁함은 전혀 가라앉지 않았다. 결국 삐쳐서 쪼르르 샐리의 허벅지를 안고는 고개를 빼꼼히 내밀어 강현에게 부담 어린 시선을 주었다.

“준은 칭찬을 원하는 거에요.”

샐리의 말에 강현은 중얼거렸다.

“시험에서 백 점 맞을 수도 있고 못 받을 수도 있지. 전혀 칭찬할 거리가 아닌데..”

“현..”

샐리의 시선도 가늘어지기 시작했다. 애 앞에서 그런 소리를 하면 애가 공부를 할까?

강현은 그녀의 시선에 화들짝 놀라서 오해하지 않도록 말을 이었다.

“자신이 관심이 있고 잘하고 싶은 분야가 있으면 열심히 해서 백 점 받는 건 당연해. 그리고 자신이 잘 못하는 분야가 있으면 백 점 못 받는 것도 당연한 일이야. 난 그냥 준이 점수에 연연해서 자신이 정말로 하고 싶은 일을 찾지 못하는 걸...”

============================ 작품 후기 ============================

많은 분들이 오해하고 계시는 부분이 있습니다. 숲의 남자를 쓸 때 오히려 정신이 더 멀쩡 합니다. 저도 좀 납득하기 어렵기는 집중만하면 어떻게든 써집니다. 하지만 자유인을 쓰기 위해 자료를 수집하고 정리하다보면 어느 샌가 정신이 몽롱해 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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