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6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강현은 고민했지만 재료 자체의 한계에 부딪히고 말았다. 현실을 인정하면 아즈삭의 외관을 두꺼운 콘크리트와 납으로 둘러싸면 해결된다. 어차피 벽이 두꺼울수록 이를 통과하는 전자기파의 세기는 기하급수적으로 감소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러면 돈이 안된다. 두꺼운 EMP 차폐를 감당하기 위해서 무인 병기의 출력은 커져야 하고 크기도 커지고 생산 비용도 커진다. 되도록 EMP 차폐막이 얇아야 하는 이유였다.
“어후우! 미치겠네!”
강현은 머리를 긁었다. 좀처럼 좋은 생각이 나지 않았다. 방향을 바꿔야 하는데 지금 뭔가 고정관념에 갇힌 것 같았다.
그는 머리를 좀 쉬기 하기 위해서 서재 밖으로 나왔다. 샐리가 부엌에서 요리를 하고 있었다.
“현, 타이밍 좋게 나왔네요.”
“어라? 벌써 식사 시간이야?”
점심도 아니고 저녁이었다. 오전부터 내내 골머리를 싸매고 있었던 것이다.
“점심 제대로 안 먹었죠?”
“아니, 먹은 것 같아.”
[제가 만들어드린 샌드위치로 끼니를 때우셨습니다.]
아즈삭이 두루뭉실하게 대답한 강현을 지원했다. 강현은 아즈삭이 끼어든 것이 반거웠다. 끼니를 걸렀다면 또 샐리에게 한창 잔소리를 들을 뻔했다.
“아, 그랬어?”
직접 그 샌드위치를 손을 집어 자신의 입으로 가져간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이다.
샐리는 그런 남편의 모습에 못 말리겠다는 듯이 고개를 흔들었다.
강현은 그런 그녀의 뒤를 따라 부엌에 들어가서 상차림을 도왔다.
“아빠아빠아빠아빠!”
“꺄~하!”
준이 총총총 뛰어왔다. 그 뒤를 시아가 쪼르르 뛰어왔다. 둘이 입은 작은 망토가 펄럭였다.
“부엌은 위험하니까 뛰지 말랬지.”
강현은 접시를 놓다가 준와 시아를 안아들고 거실로 나왔다.
“아빠! 아빠, 숨박꼭질하자.”
“숨박꼭질! 숨박꼭질”
“숨박꼭질이 아니라. 숨바꼭질.”
강현이 미소를 지으며 두 아이를 거실 바닥에 내려놓자 어디론가 쪼르르 달려가며 남기는 말이,
“아무튼! 아빠가 술래. 히히히.”
“히이히이~!”
사랑스러운 아이들의 모습에 강현은 미소지었다.
“허참..”
숨는다고 강현이 못 찾을 리가 없다. 당장 로봇독만 움직여도 아이들이 어디에 숨어있는지 알아낼 수 있었다.
하지만 그건 반칙이다. 강현은 직접 찾아보기로 했다. 저녁 식사가 다 차려지기 전까지 아이들을 찾아낼 자신이 있었다.
그리고 과연 거실을 나와 이층으로 올라가자마자 시아를 발견했다. 커튼 뒤에 숨었지만 앙증맞은 다리를 커튼이 다 가리지 못했다.
그 귀여운 모습에 강현은 싱긋이 웃고는 딸은 나중에 잡기로 하고 큰 아이부터 찾기로 했다.
“어디에 숨었니?”
커튼을 지나치며 그러게 말하자 커튼 뒤에 숨은 딸이 킥킥 소리 죽여 웃는 게 들렸다. 딸이 즐거운 것 만큼, 아니 그보다 강현은 더 즐거웠다.
아들은 찾는 건 매우 쉬웠다. 딴에는 이불안에 장난감과 베게를 집어 넣어 더미로 삼았다지만 너무 부자연스러웠다. 기복이 없는 더미는 곧 숨을 쉬지 않는다는 것이고 아들은 다른 곳에 숨었다는 것을 의미했다.
일단 침대 밑을 확인한 강현은 바로 옷장을 열었다.
“여기 있었네.”
“치! 너무 빨라요!”
준의 볼이 불퉁해졌다. 이 집에는 숨을 곳이 너무 없었다. 그런 아들을 품에 안아들고는 시아에게 갔다.
“쨘! 여기 있었네.”
“꺄하!”
시아가 웃으면서 최준의 다리에 달라붙었다. 오빠보다 늦게 발견된 게 기분이 좋은가 보다.
“식사하세요!”
그리고 때맞춰 식사하라는 소리가 들렸다. 강현은 아이들과 함께 즐거운 저녁식사를 했다.
“아빠! 숨박꼭질.”
“알았다, 알았어.”
식사가 끝난 뒤에 숨바꼭질에 자신이 붙은 시아가 강현에게 놀아 달라고 보챘다. 강현도 그런 딸아이의 애교가 싫지만은 않아서 동참하게 되었다. 준은 숙제하라는 샐리의 말에 방에서 숙제를 하는 중이었다.
“어디에 있을까?”
“음... 여기에 있을까?”
강현은 또 커튼 뒤에 숨은 딸아이의 주위를 서성거리면서 엉뚱한 곳을 뒤졌다. 그럴 때마다 킥킥 웃는 딸아이의 모습에 딸바보가 되어버릴 것 같았다.
아무튼 강현도 세상이 그리 만만한 건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주기 위해서 두 번째에는 커튼 뒤에 숨은 시아를 금방 찾아냈다.
“히잉...”
또 세 번째도 금방 찾아내자 볼이 불퉁해진 시아가 이번에는 망토를 뒤집어 쓰고 구석에 숨었다. 식사 시간전에 준과 함께 쓰고 다니던 망토다.
“응? 뭐하는 거지? 안 숨니?”
강현의 물음에 시아가 귀엽게 볼을 부풀리고 항변했다.
“이거 투명망토야! 아빠는 내가 안 보여!”
그제서야 저 망토가 아이들이 보채서 산 어떤 유명 영화의 상품이라는 것을 알았다. 세트로 지휘봉처럼 생긴 막대기가 같이 있었는데 왜 그리 비싼지 강현으로서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돈 많은 아빠였기에 선물로 사줄 수 있었다. 샐리에게는 아이들 버릇 나빠진다고 또 잔소리를 들었지만 말이다.
아무튼, 강현은 딸아이의 주장에 뭐라 말할지 머리를 굴렸다. 과학적 이성이 투명망토의 불합리성에 대해서 뭐라고 열심히 떠들었지만 아버지로서의 마음이 직업병을 막고 간신히 적당한 문장을 만들어냈다.
“어.. 아직 투명해지지 않았나 보구나.”
“지금 투명한 상태란 말이야!”
우물거리며 울음을 터트리려는 시아의 모습에 강현은 기겁을 하면서 허겁지겁 시아가 쓴 두건을 내려주며 눈을 가려주었다.
“워, 원래 투명해지면 자신도 남을 못보는 거란다.”
“정말?”
딸아이의 물음에 강현은 망막에 빛이 맺히는 현상부터 설명해 주고 싶어하는 과학자로서의 자신을 느꼈다. 하지만 아버지로서의 자신은 그래서는 안된다고 놀이에 집중하라고 외쳤다. 그래서 그는 간신히 한 마디를 했다.
“물론이지.”
강현의 말에 득의양양해진 시아는 안쪽 구석으로 가서 그 투명망토라는 것을 뒤집어쓰고 눈을 푹 가렸다. 그제서야 강현은 시아를 울리지 않고 숨바꼭질을 계속할 수 있었다.
“후우.”
그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돌리니 샐리가 흐뭇한 표정을 지으며 둘을 바라보고 있었다.
강현의 아빠로서의 내공은 적지 않게 쌓여있었다. 샐리는 강현이 좋은 아빠라서 행복했다.
“후후. 오늘 아이들과 놀아주느라 수고했어요.”
잠자리에서 샐리가 강현의 가슴에 얼굴을 묻으며 칭찬해 주었다. 하지만 강현은 왠지 입맛이 썻다.
“좋은 아빠 역할이란 참 어려운 것 같아.”
좋은 아빠라면 시아가 쓴 그것이 투명망토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알려주어야 하지 않았을까?
“괜찮아요. 그정도로 충분해요. 아이들은 어차피 세상에서 배우는 거에요 부모는 그냥 아이들이 자라는 동안 울타리가 되어주면 돼요.”
“그런걸까?”
아이들은 언제 현실을 알게 될까? 부모로서 그 시기를 생각하는 건 답이 없는 문제 같았다.
강현은 고민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부의 대물림은 존재했다. 아니라고 하지만 분명히 존재했다. 부유층은 자식들에게 더 좋은 교육의 기회를 주기 위해서 노력했고 자식들에게 가정교육을 확실하게 시키면서 자기 관리와 시간 개념을 철저하게 익히도록 했다.
그렇게 자란 아이들의 경쟁력과 그렇지 않은 아이들의 경쟁력에서 차이가 나는 건 당연했다. 생존 경쟁에서 승리가 보장된 이들이 행복한 삶에 대해서 고민할 수 있는 빈도수 역시 더 높은 것도 당연했다.
그러나 현실과 투쟁하는 이들에게는 행복이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
강현은 투명 망토에 숨어 키득키득 웃던 딸아이의 모습이 떠올랐다. 없는 것을 있다고 믿기에 즐거울 수 있다. 사실은 없지만 그곳에는 행복이 있었다. 행복이란 어쩌면 그런 투명망토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투명망토인가?”
강현은 중얼거렸다.
“어?!”
그리고는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어디가요?”
강현이 자다가 말고 몸을 일으키자 샐리가 물었다.
“잠시 서재에,”
하지만 강현은 말을 다 하지 못했다. 두 아이를 낳았지만 아즈삭의 지원으로 완벽히 몸 관리를 해, 처녀적 몸매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던 샐리가 여전히 미끈한 허벅지로 그의 다리 한쪽을 휘감아 놓아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잘 때는 자야죠.”
“자, 잠깐!”
그녀가 상체를 세워 강현의 목을 끌어 안더니 다시 침대로 끌어당겼다. 그녀의 붉은 입술이 강현의 입술을 덮었다.
“읍! 으읍!”
그렇다. 잘 때는 자야했다. 강현의 과학자로서의 이성도 수컷의 본능을 막을 수는 없었나 보다.
= = = = =
투명망토. 그것은 가능한가?
가능하다. 논문으로 나와있기도 하다. 굴절률이 음의 값을 가진 물질이 있다면 투명망토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음의 값을 가진 물질은 어디에 있을까? 없다. 그런 물질은 존재하지 않는다.
굴절률은 빛이 매질 1에서 매질 2로 입사할 때 ‘매질 2에서의 속도’분의 ‘매질 1에서의 속도’로 정의된다. 그리고 진공의 굴절률을 1로 두었을 때 모든 물질의 굴절률은 1보다 크다.
이말이 무엇인고 하니 모든 물질을 통과할 때 빛의 속도는 느려진다는 의미다. 당연한 말이었다. 아무런 걸리적 거림이 없는 진공을 통과하는 빛에 비해서 원자와 전자와 상호작용을 하면서 통과해야 하는 물질 속에서 빛이 그 진로가 방해 받는 건 필연적이었다.
그렇다면 투명망토는 불가능한가? 예전에는 그렇다고 생각되었다. 하지만 메타 물질이라는 개념이 생기면서 불가능하지만은 않게 되었다.
메타 물질은 기존 물질의 기하학적이고 반복적인 패턴형 배치를 통해 기존 물질이 가질 수 없는 특성을 형성하는 신소재 기술이었다. 비단 굴절률 같은 광학적 특성 뿐만 아니라 소리나 탄성같은 기계적 특성까지 조절할 수 있었다.
거기에 이미 레이더에 사용하는 마이크로파에 대해서 마이너스 굴절률을 가진 메타 물질은 개발이 완료된 상황이고 이를 바탕으로 레이더에 탐지 되지 않는 스텔스 기술을 개발 중이었다.
“흠.. 광학적 블랙홀도 메타 물질로 만드는데...”
광학적 블랙홀은 빛을 한 점에 모아서 나가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이 역시 특별하게 고안된 메타 물질을 이용해 외부로부터 들어오는 빛을 완전히 가두어 버린다. 또한 그런 성질을 이용해서 특수한 레이저도 개발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었다.
매질로 선택된 물질의 들뜬 현상을 이용하는 레이저는 적외선보다 긴 파장, 마이크로파나 라이오파 같은 영역의 빛을 레이저로 만드는 것이 불가능했다. 왜냐면 들뜬 전자나 원자의 에너지가 여기되며 나오는 전자기파의 에너지가 그렇게 작은 물질이 아직 발견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메타물질로 만든 광학적 블랙홀 기술을 통해 레이저로 만들기 불가능한 영역의 전자기파도 레이저로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렸다.
메타 물질의 가능성이 그렇게 넓으니 감마선을 막아내는 것도 가능할지 모른다. 그리고 그 구체적인 방법론도 생각해 놓았다. 바로 전반사가 그것이다.
굴절률을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빛이 물질로 들어갈 때 물질의 방향으로 어느 만큼 꺽이냐를 표현한 수치다. 그리고 굴절률이 큰 물질에서 굴절률이 작은 물질로 빛이 입사할 때에는 입사각보다 굴절각이 더 커진다.
그리고 입사각이 점점 커짐에 따라 굴절률의 비율만큼 굴절각도 점점 커지고 마침내 물질의 경계선에 굴절된 빛이 겹치는 순간 빛은 에너지의 손실없이 깔끔하게 반사되어 나간다. 이것이 바로 전반사라는 현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