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2화
이런 중국의 방침에 생각없는 기업들은 환호했다. 그러나 좀 생각하는 기업들은 경계했다.
분명 노동시장은 좀 더 유연해 지고 편하게 사람을 고용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중국인을 한국인처럼 부릴 수 있을까? 그들은 과연 ‘자발적’으로 야근을 해줄 것인가? 휴일에 부르면 나와서 노동을 해줄 것인가? 상사의 얼척 없는 지시에 얌전히 ‘Yes’라고 답해 줄 것인가? 그리고 수출품보다 질 떨어지고 비싼 내수용 상품을 기꺼이 사줄 것인가?
계속 납품단가를 낮추는 원청의 요구를 맞추기 위해 계속 인건비를 삭감해야 하는 하청의 입장에서 정부의 법안은 환영할 만했다. 쉽게 싼 외국 노동자를 구할 수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내수시장을 장악한 이들은 고민했다. 이것이 과연 자신들에게 득이 될지 실이 될지... 원가 절감은 가능하겠지만 좋은 일만은 아니었다.
분명 뭔가 잘못 되어가고 있음은 확실했다. 모두가 그것을 느낄 때 쯤, 과연 한국은 어떤 모습일까?
한중 FTA는 많은 사람들의 반대를 받았으나 여태껏 그랬던 것처럼 정부는 강행했다. 오랜만에 컨테이너 산성도 쌓아 올려졌다. 이미 언론은 친정부적이었다.
그리고 강현은 은사였던 7명의 교수 중 한 명의 방문을 받았다.
“김 교수님! 여기까지 왠 일로! 여전히 강녕하시네요.”
김은철 교수는 강현에게 전기공학을 담당해 가르쳐준 은사였다. 지금은 은퇴해서 집에서 소일거리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도 얼마 전 일이었다.
“한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알고 있니?”
김은철 교수의 말에 강현은 고개를 저었다. 한국에 별로 관심이 없었다.
“이대로 가다가는 한국이 중국이 되어버리겠구나.”
김은철 교수는 대량으로 들어오는 중국인 빈민층과 그들이 공업 지역 근처에 만들기 시작한 차이나 타운에 대해서 깊은 우려를 표했다. 안그래도 가뜩이나 인종 차별이 심한 한국인이고 중국인 때문에 일용직 노동자부터 비정규직까지 일자리가 밀려나버렸기 때문에 중국인 노동자에 대한 증오와 불만이 장난 아니었다.
차이나 타운의 경계 부근에서 혈투가 벌어지고 이런 혼란한 와중에 조폭들이 독버섯처럼 피어났다. 이들은 한국의 노동자를 보호하면서 보호비를 받으며 세력이 커져갔다.
싸우면서 닮는다고 하던가? 수틀리면 칼부터 뽑고 보는 중국인들을 따라 사시미 한자루씩 허리춤이 끼워 놓고 다니는 건 차이나 타운 근처 한국인 조폭들에게는 필수나 마찬가지 일이었다. 방검복을 제작하는 업체는 때아닌 특수를 맞았다.
유혈이 낭자한 일이 심심하면 일어났다. 물론 공중파에서 이런 일을 방송하는 일은 없었다. 차이나 타운뿐만 아니라 각종 외국인 범죄 역시 마찬가지다. 그런 일들이 방송되면 다문화 정책을 추진하는 정부가 거센 역풍을 맞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언론의 무관심 속에서 자칭 민족주의를 수호하는 청년들이 폭력으로 차근차근 영향력을 넓히고 있었다.
“내가 지금 80년대를 살고 있는지 헷갈릴 정도란다.”
김은철 교수의 말에 강현은 당연한 일이라고 고개를 끄덕였다.
한국과 중국의 관계는 뿌리가 깊었다. 먼 옛날 고조선 시대부터 중국과 한국은 싸우고 화해하고를 반복했다. 그리고 삼국시대에 신라가 당을 끌어들여 통일을 이룬 이후부터 고려, 조선을 거치며 한 번도 중국의 국력을 뛰어 넘어본 적 없는 한반도가 중국의 영향을 벗어난 적도 없다.
과학 영재라고 한국에서 과학 교육만 받다가 미국에 와서야 기본적인 교양 교육을 받은 강현의 시각으로는 한국은 언제나 중국의 속국이었다.
외침의 역사를 반복하며 원과 혈연이 맺어진 고려 왕실은 말할 것도 없고 조선의 왕 또한 언제나 중국의 황제로부터 인신과 고명을 받아야 그 정통성을 인정받을 수 있었다. 당시 동아시아 외교 관계에서 세상의 중심인 중국에게 인신과 고명을 받는 건 당연한 일이었지만 근대 서양인의 시선으로는 속국이나 다름없었다.
명목상 제후국이고, 사실상 독립국이라고 자칭하지만 왕의 정통성을 타국에게 인정을 받아야 하는 국가는 과연 독립국인가? 문화적으로 독립을 이루었다고 하지만 나라를 다스리는 사대부들이 주로 쓰는 문자가 한자인 나라는 정체성이 도대체 무엇인가?
미국에서 역사교육을 받은 강현의 시각으로는 자본주의-공산주의 이념으로 갈라섰던 중국과 한국과의 관계가 과거의 그것을 돌아가는 것 이상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중국과 한국은 역사적으로 관계가 깊죠. 국제화 시대에 그리 놀랄 일도 아닙니다. 유럽에서는 기독교와 이슬람의 이질성 때문에 다문화 정책이 실패했지만 한국에서는 성공할 수도 있지 않을까?”
유럽 국가 중에서 이슬람 이민자를 받아서 다문화 정책을 성공시킨 사례는 단 한 건도 없다. 한국은 아주 자신만만하게 우리는 다르다며 다문화 정책을 진행하는 중이었다. 오랜 친분이 있고 같은 황인종에 유교라는 공통 분모까지 있으니 한국인과 중국인의 융화는 언어만 극복하면 어쩌면 쉬운 일이 될 수도 있었다.
제주도의 경우를 봐도 그렇다. 알짜배기 땅 대부분이 중국인 부자에게 넘어가면서 이들을 해외 투자를 위한 허브 자산이라고 부르고 있지 않은가?
“.....”
김은철 교수는 강현의 말에 눈을 껌벅이며 할 말을 잃었다. 한국인의 입에서 이런 소리가 나오다니.. 충격적이었다.
‘아!’
그제야 김은철 교수는 강현이 정상적인 교육을 받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공계쪽으로 너무나 자질이 뛰어났기 때문에 그 외의 교육에는 소홀했다.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이 확고히 자리잡지 못한 것이다.
김은철 교수는 똑똑해도 소용없다는 사실을 뼛속 깊이 자각했다. 그러나 교단으로 돌아가 인성과 재능을 동시에 가진 인재를 기르기에는 이미 너무 늙었다. 한자락 남은 열정으로 조국에 약간이라도 기여하겠다는 일념으로 우주까지 올라왔는데 그런 기대가 착각이라는 것도 깨달았다.
그는 하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꾹 참았다. 한국인적인 사고 방식보다 미국인적인 사고 방식을 가진 강현에게 이러니 저러니 말을 해도 결국 늙은이의 주책이 될 뿐이었다.
민족의 중요성을 깨닫지 못한 이가 그가 보는 문제점을 인지할 리가 없었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첫걸음은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었다.
결국 김은철 교수는 아폴로티움 관광이나 하고 돌아갔다.
강현은 김은철 교수를 배웅하고 와서 서재에 앉아 턱을 쓰다듬으며 고민에 잠겼다.
[왜 그러십니까?]
“아니 그냥.. 좀.. 뭔가 손해를 보는 기분이 들어서..”
[손해요?]
“한국 제현 그룹있잖아..”
강현은 한국이 중국과 매우 밀접하게 되었을 때의 시뮬레이션을 그려보았다. 5000년 문화 대국을 상대로 한국이 과연 한국 고유의 문화를 지켜낼 수 있을까? 그 고유의 문화 역시 중국에서 들여온 유교를 500년 동안 발달 시킨 산물이지 않은가?
한국이 중국화되면 제현 그룹은 어떻게 될까? 그리고 자신에게는 어떤 영향을 끼칠까? 제현 그룹이 중국의 입김으로 인해 자신에게 도움을 요청할 상황이 되면 자신은 그것을 외면할 수 있을까?
강현의 고민은 곧 식사하라고 자신을 데리러 온 준에 의해 잠시 생각 저편으로 넘어갔다.
“아빠, 식사하세요.”
“그럴까?”
강현은 문을 열고 아들을 품에 안은 다음에 거실로 나왔다. 보행기를 탄 딸이 여기 저기 분주하게 돌아다녔고 기미 원단을 씌워 어설픈 인형처럼 보이는 로봇독이 그런 딸의 안전을 주시하고 있었다.
부엌에서는 HA 한 기가 샐리를 도와 접시를 놓고 상차리는 것을 돕고 있었다.
“와! 맛있겠다!”
베이컨과 감자, 완두콩에 각종 야채가 어우려진 화려한 밥상을 본 준이 입에서 군침을 흘렸다.
강현은 준의 머리를 한 번 쓰다듬고 자리에 앉았다. 어느새 보행기로 옆에 온 시아가 우! 우! 옹알이를 하면서 맛있는 냄새에 반응했다.
샐리는 젖을 때고 이유식을 먹기 시작한 시아에게 맘마를 먹였다. 어느새 자신의 그릇을 후딱 비운 준이 동생에게 밥을 먹여주겠다고 샐리에게 앙탈을 부렸고 샐리는 준이 시아에게 이유식을 먹이는 모습을 감독하며 자신도 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흐뭇한게 미소짓는 강현과 눈을 마주치고는 싱긋이 눈웃음을 지었다.
언제나 그렇듯 즐거운 식사 시간이었다.
강현은 식사가 끝난 후 샐리를 도와 식기를 정리했다. 분리수거가 철저한 이곳에서는 음식물 쓰레기를 함부로 하수구에 버리는 건 금물이다. 정수에 시간이 걸려서 샤워하다가 물이 나오지 않을 수도 있었다.
음식물 쓰레기 같은 건 따로 비료통에 담아 발효시키는 것이 이곳의 생활 패턴이다. 비료통은 주기적으로 회수되어 우주 농장의 발효통으로 가서 양액 재배용이 되거나 좀 더 시큼하게 발효되어 아세트 산을 잔뜩 함유한 대체 농약으로 사용 되기도 한다.
강현이 그릇 하나에 싹싹 긁어 모은 음식물 쓰레기를 비우고 돌아오자 샐리가 말했다.
“현. 오늘 은사님께서 왔다가 가셨잖아요.”
“응.”
“괜찮겠어요?”
“응? 뭐가?”
“한국이요.”
“글쎄... 중국에 흡수되려나? 아니지 그럴 일은 없을걸?”
세계에 여기저기에 뿌리 박았던 차이나 타운이 수십년 동안 자리를 잡지 못한 나라다. 미국은 물론이고 세계 여기저기에 한국인 촌이 형성되었다.
한국인의 배타적 특성과 끼리끼리 문화는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을 보존해 주었다. 중국인 못지 않게 질긴 민족이 한국이었다. 중국에 흡수될 일은 없을 것이다.
“문제는 자본이지.”
국제화 시대, 자본의 논리를 앞세워 들어오는 중국 문화를 막을 방법은 있는가? 마데 인 차이나의 열풍에 미국도 온전하지 못했다. 중국이 세상의 중심이라며 만리장성을 쌓았던 과거의 중국이라면 크게 문제될 일이 없겠지만 서양의 제국주의와 식민지 정책으로 확장정책이 무엇인지 제국의 패권이란 무엇인지 맛을 톡톡히 본 중국 대륙이다.
대(對) 티벳 정책과 소수민족 흡수 정책 및 동북 공정을 보아도 근대 서양의 전략을 수용해 자신들의 방식으로 수정하기 위해 고심한 흔적이 보였다.
목적은 명료했다. 중국의 확고부동한 영향력을 착실하게 구축해 나가는 것이다.
알짜 부동산이 중국인의 손에 넘어간 제주도는 앞으로 중국이 한국에 어떤 식으로 영향력을 끼칠지 가늠할 수 있는 지표였다. 수백억 원대의 자산가가 한국 전체 인구를 능가하는 중국이다.
돈 싸움을 하면 한국이 이길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부동산 불패를 외치는 복부인 마님들에게 중국 자본의 유입은 환영할 만한 일이겠지만 말이다.
과도한 자본의 유입으로 부동산 거품이 끼게 되면 결과는 자명하다. 바로 옆의 일본이 좋은 견본이다. 우리는 다르다고 생각하는 건 상식을 무시한 근거없는 자신감이다. 자유 시장 체제에서 경기는 순환한다. 거품은 반드시 꺼진다. 이것이 상식이다.
상식은 곧 질서의 기준이며 이것이 무시되는 순간 혼란이 발생한다. 그리고 혼란의 와중에서 기회를 잡은 자는 크게 흥하고 기회를 마주할 기회조차 잡지 못하는 자는 그렇게 밑바닥으로 떨어져 내린다.
큰 부자는 큰 흉년에 난다. 사실에 근거한 격언이다. 중국의 자본 진출과 그로 인해 거품이 끼게 될 한국의 경제는 크게 성장할 것이나 중국에 종속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세계 경제 위기가 오면 한국은 아이슬란드의 전철을 밟게 될 것이다.
우파 정당의 집권으로 대처리즘, 신자유주의 정책을 선택한 아이슬란드는 활발하게 외국 자본을 받아들이고 주가총액을 무려 5000% 넘게 증가시켰다. IMF 이전 한국에서 작은 거인이라며 열심히 밴치 마킹한 인구 30만명의 나라는 국제 금융 위기와 함께 침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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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고민을 했는데 획기적인 뭔가가 나오지 않는군요. 자신의 한계를 체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