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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의 군림자-210화 (210/241)

210화

그러나 단순히 생물학 테러에 대비하는 일은 그 한계가 뚜렷했다. 기존의 생물학, 의학체계가 가진 한계도 있었다.

인체의 생화학 반응을 연구하고 발견하고 이용, 응용하는 수준 이상으로 넘어가기는 힘들었다. 물리학처럼 원자핵을 발견하고 쿼크를 발견하고 초끈, 초막 이론 등을 수학적으로 증명해 저 먼 미래로 개척할 수 있는 성질의 학문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실험과 실증, 데이터가 중심이 되는 학문이라 이론적으로 어떤 현상의 기저, 메커니즘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 추측하기 난감한 학문이었다.

아니, 결국 모든 생리학적인 현상의 기저에는 화학반응이 깔려있지만 단백질과 같은 고분자, 미량 원소 등 다양한 요소들이 함께 작용했다. 마치 컴퓨터 소프트웨어가 패턴화된 디지털 신호를 통해서 구현되고 확장되어 복잡해진 것처럼 생리학적인 반응 역시 패턴화된 고분자가 뭉치고 확장되어 DNA 같은 방대한 정보 체계를 구성했기 때문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예측하기 어려운 것이다.

마치 코딩을 하는 프로그래머들이 ‘왜 안되는지 모르겠어!’라거나 ‘왜 작동하는지 모르겠어!’라며 머리를 싸매는 것과 같다고나 할까?

이를 예측하기 위해서는 인체의 모든 것을 완벽하게 수학적으로 표면하고 시뮬레이션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 기술이 필요했지만 여전히 불가능한 영역이었다. 설사 실현된다고 해도 그 실현물을 생물학에 그대로 적용하기 난감했다.

인체의 모든 것을 완벽히 시뮬레이션 한다는 말은 사람 신체의 비보편성마저 재현했다는 말이기 때문에 시뮬레이션 상에서 얻은 데이터를 실제 사람에게 적용할 수 있는 보편성을 담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강현은 상상을 해보았다. 과연 지금의 의학 기술로는 어찌할 수 없는 최악의 생물학 테러는 무엇일까? 그건 어떤 치료제도 없는 질병을 널리 퍼뜨리는 것이었다.

그중에 대표적인 질병은 에이즈다. 레트로 바이러스(RNA 바이러스의 일종; RNA를 유전자로 가지는 바이러스)의 일종인 에이즈 바이러스는 숙주의 DNA에 RNA의 정보를 역전사한다.

이때 역전사 하는데 사용되는 역전사 효소는 DNA 복제 효소와는 달리 오류 정정 기능이 없어서 쉽게 변종을 만들어 내는데 이것이 에이즈의 치료를 어렵게 만드는 이유 중 하나다. 돌연변이가 잘 일어나지 않는다면 바이러스라고 할지라도 항원-항체 반응으로 치료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거기에 에이즈가 더 최악인 점은 면역체계의 핵심인 T 세포와 수지상 세포를 주로 공격해 면역 체계 자체를 붕괴시킨다는 점이다. 다양한 변종을 통해 항원제시 메커니즘과 항원-항체 반응을 피하며 이윽고는 그 면역체계의 근간을 파괴하는 에이즈의 치료법은 매우 난해하다.

치료법이랍시고 나온 건 당뇨병처럼 평생 병을 달고 사는 연명치료뿐이었다. 레트로 바이러스가 가진 역전사 효소의 활동을 억제하는 약물로 에이즈 바이러스의 증식을 막는 것이다.

물론 에이즈를 완치한 사례가 있기는 하지만 아직 연구 초기라 확실한 방법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확실한 치료가 나오기 전에 감기처럼 공기로 전염되는 고전염성 에이즈가 생물학 테러로 발발한다면 사람들이 일으킬 패닉 현상은 말도 못할 것이다.

다행이 바로 죽지는 않지만 에이즈처럼 치료할 수 없을 정도로 활발히 돌연변이를 일으키며 감기처럼 번지는 바이러스는 생각만해도 끔찍한 테러다.

그런 경우 가장 확실한 치료제는 무엇인가? 알 수 없다. 그건 바이러스의 행동 패턴에 따라서 다양하게 나뉘기 때문이다.

에이즈의 치료법만 해도 T 세포의 감염 경로가 되는 유전자를 제거한 유전자 조작 T세포를 주입하는 방법은 물론, 역전사 효소의 활동을 방해하는 요법까지 다양한 방법이 구상 중이었다.

“하아. 차라리 공상 과학 영화처럼 나노 로봇이 직접 치료하면 편하겠는데..”

하지만 강현은 그 일이 정말로 ‘마법’과 같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설사 자신이 주장한 초시공간 이론으로 양자 수준의 정보 집적 기술이 실현된다고 해도 그것이 원자의 고유의 물리화학적 특성을 변조할 정도가 될 것이라고 볼 수는 없었다.

전자의 고유 특성을 조작할 수 있을 정도가 아니면 전기 화학적인 결합이 물질의 물리화학적인 특성의 대부분을 결정하는 현실에서 공상 과학 영화에서나 볼법한 나노 머신은 불가능하며 그것은 정말로 마법과 같은 일이기 때문이다.

강현은 한 번 연구해 볼까하다가 이내 고개를 저었다. 지금의 물리화학 수준으로는 기존의 DNA 단백질 구조를 모방한 고분자 물질을 만드는 수준에 불과했다. 적어도 초끈 이론을 실용화 시킬 수 있는 정도의 기술 수준이 아니면 명령한 데로 움직이는 나노 로봇의 제작은 불가능했다.

미국이 생물학 테러에 대비하는 일을 착착 진행하는 동안 강현은 다시 우주 농장에 집중했다. 많은 사람들이 우주 농장의 생산성을 위해 연구를 진행하고 있었고 강현은 그 기술들이 제대로 적용될 수 있도록 제반 기술들을 보강하고 있었다.

제약 회사들은 생화학 테러 대비용 HJ 배양 탱크 시설을 막고 싶었다. 이유는 당연히 그게 돈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뒤에 강현이 있다는 사실에 대부분 정치권에 로비하기를 포기했다.

몇몇 어리석은 인간들이 같은 실수를 반복할 뻔했지만 주위의 동조가 없으니 그들과 반대되는 이해 관계를 가진 이들에게 밀려버렸다.

그렇게 어리석은 짓을 한 업체들은 주로 화교 쪽 자본을 먹은 회사들이었는데 그런 그들을 별로 좋게 보지 않는 경쟁자들이 그들의 로비가 무색하도록 역으로 로비를 한 탓이었다.

실무자들 입장에서는 이보다 더 좋은 일은 없다. 좋은 일을 하려고 해도 로비 때문에 제도의 본 뜻이 어그러진 상황을 몇번이나 봐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재난 대비처의 공무원들은 강현을 끌어들여 방패막이로 삼은 책임자의 안목을 칭찬했다.

강현이 손 대기도 전에 마무리 된 것 같은 이 사건은 작은 불씨를 남겼고 우주 농장과 관련된 일로 튀었다.

계기는 우주 농장에서 밀이나 벼와 같은 곡물을 수확할 수 있는 기술이 개발되면서부터 였다. 그 기술이 NASA의 연구팀에서 개발이 되었다면 별다른 일이 없겠지만 세계적인 곡물 기업에서 탄생했다는 점이 문제였다.

“안녕하십니까. 퀴니라고 불러주십시오.”

세계적 생화학 제조 몬산토의 회장이 몸소 아폴로티움에 올라와 강현을 만났다. 유전자 조작 종묘의 특허권을 90%나 가진 괴물 기업으로 어떤 면에서는 카길보다 입김이 더 세기도 했다. 작물을 키우는데 사용되는 각종 약제를 꽉 쥐고 있기 때문이다.

“반갑습니다만 무슨 일로..”

“우주 농장에서 사용될 재배 기술에 관해서 협의할 것이 있어섭니다.”

수 십년 간 종묘 기술을 쌓아온 노하우로 곡물의 에어로포닉 양액 재배의 상용화에 성공했다. 당연히 그 기술이 절실히 필요할 우주 농장에 진출할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우주 농장의 생산성을 위해서 저의 몬산토는 기꺼이 협조를 아끼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주 농장에 투자를 하고 싶다는 말씀이군요.”

“그렇죠.”

강현은 잠시 생각했다. 몬산토의 우주 농장 진출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 그 일은 자신에게 이득이 될까 되지 않을까?

“어떤 식으로 투자를 하실 건가요? 자본? 기술?”

“박사님께서 이미 기반 시설을 다 지어 놓으셨더군요. 저희는 그 중에 종자와 그 종자를 재배하는 양액의 조성을 제공한다면 나머지는 다 알아서 하실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저희 몬산토는 지금과 같은 기회를 그냥 날려버리고 싶지 않습니다.”

“직접 농산물을 재배하고 싶으시군요.”

“그렇습니다.”

“카길과는 오랜 동반자 관계로 알고 있는데 카길도 참여 하나요?”

“몬산토 단독 참여입니다.”

강현은 놀랍다는 듯이 그를 보았다.

“카길을 재낄 생각이시군요.”

“종묘만으로는 좀처럼 시장 점유율을 높이기가 힘들더군요. 쓸만한 농지를 구하기 위해서 바지 회사를 세워도 어느 샌가 몬산토가 관련되었다는 이야기에 구입하기도 힘들었습니다.”

자체적으로 종묘에 대한 권리를 가지고 있는 몬산토가 본격적으로 식량 생산에 끼어들기를 원하지 않는 동종업계 회사들의 견제였다.

“하지만 저로서는 아폴로티움의 사람들을 위해서 우주 농장의 식량 생산을 어떤 회사에게 독점적으로 맞길 수가 없습니다.”

식량의 독점은 곧 무기다. 사람은 먹지 않고서는 살 수가 없다.

“하하하! 미국 기업인 몬산토가 설마 미국 시민들을 먹는 것가지고 괴롭힐리가 있겠습니까?”

퀴니는 호탕하게 웃었다. 그 당당한 모습에 강현은 그를 주시했다. 퀴니는 그의 눈길을 한 점 부끄럼 없다는 태도로 마주보았다.

몬산토는 종묘를 제공하며 농가에게 자택 채종을 하지 않는다는 계약을 맺는다. 자택 채종이란 농가에서 재배한 농작물에서 다시 종자를 채집해 사용하지 않는다는 계약이었다. 이를 어길 시에는 특허법 위반으로 고액의 고소를 한다.

특허에 대한 개념이 제대로 잡히지 않은 농가에서는 하늘에서 떨어진 날벼락 같은 일이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종자 연구에 투자를 한 몬산토에게는 투자한 만큼 수익을 창출할 권리가 있었다.

몬산토의 종묘를 사용하는 농가는 매우 많았다. 종묘에 대한 권리를 확보하는 전쟁은 식량 주권과 함께 미국 중심의 헤게모니를 형성하는 중요한 축 중의 하나였다.

유럽에서는 벌써 이런 몬산토와 같은 다국적(하지만 본사는 미국에 둔) 종묘 회사들의 영향을 막기 위해 강도 높은 규제를 걸었으며 그 중에는 GMO 유전자 조작 식품에 대한 것도 있었다.

하지만 이는 유전자 조작 식물의 90%나 되는 특허를 가진 몬산토에게는 유럽 시장 진출을 매우 어렵게 만드는 요소 중 하나였다. 명분은 좋다. 인체에 대한 부작용이 아직 검증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농약을 사용해 재배한 농산물과 GMO 사이에 뭐가 더 나쁠까? 단지 천연 살충제를 합성하는 유전자를 끼워넣는 것 만으로 농약의 소비를 확 줄일 수 있는 GMO가 오히려 더 친환경적이지 않을까?

“그럼 종자는 역시 GMO인가요?”

“박사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퀴니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만일 강 박사가 GMO에 대한 편견이 있다면 우주 농장에서 GMO의 생산은 어려워진다. 무엇보다도 세계 유수의 과학자가 GMO를 거부했다는 말이 크게 알려져 GMO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퍼지는 것이 더 큰 타격이다.

“GMO라고 하지만 결국은 인위적인 돌연변이 아닌가요?”

“그렇죠.”

“그리고 감자 같은 것도 돌연변이 덕분에 사람이 먹을 수 있게 된 것 아닌가요?”

감자는 원래 독성이 있었다. 지금 사람들이 알고 있는 감자는 독성이 없는 돌연변이가 그 시초다.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인위적으로 일으킨 돌연변이 작물의 성분이 정확하게 어떻고 사람에게 어떤 부작용을 일으킬지 알 수 없다는 것이 문제죠. 그렇지 않습니까?”

“그 말도 맞습니다.”

퀴니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강 박사의 논리는 유럽에서 GMO를 거부하는 이유와 같았다.

“제 가족들이 지금 아폴로티움에 살고 있습니다. 제 가족들에게 검증되지 않은 식품을 먹이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럼..”

“GMO를 제외한 종자에 관해서는 허락을 하도록 하죠.”

퀴니는 속으로 한 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혹시나 해서 살짝 찔러보았다.

“저희는 에어로 포닉 기술을 가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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