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9화
그들이 미국을 중동에 붙잡아 두기 위해서 무슨 당근을 사용해야 하나 고민하는 동안 미국도 그들과 마찬가지의 결론을 내렸다. 핵무기에 대해 제제가 사전 경고 없이 벌어지므로 대체할 비대칭 무기를 사용하려고 들 것이 분명했다.
동맹국들이 어떤 콩고물을 상납할지는 천천히 기다리면 되었기에 미국은 위협에 대응하는데 집중했다.
비대칭 무기에 대한 감시 체제를 한층 더 강화하고는 그에 대응하기 위한 기술 개발을 시작했다. 그러면서 한 층 마음이 편해졌다. 왜냐면 화학 무기는 핵무기에 비해서 물리적인 제약이 컸다. 핵무기 만큼의 피해를 주려면 훨씬 많은 양을 옮겨야 했다.
이를 대체할 무기는 생물학 병기 뿐이다. 소량으로도 전염을 통해 병원체를 증식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인간의 육체에 있는 양분 그 자체가 인간을 고통스럽게 죽게 하는 병인(病因)의 재료가 되는 생물 병기만이 핵폭탄에 필적하는 인명피해를 낼 수 있었다.
그런데 생물학 병기는 연구 개발 자체에 많은 전문 인력과 비용이 든다는 약점이 있었다. 그러니 설사 누군가가 개발을 시도한다고 해도 아즈락의 첩보망에 걸려들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이번 이란에서 요긴하게 사용한 로봇독 고고도 투하를 통해서 얼마든지 공격할 수 있었다. 사람이 들어가지 않기 때문에 감염의 위험 역시 없었다.
그래도 미 정부는 좀 더 확실한 안보를 원했다. 설사 생물학 테러가 발발해도 효과적으로 대응하고 희생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을 원했다.
“생물학 쪽이면 별로 자신 없는데...”
정부에서 나온 인물의 부탁에 강현은 중얼거렸다.
생물은 정말로 복잡했다. 기계처럼 딱 답이 나오지 않는 분야였다. 수많은 요소들이 서로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부작용이 나올지 안 나올지 알 수 없었다. 부작용이 예상되어도 어떤 부작용이 나올지 100% 예상할 수 없었다.
더 골때리는 요소는 생명공학 기술은 적용의 보편성이 다른 분야보다 현저하게 떨어진다는 것이다. 조직 이식의 거부 반응처럼 각 개인의 항원-항체 반응은 다 다르기 때문에 동일한 생명공학 기술로 만든 제품이라고 누군가에게는 치명적인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었다.
대표적으로 유전자 조작 식품(GMO)가 있었다. 러시아의 푸틴이 이 GMO에 알레르기 체질이라 러시아에서는 이 GMO에 대한 생산 및 유통이 모두 금지되었다는 말은 유럽에서는 아주 유명했다.
유럽 역시 GMO에 대해서 매우 철저하게 규제하고 있는 지역이었고 미국 곡물 기업들이 유럽에 쉽게 진출하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했다.
그렇듯 생명공학 기술은 적용과 실용성의 보편성이 일반적인 기술에 비해서 떨어지기 때문에 강현이 별로 손대고 싶어하지 않는 분야였다. 특수한 합금을 개발하면 그 합금의 성질은 어른의 손에서나 아이의 손에서나 변하지 않는다. 그러나 적용되는 개체의 특질에 따라 효과와 부작용이 다른 생명공학 기술은 그렇지 않았다.
강현이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단백질 분석 및 재조합 기술을 가지고 있어도 생명공학에 섣불리 손을 대지 않는 이유였다.
“꼭 좀 부탁드립니다. 유사시에 사람들의 생명은 지켜야 하지 않겠습니까?”
펜타곤 국가 방위 책임자의 말에 강현은 머리를 긁적였다. 생물 병기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생물병기를 무력화하는 기술을 개발해 달라고 하는데 딱히 거부할 명분이 없었다.
그는 잠시 생각해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폴로티움은 이제 강현이 손을 대지 않아도 잘 굴러갈 정도로 운영이 궤도에 올랐다.
우주 농장의 경우에는 아직 개발이 진행 중이라 뭐라고 장담할 수 없었다. 곡물의 양액 재배에 성공한다면 바로 증설에 들어가도 되겠지만 아직 연구가 진행 중이었다.
아무래도 곡물은 자라는 시간이 있어서 기술 개발과 개량에 시간이 들 수 밖에 없었다. 즉, 한동안 강현에게는 시간이 남아 돌았다.
그렇다고 애들과 놀면서 빈둥대면 샐리의 눈치가 보일테니 일거리는 있어야 했다. 신통일장 이론의 개량은 취미 삼아서 틈틈히 하면 된다. 어차피 패러다임의 전환 없이 신 통일장 이론이 더 명확해질 여지는 매우 적었다.
강현이 참여한다는 말에 방위 책임자는 매우 기뻐했다. 그리고는 연구 부서의 책임자와 연락할 수 있는 비밀 연락망을 알려주었다.
연구 부서는 지구상에 있었기에 강현은 원거리로 연구에 참여하는 수 밖에 없었다. 뭐, 아즈삭을 이용해 지상의 실험실에서 연구를 하기도 했기 때문에 그리 특별히 곤란할 일은 없었다.
양자 통신 기술로 인해 증폭된 장거리 통신 회선은 지구 반대편에 있는 연구실끼리 네트워크를 통해 실시간으로 협력해 연구를 할 수 있게 해줄 수도 있었다. 시차 문제가 있어서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그런 일이 좀처럼 없지만 말이다.
“면역 반응이라..”
면역 반응은 주로 항원-항체 반응으로 설명한다. 항원에 있는 항원 결정체에 Y자 형태인 항체의 파라토프가 결합해 항원의 활동을 방해한다. 또한 이렇게 결합된 항체는 혈장의 단백질과 보체 반응을 일으켜 덩어리를 키우고 대식세포를 유인한다.
이렇게 유인된 대식세포는 덩어리와 함께 항원을 삼켜 효소로 분해해 버리는 것이다.
이는 박테리아의 세포벽이나 생리 화학적 반응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하는 항생물질과는 다른 형태로 몸을 보호하기 때문에 바이러스에도 통용되는 방식이었다. 바이러스 역시 항원-항체 반응에 의해 바이러스 표면에 항체가 달라붙어서 세포막 침입 등의 활동에 방해를 받고 대식세포 등에 의해서 제거된다.
이런 면역 활동은 인체 내의 양분을 이용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박테리아나 바이러스에게 매우 효과적이며 기억 세포를 통해 한 번 걸린 항원에 더 빠르게 항체를 생산해 더 효과적으로 몸을 보호한다. 박테리아나 바이러스가 증식할 시간을 주지 않고 초기에 제압하는 것이다.
항원-항체 반응은 특정하게 반응하는 생화학적인 특성을 가지고 있다. 특정한 결합만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면역 체계는 우선 항원은 인식할 수 있어야 했다.
이 인식작용을 위해서 수지상 세포나 대식세포 따위가 병원균이나 그 잔재를 먹고 분해해 특정한 펩타이드(아미노산 중합체)를 얻고 이를 T 세포에 전달한다. 이 과정을 항원제시라고 하는데 항체를 생산하는 T 세포는 그 스스로 항원을 인지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서 면역 활동이 강화되고 항원이 효과적으로 제거되는 것이다. 이를 군대에 비유하자면 대식세포나 수지상 세포는 레이더가 발달하지 못했던 2차 대전 초기의 육군이고 T 세포는 그런 육군으로부터 좌표를 전송받아 항체라는 폭탄을 투하하는 공군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백신이란 이 공군에 육군 대신 미리 좌표를 불러주는 행위에 비유할 수 있다. 백신을 통해 항원을 미리 기억해 놓은 기억세포가 빠르게 항체를 형성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바로 그 때문에 인플루엔자 백신에 대한 논란이 생기기도 한다. 특정한 결합밖에 하지 않는 항체와 항원, 그리고 계절마다 변종에 생기는 인플루엔자라는 요소가 한데 뭉쳐지면 인플루엔자 백신을 연구하고 생산하는 행위 자체가 도전을 받게 된다.
과연 이번에 유행할 인플루엔자는 정확히 예측했는가?
실제로 유행하는 인플루엔자에 유행할 것이라 예측한 인플루엔자의 백신이 얼마나 효용이 있는가?
이런 질문에 부정적인 대답을 하게 되면 매년 수 백억 달러는 가뿐히 넘어가는 인플루엔자 백신 시장은 결국 돈을 위해 감기에 대한 사람의 공포를 이용하는 악질적인 마케팅에 불과하다는 비난에 일 수 밖에 없었다.
물론 예측이 정확하다면 문제없다. 스페인 독감 같은 일은 벌어지지 않을 테니까... 그러나 생존경쟁이 치열하며 수 많은 요소들이 상호작용을 해서 카오스적인 현상이 일상인 생태계에서 어떤 요소가 작용하여 얼마만큼 변화가 일어날지 예측하는 건 쉽지 않다.
생물학 테러에 대비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였다. 생물학 테러에 사용될 병원체와 그 변이정도를 얼마나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는가?
그런 부분에서는 아무래도 학자보다는 첩보원이 더 유용하지 했다. 학자의 예측보다는 아무래도 첩보원이 직접 세균 무기를 연구하는 곳의 자료를 빼내는 것이 더 정확하지 않을까?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물학 테러가 일어났다면? 병원체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 특성과 항원 결정체가 무엇인지 확인하는 작업이 급선무였다. 이쪽으로는 강현보다 뛰어난 학자들이 많았기 때문에 그가 할 일은 거의 없었다.
그는 곰곰히 생각해보고 자신이 가장 크게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을 찾아냈다. 그것은 바로 백신의 대량 생산이었다.
HJ 세포를 이용하면 항원-항체 반응에서 실질적으로 항체와 결합하는 항원 결정체나 항원제시 메커니즘에 사용되는 펩타이드를 대량 생산할 수 있었다. 이것을 인체에 주입하면 T 세포가 이에 대응하는 항체를 빠르게 생산할 수 있었다.
이것이 바로 백신의 매커니즘이다.
하지만 강현의 이야기를 들은 생화학 재난 대비 책임자는 난감해 했다.
[하지만 세균이 어떤 녀석일지 정확히 파악하는 것 자체가 어려울 수 있습니다.]
감염자 확인에서부터 시료체취, 분석까지 걸리는 시간이 어떻게 될 지 예측이 난감하다. 소요 시간이 늘수록 피해도 더 많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세균성 테러에는 면역 반응보다는 항생제가 더 확실합니다.]
세균의 미토콘드리아의 활동을 방해해 굶겨 죽이거나 세포벽을 분해해버리는 항생제는 면역보다 훨씬 효과가 좋고 빠르다. 노약자나 어린 아이처럼 면역력이 약한 이들에게는 백신이 큰 효과를 보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강현은 생각만큼 단순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인지하고는 한 숨을 내쉬었다.
“그래서 제가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일단 병원체의 분석에 협조를 해주십시오.]
“사건이 발생하면요?”
[네. 아무래도 박사님께서 염기서열을 통해 단백질 구조를 분석하실 수 있으니까요.]
“아, 그렇군요. 그리고 백신 생산이 필요한 경우라면...”
강현과 재난 대비처는 의견 조율을 통해 일이 발발할 경우에 강현이 즉각적으로 협조한다는 것에 합의했고 그에 더불어 빠른 치료제의 생산을 위한 HJ 세포 배양 탱크를 준비하는 것에 동의했다.
제약 회사들의 시설을 사용해도 되겠지만 사용 중인 배양 탱크를 비우고 소독하는 일만해도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즉시 치료제를 생산할 수 있는 시설이 최소한의 피해를 위해서 반드시 필요했다.
강현은 막상 동의를 하고 보니 딱히 할 일이 없었다. 치료제의 개발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었다. 이미 기존의 의학 기술에 시스템적인 체계만 잘 잡으면 웬만한 생물학 테러는 방비할 수 있다.
거기에 강현의 분석 능력이 첨가되면 극소의 피해로 막을 수 있었다. 그리고 고부가가치 산업인 의학 산업이라 그런지 투자가 활발해 HJ 세포를 이용한 치료제 생산 기술에서 만큼은 강현보다 우월한 기업도 많았다.
“생각보다 별로 할 일이 없네..”
[아무래도 우주 개발과는 달리 한계가 뚜렷하지 않습니까.]
강현은 입맛을 다셨다. 우주 개발은 인류의 미래를 개척하는 일이었다. 우주 도시는 시작일 뿐이며 앞으로 저 먼 은하계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더 높은 수준의 기술과 과학력이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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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와! 간신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