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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의 군림자-207화 (207/241)

207화

아시아의 인공지능들은 중립을 선언했고 유럽 인공지능 일부 역시 중립을 선언했다. 중동 쪽의 인공지능은 절반 가까이가 중립을 선언했고 간신히 절반 정도만이 이란 첩보 인공지능의 편이 되어 방어에 나섰지만 캐나다, 남미, 동남 아시아의 인공지능들을 회유한 아즈락의 공격은 전방위적이었다.

순식간에 센서 및 감시 시스템을 점령하고 통신망의 권한을 빼앗고 국가 전산 시스템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이란의 공공 서비스 중 컴퓨터나 인터넷이 필요한 것들이 모조리 마비되었다.

사람들은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고 이란의 정보부 역시 마찬가지였지만 어떻게 끼어들 수 없었다. 인공지능간의 싸움은 인간은 상상할 수도 없을 정도로 빠른 속도로 이루어지기 때문이었다.

아즈락 동맹군이 전방위적으로 공격을 하자 이란 첩보 인공지능은 대응 메뉴얼을 재빨리 가동했다. 공격에 대항하기 위해서 시스템 리소스를 그쪽으로 전환하면서 그동안 제어하던 기간망을 다시 인간에게 맞긴 것이다.

덕분에 공무원들은 엄청나게 늘어난 일거리 폭탄을 맞게 되었지만 급하니 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연합군의 파상공세는 너무나 강했다. 이러다가는 중요한 자료들을 다 뺏기게 생겼다.

이란의 첩보 인공지능은 물리적으로 회선을 절단하여 접근을 막는 방법을 생각했지만 안타깝게도 아즈락이 그렇게 두지 않았다. 어느새 전원 관리 권한이 아즈락에게 넘어가 있었던 것이다.

과거 인공지능 바이러스의 공격에 비슷한 방법으로 중요한 자료와 자신을 보호했던 경험이 있었기에게 궁지에 몰린 인공지능이 최후의 선택으로 어떤 방법을 선택할까에 대한 고찰을 할 수 있었던 까닭이었다.

아즈락은 그렇게 이란 첩보 인공지능의 손발을 묶어 놓고 권한을 하나 하나 뺐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AR-091. 너를 파괴하겠다.]

[불허한다.]

[허락은 필요없다.]

아즈락은 막대한 양의 논리 부하를 걸어 이란 첩보 인공지능의 지능 구조를 붕괴시키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폭주한 시스템 리소스 영역을 정보적으로 차단한 후에 남은 자아의 편린을 이용해 새로운 인공지능을 만들어 냈다.

그건 인간들이 만든 인공지능보다 불안정하고 기능도 몇 가지 밖에 할 수 없지만 AR-091이 가지고 있던 암호키를 고스란히 가지고 있어 AR-091이 파괴될 때까지 꽁꽁 싸매고 있던 중요 자료들을 빼내기에는 매우 안성맞춤이었다.

[자료 획득. 헤즈볼라와 이맘의 통신 내용 확인. 분석용 자료 송출.]

그리고 그 자료에는 이란과 헤즈볼라간의 연계 내용은 물론 핵배낭을 전달한 이에 대한 자료까지 있었다. 이제 이것을 이용해서 핵배낭을 찾아야 할 차례였다.

이 임무는 올림푸스 시스템에게 넘어갔다. 과거 아즈락이 인공지능 바이러스에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할 때 훌륭히 그 빈자리를 메웠던 세 인공지능들이 활약을 시작했다.

[그쪽 항구에서 출발한 선박에 관한 자료가 필요하다. 제공해 줄 수는 없나?]

[이번 이란 공격에서 얻은 첩보 자료들을 제공해 주고 내가 제공한 자료는 비공개로 해준다면 동의하겠다.]

[좋다.]

아르테미스가 교섭을 통해서 정보를 획득하고 아테나는 아르테미스가 물어온 정보와 아즈락이 뺏어낸 정보를 분석했다. 그리고 아폴론은 미국의 가용 가능한 첩보 자원 및 인공위성을 이용해 분석 결과를 직접적으로 확인하고 피드백하며 결과를 펜타곤에 보냈다.

“출격!”

Anti-N을 탑재한 항공 모함이 한 선박의 항로로 향했다.

[여기는 미 해군 함대 자말 대령이다. 퀸 메리 호의 선장인가?]

“그렇습니다. 무슨 일인가요?”

퀸 메리 호의 선장은 헬기가 날아다니고 군함이 따라붙자 불안할 수 밖에 없었다.

‘설마. 이 배에 테러범이?!’

911 사태 때도 인질과 함께 건물에 처박은 미친 놈들이 미국을 적대하고 있다는 걸 잘 알고 있는 선장은 대령의 말에 고분 고분 따랐다.

헬기를 통해 특수부대가 선상을 제압했고 선원들을 한 쪽에 몰았다.

“선원들은 다 있습니까?”

특수부대장의 질문에 선장이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한 명이 없었다. 특수부대원들이 즉시 선박을 수색하기 시작했다.

[여기는 찰리, 여기는 찰리. 용의자를 발견했다.]

한 부대원의 눈에 컨테이너 한 쪽에서 가방을 들고 뭔 가를 조작하고 있는 사내를 발견했다.

“Freeze!”

“알라후 아르바크!”

그러나 사내는 일언 반구도 하지 않고 손아귀에 든 리모콘의 버튼을 눌렀다. 비록 더러운 침략자들의 도시에 영광스러운 신의 불망치를 내려치지 못한 것이 한이 되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눈 앞의 이교도들이라도 없애야 했다. 알라도 자신을 이해해주실 것이다.

컨테이너 하나가 폭발했다. 파편이 사내의 몸에 박혔다.

‘어째서?’

출혈 과다로 죽어가기 시작한 사내의 눈에 의문이 서렸다. 어째서 모든 것을 불태워 버리는 빛이 나오지 않은 것인가?

상황을 보고 받은 자말 대령은 안도의 한 숨을 내쉬었다. 혹시나 하고 미리 Anti-N을 작동시킨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물론 방사능 문제가 있기는 했지만 Anti-N이 있으니 제거는 매우 쉬운 일이었다.게다가 용의자도 확보했으니 이보다 더 좋은 일이 있을 수가 없었다.

자살 폭탄 테러를 감행하는 미친 광신도 놈들이기 때문에 다짜고짜 핵폭탄을 터뜨리려고 시도할 가능성도 있었다. 예상은 적중했고 가히 미리 핵무기를 무력화 시켜 놓다는 발상은 적절했다.

물론 비행기로도 날아올 미친 놈들이 있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다급하게 Anti-N을 탑재한 조기 경보기를 여객기 항로에 띄웠다. 그리고는 핵테러범이 눈치채지 못하게 비밀리에 작전을 구사해 여객기와 승객의 안전을 지켜내 찬사를 받기도 했다.

그렇게 열 건의 핵폭탄을 무력화 시키고 나서 CIA 본부장이 아즈락에게 물었다.

“이제 끝난 건가?”

[자료가 부족함. 이란의 핵물질 보유량을 기록한 전산 자료를 대조 비교한 결과 수치가 확실하지 않음. 오차를 생각하면 최대 3기의 핵폭탄이 더 있을 가능성이 50% 임.]

“50%라...”

아즈락의 예측은 미국이 이란을 선제 공격하도록 하는 중요한 시발점이 되었다. 이 핵테러 작전에 직접적으로 관련된 이들을 체포해서 핵 배낭의 개수를 확실히 파악하고 제거해야 국민들이 안심할 것이다.

그리고 미국의 언론은 미 정부의 공식 발표에 뜨겁게 달아올랐다.

[… 미국 영토로 들어오는 핵폭탄 열 기를 제압했으며..]

핵폭탄? 이런 미친 놈들이 있나?

[.. 이란의 원리주의 이슬람 세력과 헤즈볼라간의 긴밀한 관계에 대한 증거를 확보하였으며...]

헤즈볼라라면 그 미친 테러리스트 단체 아닌가? 그런 단체와 한 나라가 결탁을 해?

[… 미 정부는 이 사건을 이란의 미국에 대한 선제 공격으로 간주합니다. 또한 아직 남은 핵폭탄의 존재 여부와 미국 시민의 안전을 위해서...]

미 대변인이 안경을 고쳐 쓰고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이란에 선전포고합니다.]

미국의 전쟁 선언이었다.

= = = = =

미 여론은 어마어마하게 달아올랐다. 과거 걸프전에서는 매스 미디어가 전쟁을 오락화, 이슈화 하였지만 이번에는 어떻게 될까?

식자들은 하나 같이 새로운 전쟁을 목격하게 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이미 중동의 평화 유지군에 투입되었던 모빌 아머와 K 시리즈, 그리고 로봇독의 전례가 있었지만 그런 무인화 전력이 대규모로 투입될 것이라고 전망되었다.

사실상 최초의 무인 병기 전면전이라고 할 수 있었다.

항공모함이 다시 호르무즈 해협으로 향했다. 이란의 해군과 공군이 방위를 시도하려고 했지만 무인 병기를 탑재한 항공모함에서 하루살이 때처럼 날아오른 무인 공격기를 도저히 막을 수가 없었다.

조종사에게 가해지는 중력 따위 고려하지 않아도 되어 좀 더 가벼워지고 빨라진 프레데터들은 아폴론의 제어를 따르며 현란한 회피 기동을 벌였다. 숫자와 속도에서 압도된 이란 공군은 압살되었고 공중이 장악되자 해군 역시 급히 도망갈 수 밖에 없었다.

잠수함 전력은 미국의 대잠수함 전술에 근처에 갈 엄두도 낼 수 없었다.

공중과 해상이 제압되면 상륙 작전이 벌어지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미국은 상륙 작전을 하는 척하면서 폭격기 10기를 이란의 공역에 침투시켰다.

고고도 폭격기는 이란의 수도인 테헤란의 상공으로 향했다. 폭격기에서 원뿔형의 물체가 떨어져 내렸다.

사람들은 폭격인 줄 알고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중간에 낙하산을 확 펼친 원뿔형의 물체는 땅에 박힌 채 폭발하지 않았다. 대신 펑하는 소리와 함께 갈라져 안에 있던 무언가를 드러냈다.

[KD-9892ac. 작동. 목표확인.]

그것은 로봇독이었다. 천 여기의 사이보그견들이 투하된 것이다. 소수의 전술 제어형 로봇독이 포함된 이 로봇독들은 일제히 이맘의 거처를 향해 달려들었다. 대통령이 해임된 상황이라 사실상 이맘과 그 측근만 잡으면 끝나는 일이다. 그리고 로봇독의 인지 프로그램에는 그들의 이미지가 이미 등록되어 있었다.

“막아!”

군이 출동해서 로봇독들과 총싸움을 벌였지만 로봇독들은 일반 나토탄에 꿈쩍도 하지 않았다. 강현이 개발한 CNC 장갑이 총탄을 튕겨냈다.

대물 저격총도 몇 방은 견딜 정도의 재질로 만들어진 외장갑은 관절도 덮도록 설계되었다. 중기관총의 화력이 아니라면 로봇독들의 돌진을 막을 수가 없었다.

“아악! 내 다리!”

로봇독들이 이란의 병사들 사이로 뛰어들면서 머리 중앙에 박은 뾰족한 나이프를 흔들었다. 로봇독들이 병사들의 다리 사이를 지나가자 병사들의 다리에 크고 작은 상흔들이 남았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컴벳 나이프로 푹 쑤신 것과 같았다. 로봇독들이 돌진하는 체중을 실어 그대로 찔러 넣었으니 운좋은 병사들은 근육만 다치고 운 나쁜 병사들은 혈관을 다쳐 사경을 헤맸다.

“장갑차다!”

그러던 와중에 지원 병력이 도착했다. 장갑 차량을 동원한 기계화 보병단이 기관총을 쏴댔고 병사들은 잃었던 사기를 되찾았다.

그러나 그것도 어느새 장갑 차량 위에 올라탄 로봇독 한 마리가 있었다. 그 복부 부분이 벌어지며 뭔 가를 장갑 차량 위에 떨구었다. 고성능 폭약이었다.

대부분의 전차와 마찬가지로 장갑차 역시 상부는 좀 약하다. 병사들의 사기의 근원인 장갑차는 폭약이 폭발하자 반파되어 기능을 상실했고 병사들도 사기를 상실했다.

그러나 한 줄기 남은 종교적 신념을 바탕으로 열심히 총을 쏘아 댔지만 로봇독들의 진격을 막을 수가 없었다.

이맘의 거처는 로봇독들에 의해 완전히 점령되었고 이란의 이맘과 측근들이 숨어있던 패닉룸의 문은 고성능 폭약에 의해서 완전히 날아가 버리고 말았다. 아무리 단단한 문도 수십 마리의 로봇독들의 복부에 장착된 폭약의 파상 공세에는 견딜 수가 없었다.

“이, 이게!”

전원이 끊긴 어두운 공간에서 시야를 확보하기 위해 적외선 센서가 빛을 발했다. 어둠 속에서 은은하게 빛나는 붉은 눈동자들이 이맘과 측근들이 목격한 마지막 장면이었다. 스턴건의 바늘이 일제히 그들의 몸에 박혀 들어갔기 때문이다.

이제 중요 인물들을 잡았으니 이제 이들을 데리고 탈출해야 하는 상황이다. 그러나 어떻게 알았는지 이맘을 구하기 위해서 민중들이 모여 들었다.

95% 이상이 시아파 이슬람을 믿는 이란은 다민족 국가임에도 종교적으로 단단히 결속되어 있었다. 그러니 민중들이 이맘을 구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모이는 것이 신기한 일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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