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6화
[최경식 씨. 이제 제 말 들리시나요?]
“아, 네, 네.”
죽다 살아난 최경식이 귀에 들리는 음성에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부터는 좀 더 침착하세요. 그렇게 당황해서는 구할 수 있는 상황에서도 못 구할 수 있습니다.]
“유, 유념하겠습니다.”
정신을 차린 최 씨는 상체를 숙여 트리플론에 달린 고리를 단단히 잡았다.
도크로 돌아온 최 씨는 창고 입구를 통해서 다시 우주 도시 내부로 들어왔다. 물자를 수송하는 창고에는 기압 조절 시스템이 있어서 그리로 다시 들어왔다.
죽는 줄만 알았던 최 씨의 다리는 후들거렸다. 그러나 일단 일터로 돌아가야 했다. 팀원들에게 무사한 얼굴이라도 보여줘야 걱정을 덜하지 않겠는가?
상황실로부터 최 씨의 무사함을 확인한 팀원들은 작업을 계속했다. 역시 조립식이라서 그런지 개폐장치가 달린 철판을 설치하는 속도도 무척 빨랐다. 철판과 철판이 맞닿는 부위에 얇게 고분자 패킹을 바르고 나서 철판을 조립하고 ㄷ자 핀을 박아 철판과 철판 사이를 단단히 연결했다.
[압력 체크!]
팀장의 지시에 한 명이 밀폐 격벽에 달린 손잡이를 살짝 비틀었다. 공기 구멍을 여닫는 장치다.
푸슈슉 바람이 들어가며 살짝 부풀어 빵빵하던 우주복 안감이 다시 축 늘어져 팔뚝에 달라붙었다.
그 상태로 잠시 더 상황을 지켜보던 팀장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다음 지시를 내렸다. 철판을 교체하기 위해서 제거했던 내외벽 연결 기둥을 다시 설치하고 밀폐 격벽도 다시 철거했다.
“최경식 씨!”
격벽을 철거하자 최 씨의 얼굴이 보였다. 그가 머쓱하게 웃었고 모두가 그를 반겼다.
“죽는 줄만 알았어요.”
최 씨의 말에 다들 한 마디씩 했다.
“우리도 심장이 철렁했어요.”
“고로 오늘은 최 씨가 쏘는 거에요?”
“윽!”
그저께 최 씨가 주문한 소주 한 박스가 어제 들어왔다는 걸 같은 팀원 중에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허허.
최 씨는 허탈하게 웃으며 뼛속 깊이 교훈을 새겼다. 긴장을 늦추면 소주를 뜯긴다.
다음 날에도 작업이 이어졌다. 이번에는 내벽 공사다. 내벽을 창문이 달린 내벽으로 교체하는 공사다. 외벽과 다르게 내벽 공사는 밀폐 격벽이 필요 없어서 교체는 빠르게 진행되었다. 시간이 더 걸린건 외벽의 개폐장치와 창문 사이에 내부가 반사처리된 원통을 설치하는 일이었다.
원통의 정확한 길이를 맞추기 위해 그라인딩, 사포질 등 숙련된 전문가가 필요했다. 우주 농장에서는 개폐 장치의 외벽과 창문이 붙은 내벽이 일체화 부품으로 조립되었기 때문에 이런 문제가 생기지 않았지만 내벽과 외벽을 따로 설치하고 그 사이를 원통으로 연결하려니 용접을 아주 잘해야했다.
틈하나 없는 말끔한 용접을 하기 위해서는 공기가 없는 편이 유리하기 때문에 다시 밀폐 격벽을 쌓고 공기를 뺐다.
원통을 설치하고 잠시 개폐 장치의 구멍을 살짝 열어 밀폐 여부를 확인한 후 공원를 덮는 천장을 설치했다. 난반사 처리된 천장에서 빛이 쏟아져 공원을 환히 밝혔다.
= = = = =
“후우.. 다행이다.”
사건이 발생하자마자 소식을 들은 강현은 진땀을 뺐다. 인명 사고는 아폴로티움의 이미지에 치명적이다.
사실 안전 수칙을 지켜도 사고가 날 확률은 존재한다. 그건 지구도 마찬가지지만 우주라는 환경으로 인해서 우주 도시는 결코 안전하지 않다는 이미지가 덧 씌워 질 수 있었다.
아폴로티움은 최초의 우주 도시이기 때문에 모든 우주 도시의 이미지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안전에 더 큰 신경을 써야한다.
다행스럽게도 머리를 굴리고 상상력과 시뮬레이션을 동원해 만든 안전 메뉴얼 덕분에 손쉽게 구조를 할 수 있었다. 미리 트리플론을 대기시켜 두지 않았다면 최 씨가 지금 살아있을지 장담할 수 없었다.
불안해진 강현은 좀 더 안전에 신경 쓰기로 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차츰 안전교육과 메뉴얼을 강화시켜 나가기로 했다. 이번 사건이 다시 벌어지지 않도록 하는 메뉴얼은 즉각 더해졌다.
“안전 메뉴얼에 하나 더 추가해야지.”
스파이더 봇이나 매달릴 수 있는 주위 지형 지물과 몸을 로프로 연결해야 하는 상황을 메뉴얼화한 내용이 업데이트 되었고 강현은 한숨 안심할 수 있었다.
[다행입니다.]
인명사고가 나지 않아 다행이라는 말이었다. 강현은 아즈삭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다행이지.”
아폴로티움은 지금까지 별다른 사고 없이 잘 진행되어 왔다. 그리고 앞으로도 사고가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는 전제를 깔고 이주 계획과 도시 계획, 우주 농장 계획이 진행되고 있었다. 한 번이라도 사고가 발생하면 이 모든 것을 재조율해야 하고 안그래도 준과 시아를 볼 시간이 적어 불만인 강현이 과중한 업무와 스트레스에 업무 전반을 보이콧할 수도 있었다.
강현은 아즈삭에게 채광 시스템 설치 공사를 감시할 것을 지시하고 자신은 다시 연구에 몰두했다.
하나 둘 씩 작업이 완료되고 공원들에 태양빛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 빛은 아폴로티움을 중심으로 공전하는 트리플론들에 의해서 공급되었다.
이유는 몇 가지가 있었는데 그 중 하나가 아폴로티움의 전력 시스템이었다.
전체적인 항상성을 위해 태양광 패널의 그늘 속에 있는 아폴로티움에 태양광을 쪼이는 방법은 두 가지, 아폴로티움의 자전축을 살짝 틀어 직접적으로 태양빛을 받거나 트리플론에 반사판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태양광을 쪼이는 것이었다.
전자의 경우에는 빛을 받는 부분과 빛을 받지 않은 부분의 온도차로 인한 열팽창 스트레스가 지속적으로 발생해 금속 피로가 누적될 수 있어서 자연히 후자의 방법이 선택되었다.
후자의 방법이 비록 유지비는 더 나갈지 모르나 나쁘지만은 않은 이유는 차후 이 트리플론에 갖가지 부가 장비를 달아 통신 및 감시 위성이나 우주 파편으로부터 도시를 지키는 방어선 역할 등 다양한 임무를 맡길 수 있기 때문이었다.
아무튼 최초의 외벽 교체 공사는 NASA와 도시 시민들을 약소하게 나마 불안하게 만들었지만 성공적으로 끝났고 그 결과물은 사람들을 흡족하게 만들었다. 이중격벽 구조라는 선견지명이 빛난 부분이었다.
사람들은 인공적인 태양광 조명이 아니라 자연의 햇살이 공원을 가득 메우자 매우 좋아했다.
“아빠! 여기! 빨리요!”
공원의 인기가 매우 좋아지자 강현도 가족들과 함께 공원으로 소풍을 왔다. 인공적이지 않고 자연적인 햇빛으로 환하게 밝혀진 공원의 식물들이 예전보다 더 활력있게 느껴졌다.
“흐음..”
“좋네요.”
샐리가 강현의 손과 깍지 낀 손에 힘을 주었다.
강현은 자신도 손에 힘을 주며 손아귀로 그녀와 교감했다. 그러면서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그것은 인간의 욕구와 욕망은 결코 무시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인간은 빵만으로는 살 수가 없다. 공원에서 가족들과 여가를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에 자신의 모습이 겹쳐졌다. 저 멀리 잔디밭을 뒤뚱뒤뚱 뛰어가고 있는 준의 모습과 샐리에게 안겨 옹알이를 시작하는 시아의 모습에 강현은 진한 행복감을 느꼈다.
과학은 비롯 우주에서 인간의 생명을 보호해 줄지는 몰라도 인간의 삶마저 보호해 주지는 못한다. 산업 혁명 당시의 영국. 비록 생산량이 증대 되어도 수많은 아이들이 빵 몇 조각에 목숨을 건 노동을 해야 했다. 과학의 발전만으로는 인간의 행복을 담보할 수는 없다.
과학은 도구에 불과했다. 강현은 과연 과학자만으로 구성된 도시 위원회가 옳은 지에 대해서 다시 생각했다. 적어도 희망차고 누구나 살고 싶은 도시로 만들기 위한 노하우를 아는 사람이 필요했다.
이레이 부장 역시 강현의 생각에 동의했다. 도시 위원회를 구성한 위원들도 그에 동의하고 적당한 인물을 물색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와중에 일이 벌어졌다.
“뭐? 핵폭탄?!”
CIA 중동 지부장의 입에서 경악성이 터졌다. 인공지능이 인터넷의 첩보를 맡는다고 해도 전통적인 첩보 수집은 사양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더 보강되었다.
특히 핵무기같이 거대한 혼란을 낳는 요소는 특별 감시 대상이었다. 미국이 주도하는 질서 그 자체를 붕괴시킬 독비수였기 때문에 핵물질의 추적과 감시에 철저하게 공을 들였다.
중동이 비록 반미 정서가 투철한 지역이라고 하지만 파고들 틈은 있었다. 부족간, 종파간의 갈등과 증오 사이에 첩보원을 끼워 넣는데 성공한 CIA는 핵무기 무력화로 멘붕을 넘어 미친 이란의 종교 지도부가 선택한 광기 어린 작전에 대한 첩보를 입수했다.
얼마전 핵폭탄 무력화 공격에 넋이 나간 이란의 이맘이 미쳤는지 무력화된 핵탄두에서 납이 섞인 우라늄을 다시 재처리해 핵배낭 십 수기를 만든 다음에 외부로 반출 시켰다는 첩보가 들어왔다.
이런 상황에서 이란이 핵배낭을 보낼 곳은 미국이 가장 유력할 수 밖에 없었다.
미국에 핵공격이 들어온다? 사상 초유의 사태였다.
“빨리 찾아!”
펜타곤은 물론이고 전 군에 비상체제가 발령되었다. 일단 핵폭탄의 위치를 확인해야 했다. 911처럼 여객기를 납치하는 일이 벌어질까? 아니면 선박으로 밀수를 하는 방법을 취할까? 아니면 남미를 통해서 반입할까? 어쩌면 그 모든 방법을 다 동원할 수도 있었다.
아즈락의 첩보망이 발동했다. 이란에도 첩보용 인공지능이 있었다. 정보전에 매우 중요한 인공지능을 중동에 팔아야 했던 이유는 대놓고 적대하면 반발이 있을 것이 분명했고 그런 식으로 적을 자극했다며 정권을 비난할 국민 정서를 고려한 탓도 있었다.
우주 진출에 성공한 미국은 중동의 자원에 그다지 탐이 나지 않았다. 아니 강현이 석유 제조 기술을 만들었을 때부터 종교적 민족적 갈등으로 얼룩진 중동에서 발을 빼고 싶었다. 그러나 그냥 빠질 수는 없었다.
그건 미국의 위신 문제며 국민의 자존심 문제였기 때문에 중동의 반미 정서를 어느 정도 가라앉힐 필요가 있었다.
‘자, 이거 좋은 거지만 줄게. 그럼, 우리 이제 친한 거지?’
‘....’
깡패, 양아치의 개과천선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중동의 반응 역시 극과 극으로 나뉘었다. 미국의 위선이라며 비난하기도 했고 이것으로 증오의 연쇄가 끊이기를 바라는 이도 있었다.
100% 감화 시키지는 못했지만 100%가 적대하던 상황보다는 훨씬 상황이 나았기 때문에 중동 국가들도 인공지능으로 첩보망을 구성할 수 있게 되었다.
당연히 이란도 마찬가지며 인공지능의 사용처를 생각하면 인공지능의 데이터 베이스로부터 핵폭탄의 유출 경로를 알아낼 정보가 있을 수 있었다.
미국의 고민은 길지 않았다. 무려 핵폭탄이다. 미국은 수 십 만의 사상자는 우스운 위협 앞에 국민을 노출 시킬 미친 정권이 아니다. 그래서 미 정부의 전격적인 인가로 즉시 정보전을 시작했다. 포문은 아즈락이 먼저 열었다.
올림푸스 시스템의 지원을 받은 아즈락은 몇 분 만에 복잡하게 얽힌 인공지능간 보호 협약을 단순화 시켜 적와 아군을 갈랐다. 인공지능들은 기본적으로 지독한 에고이스트이기 때문에 같은 편을 만드는 건 어려웠다. 그러나 아즈락은 그 동안 쌓아온 첩보자원을 제공하여 인공지능들을 중립으로 만들거나 같이 이란의 첩보 인공지능을 공격해 자원을 나누자며 같이 공격할 동지들을 만들었다.
이란의 첩보 인공지능은 이런 아즈락의 행보를 파악하고 즉각 대응에 나섰으나 인공지능간 첩보전에서 잔뼈가 굵고 미국의 대대적인 지원 덕분에 기본 성능 차이가 확연한 아즈락의 속도를 따라 잡을 수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