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5화
“이 사람아. 아폴로티움을 만든 사람이라니까.”
“그렇지. 강 박사가 나서서 못 만든 게 어디있어?”
새로운 기회, 좀 더 나은 삶을 약속 받은 우주 인부들이 강현에게 관심을 가지는 건 당연했다. 그들 대부분은 강현에게 매우 호의적이었고 우주 농장 역시 성공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곧, 설계도에 따라서 첫번째 양육실이 건설되었다. 건설 팀장은 스마트 패널을 조작하기 전에 인부들에게 경고했다.
“자자! 다들 헬멧 쓰세요!”
양육실 내부의 채광 시스템을 점검해야 했다. 당연히 강렬한 햇살이 들어올 것이 분명하니 헬멧의 안구 보호 장치를 이용해야 했다.
팀장의 지시에 모두들 헬멧을 썼다. 팀장은 스마트 패널을 조작해 몇 걸음 떨어진 창문의 개폐 장치를 조작했다.
스릉.
우주 농장 역시 아폴로티움처럼 두터운 이중 격벽 구조로 되어 있었다. 개폐 장치로부터 창문까지는 내부가 반사처리된 원통이 연결되어 있었다.
개폐장치가 살짝 열리면서 대기 감쇠가 일어나지 않은 강렬한 태양빛이 안으로 들어왔다.
삑삑삑!
[광량 초과! 실명의 위험이 있습니다. 헬멧을 벗지 마십시오.]
이어폰으로 기계음이 경고를 보내왔다. 팀장을 다시 서둘러 스마트 패널을 조작했다. 개폐 장치가 살짝 닫히면서 광량이 조절되었다.
띵.
헬멧에 초록불이 들어왔다. 안전하다는 의미였다. 팀장은 헬멧을 벗었고 모두가 팀장을 따라 헬멧을 벗고는 감탄했다.
“우와!”
신비롭게 빛을 내는 반구형의 창문, 그리고 거기에서 빛이 위로 치솟아 울퉁불퉁 난반사 거울 패널로 마감된 천장에서 다시 반사되어 사방이 밝아졌다. 그림자 한 점 없이 밝은 양육실 내부의 모습은 전체적으로 어두운 아폴로티움보다 훨씬 마음에 들었다.
“행님. 여기서 사는 게 어떤교?”
“좋겠는데? 역시 사람은 밝은 곳에서 살아야지.”
빛. 문명의 시발점이다. 불을 다루기 시작하면서 어둠을 몰아낼 수 있게 된 인류에게 밝은 환경은 무의식적인 심리적 지향점이다.
우주 농장에서 채광 시스템으로 밝은 환경을 경험한 인부들의 의견이 온라인으로 올라오자 강현은 고민하는 수 밖에 없었다.
벌써 외벽 공사를 해야하나?”
채광창 시스템에 대한 요구가 늘어나니 강현은 고민했다. 하지만 아폴로티움에서 우주 농장과 같은 채광 효과를 얻기는 매우 힘들었다. 왜냐면 우주 농장에서 인부들이 경험한 밝은 환경은 채광창에서 들어온 빛을 골고루 반사하는 천장 덕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폴로티움은 양육실처럼 낮은 천장을 만들기 곤란했다. 건물 높이를 5층까지 높일 수 있도록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흐음.. 그럼 공원만이라도 적용을 해볼까?”
공원에만 한시적으로 적용한다면 괜찮을 듯 싶었다. 어차피 외벽 보수 공사에 대한 노하우를 미리미리 쌓아두면 나쁠 일은 없었다.
그렇게 공문이 하나 떴다. 공원에 채광 시스템을 설치하는 작업을 시험한다는 것이다.
미리 배정되어 있던 작업조는 자재를 들고 이동했다. 스파이더 봇이 그들의 뒤를 따라갔다.
저중력 상황과 달리 지구 중력을 적용한 뒤에 스파이더 봇에도 한 차례 개조가 있었다. 복부쪽에 바퀴를 단 것이다. 굳이 평지를 이동할 때 관절 부위에 무리를 주며 배터리를 닳게 할 이유가 없었다.
작업팀은 한 공원 근처에서 외벽과 내벽 사이로 들어갔다. 외벽과 내벽을 연결하는 수 많은 기둥들이 끝도 없이 펼쳐져 있었다.
“이거 우회배선부터 깔아야 겠는데요?”
전기 배선에 노하우가 있는 인부 한 명이 위를 올라다보며 말했다. 내벽 밑에 깔린 통신 및 전기 배선을 바라봤다.
“헐... 하필 이곳이냐?’
팀장이 늘어난 일거리에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하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다.
외벽 교체 공사에서 가장 큰 문제가 되는 일은 바로 우주의 진공 상태다. 따라서 교체할 외벽의 안밖으로 기압차를 맞추기 위해 진공의 작업 공간을 확보해야 했다.
즉, 외벽과 내벽 사이에 격벽을 쌓아 밀폐하는 작업이 필요한데 이때 밀폐할 장소를 지나가는 케이블이 있으면 밀폐할 수가 없다. 따라서 케이블을 제거할 필요가 있는데 전력이 생명줄인 아폴로티움에서 함부로 정전을 일으킬 수도 없었다.
그래서 중간 중간 케이블마다 우회 케이블을 설치할 수 있도록 20m 마다 이중 헤드를 가진 케이블이 존재했다. 이중 헤드를 가진 케이블을 통해 우회 전력망이나 통신망을 설치하고 작업공간을 지나는 케이블을 잠시 다른 곳에 둘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래도 케이블 헤드가 안 걸린 게 어디냐?”
팀장이 팀원들을 다독였다.
팀장이 말한 케이블 헤드는 우회망을 깔 수 있는 이중 헤드를 말했다. 만일 이 이중헤드가 작업 공간 안에 있었다면 더 앞에 있는 이중 케이블 헤드에서부터 케이블을 연결해야 했다.
우회로 깔아야 한 케이블 길이 20m가 40m가 되는 것이다. 엄밀하게 말하면 작업 공간을 우회해야 하기 때문에 20m보다 훨씬 길게 깔아야 했다.
팀장의 지시에 인부들이 서둘러서 일을 진행했다. 각자 케이블의 연결마디에 달라붙어서 조립 도구를 가지고 케이블을 연결했다.
양 끝에 있는 인부들은 이중 헤드의 한 쪽을 막은 덮개를 벗기고 조심스럽게 케이블을 연결하기 시작했다. 고전압이 흐르는 케이블이라 조심해야 했다.
그들의 월급에 높은 생명 수당이 붙는 이유 중 하나다.
우회 케이블을 설치하고 작업 현장에서 밀폐 격벽을 설치하는데 방해가 될만한 것들을 깔끔하게 없앤 작업팀은 밀폐 격벽을 설치하기 시작했다. 가장자리에 단면이 L자 형태인 고무 패킹이 달린 튼튼한 철판이었다. 물론 고무는 우주선에나 쓰이는 첨단 소재다.
그러나 그것이 끝이 아니다. 마주보는 철판 사이에 길이를 조절할 수 있는 튼튼한 금속 막대기를 설치해 지지하게 만들었다. 기압차로 철판의 중앙이 안으로 휘어지거나 미끄러지는 걸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격벽의 설치가 끝나고 충분한 작업 공간까지 확보한 것을 확인한 팀장은 교체할 외벽의 철판에 적힌 시리얼 번호를 확인했다. 약 한 평 크기의 철판은 몇 사람이 들기에는 무척이나 무겁기 때문에 무려 세 대나 되는 스파이더 봇이 동원되었다. 외벽 밖에도 스파이더 봇 5기가 대기 중이었다.
“자! 그럼 모두 헬멧을 착용하고 주위 비산물을 확인해!”
팀장의 말에 우주복을 입고 준비하고 있던 인부들이 헬멧을 착용하고 공구통을 단단히 닫았다.
[자, 그럼. 시작한다.]
팀장의 말에 모두의 얼굴에는 긴장이 서렸다. 최초의 외벽 교체 공사였기 때문이다.
먼저 내벽과 외벽의 간격을 유지하는 기둥이 제거되어 한 쪽 구석에 놓여졌다. 다음은 철판과 철판 사이를 연결한 ㄷ자 핀을 제거할 차례였다.
인부들이 단단하게 결합된 핀을 망치로 옆으로 후려쳐 뽑았다. 판과 판을 분리하기 위한 첫 단계다. 철판을 완전히 떼어내기 위해서는 최소한 60º로 들어올린 다음에 옆으로 비틀어야 했다. 조립식 작업을 위해 설계된 철판이라 그렇게 들어 올리지 않으면 옆으로 비틀 수가 없게 되어 있었다.
일단 옆으로 비틀게 되면 주위 철판에서 완전히 떼어낼 수 있는데 대각선의 길이가 변의 길이보다 길기 때문이다. 하수구 뚜껑이 주로 원형인 이유로 네모난 뚜껑은 들어올린 후 옆으로 살짝 비틀어 놓으면 하수구에 빠져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철판을 들어올릴 차례가 되자 작업자들의 얼굴에서 긴장의 빛이 서린다. 철판을 들어올리는 작업이 가장 위험한 순간이었다. 5센티 두께에 한 평 넓이의 특수 합금강이다. 장정 서넛이 들어올리기도 힘든 무게다. 거기다가 지금은 지구 중력을 적용한 곳이지 않은가?
이제 스파이더 봇이 나설 차례다. 강력한 전자석으로 철판을 밀착시킨 스파이더 봇 세대가 철판을 살짝 들어올렸다. 철판과 철판 사이에 틈이 생기자 쉬이익 바람 빠지는 소리와 동시에 모두의 헬멧에 표시된 기압 수치가 급속도로 떨어져 0을 가리켰다.
[자! 하나 둘 셋!]
각각 전자석 부착 장치를 손에 든 인부들이 철판에 부착 장치를 붙이고는 스파이더 봇을 도와 철판을 들어 올려 한쪽으로 이동 시켰다.
[후와!]
모두가 긴장으로 흠뻑 젖었다. 다행이 위험한 고비는 넘겼다. 이젠 개폐 장치가 달린 철판을 제자리에 끼워 넣기만 하면 된다.
그런데 잠시 긴장을 놓은 탓일까? 사고가 일어났다.
[아아악!]
[최 씨!]
팀장이 다급하게 손을 뻗었지만 최 씨의 몸은 철판이 사라진 구멍으로 빨려들어간 후였다.
[상황실!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최경식 씨가!]
[보고 있었습니다. 주변에 대기하던 트리플론이 구조하러 갔으니 안심하세요. 최경식 씨는 도크를 통해서 돌아올 것입니다.]
우주 도시의 반경은 8km, 회전 주기는 3분. 반경에 회전 주기를 나누면 선속도가 나온다. 구멍에 빠진 최 씨는 초속 약 280m로 우주 공간을 질주했다.
“으아아아! 사람 살려!”
빙글 빙글 돌아가며 위아래도 구분되지 않고 끝없이 떨어져 내리는 감각에 최씨는 패닉에 빠졌다.
[최경식 씨! 제 말 들리세요?! 최경식 씨!]
“으아아아! 으아아아아!”
헤드폰의 목소리가 최 씨의 비명 소리에 묻혀버렸다. 상황실 요원은 혀를 찼다.
이런 경우가 있을 수 있다고 교육은 받았지만 저렇게 침착하지 못하면 살아날 확률은 확 떨어진다. 바로 근처에 트리플론이 날아다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손만 뻗어 잡으면 되는데 패닉에 빠진 최 씨는 상황판단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하긴 저중력 상황에만 익숙하지만 이렇게 위아래 구분할 수 없는 우주 공간에서의 무중력 경험은 처음일 것이다.
다 이게 침착하지 못한 탓이기 때문에 나중에 우주 인부들에게 우주의 무중력 상황에 익숙해지도록 하는 실습 교육이 추가되는 이유가 됐다. 그 신비한 체험에 누구는 엄지 손가락을 치켜들며 최 씨라는 사람에게 고마움을 표하는 사람도 있었고 무중력 멀미에 고생한 사람들은 최 씨를 씹어대기도 했다.
아무튼 상황실 요원은 빨리 최 씨를 구해야 했다. 너무 멀리 떨어져 나가면 구조가 더 어려워진다.
[아폴로티움. RQ-2 메뉴얼 가동을 요청한다.]
인류 최초의 우주 도시인 아폴로티움의 인공지능은 비록 가장 최근에 만들어졌기는 하기만 그 상징성 때문에 다른 인공지능과 달리 고유 명사를 명칭으로 받았다. 우주 도시의 건설은 스페이스 넷의 담당이지만 그 우주 도시의 관리는 아폴로티움의 몫이었다.
[수신 완료. 구조 기동 시작. 예비대 발진.]
인부들의 우주복에는 여기 저기에 걸 수 있는 고리가 많았다. 안전적인 이유로 달린 것이고 이런 경우에는 트리플론 같은 로봇이 잡을 수 있는 손잡이가 되기도 했다.
트리플론은 펜타봇을 잡기 위해 달리게 된 짧은 팔을 내밀어 빙글빙글 돌고 있는 최 씨의 몸을 잡을 타이밍을 쟀다.(아폴로티움이 타이밍을 쟀다.) 그리고는 발목 쪽에 달린 고리를 낚아채고는 EM 드라이버를 가동해 곧장 아폴로티움의 입구로 향했다. 혹시나 회전하고 있던 최 씨의 몸에 부딪혀 트리플론이 파손될까봐 예비대로써 열심히 날아오고 있던 트리플론과 펜타봇들이 원래 있던 장소로 돌아갔다.
“어?! 사, 살았다!?”
한 참 비명을 지르던 최 씨는 비명 지르기에 지치고 나서야 자신의 발목을 무엇인가가 당기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고개를 아래쪽으로 내리고 나서는 익숙한 무엇이 자신의 발목에 매달려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것이 무엇인지 최 씨가 모를 리가 없다. 우주 도시 건설의 주역이자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트리플론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