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과학의 군림자-204화 (204/241)

204화

다 자란 식물의 기판을 쏙하고 들어올려서 컨베이어 벨트 위에 놓으면 어떨까? 그리고 컨베이어 벨트 양 옆에서 수확하고 빈 기판은 다시 어디론가 보내서 재사용 하도록 한다면?

농업의 공업화란 이런 것이 아닐까?

물론 이런 식의 농업은 이미 그 형태가 구상되어 있고 완성도 되어있었다. 병충해 관리, 생산량과 그 조건의 데이터 베이스화, 필요 대지 면적의 최소화 등 여러 이점이 있었지만 광원 조달, 전기 비용 등으로 인해 넓은 땅을 이용하는 기존의 방법보다 경쟁력이 떨어져 실행되지 않았다.

그나마 살아 남은 방법이 하우스 재배라고나 할까?

그러나 우주 농장에서는 이보다 더 경쟁력 있는 방법이 없었다. 땅을 만들고 유지하는 비용이 더 많이 나갈 수 밖에 없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그럼 축산 시설은 어떻게 되는거야?”

“그건 우주 농장을 확장하고 나서 생각하기로 했어요.”

“그런데 우주 농장이 아폴로티움에 비해서 작지 않아? 생산 면적을 고려하면 우주만의 자급자족을 하기 힘든 구조인데?”

“괜찮아요. 제가 말했잖아요. 공장이라구요. 충분한 광량만 쪼일 수 있다면 2층 3층의 높이로 생장 시설을 만들면 되요.”

재배 면적이 두세 배가 증가되는 마술이 벌어지는 것이다. 괜히 공장이 20세기 산업 혁명을 이끈 시스템이 아니다. 괜히 우주 농장을 아폴로티움보다 작게 만든 것이 아니다.

강현을 만난 이후 일주일 뒤에 사브리나가 문서를 보내왔다. 그녀가 고안한 부산물 처리 시스템이었다.

“오호!”

쭈욱 읽어본 강현의 입에서 감탄사가 터졌다. 자신의 생각보다 더 구체적인 방법론이 제시되어 있었다.

양액 재배를 위한 영양액에 첨가할 발효액을 만드는 방법은 총 4 단계로 구분되어 있었다.

일단 뜨거운 물에 끓여서 세포질을 파괴하고 걸러내 섬유질을 따로 추출한다. 이 뜨거운 물에 녹은 것만 해도 세포가 파괴되어 나오는 단백질, 아미노산 등의 양분이 있다.

걸러진 섬유질은 펙틴이나 셀룰로스 같은 분해되기 힘든 다당류 물질로 이것을 분해할 수 있는 미생물과 함께 발효 탱크에 넣어서 발효시킨다. 특히 셀룰로스 같은 물질은 매우 질기고 화학적으로 안정해서 발효 시간이 느려지기 때문에 발효 탱크가 많이 필요하다고 한다.

그 밖에 차후 가축을 키우게 되면 가축이 밟는 바닥에 두텁께 깔아두는 방법도 소개되어 있었다. 가축의 배변과 섞인 건초 따위는 발효가 잘 되어 거름으로 좋은 역할을 하는데 이를 다시 물과 섞어 재발효 과정을 거친 후에 건초를 기판으로 하는 양액 재배에도 사용할 수 있다고 되어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덧붙인 메시지에 이렇게 적어놨다.

‘조류(藻類)는 어때?’

조류(藻類)는 독립 영양활동을 하는 수생 생물을 총칭하는 말이다. 거의 광합성을 할 수 있으며 크게 세균계, 식물계, 원생생물계로 나뉜다. 플랑크톤과 비슷하지만 학문적으로 정의가 다르다. 플랑크톤에 조류가 포함될 수도 있지만 갑각류, 해파리 등의 유생체도 포함하기 때문이다.

아무튼 사브리나가 조류를 추천한 이유는 짐작할 수 있었다. 물속에서 자라는 조류의 경우 공업적으로 생산하기 매우 유용하기 때문이다. 이산화탄소와 몇몇 미량 원소, 햇빛만 있으면 무섭게 증식한다. 기하급수적이라는 말이 그대로 적용된다.

그러면 이걸 필터로 걸러내 몇가지 가공처리만 하면 사람은 물론 동물도 먹을 수 있는 훌륭한 영양분이 된다. 이때 키운 조류가 무독성이어야 한다는 전제가 깔리지만 말이다.

하지만 강현은 고개를 저었다. 단순히 영양을 공급하는 것이라면 우주 농장에서 축산을 하겠다는 발상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단백질이 필요하다면 가축을 사육하는 것보다 차라리 곤충을 사육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얼마나 효율적이냐면 동물먹이 20kg으로 소고기는 2kg, 돼지고기는 6kg, 그리고 닭고기는 10kg, 곤충고기는 무려 12kg이나 만들 수 있다고 한다. 또한 물도 거의 사용되지 않는다.

촉촉한 야채따위에서 얻는 수분으로도 충분하고 단단한 키친질의 껍질 때문에 수분 소모량 자체가 적다.

하지만 이렇게 곤충을 단백질 공급원이라며 아폴로티움에 공급해보자. 무슨 일이 벌어질까?

사람의 생활에서 의식주는 매우 중요하다. 강현이 서둘러 우주 농장을 지으려는 것도 바로 식(食)에 대한 사람의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해서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고기를 생산하지 않고 곤충을 준다? 정말로 절박한 사람이 아니라면 아폴로티움으로 이주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인간은 빵만으로는 살 수 없다.’

이 말은 삶의 질이 인간의 삶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치는지를 의미 한다. 만일 아폴로티움에서의 삶이 지구보다 열악하면 부유층, 기득권층은 유입되지 않을 것이다. 부유층이 가고 싶어 하지 않는 곳을 하층민이라고 해서 가고 싶어할까? 어쩔 수 없이 갈 수 밖에 없지 않을까? 기회가 그곳밖에 없다면 말이다.

그렇게 되면, 그리고 꼭 인류가 우주 진출을 해야겠다면, 그 형태는 소수의 권력층에 의한 약자에 대한 강요로 이루어 질 것이다. 민주주의 사회라 각종 혜택과 유인책을 쓰겠지만 그 사회의 문화를 주도하는 상류층이 포함되지 않는 이상 우주 도시는 식민지 이상이 되지 못한다.

그리고 역사적으로 보아라. 미국만 해도 본국의 부당한 대우에 불만을 품고 독립 전쟁을 일으키지 않았던가? 우주 도시가 한 국가의 일부인지 아니면 단순한 우주 식민지가 되어버리는지는 매우 중요한 문제다.

강현은 우주 도시를 단순한 식민지로 전락 시킬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우주에서 가축을 기를 생각을 한 것이다. 사람들, 아니 미국인이 살고 싶어하는 장소로 만들기 위해서다.

“조류라..”

강현의 머리에 또 한 가지 떠오른 것은 바로 물고기다. 아마 사브리나가 언급하지 않았다면 한 참 뒤에 떠올렸을 것이다.

육고기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으니 당연히 물고기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니까 키울 생각을 해보기는 해야겠는데.. 양식 기술이 많이 있기는 하지만 이걸 우주에 걸맞게 개량하는 것 또한 지난한 일이었다.

“안되겠다. 외주를 주자.”

하나 하나 필요할 걸 떠올려보니 질릴 것 같다. 처음에 구상한 우주 농장은 지구의 자연 환경을 재현하는 것이라 그냥 환경에 맡겨 여러가지를 하면 되는데 그렇게 하지 않고 우주라는 환경에 맞추어 공장식 농업에 기업형 축산에, 양식까지 하려고 하니 손댈 곳이 너무 많았다.

차라리 사브리나에게 도움을 얻었던 것처럼 전문가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좋을 듯 싶었다.

[마린하베스트사(社)! NASA와 우주 연어 양식 기술 개발 의뢰를 맡다!]

[한국 해양 수산부! NASA와 전격적인 수산 양식 기술 협약!]

노르웨이는 1인당 GDP가 10만 달러로 세계 최상위권 부자나라다. 이 부자 나라의 효자 수출 상품이 석유, 광물, 그리고 연어다. 마린하베스트사는 바로 이 노르웨이의 양식업 기업 중 하나로 뉴욕 증시에까지 올라있는 건실한 기업이었다.

양식업하면 한국 역시 빠뜨릴 수 없는 나라다. 3면이 바다에 둘러 싸여 있어서 일까? 수산 양식 생산량은 세계 12권이며 단위면적당 생산량은 1위에 달하는 수산 양식 기술 보유국이다.

넙치, 우럭은 물론이고 Seaweed 생산에 강한 노하우를 가지고 있다. 그러니 우주 농장에서의 양식 기술에 한국의 기술을 빠뜨리기는 아쉽다.

물론 우주 농장에서 양식업이 시작되기 위해서는 먼저 정수 시스템 및 수중 환경 조절 시스템을 설치해야 하지만 밀려있는 일정을 생각하면 공업식 농장부터 만들어지고 나서야 완성될 예정이라 한참이나 나중 일이지만 연구는 할 수 있었다.

“아즈삭. 트리톤으로 간 서브 카낙 2호는?”

[약 보름 뒤에 돌아올 예정입니다.]

트리톤은 해왕성의 위성으로 질소 가스가 간헐천처럼 뿜어져 나오는 것이 확인되었다. 즉, 액체 질소가 매우 풍부하게 있다는 말씀.

지구대기에서 질소를 보충하는 것보다는 다른 행성에서 질소를 가져오는 것이 더 낫다는 생각에 자원 개발용으로 개발한 것이 서브 카낙 2호였다. NASA의 전격적인 협조를 받은 이 자원 탐사선의 첫번째 임무가 바로 트리톤에서 풍부한 질소를 수급해 오는 일이었다.

우주 농장의 대기는 바로 트리톤에서 수급해 온 질소와 카낙에서 플라즈마 제련 과정의 잉여생산물로 나온 산소로 구성될 예정이었다.

“그리고 세레스 개발은 어떻게 되고 있어?”

[얼음 채취용 장비를 장착한 로봇들이 준비 중입니다. 서브 카낙 2호기가 돌아오면 바로 물을 수급할 수 있습니다.]

자원 개발용인 서브 카낙은 원래 세레스의 얼음, 그러니까 물을 채취하기 위해서 만들어졌다. 그러나 물보다는 먼저 숨을 쉴 수 있는 대기 조정이 먼저라 저 태양계 외곽쪽 먼 해왕성까지 보낸 것이다.

물론 이 서브 카낙에 탑재한 자원 채취 로봇은 액체 질소라는 극한의 환경에 맞춘 특제품이었다. 액체 질소 간헐천에서 뿜어져 나온 액체질소를 뒤집어 써도 제대로 작동할 수 있도록 극저온 상태의 반도체 특성 변화라든가, 재료 강도 등을 고려해 배터리, 반도체 칩 등의 전기 부품, 몸체까지 모두 특제품으로 바꾼 녀석이다.

돌아오면 카낙의 창고에서 차후 다시 트리톤에서 작업할 때까지 얌전하게 처박혀 있을 예정이다.

= = = = =

우주의 진공, 무중력 환경에서 트리플론과 펜타봇이 부지런히 움직이며 우주 농장을 완성했다. 더 많은 수, 더 능숙해진 스페이스 넷 덕분에 완공에는 겨우 1년여의 시간밖에 걸리지 않았다.

수 만 명의 노동자들이 하루 24시간 내내 일한다고 생각해봐라. 거기에 따로 원청도 없어서 클레임도 없지 강현 개인 재산이라 공사에 딴지 거는 이도 없지 쑥쑥 건설이 진행되었다.

대기 조절 시스템에 서브 카낙이 채취해온 액체 질소 탱크 및 산소 탱크 수 백 개가 설치되었고 대기압을 조절하기 시작했다.

대기압을 맞춘 이후에는 EM 드라이버로 천천히 회전시켜 저중력 환경을 만들었다.

완공된 이후에는 숙련된 우주 인부들이 투입되었다. 우주복을 입고 서브 카낙 3호기를 타고 우주 농장에 내린 이들에게 우주 농장의 저중력 상태는 이미 익숙한 바였다. 수 개월 동안 아폴로티움의 저중력 상황에서 일을 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배정된 업무에 따라서 누구는 건설하고 누구는 전력 시스템을 보강하고 누구는 부품을 조립하고 또 누구는 내외부 결함을 탐지하기 위해 스파이더 봇과 함께 비파괴 검사를 시작했다.

건설인부들은 농장이 아니라 공장을 짓기 시작했다. 중요한 것은 구획화와 함께 격리성을 확보하는 것이다. 만일에 일부 구획의 작물에 질병이 생기면 즉시 방역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다.

양육실은 거대한 운동장 크기로 중간 중간에 반구형의 투명한 물체를 포함했다. 바로 알루미나를 이용해 만든 사파이어 유리창이다.

“이봐! 김씨! 거기 기대지마!”

쉬는 시간에 유리창에 기댄 인부에게 팀장이 주의를 주었다. 창문을 통한 채광 시스템은 우주 농장의 중요한 축 중 하나였다.

김씨라고 불린 인부는 무안한지 머쓱하게 웃으며 자리를 이동했다. 쉬는 시간에 인부들은 잡담을 나누면서 우주 세기에 돌입한 첫 세대의 감상으로 이야기 꽃을 피웠다.

“우와.. 우주에 농장을 짓다니...”

“공장식이라는게 더 대단하지 않어?”

“일단 실험적인 의미라니까 그리 큰 기대는 하지 않는 것이 좋은 판단일 수도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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