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과학의 군림자-203화 (203/241)

203화

“다루기가 쉬운 사람이라면 정재계 인물들이 두려워하지도 않겠죠.”

보좌관의 말에 척 대령은 쓰게 웃었다. 이번 우주로 군사력을 뻗치기 위해서 여러 사람을 만나봤다. 그들은 미국의 패권과 자신의 이익을 저울질했고 척 대령은 훌륭한 언변으로 그들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하지만 그들은 하나같이 단서를 달았다.

‘강 박사의 허락이 필요하오.’

아폴로티움에 강 박사의 지분이 적지 않기 때문에 언뜻 생각하면 당연한 소리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척 대령은 그 이면에 자리한 두려움을 인지했다. 그 대단한 유대인 네트워크를 무너뜨린 강현과 척을 지고 싶은 이는 전혀 없었다.

척 대령 자신도 그렇게 생각하는데 그와 기술적, 경제적으로 밀접하게 관련된 이들은 오죽할까?

다행스럽게도 강현이 돈보다 과학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온건한(척 대령은 그의 행보에서 그런 세간의 평가를 의심했지만) 태도 덕분에 미국 사회의 기득권층과 별 탈 없이 공존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런 성향이 오히려 그를 이용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부와 명예를 원한다면 얼마든지 줄 수 있다. 미국은 영웅이 미국을 수호해 준다면 마땅히 그 모든 것을 줄 준비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받는 거보다 주는 것을 더 좋아하는 듯한 사람에게는 무엇을 주어야 만족할까? 미국 제현 투자회사로 통해 사회환원에 가까운 사업을 하고, 아프리카에 거액을 투자하는 강현인데 그런 그가 흡족할 만한 거래 조건은 권력자의 입장에서 추측하기 어려운 문제였다.

기껏 생각할 수 있는 건 그의 심기를 거슬리는 행동을 하지 않는다는 것뿐인데 그나마 강현이 그렇게까지 까탈스런 사람이 아니라는 점이 다행이었다. 그의 연구를 방해하지만 않으면 원만한 관계를 지속할 수 있다는 것이 자문 위원회의 견해였다.

척 대령은 상념을 접고 하데스 프로젝트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주는 우주 농장 프로젝트에 대해서 보좌관에게 물었다.

“그럼, 그 우주 농장 프로젝트는 언제 시작한다고 하던가?”

“이미 진행 중이라고 합니다.”

“그래?”

보좌관에 말에 척 대령은 창 밖을 올려다 보았다. 해가 지고 별이 총총 떠오르고 있었다.

= = = = =

“반사 시스템은 어떻게 되고 있지?”

[우주선에 쓰이는 유리를 이용해 창문을 만들고 있습니다.]

스페이스 쉽에 사용되는 유리창의 재료는 가정집 유리창과 마찬가지로 산화 규소를 쓴다. 하지만 그보다 훨씬 정밀하게 미량 원소를 조절하고 열처리하여 대기권 돌입의 충격에서 버티도록 만든다.

그러나 요즘에는 이보다 더 단단하고 내구성 있는 재료를 연구, 사용하고 있으니 바로 알루미나다. 산화 알루미늄으로서 사파이어의 주 재질이기도 한 알루미나는 그 강도와 열적 특성이 기본적으로 산화 규소보다 뛰어나다.

그중 우주선 창문에 사용하는 알루미나는 마그네슘 따위를 첨가한 스피넬 구조의 결정질 세라믹으로 내열성은 물론 강도 역시 일반적인 유리와는 차원이 다르다.

우주 농장에 빛을 수급하는 일은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 그러나 열역학 제2법칙에 의하면 에너지는 그 형태가 전환될 때마다 소모된다. 아무리 이상적인 카르노 기관이라고 해도 열에너지를 운동 에너지로 전환할 때 100% 전환되지 않는다.

운동 에너지를 열에너지로 전환하는 것도 쉽지 않다. 마모에 의해서 기계 부품이 가루가 되면 가루의 표면 에너지라는 형태로 에너지가 전환된다.

열과 전기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빛과 열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100% 에너지 전환은 불가능하다.

그 말은 즉슨, 태양광 패널과 전력을 만들어 이를 이용해 태양광 광원을 가동하게 되면 에너지 손실이 커진다는 뜻이다. 거기에 전력으로 구동되는 광원 시스템의 유지 보수까지 생각하면 큰 메리트가 없다.

그래서 강현은 태양광 집광기로 용융 시설을 만든 것처럼 순수하게 태양광 그 자체를 이용하는 방법을 모색했다. 결국은 태양광을 투과하는 창문을 내는 수 밖에 없었다.

우주 농장의 외형은 아폴로티움과 그리 다르지 않다. 두루마리 휴지 같이 원통형에 중앙이 뻥 뚫려 있는 구조였다. 다만 크기는 좀 작았다. 아폴로티움의 2층 공업 시설만 지어졌을 때의 크기 정도? 차후 확장을 대비한 설계가 있기는 하지만 일단 우주에서의 식량 생산 기술을 시험해야 했다.

이 우주 농장에 붙은 창문의 크기는 죄다 사람만한 크기였는데 카낙의 거대한 시설에서 만들어 졌다. 내부의 압력을 손쉽게 견디기 위해서 원형의 그릇처럼 만들었는데 안쪽으로 볼록하게 창을 내었다.

그리고 이 볼록한 모양은 태양광을 굴절시켜 넓게 산란시키는 역할도 했다. 볼록렌즈로 모은 빛이 한 점에 모여도 다시 그 점을 지나 퍼지기 때문에 오목 렌즈의 역할을 하는지 안 하는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농장 내부에 반사경을 달아 밑에서 올라오는 태양광을 다시 작물에 골고루 쬐어지도록 해주면 더욱 효율적이었다.

사람처럼 작물 역시 자는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에 창문 개폐 장치도 달았다. 이는 광량 조절 기능은 물론 창문을 보호함과 동시에 창문의 교체나 수리를 용이하도록 해주었다.

다만 가장 큰 문제는 내부에 작물을 키우는 시스템을 어떻게 하느냐였다.

원래는 카낙에서 생산하는 잉여자원들, 예를 들면 넘치는 실리콘 등을 이용해 토양을 만들고자 했다.

하지만 이 토양이라는 것이 결코 만만하게 구현되는 것이 아니다. 식물에게 영양의 원천이 되는 무기질 원소의 공급을 원활하게 해주는 부식토, 토양 미생물 등 토양 재배에 관련된 여러 요소들을 기술적으로 구현하기가 무척이나 힘이 들었다.

토양 재배를 하게 되면 당연히 작물의 특성에 맞추어 적절히 토양에서 물을 빼줘야 한다. 지구라면 강이나 지하수, 구름의 형태로 물이 빠져나가겠지만 우주 농장에서는 인위적으로 수준 조절 시스템을 갖추어 줘야한다.

처음에 강현은 우주 농장의 농업 형태를 지구와 동일하게 밭을 갈고 비료를 꾸미는 등 지구의 농법과 거의 비슷한 형태가 될 수 있도록 생각했으나 이미 우주 도시에서의 상수도 문제에서 교훈을 얻은 바가 있었다. 우주에서 적합한 조건은 지구에서 적합한 조건과 다를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강현은 토양 재배를 포기하고 양액 재배를 선택했다. 양액 재배 흔히 수경 재배라고 불리는 이 방법은 사실 영양액을 사용한 재배 방식의 통칭이다.

물에서 식물을 둥둥 띄워 키우는 것 뿐만 아니라, 진흙 팰랫, 화산재 팰랫, 곡물 껍질, 나무의 섬유, 양털에 폴리스티렌 같은 고분자를 이용한 다양한 기판에서도 재배하는 방법이 있으며 에어로포닉 같이 기판 없이 영양액을 분무기로 안개를 만들어 식물의 뿌리에 직접 분사하는 방법도 있다.

영양액을 사용하는 방법도 다양한데, 그냥 영양액을 가득 채운 탱크 위에 기판을 설치하는 방법부터 영양액을 지속적으로 흐르게 만드는 방법은 물론 앞에서 소개했던 에어로포닉같이 안개의 형태로 사용하는 방법 등 다양했다.

이중에 가장 산업적으로 생산성이 높은 것은 당연코 에어로포닉의 방법이었다. 영양액을 공급하는 동안 식물이 영양액에서 양분을 빨아들이기 때문에 영양액의 조성을 조절해야 하는데 분무기처럼 분사하는 방법은 이 조성 조절에 매우 유리하기 때문이다.

강현은 여러 방법들을 조사하다가 바로 이 에어로포닉을 전격적으로 사용하기로 했다. 기후가 없는 우주 농장에서 에어로포닉보다 적당한 방법의 재배 방법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일단 영양액의 공급을 조절하는 유체 시스템이 단순해 진다. 영양액 탱크에서 분사장치로 가는 시스템만 구성하게 되면 나머지 청소나 습도 조절같이 자잘한 부분은 로봇이나 인력을 쓰거나 따로 장치를 더 설치하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단 이 모든 것을 실제적으로 운용하기 위해서는 어떤 작물을 키울 것인가를 먼저 선택해야 했다. 작물에 따라 필요한 환경 및 영양 조건이 다 다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분야는 강현의 전문 분야가 아니었다.

[당연히 도와드려야죠.]

기획부장 이레이는 싱글벙글했다. 안그래도 우주 식물생리학 부서에서 여러번 문의가 왔었다. 우주 농장은 언제 지어지냐고. 우주에서 사람이 자급자족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건 비단 강현의 꿈만은 아니었다.

그래서 소개된 사람이 우주 식물생리학 부서의 수석 연구원인 마틴이었다.

“일단 에어로포닉을 사용하려고 하는데 곡물은 양액 재배가 안되나요?”

마틴은 강현의 질문에 고개를 저었다.

[양배추 같은 야채의 경우에는 성공했지만 곡물은 아직 연구중입니다.]

“그럼 언제쯤 성과가 나올까요?”

[글쎄요.. 저도 장담 못합니다.]

“음.. 뭐 그리 급한 것도 아니니까 조급하게 연구하지는 마세요.”

곡물을 키운다고 해도 도정 시설을 지어야 한다. 그리고 야채와는 달리 줄기와 곡물 껍질 따위의 도정 부산물이 많이 나오니 이를 처리하는 방법도 찾아야 했다. 시간이 걸리는 일이다.

강현의 설명에 마틴이 대답했다.

[흐음.. 자동화로 가금류나 돼지 소의 사료로도 사용할 수 있겠지만 그렇게 완전히 소비할 수는 없을 것 같기도 하고..]

“일단 발효를 시켜서 영양액의 원료로 사용할 방법도 있어요.”

[그 부분은 사브리나 씨의 도움을 받으면 될 것 같습니다. 미생물학 분야를 공부하셨거든요.]

하긴 우주에 올라와서도 우주 도시 안의 미생물을 연구하니 도움을 받을 만했다.

“흐음.. 발효 영양액이라.. 그거 최신 유기농 농법 중에 하나잖아.”

사브리나의 말에 강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곡물을 잘 쪄서 대지에 파묻은 후에 일부러 곰팡이나 균류를 잔뜩 키운 후 이것을 물에 풀어 뿌리는 방법은 그분야의 매우 기초적인 기술에 속한다.

단순한 것 같지만 진화론적인 관점에서 결코 단순하지는 않다. 콩의 뿌리에서 콩과 공생하는 뿌리혹 박테리아같이 유기물이 풍부하여 미생물이 서식할 수 있는 대지에 뿌리를 박고 살아온 식물과 미생물은 식물이라는 존재가 탄생한 이후 계속 상호작용을 하면서 진화해 왔다.

건강한 식물의 뿌리에는 상호 협조적인 미생물이 공생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인간의 피부 역시 마찬가지라 몇몇 미생물학자는 비누나 샴푸 없이 물로만 씻는 사람도 있을 정도다.

“사람이 야채만 먹고 살 수는 없잖아요. 곡식도 먹어야 하고 고기도 먹어야 하죠. 그런데 가축을 기를 만큼 곡물을 키우게 되면 어쩔 수 없이 쓸모없는 부산물이 나오게 되거든요.”

과거라면 벼집단 같은 건 새끼줄이나 지붕을 엮는데 쓰는 훌륭한 재료지만 요즘 같은 시대에는 영 상품성이 없었다. 식물 섬유 플라스틱이라고 합판 기술을 응용해 식물 섬유과 접착제를 섞은 후 압축한 패널이 나오기는 하지만 대중성은 없었다.

“흐음.. 한 번 궁리해 볼게.”

“그럼 부탁드려요. 저는 식물 공장을 설계해야 해서요.”

“공장?”

사브리나의 말에 강현이 웃음지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공장 같아서요.”

강현은 자신이 구상한 에어로포닉 형태의 양액 재배 시스템을 설명했다.

일단 영양액 탱크와 센서, 분무장치가 쭈욱 길게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분무장치 위로 식물이 자라는 화분, 기판 따위가 쭈욱 놓여진다. 물론 뿌리가 자라며 기판 밑으로 늘어져 영양액 안개를 맞도록 되어 있었다.

자, 이렇게 식물을 잘 기른 후에는 어떻게 수확할 것인가? 그냥 사람이 일일이 다니면서 수확해? 첨단 우주 농장에서 이 무슨 제3세계식 수확을 하냐는 말인가? 나무에서 나는 열매라면 어쩔 수 없지만 기판이란 일정한 틀 안에서 자라는 작물은 좀 더 효율적으로 수확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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