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과학의 군림자-201화 (201/241)

201화

하지만 그런 경고를 경고로 알아들을 만한 강대국들이 아니었다. 특히 미국은 국제적으로 불안을 야기하는 이들에게 되려 경고를 보냈다.

[민간인 대량 학살과 참극을 불러오는 핵무기를 노골적으로 축적하여 국제 평화를 해치는 이들 악의 축의 의도에 미국은 끌려가지 않을 것이며 인류의 평화를 해치려는 의도를 적극적으로 막을 것이다.]

미국은 이슬람권 국가들의 행동에 우려를 나타내다가 손익 계산을 해보고는 기회라고 생각했다. 강현과 유대인과의 갈등으로 이스라엘과 미국의 공조가 약화되었고 중동에 대한 미국의 헤게모니가 약화되었다.

다시 이스라엘과 손을 잡고 싶어도 미국 내의 반 유대적 시민 정서가 정권을 위협하게 될 여지가 너무나도 높았다. 그렇다고 중동 국가들에게 손을 내밀고 싶어도 세습형 독재 공화국, 신정 일치의 이슬람 국가들의 종교 기득권 층이 미국에 가진 뿌리 깊은 증오는 어찌할 수가 없었다. 이슬람 천국을 만드는데 사사건건 방해를 한 국가가 미국이 아닌가?

그런데 우주 시대로 진입하지 못하고 적들이 영원히 자신들의 머리 위에 있을 거라는 공포에 핵무장을 강화했다. 현대전은 고지를 점령하면 우세할 수 밖에 없다. 우주로부터 중력 가속도의 도움을 받아 떨어져 내릴 미사일 세례를 막을 기술이 이란에는 전혀 없었다.

그래서 전쟁 억지력을 위해 핵무장을 강화했다. 이란은 핵무장을 포기한 이라크가 어떤 꼴을 당했는지 너무나 똑똑히 보았다. 페르시아 만을 건너 바로 맞은 편에 있는 나라이니 눈이 있으면 못 볼리가 없었다. 그러나 핵무장 증강은 미국이 개입할 명분을 만들어 주었다. 미국은 공격적 방어를 하기로 결정했다.

곧 Anti-N을 장비한 항공모함이 호르무즈 해협으로 향했다. 호르무즈 해협은 이란의 앞바다이자 사우디, 쿠웨이트, 이라크에 접한 페르시아 만으로 들어가는 교통 요충지다.

이런 미군의 이동에 이란은 전쟁을 벌일 셈이냐며 노발대발했다. 그런 미국은 태연하게 UN 회의에서 이란 무역 제재안을 상정했다. 때문에 이란측 대사와 미국 대사간에 주먹질이 오갈 뻔 하기도 했지만 중동과 더욱 가까운 유럽 국가들의 심기가 매우 불편했기 때문에 전격적으로 통과되었다.

그럴 수록 이란은 더욱 핵무기를 보물 단지처럼 여겼다.

“미친! 이맘은 미쳤다!”

이맘은 이슬람의 종교지도자를 뜻한다. 그리고 시아파의 이슬람 원리주의로 혁명을 일궈 민주주의 체제를 만든 이란은 행정적인 지도부인 대통령을 뽑지만 역시나 마찬가지로 종교적 최고지도자인 이맘을 두어 이원 체제로 나라를 운영했다.

그러나 대통령은 재선은 가능하지만 3선이 금지되어 있고 이맘은 종신제로 한 번 뽑히면 평생간다. 게다가 이맘은 대통령 해임권을 가지고 있다.

당연히 대통령보다 이맘의 권력이 강할 수 밖에 없다. 종교적 권력이 민주적으로 뽑힌 대통령을 밀어낼 수 있다니.. 일반적인 민주주의 상식으로 보면 이해가 안되는 구조다.

신정일치의 이슬람에 민주주의를 도입하려니 이런 기형적인 구조가 된 것이다.

아무튼 무역 제재와 경제 보복으로부터 국민들을 보호해 보고자 핵무기 포기를 선언하려던 이란 대통령은 최고지도자의 대통령 해임권에 실각해 버렸다.

“종교를 지키기 위해 국민들의 고통을 외면하는 건가?!”

종교적 신념은 순교와 희생을 요구한다. 이슬람이 견뎌오고 살아온 형태는 다 그런 식이 아니었던가? 하야하면서 이맘을 비난한 대통령이 석연치 않은 이유로 감옥으로 가고 나자 미국은 한 술 더 떴다.

[핵무기 증강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미국은 평화적 방법으로 핵무기를 무력화시키겠다.]

대표적 비대칭 전력인 핵무기를 무력화 시키겠다는 건 당사자인 국가들로서는 억장이 무너지고 국가적 재산을 침해한 침략 행위였지만 유럽을 비롯한 열강들은 오히려 반가움을 표했다.

[인류가 우주로 도약하는 이 시대에 증오의 상징인 핵무기는 마땅히 폐기되어야 할 물건이다.]

[러시아는 전세계 핵무기 폐기를 제안한다.]

도대체 누구를 위한 핵무기 폐기라는 말인가? 핵무기가 없어진다면 이득을 볼 국가는 정해져있다. 전통적인 군사력에서 앞선 나라들, 특히 미국이 될 것이 분명했다.

비대칭 전력이 어떻게 전쟁을 억제할 수 있었는가? 그 이유는 단 한가지다. 상대적으로 강력한 군사력을 가진 나라라고 할지라도 반드시 엄청난 피해를 강요하기 때문이다. 상대 국가에 침공을 했는데 우리 땅에 핵탄두 하나만 떨어진다면? 그것도 경제적 요충지나 군사적 요충지라면?

군사력이 넘쳐 눈이 벌게진 국가도 다시 한 번 생각할 수 밖에 없다.

그런데 그런 전쟁 억지력의 큰 축이 사라진다? 어떤 일이 생길지 가늠하기 힘들다. 인류의 지성과 인류애로 한 걸음 도약할 계기가 될지, 아니면 전쟁의 시발점이 될지..

“Anti-N 작동 준비!”

“미사일 기지의 좌표는?”

“확보했습니만 더미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상관없다. 어차피 핵무기만 무력화 하는 장비니까 해당 지점을 전부다 무력화 시킨다.”

‘공격한다’가 아니다. ‘무력화’ 시킨다. 항공 모함에서 함장과 승무원이 하는 대화의 핵심은 이것이었다.

‘어떤 인명 피해도 내지 않고 적의 전력을 무력화 하는 무기.’

Anti-N을 공격적으로 운영할 때의 의미다. 피흘리지 않고 적을 무력화 시킨다. 함장이나 승무원에게는 꿈과 같은 이야기였다.

미 항공 모함은 이란 앞마당인 호르무즈 해협에서 이란의 핵무기가 있을 거라고 생각되는 모든 지점에 반감기 가속빔(중성미자 빔)을 꼬박 하루 동안 조사했다. 그리고 훽하고 아무일 없었다는 듯이 돌아갔다. 잔뜩 긴장한 이란 해공군을 황당하게 만들 정도로 전격적으로 빠져 태평양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곧 이어진 미 정부의 발표는 이란의 이맘 및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을 멘붕에 빠뜨렸다.

[… 그러므로 미국은 모든 핵무기가 해체되어 평화적으로 이용 되도록 강제할 수단을 확보했고... 그리하여 이란의 핵무기는 모두 무력화 되었다.... ]

뭐? 우리 핵무기들이 모두 고자가 되었다고?

설마설마했던 군에서는 핵탄두 몇 개를 뜯어 검사했다. 순수해야 하는 우라늄 235 덩어리가 납과 뒤섞여 있었다. 당연히 핵폭발이 일어날 가능성은 없었다.

놀란 군부는 전수 조사를 시작했다. 기껏 개발하고 만든 핵탄두들의 납 함량 비율이 40~60%이라는 놀라운 결과는 이란 군부를 집단 멘붕에 빠뜨렸다.

이것이 이란 종교 지도부에 일으킨 충격 역시 엄청났다. 서둘러 저 Anti-N을 구입해야 한다.

구입을 못한다면 시간을 끌면서 우리도 그런 장비를 만들어야 했다. 그래서 우리도 미국의 핵무기를 무력화 시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다행스럽게도 원천기술은 특허의 형태로 공개가 되어 있었기에 자국의 뛰어난 핵물리학자(핵개발에 투자하니 자연히 핵물리학이 발달할 수 밖에 없다.)들을 동원해 기술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기술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했다. 그래서 이란에서는 미국의 발표에 일언반구도 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자신들의 핵무기는 이상이 없다며 허풍을 쳤다.

그러나 미 정부는 이들의 주장을 비웃듯이 다시 이런 성명을 내었다.

[미국은 앞으로도 지구의 평화와 안전을 위해 노력할 것이며.... 그에 대한 증거로 미국의 모든 핵무기를 해체해 평화적으로 이용할 것을 선언한다.]

무려 비핵화 선언이었다.

뭐? 군사 강대국인 미국이 핵무기를 포기해? 미친 것 아냐?

세계 1위의 강대국인 미국인 만큼 핵 미사일 개수도 가장 많다. 쉬쉬하고 있었지만 사람 심리라는 게 그렇다.

헐벗은 거지에게 들린 칼보다 돈 많고 권력있는 부호의 손에 들린 칼이 덜 위협적이라고 생각한다. 왜냐면 거지는 가지기 위해서 칼을 휘두를 수 있지만 돈 많은 이가 굳이 가지기 위해서 칼을 휘두를 이유는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결론은 무엇인가? 핵을 포기한 이라크의 경우를 보면 알 수 있다. 칼은 부자든 거지든 남이 쥐면 안된다. 자신이 쥐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미국은 자신이 들고 있는 칼을 오히려 당당하게, 공개적으로 내려놓았다. 미국 내에서는 환영과 미 안보를 오히려 해칠 수 있다며 평가와 평가가 엇갈렸지만, 대체적으로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무기 옹호자들조차도 핵무기의 감축 및 폐기안에는 고개를 끄덕였는데 그만큼 다른 부분의 전력 증강에 예산을 몰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당연히 국제적으로는 환영받았다. 자신들을 위협할 요소를 없애준다는데 반대할 이유가 없었다.

그러나 미국도 바보가 아닌 이상 그냥 비핵화를 선언했을 리가 없다. 눈치 빠른 사람들은 미국이 비핵화를 선언한 이유에 의구심을 품었다.

‘자신감!’

핵무기 따위 없어도 된다는 자신감이 없다면 절대 핵무기를 폐기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 말은 미국이 핵테러나 핵공력을 막을 확고한 방어체계를 갖추었다거나 아니면 핵에 준하는 전략 무기를 갖추었다는 것을 뜻했다.

‘아폴로티움!’

그리고 사람들은 신의 지팡이라는 첨단 위성 무기를 떠올렸다. 그냥 단순히 무거운 텅스텐 합금 막대를 위성 궤도에서 떨어뜨리는 것이지만 엄청난 운동 에너지로 인해 소형 전술 핵에 맞먹는 위력을 보이면서도 방사능 오염이 전무한 전술 무기였다.

사실 그 위력은 명백한 과장이지만 카낙 광산이 있으니 말이 다르다. 만일 카낙 광산에게 생산된 대량의 텅스텐 막대가 있다면 굳이 핵무기가 필요 없다. 그냥 많이 많이 목표 지점에 떨어뜨리면 된다. 텅스텐 막대를 우주로 올릴 비용이 없으니 무제한의 공짜 전술핵이 생긴 거나 다름없었다.

우주 도시가 없는 국가들은 신의 지팡이 계획은 우주 협약을 위반한 것이 아니냐며 비난을 시작했다. 운석을 막기 위한 방위 시스템과 달리 신의 지팡이는 오직 지상을 공격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유럽과 동아시아에서는 비난 대신 경악을 하면서 이를 갈 수 밖에 없었다. 미국은 아폴로티움을 단독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 신의 지팡이 프로젝트를 수행할 수 있었다.

하지만 자신들은 우주 도시를 단독 소유하고 있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우주 도시를 전력화하기 위해 다시 골치 아픈 협상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각 국가의 안보가 얽혀 있기 때문에 이전의 협상보다 훨씬 타결이 어려울 수 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협상을 하지 않을 수도 없는 것이 어떤 식으로든 결론을 내지 않으면 이 문제로 우주 도시를 둔 국가들 사이에 심각한 갈등이 일어날 게 뻔했다. 미국은 본의 아니게 우주 도시 계획으로 연합한 국가들 사이에 커다란 똥 무더기를 떨어뜨려 놓았다.

“그런 식으로 오해해준다면야 좋지.”

척 대령은 그런 국가들의 행동에 오히려 반가움을 표했다.

사실 신의 지팡이 같은 건 없다. 강현의 존재가 신의 지팡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는데 걸림돌이 되었다. 신의 지팡이 프로젝트가 완벽히 구현이 되기 위해서는 대량의 텅스텐이 필요한데 강현이 RP는 투명하게 운영이 되어야 한다며 RP 데이터 조작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군인인 척 대령의 입장에서는 불쾌한 일이었지만 달러의 신용을 RP가 지켜주고 있는 상황이라 강현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도 없었다. 물자와 보급 역시 군략의 중요한 축이기 때문에 미국의 경제가 휘청하면 군대 역시 그만큼 불이익을 받는다. 경제력과 군사력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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