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과학의 군림자-200화 (200/241)

200화

요원들은 태양이 쨍쨍 내려쬐는 환경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모래 사구까지 걸어갔다. 선두에 선 사람의 손에는 가우스 계측기와 GPS 좌표 수신 장치가 들려있었다.

곧 목적한 곳에 도착한 요원들은 삑삑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미사일 박힌 모래 구덩이로 들어갔다. 부드러운 모래밭이었지만 낙하시의 충격으로 날개나 모터 부위가 다 날라가 있었다.

요원들은 전투삽으로 구덩이의 중심부분을 파내더니 금속 덩어리 하나를 발견했다.

삑삑삑.

가우스 계측기가 요란한 소리를 냈다. 방사능 물질이라는 소리다.

요원들은 금속 덩어리를 두터운 납용기 안에 넣고 다시 헬기로 돌아갔다. 채취된 시료는 바로 분석에 들어갔다.

“분석 결과는?”

척 대령이 물었다. 그와 통신을 하던 연구원은 놀랍다는 듯이 대답했다.

[납 성분이 약 60%까지 들어가 있습니다. 더 이상 순수한 우라늄이 아닙니다.]

연구원의 얼굴에는 신 장비의 능력에 경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Anti-N. 핵무기를 무력화하는 장비로 원리는 강현이 개발한 반감기 가속 장치와 동일하다. 다만 발산되는 중성미자의 농도를 높이기 위해 수소 플라즈마의 밀도를 높이고, 또 밀도가 올라간 수소 플라즈마의 존속 시간을 늘리기 위해 핵융합 발전을 위해 연구중이던 토카막 용기 기술을 응용해 만든 장비였다.

“시뮬레이션 상으로는 어떤가?”

[우라늄에만 반응하는 중성미자라서 그런지 대기 중 감쇠 현상은 없습니다. 위성 탐지 시스템과 연계하기만 한다면 어떤 대륙간 핵미사일든 얼마든지 무력화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라늄이 완전히 남아 있지 않은가?”

[그렇기는 하지만... 어차피 임계 상태로 만들 수 있는 조건만 붕괴시키면 핵폭발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핵폭발을 위해서는 연쇄 반응이 반드시 일어나야 했다. 핵무기 기술적으로 유효 중성자 곱인자가 1인 임계 상태에 도달해야 하는데 유효 중성자를 늘리는 일이 생각보다 만만하지 않다.

일단 원자로와 다르게 핵폭탄은 감속재가 없다. 자발적 붕괴에 나오는 중성자를 잡아두기에는 중성자가 전기적으로 중성이며 중력으로 끌어오기에는 이미 탈출 속도를 훨씬 넘었다.

그렇기 때문에 핵분열 물질의 농도를 늘리는데, 핵분열 물질이 핵폭발이 일어날 수 있을 정도로 모인 질량을 임계질량이라고 한다. 초기 핵폭탄의 구성 원리는 화약으로 우라늄으로 우라늄을 때려서 한 덩어리로 만들어 임계 상태로 만드는 것이 그 원리였고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플루토늄의 경우는 다르다. 확산하는 성질이 있기 때문에 금속구로 가두고 나서 원형으로 폭발물을 감싼 다음 엄청난 압력으로 압축한다. 원자의 구조는 대부분 빈공간이지만 이렇게 압축이 되면 중성자가 원자핵에 부딪힐 확률이 증가해 임계 상태에 다다를 수 있다.

핵융합 탄은 이런 핵폭탄의 기술을 응용해 다단계로 수소를 압착해 핵융합 시킨다. 공학적으로 매우 고도의 기술이 필요한 건 당연한 일이다.

이 반응들이 순간적으로 일어나기 때문에 연구하는 것 자체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고도의 컴퓨터 시뮬레이션 결과에 의하면 유효 중성자를 만들기 위해, 순도, 밀도는 물론 핵분열성 물질의 모양까지 고려해야 했다.

즉, 핵무기는 생각보다 훨씬 섬세한 무기며 새로 개발한 Anit-N은 이 핵무기의 조성을 바꾸어 임계 조건을 무너뜨릴 수 있는 물건이었다.

[이거면 핵테러를 무서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책임 연구원은 흥분에 떨었다. 미국 중심가에 핵무기를 설치했다고 협박이 온다? Anti-N을 광역 조사(照射]) 하면 된다. 더티밤에 불과할 지라도 Anti-N을 하룻 동안 가동하면 방사능 피해가 중금속 피해 정도로 떨어진다. 중금속 중독은 킬레이션 요법으로 치료 가능하다.

척 대령은 대(對) 핵병기의 가능성에 고개를 끄덕였지만 그래도 혹시 있을 문제점을 물었다. 무시무시한 위력의 핵병기를 상대하는 장비이니 만큼 한 치의 틈도 용납할 수 없었다.

“그럼 자네라면 이 장비를 어떻게 무력화 시키겠나?”

[장비를 사용하기 위한 예열과 중성미자 조사 시간이 문제입니다. 저라면 스텔스 미사일을 사용하거나 아니면 미리 적국의 주요 지점에 핵폭탄을 파묻어 놓고 필요할 때 터뜨리겠습니다.]

연구원의 말에 척 대령은 고민에 빠졌다.

“결국은 정보전이군.”

레이더의 개량, 첩보 입수 능력 향상이 군사적으로 가장 시급하게 해결해야 되는 두 가지 조건이었다. 우주에 띄어놓은 정찰 위성이 아무리 뛰어나도 땅속에 파묻어 놓은 핵폭탄을 찾아내기 힘들며 레이더로 핵배낭을 들고 뛰는 테러리스트를 발견하는 건 힘든 일이었다.

다행스럽게 잠재적인 적성국이라고 할 수 있는 국가들은 다 바다 넘어있기 때문에 공항과 부두에 핵물질 탐지 장치를 설치하면 핵물질 반입 문제는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었다.

국경을 접한 멕시코를 통해 핵물질이 반입할 수도 있지만 그쪽으로 아랍계열 테러분자가 침투하는 건 밀항을 통해 핵물질을 들여오는 것보다 더 어려웠다. 생계를 위해 목숨 걸고 미국으로 향하는 멕시코 남미 밀입국자들이 자신들의 희망의 땅을 방사능으로 물들이려는 미친 놈들은 가만히 놔둘 리가 없다.

척 대령은 서둘러 펜타곤 상층부에 보고서를 올렸다. 핵무기 무력화 장비의 실용화가 초읽기에 들어갔으니 핵물질에 대한 대응 방법을 전격적으로 바꿀 때가 되었다.

Anti-N을 방어적으로 운용할 것이냐, 아니면 공격적으로 운용할 것이냐?

방어적으로 운용한다면 MD 시스템과 마찬가지로 고도의 레이더 망을 갖출 필요가 있다. 아니 MD 시스템에 추가하여 핵미사일이라도 무력화하는 제2 방어선으로 삼아도 된다.

하지만 공격적으로 운용한다면 말이 달라진다. 일단 잠재적 적성국의 우라늄 광산에 Anti-N을 발사해 우라늄 235를 고갈시킬 수 있다.

한창 가동 중인 핵발전소에 사용해 급격한 반감기와 핵분열을 시켜 발전소에 사고를 일으킬 수도 있다. 보관 중인 연료를 급격히 데워 증기 폭발을 일으키거나, 사용 중인 연료봉을 완전히 열화 시켜 못쓰게 만들어 버린다거나 하면 결과적으로는 블랙 아웃 현상이 일어날 것이다.

전기 문명에서 정보 전송 수단을 전기 에너지에 의존하는 건 당연하며, 그러므로 이런 블랙 아웃 현상을 적성국에 일으키게 한다면 군사 전략적으로 이쪽에 이득이 되는 건 당연했다.

이 방법은 심지어 지구 반대편에 있는 국가에도 사용할 수 있는데 특정 에너지 상태로 양자화된 중성미자의 반응성 역시 양자화되어 특정 물질하고만 상호작용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척 대령의 보고서를 검토한 펜타곤은 다시 미 정부에 보고서를 올렸고 미 정부는 Anti-N의 전격적인 생산을 지시했다. 방어적으로도 운용하고 공격적으로 운용하겠다는 뜻이었다.

과연 안보에 신경을 쓰는 세계 경찰이자 세계 깡패의 결정다웠다.

문제는 미국만이 이런 생각을 한 건 아니라는 것이다. 강현의 반감기 가속장치의 등장은 곧 핵물질의 반감기를 인위적으로 조작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였으며 핵물질을 사용한 무기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생각은 웬만한 기술 강국들은 다 할 수 있는 생각이었다.

특히 핵폭탄을 두 방이나 맞은 일본에서는 핵무기 무력화 기술에 전력을 다했다. 일본의 종주국이라고 할 수 있는 미국에서 자극을 받을 정도였다.

그러나 일본보다 더 미친 듯이 이 기술에 매달리는 국가가 있었으니 이란이었다. 이슬람 국가지만 아랍과는 달리 페르시아계로 같은 이슬람이라고 해도 아랍권 국가들과 사이가 그리 좋지 못하다.

종교적인 동질감이 있지만 신정일치, 세습형 공화제가 주류를 이루는 아랍권 이슬람 국가와 그나마 민주주의가 정착된 이란은 정치적으로 연대하기에는 여러모로 애로사항이 많았다. 이는 중동 연합의 우주 도시 건설에도 매우 큰 걸림돌로 작용했다.

거기에 반미국가이기도 하니 이란이 밀접하게 연대할 수 있는 국가들 중 첨단 우주 항공 기술을 제대로 갖춘 국가도 없었다. 유럽 우주 도시 계획에 은근 슬쩍 끼고 싶어도 반미국가라는 딱지에 영국을 비롯, 미국과의 갈등을 우려한 여러 유럽 국가들의 반대로 그러지도 못했다.

이슬람이지만 친미 국가인데다가 돈이 아주 많아서 유럽 우주 도시 계획에 참여할 수 있었던 사우디와는 아주 대조적이었다.

그렇다고 반미를 포기해야 하나?

이란의 정치적, 지리적인 입장을 고려하면 불가능했다.

일단 역사적으로 이라크-이란 전쟁에서 당시 미국이 사담 후세인을 지원한 전적이 있었고 당시 시아파 혁명으로 정권이 바뀌었던(이라크-이란 전쟁의 시발점이기도 했다.) 이란과 시아파 테러 조직인 헤즈볼라(당시 레바논 미 대사관에서 인질극을 벌임)의 밀접한 관계 등으로 미국과 사이가 아주 안좋아졌다.

거기에 주위 국가들이 다 이슬람이다. 시아파의 이란 혁명으로 이슬람 원리주의가 퍼진 상태. 그런 그들이 자신들의 사이에 친미 국가가 들어서는 걸 가만히 놔둘까? 배신자 소리에 자살 폭탄 테러가 이란 도심에서 일어날 가능성이 너무 높았다.

이렇게 미국과 사이가 안 좋은 이란인데 미국이 저 우주에 먼저 진출해 버렸다. 우주에서 머리위로 핵미사일을 떨어뜨리면 어떻게 하나? 반감기 가속 기술이 탄생한 미국이니 분명 핵무기 무력화 장비를 개발하고 있는 건 당연한 일이었고 국제적으로 욕을 먹어가며 핵개발을 추진한 이란은 졸지에 닭 쫓던 개꼴이 되었다.

국제 사회의 고립을 자초하면서 해왔던 모든 것이 무용지물이 되었다. 당장 자신들의 머리위에 미사일이 떨어져도 핵무기로 반격조차 할 수 없게 되었다. 이란이 핵무기 무력화 장비에 매달리는 건 살기 위한 발악과도 같은 것이었다.

이런 이란의 분위기는 이슬람 원리주의의 동질성과 인맥으로 주위 여러 나라에 퍼졌다. 이라크,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 쿠웨이트.. 여러 나라들이 이대로는 안된다는 건 실감했다.

그들은 이슬람을 위협하는 세력인 미국으로부터 자신들을 보호해야 했고 결국 지지부진해졌던 중동 연합 우주 진출 프로젝트를 본격적으로 가동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알라만을 외쳐대던 그들에게 고도의 우주 기술이 있을 리가 없었다. 척박해도 신앙의 힘으로 잘 먹고 잘 살았던 그들이었다.

고로 우주 진출 프로젝트는 중동 방어 프로젝트로 바뀌었다. 더 많은 핵무기가 필요했다. 핵무기의 전쟁 억지력은 허상이 아닌 실상, 자신들에게 핵무기가 많다면 미국이라도 자신들을 함부로 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어? 이 놈들이 미쳤나?’

미국은 중동에서 벌어지는 일에 당황했다. 신앙과 종교는 생각보다 훨씬 비이성적이었다. 아폴로티움이 무장되고 미국의 국력이 이제 공포스러울 정도가 되었으니 이쯤 되면 슬슬 기어 들어오거나 애써 외면하고 가만히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핵무기 증강이라는 초강수를 쓸 줄이야 누가 생각을 했겠는가?

종교적 신념을 빌어 죽어도 굴복하지 않겠다는 굳은 의지를 간과한 미 정부의 판단 실책이었다. 죽느니 굴복하지 않겠다는 걸 자살폭탄 테러로 이미 많이 겪어보지 않았는가?

미 정부는 부랴부랴 Anti-N의 증산과 가동 실험, 운용 훈련에 빠르게 도입했다. 그리고 국제 사회에는 우려가 퍼졌다.

무려 핵무기다. 한 대만 방어선을 피해가도 참극이 벌어진다. 유럽과 아시아에서는 이란을 비롯한 이슬람 원리주의 세력에게 핵무기 증강을 중지하라며 경고했다. 하지만 이들 국가에서는 머뭇거리면서도 핵무기 증강을 멈추지 않았다. 그들에게 그것은 자신들을 건들지 말라는 무언의 경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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